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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네탄야후를 멈추게 하지 못하는가?

시온주의 대학살이 번진다

왜 아무도 네탄야후를 멈추게 하지 못하는가?

2024년 10월 4일 스파르타시스트(영어판) 호외로부터 번역됨

10월 4일 – 2023년 10월 7일 이래로, 지옥 같은 시온주의 국가가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학살해왔다. 지속적인 공격확대를 통해 이제 시온주의 국가는 대규모 지역전쟁을 위협한다. 이스라엘은 4월에는 시리아에 있는 이란 대사관을 폭격했고, 7월에는 테헤란에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했으며, 그때 이래로는 수천 개의 무선 호출기들을 터뜨리고, 하산 나스렐라를 포함하여 헤즈볼라 지도자를 죽이고, 남부 레바논을 습격하면서 헤즈볼라에 대한 공세를 가해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범죄들에 대응하여, 수백만이 시위를 해왔고, 국제형사재판소가 조 사를 시작했으며,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쏴 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스라엘의 공격확대를 단념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살자이면서 광신자들인 네탄야후 정부가 강으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인종청소라는 그들의 목적에서 분명하다는 것이 부분적 설명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란이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서서히 갉아먹어왔다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장애물이다. 이란은 핵무기들을 위한 기술을 포함하여 선진적인 무기를 개발해왔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민병대들의 망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역에서의 미국에게 처참한 전쟁들을 활용해왔다. 이 발전들은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계획에 대한 실질적 위협들로 보였다.

이제 시온주의 우익은 이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회를 포착한다. 이스라엘 국민은 10월 7일 이래 대량학살 광란으로 결집되어 왔고, 이스라엘의 국제적 명성은 이미 파괴되었으며, 미국은 무조건적인 지지를 약속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네탄야후는 계속해서 분쟁을 확대함으로써 자신이 이란과 이란의 동맹들로부터 중대한 굴종을 확보해내거나 미국을 이슬람 공화국과의 직접적인 전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이든, 네탄야후는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로의 반대 없는 확장과 이스라엘 국경들의 장기적 방어를 확실히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왜 아무도 네탄야후를 멈추게 하지 못하는가?” 몇 가지 경우에서, 대답은 분명하다. 미국은 현재 이란과의 전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헌신에 비하면 이란과의 전쟁은 완전히 부차적인 것이다. 바이든이 노망들지 않았더라도, 이스라엘의 공격성을 멈추고자 하는 정치적 단호함의 부족은 남아 있을 것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그리고 다른 선진 “민주국가들”의 정부로 말할 것 같으면, 심지어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들을 파괴하더라도 미국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헌신하는 아첨꾼들이다. 그들은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란과 같은 세력들은 어떠한가? 혹은 가자에서의 대량학살에 반대하여 시위를 해온 수백만의 인민들은? 왜 그들은 서아시아에서의 유혈 악순환을 중단시키지 못해 왔을까? 여기서 우리는 군사력의 균형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네탄야후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들의 정치적 전망을 검토해야만 한다. 우리가 확인하게 될 것처럼, 네탄야후 정부가 멈춰지지 않아왔던 실제 이유는 네탄야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시온주의를 패배시키고 이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를 떨쳐버리기 위한 강력하고 일관성있는 강령이 없다는 것이다.

아야톨라의 선택: 굴종인가 성전인가?

첫째, 우리는 헤즈볼라와 예멘에 있는 후티 반군을 포함하는 이란이 이끄는 저항의 축을 고려해야만 한다. 말로는 이스라엘을 규탄하지만 행동에서는 미국의 편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다른 이슬람 정권들과는 달리, 이란 정권과 이란의 동맹들은 이스라엘의 영토로 미사일들을 발사하는 것을 포함하여 직접적으로 이스라엘과 대적해왔다. 그렇긴 하지만, 10월 1일과 같은 힘의 전개들은 저항의 축이 팔레스타인 해방에 헌신함도, 저항의 축이 이스라엘, 혹은 더욱 중요하게 미국을 패배시키기 위한 어떤 종류의 일관성 있는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음도 증명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진실은 정반대이다.

이란 지배자들의 최우선 순위는 시아파 신권통지 정권의 유지이다. 이 정권이 미국의 꼭두각시인 샤를 타도함으로써 수립된 이래, 이 정권은 이 지역에서의 제국주의 이해관계와 계속해서 충돌해왔다. 동시에, 이 정권의 신권통치적 자본주의적 성격이 공동투쟁 속에서 서아시아 인민들을 단결시킴으로써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패배시킬 이란의 능력을 제한한다.

정권의 문제들은 이란 자신의 인민들과 함께 시작하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법이라는 채찍과 뮬라들 아래에서 사는 것을 증오한다. 특히, 여성들은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권리를 부정 당한다. 또한 이란은 탄압과 민족적 권리의 부정으로 고통 받는 다양한 민족체들과 종교 그룹들을 포함한다. 이 내부적 긴장들은 지나 아미니의 경찰 유치장에서의 죽음 이후 발발했던 2022년 사회적 폭발에서 온전히 드러났다.

이 긴장된 내부 상황은 제국주의자들과 이스라엘로부터 나오는 어떠한 위협도 많은 측면에서 종교 지배세력에게 더 위험해 보이는 국내의 전선을 안정화하는 것과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자에서의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의 와중에 아야톨라가 마수드 페제스키안이 대통령 직에 입후보하고 서구를 진정시키는 공약으로 선출되도록 허용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관련한 유턴이 아니라 “전략적 인내”라는 공식적으로 선포된 독트린의 논리적 귀결이다. 정권의 개량주의 세력은 만약 정권이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서구로부터의 경제적 양보들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정권이 내부 긴장을 줄이고 정권의 안정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량주의자들은 그러한 양보들의 대가가 팔레스타인 인민들과 자신들의 다른 동맹들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9월 하순에, 심지어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이 지역에서 이란의 주요한 동맹인 헤즈볼라의 목을 자르고 있을 때에 조차, 대통령 페제스키안은 뉴욕에서 2015년 핵협상들을 재개할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에 대한 공세에 대한 충격적인 무대응은 파이낸셜 타임즈 (9월 26일)가 인용한, “필연적으로,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어떤 중요한 주제들이 보다 긴급한 주제들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것은 전투에 대한 접근을 조정할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라고 말하는 정권 관계자에 의하여 정당화되었다.

물론, 지배계급의 또 다른 세력, 즉 더욱 가혹한 종교질서를 내부적으로 강제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보다 대립적인 경로를 추구하고 싶어하는 소위 “강령론자들”이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장기적인 소모전 속에서, 이란이 승리하는 것이 정말이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참혹한 대가와 정권에 대한 거대한 위험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서 이란의 전쟁노력이 자신의 종교적 성격에 의하여 방해 받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성격상, 어떠한 전쟁도 크게는 시아파 종파주의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이 기초 위에서는,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에 맞서 지역의 전체의 인민들을 단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전쟁은 서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소외시킬 것이고, 적들이 – 그리고 시아파에 적대적인 수니파 정권들은 - 다양한 피억압 그룹들 사이에서 종교적 그리고 민족적 분쟁들을 조성하는 것이 쉽도록 만든다. 종교 지도자들인 지배자들에게는, 이러한 고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훨씬 비용이 많이 들게 만들고 전쟁의 결과를 훨씬 더 불분명하게 만든다.

레바논이 문제의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이 서로 대립하도록 해서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종파적 노선을 따라서 레바논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런 분할들을 극복하고 수니파, 시아파,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에 맞서 단결시키기 위하여 분투하기는커녕, 이란은 시아파 공동체에 기초를 둔 민병대인 헤즈볼라를 건설하는 것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왔다. 이것은 이스라엘과의 어떠한 분쟁에서도 헤즈볼라가 외부의 적과 대적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다른 종교 그룹들과의 관계들에서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이 고려는 10월 7일 이래의 헤즈볼라의 자제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었음이 틀림없다.

분명히 헤즈볼라와 이란 모두 현재 이스라엘에 대적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네탄야휴는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에 대한 그의 적대세력들의 망설임과 동요를 활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도부의 참수에 성공했으며, 이란이 믿을만한 동맹이 아님을 폭로했다. 수모에 직면하여, 이란 정권은 마침내 180발의 탄도미사일을 일제히 이스라엘로 발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현재 주도권은 이스라엘의 손아귀에 돌아가 있는데, 이스라엘은 자신이 분쟁을 악화시킬 것을 원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중동에서의 총력전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위의 강화로 이어질 것임을 결코 보장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 실제로는 정반대일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과 노동계급 해방의 전진을 위하여 저항의 축에 의지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커녕, 필요한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비타협적인, 그리고 중동의 인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강령이다. 그러한 강령의 기둥들은 다음의 것들이어야만 한다:

  • 시온주의와 제국주의 공격들에 맞서 가자, 서안, 예멘, 레바논, 그리고 이란을 방어하라!

  •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그리고 모든 민족들의 자기결정을 포함하는 완전한 민족적 권리의 인정!

  • 국교 반대, 베일을 강요하는 법에 대한 반대!

  •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앞잡이들의 재산을 국유화하라!

반동적이면서 무기력한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저항의 축의 이론가들의 희망적 생각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이미지가 폭로되거나 경제적 타격들 – 심지어 심각한 것들 – 로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강력함의 두 가지 기둥들은 이스라엘이 받고 있는 미국으로부터의 지지와 팔레스타인 영토에 있는 강화된 유대민족의 존재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재앙적인 군사적 패배를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시온주의자들이 파멸적 파괴를 가할 수 있을 것이고 이스라엘 국민의 대다수가 그들의 민족적 존재를 위하여 끝까지 치열하게 싸울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이스라엘 민족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최대의 저항과 파괴를 보증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만약 팔레스타인 해방에 진지하다면, 이스라엘의 민족적 단결을 침식하고 시온주의로부터 인구의 중요한 일부를 분리하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참으로 중요한 균열들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왔다. 이스라엘 내부의 긴장들은 심지어 유대인들에 대해서조차 전체주의적 군사 신권체제가 되는 것으로의 멈출 수 없는 이 나라의 경사를 반영한다. 이러한 궤적은 민족적 억압에 기초하여 건설된 사회는 피억압 인민들을 – 이 경우에서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 비하할 뿐만 아니라 억압하는 민족을 잔혹행위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탄야후의 반민주적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2023년 대중 시위들과 가자에 있는 인질들을 석방하기 위한 휴전을 요구하는 보다 최근의 시위들 모두는 시온주의 지배계급의 자유주의 세력에 기초한 운동들이었다. 이스라엘 사회의 이 세력은 정부정책의 가장 호전적이고 신정체제적 측면들에 반발하지만, 동시에 시온주의, 즉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민족적 억압에 완전히 매진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에 반동적 성격을 부여한다. 또한 이것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가 이스라엘 사회의 우익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에서 완전히 무기력함을 의미한다.

지배계급의 가장 과격하고 대립을 일삼는 분파가 스스로를 고결한 이상들로 장식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강탈이라는 역사상의 범죄를 계속해서 방어하는 자들 보다 항상 더 일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시온주의의 논리이다.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방어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진지하게 제기되자 마자 그들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운동들의 파산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0월 7일 이후, 일부 네탄야후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자들이 네탄야후의 민족단결 정부에 합류하기 위하여 달려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레바논에 대한 공격들에 이어, 인질석방을 위한 운동은 즉각적으로 스스로를 해산하기 위하여 활동했다. 시온주의와의 정치적 결별과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방어가 없다면, 네탄야후의 광신도 집단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반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는 작은 세력들이 이스라엘에 존재한다. 하지만, 극심한 탄압들에 직면해 있는 한편으로, 그들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가 대변하는 장애물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한다. (RCIT 소속인) 국제주의사회주의자동맹과 같은 그룹들의 경우, 이스라엘이 정착-식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노동계급을 시온주의로부터 분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는, 이스라엘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노력없이 단순히 팔레스타인 인민들과의 자유주의적 연대에 줄을 서는 것이 임무이다. 그리고 (ISA 소속인) 사회주의 투쟁 같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운동들을 응원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9월 초 하루 총파업을 환영했던 반면, 시온주의에 대한 어떠한 반대도 제기하지 않았고 파업이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민족적 억압에 완전히 매진하는 노동관료들에 의하여 조직되었다는 사실을 깔개 아래 감추었다. 양쪽 모두의 경우에서, 노동자들을 단단히 자리잡은 시온주의 믿음들에 대적하도록 하는 것에서의 비자발성과 무능력이 존재한다.

이스라엘 사회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머리에 있는 생각들을 넘어서 다양한 계급들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자들의 깡패로서의 자신의 역할로 인해 보다 높은 생활수준으로부터의 혜택을 누리지만, 이스라엘 노동자들 – 유대인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 의 상태들은 좋지 않다.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억압은 유대인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 –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억압은 애국적 사업주들과 지배자들에 맞서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것에서 유대인 노동자들을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유대인 노동자들을 끌어내린다. 또한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억압은 유대인 노동자들과 그들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그들 자신의 인간성을 저하시키면서, 유대인 노동자들을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야만적 억압의 집행자들로 바꾼다.

이러한 모순들을 폭로하기 위한 핵심은 시온주의 우익 그리고 시온주의의 자유주의적 세력 모두에 맞서는 것으로 향하게 하는 강령을 가지고 시온주의를 침식하는 것이다.

  • 강에서 바다까지 모든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완전한 민주주의적 권리 –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이 억압받는 한 결코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 미국과의 관련성을 끊어라 – 제국주의의 대리인으로서 복무하는 것은 결코 안전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 자본가들의 토지와 부를 노동자들과 팔레스타인 인민들에게 재분배하라.

해리스를 위한 할복

이스라엘의 맹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서구, 중심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흐름을 중단시키는 것이 핵심적이다. 지난 해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친 팔레스타인 시위들과 심지어 짧지만 전투적인 가자에서의 대량학살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이 있어왔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미국에서의 운동은 상당한 정도로 카말라 해리스의 선거전망에 손상을 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청산해왔는데, 모든 사람들이 카말라 해리스가 이스라엘 방어에 전적으로 매진하고 있음을 안다.

한심한 “지지 표명 보류” 운동보다 더 잘 현재의 난국을 상징하는 것은 없다. 수개월 전에, 이 운동은 민주당 예비선거 유권자들에게 당 지도부에 대한 압력 전술로서 그들의 표에 “지지 표명 보류”를 적으라고 부추겼다. 비록 수천명이 이 운동의 지도를 따랐지만, 뻔하게도 이 운동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고 민주당원들에 의하여 옆으로 치워졌다. 심지어 누구건 상관없이 한 명의 팔레스타인 연사가 시카고 민주당 대회에서 연설하게 하라는 이 운동의 비참한 요구는 거부되었다. 이제, 수 주 동안의 비굴함과 자신들의 노력들의 결과를 보여줄 것이 없었던 끝에, 지지 표명 보류 운동은 해리스를 옹호할 것을 거부하면서 그 대신 트럼프에 반대하여 투표할 것을 주창했지만, 제 3의 정당을 위한 투표는 아니었다. 이것은 해리스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통탄할 광경은 왜 대부분의 좌익이 매 단계마다 응원했던 서구에서의 팔레스타인 운동이 무기선적 중단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의 양보를 쥐어짜는 것에서 그렇게도 비효과적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된다. 서로가 상대방보다 더 시온주의자 임을 경쟁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양대 정당들에 대한 노동계급 반대를 건설하기는커녕, 이 운동은 민주당을 팔레스타인의 편으로 당기려고 노력해왔다. 심지어 전체 미국 미디어와 기득권 세력의 증오를 사왔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의회여성 라쉬다 틀라이브가 대량학살에 대한 민주당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남아 있어왔다는 사실이 이 전략의 터무니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민주당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팔레스타인 운동이 아니라 이 운동이 민주당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해왔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수 만 명의 보잉 기계노동자들과ILA 항만 노동자들이 파업행동을 벌여왔다. ILA가 범죄적으로 무기들을 계속해서 선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들이 미국 무기 제조업체들에게 캠퍼스 점령들 전부를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지장을 초래했음이 틀림없다. 문제는 친팔레스타인 운동이 이 노동자들과 연결할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인데, 이들 중 많은 노동자들이 자유주의적 기득권세력을 뼈 속까지 증오하며 차라리 트럼프에 투표할 것이다. 기껏해야, 자유주의 활동가들은 왜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노동자들에게 도덕적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최악은 그들이 보수적 노동자들을 경멸적으로 그리고 “문제의 한 부분”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놓치는 것은 세계전역에서 죽음과 혼란을 야기하는 미사일들을 선적하는 것이 미국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지점이다. 미국 제국주의의 이윤을 위하여 죽고 죽이기 위하여 파병될 첫번째 인물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자녀들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일상의 삶에서 그들이 직면하는 늘어난 불안감과 불안정성 미국의 끊임없는 전쟁들과 관련이 많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대량학살과 파업파괴를 자행하는 바로 그 정당에 굽실거리는 대신에, 자유주의의 쓸데없는 말을 노동계급에게 파는 대신에, 친팔레스타인 운동은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미국 자신의 노동계급 해방의 대의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

  • 이스라엘로의 무기선적들을 멈춰라! 미국의 외국에서의 범죄들은 국내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의 대가로 나온다.

  • 흑인해방,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하여!

  • 민주당과 공화당을 반대하라! 노동자정당을 위하여! PSL에 투표하라!

브릭스는 어디에?

효과적인 연합은 개별의 합보다 전체가 더 강한 연합이다. 브릭스 플러스 블록은 정확하게 반대이다. 팔레스타인이나 혹은 정말이지 다른 어떤 큰 지정학적 갈등과 관련해서, 브릭스 플러스는 완전히 아무것도 할 수 가 없다. 문제는 각각의 회원국이 광대하게 다른 그리고 자주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자에서의 전쟁에 관한 문제에서, 예를 들면, 이란이라는 한 회원국이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런 다음, 인도는 이스라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배외주의적 반이슬람 정당이 인도를 지배한다. 분명히,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하나의 블록으로서의 브릭스 플러스는 어떤 종류의 독립적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이 블록을 구성하는 다른 거대 국가들은 어떤가? 러시아는 방공용 배터리들을 포함하여 이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해오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대의를 진전시키는 것 보다는 지역의 긴장상승을 피하는 것에 더 열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러시아가 제국주의라는 강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미국의 영향력을 이 지역에서 밀어내려고 정세를 활용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징후들은 없다. 그렇기 보다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유럽의 미래 안보 설계에 관한 미국과의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어떤가? 공산주의 정권을 주장하는 정권이라면 소련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했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저항에 물질적 지원을 틀림없이 제공할 것이다. 아! 공허한 몸짓들과 평화주의적 진부한 이야기들을 제외하면, 중국공산당은 팔레스타인 대의를 위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왔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서아시아로부터의 미국 통제력의 축출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미국에 의하여 직면하고 있는 위협을 줄이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진실이다. 중국공산당은 전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말 할 것도 없고, 반제국주의 그리고 민족해방 투쟁들에 어떠한 관심이라도 두기에는 최악의 걸프지역 독재자들과 이스라엘 자본가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것에 너무 바쁘다.

모든 원년 브릭스 나라들 중에서, 남아프리카가 아마도 자신은 도덕적으로 팔레스타인과 함께한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가장 많은 일을 해왔다. 대대적으로, 남아프리카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사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결과는 어땠는가? 몰론 아무것도 아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목적은 오직 몰락한 아프리카 독재자들과 미국의 적들만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이 공허한 실력행사는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모종의 진지한 매진보다는 최근 선거들에 앞서 라마포사와 ANC의 좌익 세력들을 강화하려는 것과 훨씬 더 많은 관련이 있었다. 실제로, 선거들 직후에 대통령 라마포사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시온주의 광신도 후계자들과의 연립정부 속으로 뛰어 들었다. 팔레스타인이 어떠한 도움이라고 받을 정부는 틀림없이 이 정부는 아닐 것이다.

이것이 상황이 가망 없음을 의미하는가? 천만의 말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이 더욱 약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브릭스를 칭송할 필요는 없다. 미국과 산산조각 나면서 무너지고 있는 세계질서로부터, 수억 명의 노동자들과 피억압 인민들은 오직 빈곤과 전쟁을 경험할 뿐이다. 일단 동지들이 현상과 타협하고 현상을 지지하는 썩은 정권들에 대한 신뢰를 거둔다면, 팔레스타인에서 멕시코와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국 자신의 내부에 있는 전세계의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피해자들을 단결시킬 거대한 가능성이 있음이 분명해 진다.

  •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는 반제국주의 전선을 위하여!

  • 모든 제국주의 자산들을 국유화하고, 부채들을 탕감하라!

  • 브릭스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세상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다음에는 무엇을?

정세는 암울하다. 매일 보다 많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이 이스라엘 방위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수십만 명이 기아와 질병에 직면하고 있다. 서안에서는 더 많은 팔레스타인 토지들이 도둑질 당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새로운 가자로 만들고 이란을 폭격하여 항복을 받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스라엘이 이것에 성공하느냐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작년에 한가지 확인된 것이 있다면, 얼빠진 낙관주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유엔, 국제 공동체, 국제사법재판소, 브릭스, 이슬람 정권들 누구도 팔레스타인을 구조하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힘든 현실에 직면하여 지난 12달의 재앙적 결과로부터 교훈들을 도출해야 할 때이다. 팔레스타인 저항의 현재의 지도자들은 감당해낼 수가 없다. 국제적으로 친팔레스타인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아직까지 진정한 민족해방을 향한 길을 제공하지 못해왔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아랍 세계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다 (스파르타시스트 69호의 “맑스주의자들과 팔레스타인: 100년의 실패”를 보시오). 하지만, 정치적 이슬람 세력들이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매일 보다 분명해 진다. 이것이 노동자운동이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편에서 경쟁에 들어가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당장의 임무는 국내의 노동자 투쟁들을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의 투쟁들과 융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는 지배적인 노동 관료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조정자들이 제안하는 파산 당한 길에 맞서는 투쟁이 있을 때에만 오직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노선을 위한 이 투쟁을 토론하고 조직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모든 사회주의자, 노동계급 투사들, 그리고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긴급한 의무이다. 우리는 내년을 작년과 같이 되도록 놔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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