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2005/09/16 12:04

이행강령 10

소련과 이행기의 문제들

러시아는 10월 혁명으로 노동자국가가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필요조건인 생산수단의 국가소유는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소련 노동자국가의 국가기구는 완전히 퇴보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무기로부터 노동자계급에 대한 관료적 폭력의 무기로 바뀌었다. 더욱이 관료집단은 소련경제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악귀가 되었다. 후진적이며 고립된 노동자국가의 관료화와 관료집단의 전능한 특권화는 이론 뿐 아니라 실천에서 일국사회주의 이론의 허구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소련은 커다란 모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퇴보한 노동자국가(degenerated workers state)로 남아있다. 이것이 소련 사회에 대한 진단이다. 이 정치적 진단은 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두 가지로 열어놓고 있다. 첫째 노동자국가 내부에서 갈수록 도를 더해가며 세계 자본가 계급의 도구가 되고 있는 관료집단이 이 새로운 사회주의 소유형태를 타도하고 노동자국가를 자본주의로 다시 추락시킬 수 있다. 둘째 노동자 계급이 관료집단을 타도하여 사회주의의 길을 열어 나갈 수 있다.

제 4 인터내셔널에게 모스크바 조작 재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크렘린궁을 장악한 스탈린 일당 지도부의 개인적 광기의 결과도 아니다. 다만 테르미도르 반동의 산물에 불과하다. 즉 소련 관료집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분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분쟁은 `인민' 내부의 깊어지고 있는 적대관계 뿐만 아니라 관료집단과 인민 사이의 모순을 반영한다. 피비린내 나는 재판의 `황당한' 성격은 이 모순의 격렬한 정도를 드러내 주고 있으며 같은 정도로 이 모순의 해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예감하게 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전임 외교관들의 공개적인 발언은 나름의 방식으로 관료집단 내부에 모든 색조의 정치 경향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반박의 여지없이 확인시키고 있다. 즉 진정한 볼셰비키인 이그니스 라이스(Ignace Reiss)에서 완벽한 파시스트인 부텐코(Butenko)까지 다양한 정치적 색채들이 관료집단 내부에 존재한다. 여기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혁명 분자들은 수동적으로나마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반혁명 파시스트 분자들은 그 영향력을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데 더욱더 일관되게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이해를 표현하고 있다. 매판 자본가의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새로운 지도부가 `서방 문명' 즉 자본주의에 동화해야 한다고 떠벌리고 있다. 그리고 국유화, 집단화, 외국무역 독점 등 사회주의 정책을 거부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고는 나름대로 합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극단적인 정치 경향 사이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경도된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자유주의 경향들이 여기 저기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스탈린이 강변하고 있는 소위 `무계급'사회에도 관료집단 내부의 정치적 다양성에 정확하게 조응하는 사회 집단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다만 이 집단들의 존재가 확연히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관료집단 내부 정치 세력들의 영향력 정도와 반비례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의식적으로 자본주의 복귀를 꿈꾸고 있는 경향은 집단농장의 부유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부류는 일반 대중의 빈곤을 대가로 재산을 축적하는 소자본가 경향들을 광범위하게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관료집단은 이들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사회의 불안정을 조장하는 갈등들이 계속 증대하고 있다. 이 체제 위에 테르미도르 엘리트 집단이 군림하고 있다. 이 지배집단은 현재 주로 스탈린의 보나파르트 파벌로 구성되어 있는데 테러를 통해서만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최근의 모스크바 재판은 완전히 조작된 재판으로 좌파를 공격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우익반대파(the Right Opposition) 지도자들에 대한 싹쓸이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 볼셰비키당의 우파 그룹은 관료집단의 이해와 경향의 관점에서 보면 좌파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스탈린 파벌은 부텐코와 같은 우파 동맹자들도 똑같이 경계한다. 그리고 볼셰비키당의 구세대를 거의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대중의 증대하는 불만 뿐 아니라 이들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혁명 전통의 활력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편 서방의 소자본가 민주주의자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모스크바 재판을 소련의 독재체제를 비난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호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소련에 트로츠키주의나 트로츠키주의자는 전혀 없다'는 주장을 끈질기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왜 모든 숙청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 설명할 수 없다. `트로츠키주의'를 하나의 완성된 강령으로 또는 좀더 적절하게 하나의 조직으로 보고 평가한다면 `트로츠키주의'는 소련 내부의 아주 미약한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조직의 파괴할 수 없는 위력은 혁명전통 뿐 아니라 오늘날 러시아 노동계급의 체제에 대한 실제적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노동자들이 관료집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증오심 --- 바로 이것이 크렘린궁의 스탈린 파벌에게는 `트로츠키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골이 깊지만 명확하게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증오심이 제 4 인터내셔널과 결합하는 것을 이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이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으며 사실 합당한 근거가 있다.

구 볼셰비키 세대 및 청년-중년 세대의 혁명 대표들을 소탕하는 스탈린 파벌의 행위는 관료집단 내부의 정치적 균형을 깨뜨리면서 부르주아 우파와 이들의 동맹 세력들의 지위를 유리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 우파 세력은 다음 시기에 소련의 사회 성격을 더욱 단호하게 수정하여 `서구 문명'이 발생시킨 파시스트 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도입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전망 속에서 `소련 방어'의 문제가 더욱 구체적인 시급성을 띠고 있다. 만약 내일 소위 `부텐코 분파'라고 명명되는 부르조아-파시스트 분파가 정치권력을 넘볼 경우 `라이스 분파'는 불가피하게 바리케이트의 반대편에 서서 이들의 기도에 저항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스탈린의 동맹자가 되더라도 결국 이 분파는 보나파르트 파벌이 아니라 소련의 사회적 기초 즉 자본가로부터 빼앗아 국가소유로 변모시킨 소유체제를 방어할 것이다. `부텐코 분파'가 히틀러와 동맹하고 있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이 `라이스 분파'는 소련 국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파시스트들의 군사적 개입에 대항하여 소련을 방어할 것이다. 이와 다른 정치 행동은 세계혁명에 대한 배신 행위일 뿐이다.

소련에 대한 자본주의 반혁명 세력의 공공연한 공격에 대항하여 관료집단의 테르미도르 분파와 제 4 인터내셔널이 `공동전선(united front)'을 수립할 가능성을 미리 엄격하게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련에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아직까지도 이 테르미도르 관료집단을 타도하는 것이다. 이 집단의 지배기간이 하루씩 연장될수록 경제의 사회주의적 요소는 파괴되고 자본주의 반혁명의 성공 가능성은 증대된다. 코민테른이 스탈린 파벌의 하수인이자 공범자가 되어 스페인 혁명을 압살하고 국제 노동계급의 사기를 저하시킨 배신행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파시스트 지배집단과 똑같이 소련 관료집단의 가장 강력한 생존력은 대중의 사기저하와 불투명한 혁명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스탈린 일당의 테러 잔악성은 한이 없다. 이 점 이외에 이들과 파시스트 지배집단과는 전혀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엄혹한 상황에서는 혁명을 준비하는 선전작업만이 가능하다. 파시스트 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련 노동자의 혁명적 분출은 국제적 상황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많다. 세계 차원에서 코민테른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 오늘날 스탈린 독재체제에 투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비밀경찰 기구를 직접 거느리지 못한 코민테른이 스탈린 분파 그리고 크게 말하여 테르미도르 관료집단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다. 이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징후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소련에서 혁명의 물결이 새로이 파도칠 경우 사회적 불평등정치적 탄압에 대한 투쟁이 먼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관료집단의 특권을 폐지하라! 스타하노프 운동을 폐지하라! 소비에트 귀족집단을 타도하자! 모든 형태의 노동에 대한 임금 격차를 줄여라!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 활동의 자유, 집회를 개최할 권리, 언론의 자유 등을 향한 투쟁은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과 발전을 위한 투쟁이 될 것이다.

소련 관료집단은 히틀러-괴벨스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계급투쟁 기관인 소비에트를 제거하고 대신 보편적 투표권이라는 허구적 제도를 내세웠다. 소비에트의 자유스러운 민주적 형식 뿐 아니라 계급적 내용을 다시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자본가 계급과 쿨락에게 소비에트 참여 권리를 박탈했듯이 지금 관료집단과 새로운 귀족층을 소비에트로부터 배제시켜야한다. 소비에트에는 노동자, 집단농장 농민, 기타 농민과 적군 병사 등 각계 각층 인민의 대표자들만이 참여해야 한다.

소비에트 민주화는 소비에트 정당들의 합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자유 의지가 주어질 경우 어떤 정당들을 소비에트의 정당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에 기초하여 계획경제를 철저히 수정하라! 공장위원회는 생산을 통제할 권한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민주적으로 조직된 소비자 협동조합이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

노동자의 의지와 이해에 따라 집단농장을 재조직하라!

관료집단의 반동적 대외정책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크렘린궁의 모든 외교문서들은 공개되어야 한다. 비밀외교를 폐지하라!

테르미도르 관료집단이 자행한 모든 정치재판은 완벽한 공개와 개방된 토론 등을 통해 완전히 재평가되어야 한다. 억압받는 대중의 저항 물결이 혁명을 성공시킬 경우에만 소비에트 체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사회주의를 향한 소비에트 체제의 중단 없는 발전이 보장될 것이다. 소비에트 대중을 봉기로 인도할 수 있는 당은 제 4 인터내셔널뿐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일당을 타도하자!

소비에트 민주주의 만세!

국제 사회주의 혁명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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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6 12:04 2005/09/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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