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2005/09/16 12:02

이행강령 8

소비에트

이미 말한 바대로 공장위원회는 공장 내에 존재하는 이중권력의 한 구성부분이다. 결국 대중이 지배질서에 더욱더 압박을 가할 때만 공장위원회가 존재할 수 있다. 전쟁 반대 특별 대중 조직들, 가격 위원회, 그 밖의 새로운 운동 중심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조직들의 등장 자체는 계급투쟁이 기존 노동자조직들의 정치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새 기구들과 투쟁 중심들은 곧 조직적 열세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이행 요구는 어느 것도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동시에 사회 위기의 심화는 대중의 고통과 불만 뿐 아니라 인내력과 체제에 대한 압력 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피억압자의 새 부위들이 더욱더 고개를 쳐들고 요구 투쟁에 나설 것이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단 한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노동에 지친 수백만 `서민'이 노동자 조직들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릴 것이다. 실업자도 운동에 가담할 것이다. 농업노동자, 파산 당했거나 그 직전의 농민, 도시의 피억압 계층, 여성 노동자, 주부, 노동계급으로 변모한 지식인 등 모두는 단결과 지도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한 도시의 경우만 해도 어떻게 다른 요구들과 다른 형태의 투쟁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역사는 대답을 내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즉 소비에트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소비에트는 모든 투쟁 조직 대표들을 하나로 결집시킨다. 이 목적을 위해 어느 누구도 다른 형태의 조직을 제안한 적이 없다. 이 목적을 위해 소비에트보다 더 좋은 조직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소비에트는 선험적인 당 강령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소비에트는 모든 피착취 인민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이 문을 통해 모든 계층의 대표들이 투쟁의 거대한 물결 속에 합류한다. 조직은 운동과 함께 폭이 넓어지면서 스스로를 새롭게 한다. 노동계급의 모든 정치 조류들은 가장 광범위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소비에트의 지도력을 쟁취하고자 투쟁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에트 건설 구호는 이행 요구 강령의 정점이다.

소비에트는 대중운동이 공공연히 혁명적 단계에 들어선 시점에서만 등장할 수 있다. 처음부터 소비에트는 착취자에 대항하는 수백만 근로인민의 투쟁 구심이 되어 지방 정부와 중앙정부에 도전하고 이들과 경쟁한다. 공장위원회가 공장 내에서 이중권력을 조성한다면 소비에트는 전국적 이중권력 시기를 개막한다.

한편 이중권력은 이행기의 정점이다. 자본가 정권과 노동자 정권이 서로 화해할 수 없이 대적한다. 이 두 정권 사이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사회의 운명은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다. 혁명이 패배하면 자본가 계급의 파시스트 독재가 등장한다. 혁명이 승리할 경우 소비에트 권력 즉 노동계급 독재와 사회주의 건설이 시작된다.

후진국과 이행기 요구 강령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은 후진국이라는 근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후진국들은 제국주의 지배 세계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이 나라들의 발전은 결합적(combined) 성격을 갖는다. 즉 가장 원시적 경제형태들이 최신의 자본주의 기술 및 문화와 결합된다. 후진국 노동계급의 정치 투쟁도 같은 방식을 따른다. 즉 민족 독립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기본적 투쟁이 세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투쟁과 결합한다. 민주주의 구호, 이행 요구들,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들이 이 투쟁에서  곧바로 연결되어 제출된다. 중국의 노동계급은 노동조합 조직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소비에트 건설을 준비해야 했다. 이 의미에서 이행 강령은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에게 완벽히 적용될 수 있다. 최소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이행 강령이 적용될 수 있다.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의 중심 과제는 봉건적 유산들을 일소하는 농업혁명과 제국주의 지배의 멍에를 벗어 던지는 민족 독립에 있다. 이 두 과제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민주주의 강령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투쟁에서 대중은 이 투쟁의 한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국회 또는 제헌의회 구호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구호는 민족해방과 농업개혁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민주주의 강령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다. 오직 노동자들만이 농민을 투쟁으로 끌어들이고 이들과 단결할 수 있다. 혁명적 민주주의 강령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을 `민족'자본가 계급과 대항시켜야 한다. 그리고 혁명적 민주주의 구호를 통해 대중을 투쟁에 동참시킨 특정 단계에서 소비에트는 수립될 수 있으며 수립되어야 한다. 각 시기 소비에트의 역할은 특히 국회와 관련하여 노동계급의 정치 수준,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 정도, 노동계급 정당의 정치적 내용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조만간 소비에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 소비에트만이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민주주의 요구와 이행 요구들의 상대적 비중, 이것들의 상호 연관성, 그리고 이들의 제출 순서 등은 각 후진국의 특수한 상황과 이 나라의 후진성 정도에 따라 크게 결정된다. 그러나 후진국에서 혁명운동 발전의 일반 경향은 러시아의 3대 혁명 즉 1905년 혁명, 1917년 2월 혁명, 1917년 10월 혁명에 의해 명확히 드러난 바대로 연속혁명(permanent revolution)의 정식에 따라 결정된다.

이 나라들의 강력하며 희망찬 혁명을 코민테른은 전형적인 방식으로 말아먹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중국의 대대적인 대중투쟁의 파도 속에서 코민테른은 제헌의회 구호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소비에트 수립을 가로막았다. 스탈린의 계획에 의하면 자본가 정당인 국민당이 의회와 소비에트 모두를 대신하기로 예정되었다. 대중이 국민당에 의해 학살당한 후 코민테른은 광동에 소비에트의 우스꽝스러운 모조품을 수립했다. 광동 봉기의 필연적인 실패 이후 코민테른은 공업노동자가 완전히 수동적 태도를 보인 가운데 게릴라 전투와 농민 소비에트 노선을 추구하였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처하자 코민테른은 중일전쟁을 이용하여 `중국 소비에트'를 간단히 청산시켰다. 그리고 농민`적군' 뿐 아니라 소위 `공산'당도 부르주아 국민당에 종속시켰다.

`민주적인'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친선을 위해 국제 노동계급 혁명을 배반한 코민테른은 제 2 인터내셔널보다 더욱 냉소적으로 식민지 대중의 해방투쟁도 동시에 배신했다. 인민전선과 `조국 방위' 과업의 하나는 수억에 달하는 식민지 대중을 `민주적인' 제국주의 세력의 대포 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식민지 반식민지 인민들의 해방투쟁의 깃발은 이제 확실히 제 4 인터내셔널의 손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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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6 12:02 2005/09/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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