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2007/05/12 19:08

대선강령 고찰(2)

무엇으로 봐야 하는가?

"고용불안과 빈곤이 철폐된 인간다운 삶을 사회가 책임지는 사회는 소수 독점재벌에게 집중되어 있는 산업시설을 사회적 소유로 바꾸어야 하며 소수 특권층에 독점되어 있는 정치권력을 노동자 민중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정부를 노동자 정부라 한다."(해방 23호.2007년 사회주의자의 대선강령 - “인간적인 삶을 사회가 책임지는 세상을 향해” 이하 대선강령)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노동자 세상, 노동자 정부. 자본가를 위한것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아름다운 세상이다. 문제는 어느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 하는가 이다. 자본주의 세상인가 아니면 노동자 정부가 존재하는 사회주의 세상인가하는 문제가 언제나 발전에 발목에 족쇄를 채운다.

" 당면 과제는 비정규직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철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공서부터 비정규직을 철폐하여 수개년 계획으로 비정규직 축소와 철폐를 이루어내야 한다. "(해방 23호 대선강령)

자본주의는 언제나  지배자가 부르조아다. 부르조아가  존재하는한 노동자의 권력은 언제 오는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사이의 과도기는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이중권력에서 존재하는 것이 혁명적 시기도 아닌 선거에서 가능한가? 자본주의가 존재하면서  그안에서의 개혁은 언제나 물질 만능주의를 심어 주고 대중을 언제 개량의 늪으로 빠져 들게 하는 속 깊은 뜻으로 해석 해야한다. 혁명은 언제나 개량에서 시작 되기 때문이다. 대중은 빵을 먹지 못해면 사탕을 만들어 먹을 수있기 때문이다.

" 노동자의 질병, 출산, 학업, 휴가, 징병과 같이 일시적이고 간헐적인 업무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임시직과 일용직 같은 기간제 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추진할 것이다."(해방 23호 대선강령)

"더 많은 교사, 방과후 아이들을 돌볼 교사, 노인과 병자를 돌보는 간병인, 생태파괴를 감시하는 환경감시인,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 문제이다. 이러한 일자리의 창출을 바라지 않는 것도 사회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본이다. 자본은 예산타령을 하며 이들 일자리의 창출을 반대한다. 바로 인간다운 삶의 확대를 거부하는 자본들에 의해 이들 일자리의 대폭적인 확대가 가로막히고 있는 것이다. "(해방 23호 대선강령)

"노동시간 상한제와 노동강도 완화를 통한 고용확대는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경기를 활성화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문화수준을 증진하여 노동자계급의 자치역량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해방 23호 대선강령)

노동자의 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점이 든다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최저생활이 어느 정도인가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관심속에서 결정되고, 여기에 미달하는 계층을 현금 및 현물공여방식으로 해소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절대적 빈곤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략 약10조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되고 있는데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즉각적인 예산증액을 요구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해방23호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경제대안)

물론 정부에게 요구를 하고  들어주면 자신이 옳고 안들어주면 네가 나쁜놈이다라고 할 수있다. 과학을 알면 대중에게 선전과 선동을 그렇게 한다는것은 무책임한것이 아닌가? 대중에게 대안을 제시할땐  사회주의의 모양을 제시하고 그들에게 혁명을 유도하기 위한 발상을 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 노동시간 상한제와 노동강도 완화를 통한 고용확대는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경기를 활성화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노동자들의 연대의식과 문화수준을 증진하여 노동자계급의 자치역량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해방 23호 대선강령)

정부에게  요구를 하고 안들어주면 어떻게 할것인가!

" ‘사회양극화’,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 절대적 빈곤층의 빠른 확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문제의 해결책이다. "(해방 23호 대선강령)

사회주의가 해결책이면 언제나 사회주의로 나갈 준비를 대중에게 시켜야 한다. 준비가 안되면 언제나 대중은 보수적으로 동아선다. 전망이 없는 투쟁은 역량을 투재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대중은 안다. 혁명을 위한다면 사회주의 강령으로 투쟁을 하라. 쓸데 없이 선거 강령을 만드는 짓은 시간 낭비다. 사회주의자들은 선거 강령을 따로 만들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눈먼 장님에게 색상을 이야기하고 귀머거리에게 소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격이다. 의회주의 환상을 깨뜨리고 나가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선거를 통해서 국가권력을 장악을 할 수 있다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

말로는 노동자 정부를 떠들면서 언제나 행동은 부르조아 사회며, 자본주의 사회의 개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동지들의 사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해방지의 모습은 어제나 바쁘지만 진정한 소득은 언제나 뒷전이다. 전망이 없는 투쟁을 하기 위해서  대중을 기지고 노는 모습에서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언제나 2단계적인 사고 에서 벗어나 진정한 말로만 떠드는 과도기 강령에서 벗어나고 이행기 강령으로 나타나게 되는가? 혁명의 모습은 언제 쯤에 나올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앞서서 비판하니 깬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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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2 19:08 2007/05/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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