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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4
    차이짓기의 문제
    키메라

차이짓기의 문제

 

 

지난 워크샵(민성노련 1주년 기념 워크샵)에서 성노동자들의 '특정지역 비범죄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특정지역'에 대한 집착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성노동자들은 그 부분에 대해 강조했는데, 나는 그것을 소위 말하는 '3종 업소'에 대한 성노동자 스스로의 차이짓기로 읽었습니다. 왜 성노동자는 집창촌과 술3종 업소를 차이짓는가? 아마도 성노동자들의 경험으로부터 그런 차이짓기가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문득, 성노동자들이 규정하고 있는(경험적으로든, 개념적으로든) '성산업' '성노동자'가 일반인이 생각하고 있는 '성산업' '성노동자'에 대한 규정과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언론매체에서 마치 성산업 업소처럼 다루고 있고 일반인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룸싸롱'이나 '단란주점'이 성산업에 포함되는 것일까요? 성노동자들은 아니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성노동을 하고 있겠지만, '성노동자'인 것일까요? 성노동자들은 아니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산업을 합법화하고 성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면, 역시 성산업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 규정(법적 정의를 포함한)이 필요하고 성노동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 규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차후에 있을 여타의 쟁점과 성노동자 운동의 방향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예를 들어 '포르노의 제작'이나 '성인 사이트'를 성산업이라고 했을 때 그 산업의 합법화와 그 속의 성노동자의 권리까지를 포괄하는 투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룸싸롱'을 성산업이 아니라고 규정한다면 현재 '3종 업소'에서 성행하고 있는 성노동의 강요는 그야말로 업주의 불법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성산업과 성노동자의 규정에 따라 운동의 주체와 목표, 방향 등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산업이 무엇인지, 성노동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연구된 결과도 드물며 그런 논쟁도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크샵에서 성노동자들은 스스로의 경험적 현실에 기초해 어떤 한계를 그으며 개념들을 규정했다는 것이 제 판단이며, 나는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자들의 판단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그 부분에서 더 발전된 연구를 진척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워크샵에서의 성노동자들은 '길거리 매춘, 그리고 출장매춘형태들과 집창촌의 형태'를 성산업에 속한다고 보고,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성노동자라고 정의했다고 보여집니다. '3종 업소'는 성산업에 속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일하는 접대서비스 노동자는 성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주부도 성노동이나 매춘을 하고, 일반 회사원도 때에 따라 성노동을 하거나 매춘을 하겠지만 그 형태가 성산업은 아니고, 그 주체성도 성노동자는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다고 보여집니다.

모두가 성노동을 한다는 측면에서 성노동이나 매춘은 범죄가 아니라는 하나의 근거가 되고, 또한 우리 모두가 성노동을 하고 있으므로 공통적이며 그것이 서로 다른 주체성들이 연대하는 토대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성노동자인 것은 아니겠죠.

 

나로서는 '3종 업소'에서 일하는 접대서비스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어떤 주체성으로 부를지, 그리고 자신들의 권리를 어떤 주체적 권리로 제기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것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노동자들은 성노동자가 아니라 접대서비스 노동자로 자신들을 인식하고 있으며 성노동을 강요받는 성착취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술을 팔기 위한 업주의 목적에 종속되어 매춘을 강요 받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재활센터를 찾는 노동자들의 대부분도 '3종 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며, 성착취를 호소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도 결국 그녀들인 것이 아닐까요? 성매매특별법을 지지하는 언론매체의 보도 관행에서도 '3종 업소'에 있는 여성들을 다루지 집창촌에 있는 여성들을 다루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는 미묘하지만, 현재 성노동 운동에 있어서는 무척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이런 차이를 예민하게 다루는 쪽이 성노동자이며, 오히려 성산업이나 성노동자에 대한 규정을 포괄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다루는 쪽이 연대단체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한편, 워크샵에서 성노동자들은 '섹스행위 이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 성노동으로 규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포르노 배우들이나 성인 사이트와 관계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포르노 배우는 성노동자인가요? 아닌가요? 포르노가 아닌 에로영화는 어떻습니까? 에로배우는 어떤 존재인가요? 성산업과 성노동자입니까, 아닙니까? 성인 사이트에 글을 기고하는 필자들과 소위 야설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성인용품을 제조하거나 파는 산업과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요? 성산업과 성노동자를 규정하려는 순간, 갑자기 갖가지 의문과 혼란에 휩싸입니다. 주위로부터 '직접 성을 팔지 않으니까 업주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라면 포르노 감독이나 포르노 제작에 참여하는 스탭들은 무엇이며, 야설작가는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들도 성노동자라 불릴 수 있을 듯 한데, 성해방의 뉘앙스를 풍기는 '남로당'이라는 사이트를 방문해봤더니 성노동자와 성노동 운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더군요. 이것은 '민성노련' '성적표현의 자유나 성 정체성의 자유'에 대해 무관심한 것만큼, 그쪽에서도 비슷한 정도로 성노동 운동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분명 모두 성산업이고, 또한 성노동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얼마 전, '섹스포'라는 섹스 엑스포 행사가 온갖 검열과 제재에 걸려 흐지부지 된 적이 있는데요. 이런 것에 대해 투쟁하는 것을 매개로 성노동 운동을 확대해나가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매춘부'가 아닌 '성노동자'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의미가 점점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각설하고, 현재 우리에게는 성산업과 성노동자에 대한 정리된 개념규정조차 변변치 못합니다. 아마도 집창촌을 사수하고 생존권을 사수하는 문제가 일차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노동 운동이 계속 되는 한, 그리고 계속 되어야 한다면 성산업과 성노동자에 대한 개념이 토론되어져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이 운동의 구체적 목적과 방향, 그리고 연대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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