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일 하러 가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낮에 그렇게 쏟아붓고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차고지에 도착해서도 쉼없이 내렸다.

 

1. 비를 보며

우리 하는 일은 여름이 힘들다.

덥기도 무지하게 덥지만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가혹하다.

제발 음식물쓰레기 통좀 닦아서 사용하지...하는 말이 절로 나오고

때론 거침없이 누군지 모를 쓰레기통 주인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이럴때 비는 그지없이 고맙다.

비가 내리면 우선 시원하기도 하고

더러운 것이 불분명해지면서

냄새도 거의 사라진다는 것...그리고 우리들 더러운 통일수록 뚜껑을 열어놔서

조금은 비에 씻기기를 바래 보기도 한다...

이렇게 나름 좋아라 하던 비도 2-3일 계속 맞다보면

절로 짜증이 난다.

 

우선 햇빛을 보지 않는 삶을 살다보니 대다수가 습진이나 기타 피부트러블을 가지고 있기때문인데

이렇게 며칠을 비를 맞다보면 피부가 가렵고 여기저기 울긋불긋 반점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니 피부가 민감한 사람일수록

비를 맞고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비는

모든 사물들, 우리들 삶이 그렇듯

이중적으로 우리들에게 자신의 소임을 부여한다.

 

2. 텃밭

텃밭에 고구마와 고추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무성해진 고구마 줄기와 잎들을 보면 새삼 감탄스럽다.

고구마는 직원중에서 성수형이 도맡아 키우고 있는데

너무 신기하신 듯 매일 고구마 자라는 거 구경하는 것이 요즘 사는 유일한 낙이라는 소릴한다.

고추는 옆 차고지를 사용하던 우렁각시사업단의 한 아저씨가 키우셨는데

상당한 농사꾼이시다....우리들에게도 마음껏 따다 먹으라고 누누이 강조하시는

마음도 농군을 닮은 우리 옆집 이웃이다...ㅎㅎ

도형이형과 내가 신경쓰던 호박은 이제서야 자리를 잡았다.

원래는 5포기를 심었는데 2포기는 말라죽고 3포기만 자릴잡고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어가며 비를 맞으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성수형은 농사를 태어나서 처음 지으신다.

그러니만큼 신기하기도 하고 자신감도 부쩍 늘었다.

출신이 목포의 부둣가이다보니 농사를 전혀 모르고

또 이제까지의 삶이 고단했던 탓인지 마음의 여유도 없다가

이렇게 텃밭재배에 눈을 띄곤 이젠 농사이야기만 한다.

앞으로 파와 배추 농사도 지을실 듯....ㅎㅎ

 

도형이형은

간간이 화초를 키워 온 사람답게

농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지만 그럭저럭 주워들은 풍문은 있으셔서

실수없이 자기 하고픈 대로 하신다.

물론 키우는 것에 대한 신기함은 성수형만큼은 아니다.

 

이렇게

차고지 주변을 따라서 경작하기 시작한 텃밭들이 이젠 제법 틀들을 잡아간다.

고구마, 호박, 고추, 토란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이제 곧 파, 열무, 배추도 심어질 모양새다.

 

이런 텃밭 경작에서 나는 별로 일하지 않는다.

나는 텃밭 경작이 그닥 신기하지도 않고 작물을 키워가는 재미도 별로 못느낀다.

난 시골 농촌출신이고 시골집의 인력동원대상자 1호라는 엄청난 지위때문에

태어나서 내가 기억하기 시작하는 아주 어린 나이때부터

한해도 농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심지어 군생활도 지랄같은 전경에 착출되는 바람에 지나치게 자주있는 외박의 절반을

시골 농사 일꾼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농사에 대한 감응들...?...신기함이 있겠나....

그저 익숙한 풍경이라서

지금은 이런저런 이야기들...한마디로 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ㅎㅎ

 

다들 텃밭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왜그러냐는 둥 묻는 통에

조금은 성가신 편이다.

이것 심으면 어떤지 저건 어떤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은 해주고 있지만 다들 조금은 부족해 하는 눈치를

나에게 팍팍 던지는 바람에 나까지 당혹스러워진다...

 

그래서 항상 이야기 한다.

"농사는 심고 조금은 방치하는 것....

지나치게 손을 대면 작물이 약해지고 자생력이 없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매일 쳐다본다고 매일 쑥쑥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제발 고구마 믿고 기다려라....

잡초를 너무 자주 많이 제거하면 그것도 농사에는 안좋다 잡초도 다 역할들을 한다니까..."

 

이러고 있다.

그럼에도 이젠 아주 대놓고 내 욕을 한다.

저 놈은 농사짓기 싫어서 맨날 저 소리만 한다고...^^;;

 

이건 뭐.....어처구니....뭐 그렇다...ㅎㅎ

다들 키우는 재미에 빠져서 조금 여유롭게 바라보는 마음들이 없는 듯 싶다....ㅎㅎ

 

3. 나

약간은 분리적이다.

비가 언제나 이중적인 소임을 나에게 부여하듯이

농사가 항상 두 마음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것

이렇게 이중적인 것들이 나에게서는 자꾸 분리되는 양상이다.

 

가령 농사를 심어놓고 작물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 그럴려면 심을때 충분히 땅의 힘을 돋우어 놓을 것에 대해서 신경이 쓰인다는 거고

이러다보니 언제나 이런저런 부식유기물을 땅에 쏟아주려고 발동동 거린다는 거다.

 

농군이 이렇게 동동거리면 전체적인 농사일들이 자꾸 흔들린다는 것을 알지만

느긋하게 작물의 힘을 믿지 못하고 있는 한심함을 가끔 느낀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땅을 갈아엎는 초기 작업과 작물을 심고 믿는 두번째 작업이 자꾸 뒤엉켜버리는 듯 싶다.

 

가령 성수형이 어느날 물어봤다.

"고구마가 힘이 없는 듯 하다고...

성장이 너무 느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거다

 

그래서

"아마도 차고지 주변 땅이 워낙 척박해서 초기에 충분한 거름을 주지 않아서인듯 싶어요

그러니 거름을 고랑 사이에다가 적당하게 주시면 될 듯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물이 이미 심어져 있으니 너무 욕심내시면 안되요.."

 

그런데 며칠 후에 보니 고구마 3포기가 말라있었다.

성수형은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왜..?"

"니 말대로 거름을 주었더니 말라죽는데...?"

"그럴리가...무엇을 주었는데...?"

"질소인산비료..."
"미쳤어..?....거름 주라고 했지 비료주라고 했어여..?"

"아니 호박에 비료주길래...^^;;..."

"도형이형 호박은 초기 땅에 거름을 거의 하지도 않았고 호박 자체가 거름이 많이 필요한 작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극약처방으로 비료를 주라고 한 거고

고구마는 자릴 이미 잡았는데 비료를 주면 어떻해요...

그리고 기왕에 비료를 주고 싶으면 그렇게 한움큼씩 뿌리쪽에 묻어주는게 아니라

물에 약하게 타서 뿌리에서 먼쪽으로 조심스럽게 주어야지....ㅎㅎ

이건 비료가 너무 강하고 독해서 말라 죽는거에요...."

 

그런거다.

고구마처럼 자릴 잡으면 비료는 독이다.

호박처럼 자릴 잡지 않고 떠 있으면 비료는 어쩌면 독하게 살아남는 방식이 된다.

이 두가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 초기 땅에 충분한 거름을 주었으면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는 거다.

 

문제는 내가 지금 하는 일들에서는

어떤 것이 땅에 충분한 거름을 주는 시기인지

아니면 거름이 부족해 강력한 처방이 필요한 시기인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라서 조심스럽게 배려하며 접근해야 하는 시기인지

쉽게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건 아마도 사람의 일...사람간의 일은 작물처럼 눈에 보이는 성장이 아닌듯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4. 마음을 잡아보며

아마 무슨일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솔직히 약간은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최근에 이렇게 짜증을 가진다는 것이

딱히 일을 풀어가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절실히 느낀 후라서 마음을 다 잡아 보았다.

 

쉬게 해주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여름이고 다들 지쳐가는 계절이니 만큼

그동안 해온 일들에서 잠시 쉬게 해주어야 하나 싶어진다.

 

그러나 솔직한 마음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다.

도통 무슨 생각을 어떤 일들을 고민하는 지 서로 이야기되질 않고 드러내어지지도 않으니

항상 넘겨 짚어보고 추측에 의존해서 판단하고 배려하다보니

완전 초보 농군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러다가 성수형처럼 잘못된 처방으로 고사시키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비도 오고

빗속에서 텃밭은 무럭무럭 자라는데

정작 농사꾼의 마음은 한없이 흔들린다.

아마도 마음이 정처없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타나 주길 바라면서

농사꾼의 마음이 밭에 가 있질 못하고 자꾸 마을 언저리에 머물기 때문이겠다.

마을 언저리에 누군가가 반갑게 들어서면서 나에게 인사해 줄 거라 믿으며

자꾸 농사보다는 사람맞이에 신경쓰여서

작물들이 삐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비오는 날 몸도 마음도 한없이 피곤해졌다.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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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12:22 2009/07/1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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