근황

from 분류없음 2019/01/21 16:06

외국에 사는 건 각종 성가신 일들의 연속이지만, 최근 들어 가장 신경쓰이는 일은 미국 영주권 신청과정이다. 살면서 한 번도 그린카드 같은 걸 바래본 적이 없는, 아니 미국같은 나라에 "영주"하는 것을 삶의 옵션으로 고려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변호사와 상담하고 이런저런 서류들을 준비하다가도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문득 멈춰 생각하게 된다. (내게는 미영주권을 가지게 되면 북한에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최대 장점으로 다가온다.) 학교 변호사의 설명을 듣자면, 영주권은 '영주'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에도 불구하고,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이방인(alien)과 미국 시민권자 사이에 '끼인' 법적 지위라 할 수 있단다. 외국인도, 그렇다고 미국시민도 아닌 그 애매한 위치가 이 곳에서의 나의 삶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내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지난 몇 년간의 불안정한 삶—불투명한 미래의 압박 속에서 논문작성을 위해 뉴욕과 서울을 여러차례 오가고, 그에 따라 그저 끊기거나 스쳐지나갈 뿐인 관계와 기회들에 우울해하는 생활—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 뿐이었는데, 학생 꼬리표를 떼고 나니 막상 또 다른 형태의 애매한 삶이 이어진다. 다만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세계 한 구석 어딘가에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나만의 오피스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고, 끝내 떨쳐낼 수 없는 어떤 모호함과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공간에서 어떤 말과 글을 생산할까라는 고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공식 매체에 발표했던 글들 중 몇 편을 뒤늦게 블로그에 옮겨 놓았다. 앞으로 영어로 글을 쓸 일이 더 많아질테고 이미 그러고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일 년에 한 두 편 정도는 한국어로 글을 쓸 계획이고, 너무 학술적이거나 공동저작인 경우가 아니면, 이곳에나마 차곡차곡 쌓아놔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SNS에서의 빠른 호흡들이 너무 숨가쁜 나로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버려진 채 방치된 이 공간을 창고의 형태로나마 살려두고, 모호함에 길을 잃은 심정이 들 때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숨구멍으로 남겨 놓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아주 간간히 업데이트될 글들 외에 독백의 형태로라도 가끔 근황과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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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16:06 2019/01/21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