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스파르타시스트동맹/영국 25차 전국대회의 문서로부터의 발췌이다.

코비드-19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보건, 경제, 그리고 사회적 위기를 촉발해왔다.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는, 지난 1년 반이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15만 명이 넘는 코비드 사망들, 잔혹한 봉쇄들, 탄압, 대량의 정리해고들, 조업단축으로 인한 일시해고, 작업속도 상승, 학교폐쇄들. 노동자운동의 지도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가들에게 속박시키고 그들의 잔혹한 공세에 협조하면서 이 위기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배신했다. 코빈 세력으로부터 스타머 지도부에 이르기까지의 노동당, 노동조합 최고위층들, 그리고 개량주의 좌익 모두가 민족적 단결과 계급협조를 설교하면서 봉쇄들을 지지했고 존슨의 보수정부 뒤로 합류했다. 노동당은 영국 전역의 도시들에서 봉쇄들을 관리했고 노동인민들에게 참상과 비참함을 가져온 것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다.

영국 사이비 맑스주의 좌익 - 사회주의 노동자당, 사회당, 영국 공산당, 사회주의 호소, 혁명적 공산주의그룹, 등 - 의 입장은 봉쇄들을 지지해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호주의 제로-코비드 모델이라는 더 강력하고 더 장기간의 봉쇄들을 찬성하는 운동을 조직해왔다. 팬데믹에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을 위하여 투쟁한다는 이들 개량주의자들의 어떠한 시늉도 그들의 봉쇄들에 대한 지지라는 조건에서는 완전한 속임수이다.

이번 대회는 봉쇄들을 지지함으로써 정부의 민족단결에 굴복했던 SL/B 중앙위원회의 2020년 6월 발의를 거부한다. 그 입장은 “보다 의미있는 공중보건 방책들이 부재한 가운데, 그것 [봉쇄]는 코비드-19의 확산을 늦춘다는 지극히 최소한의 목적에 일정정도 효력을 가진다”는 주장에 기초했다. 이것은 공중보건을 방어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정부의 반(反)노동계급 방책들을 지지하는 것임을 명령하는 부르주아지 계급의 윤리상 공갈을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부르주아지 국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굴복시키기 위한 폭력기구이기보다는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구라는 환상들을 부추겼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건강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고 위기의 사회적 원인들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업주들과 국가에 맞서는 계급투쟁 방책들을 통하는 것이다. 봉쇄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이 투쟁을 훼방놓는 반동적 공중보건 방책들이다. 그것들은 참담한 사회적 결과들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동계급이 무장해제된 채 부르주아지 계급에 속박되도록 버려둔다.

우리는 혁명적 노동계급 강령의 기초에서 봉쇄들에 반대한다. 과학적, 시민의 자유적, 음모론적 혹은 노동조합적 기초에 입각해 있건, 봉쇄들에 반대하는 다른 어떤 기초도 단순히 팬데믹을 관리하기 위한 대안적 부르주아지 강령을 조장한다. 혁명가들은 계급적대들을 화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계급의 타도를 위한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위기를 활용하고자 한다. 만약 팬데믹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본가계급 지배는 완전히 파산했고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루는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지금 자신의 가장 최소한의 그리고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이 투쟁은 국제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영국에서 노동자운동의 지도부는 “집에 있어라! NHS[국가보건서비스]를 보호하라! 생명을 구하라!”는 지배계급의 외침들을 되뇌면서 지배계급의 민족단결 운동의 기수들로 존재해왔다. 보수당이 NHS를 구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시체가 높게 쌓이게 하자”는 것에 행복해왔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오직 노동운동의 배신자들과 공모함으로써만, 부르주아지 계급은 팬데믹에서는 모든 계급들을 넘어서 존재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하는 거짓말을 노동자들에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때와 마찬가지로, 이 위기에서, 부르주아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들은 화해가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위험한 질병으로부터 스스로와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것에 이해관계를 가지지만, 더욱 안전한 노동과 생활조건들은 사업주들과 정부와 함께 일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에 맞서는 투쟁에 의해서만 오직 성취될 수 있다. “NHS 보호하기”는 그것을 다 망쳐버렸던 자들 (보수당, 노동당, 그리고 자본가 기생충들)에 의존함으로써 쟁취될 수 없다.

그들의 숭고한 구호들 이면에서 부르주아지 계급은 자기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들을 밀어붙인다. 부르주아지 계급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제한하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바이러스가 사업에 나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 계급은 NHS를 구하기 위하여 집에 있으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낡아빠진 의료서비스 시스템의 전면적 붕괴를 모면하기 위한 값싼 길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NHS를 지키고, 최상질의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에, 각별히 팬데믹 속에서는, 모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은 자신의 지배에 맞서는 어떠한 투쟁도 위험한 공중보건 위험요소라고 주장하는 부르주아지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공갈을 떨쳐버려야만 한다.

팬데믹 동안 노동당과 노동조합 관료집단의 완전한 비굴함은 정부, 특히 정부의 잔혹한 봉쇄들에 대한 분노가 단지 비프롤레타리아트적이고 무정형의 이질적인 표현들이었을 뿐임을 의미해왔다. 2021년 봄과 여름에, 대규모 반(反)봉쇄 시위들이 “민주주의”, “개인의 권리” 그리고 “의료의 자유”라는 구호 아래 런던에서 열렸다. 정부, 미디어, 그리고 친노동당이라는 늪은 누구라도 부르주아지 계급의 방책들에 반대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반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시위들을 비난함에 있어서 모두 단결해왔다.

그런 운동들의 강령은 완전히 부르주아지적인 반면, 그 운동들은 정부에 대한 정당한 분노에 의하여 연료를 공급받는다. 우리는 이들 시위들에 대한 친정부적 선전공세뿐만 아니라 그 시위들에 대한 억압을 규탄해야만 한다. 그러한 운동들에 개입함에 있어 우리의 목적은 이 운동들의 시민의 자유적, 음모론적, 그리고 종종 반동적 정치들로부터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분리하면서 잔인한 정부정책들의 그들을 공산주의 강령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팬데믹 동안 계급노선에 따른 분극화의 부재라는 조건에서, 접종과 접종에 관한 문제들이 주요한 사회적 이슈들이 되어왔다. 논쟁의 한쪽에는 접종률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다면 정부가 하는 어떤 것이라도 지지하겠다는 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시민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침해라도, 어떤 형태의 의무접종도, 때로는 접종 자체를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 공산주의자들로서 우리는 양쪽 모두를 거부한다. 계급의 축을 제기함으로써 우리는 정부에 의하여 촉진되는 이런 분극화를 돌파하고자 한다. 우리를 안내하는 원칙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코비드-19 백신접종을 해야 한다는 것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이다. 우리는 의무적 백신접종, 즉 당신들의 팔에 백신을 맞는 것이 강제되는 것에 찬성한다. 백신접종을 하는 것을 거부하고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은 민주적 권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신접종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정책들을 통한 접종의 강제에 반대한다. 우리는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NHS 노동자들 혹은 어떤 다른 노동자들이라도 해고하는 것에 반대한다. 대량의 정리해고들은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정리해고들에 반대한다. 우리는 또한 인민들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하고 모든 선술집 피고용자들과 가게 점원들을 경찰의 보조원으로 바꾸게 될 백신여권에 반대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 대 개량주의자들

팬데믹은 두 가지의 중심적인 진실들을 보여주었다: 1) 부르주아지 계급은 완전히 반동적이고, 노동계급의 필요 충족을 시작조차 할 수 없으며, 반드시 타도되어 노동자들의 지배로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2) 노동조합들과 노동당에 있는 현재의 영국 노동계급 지도부는 부르주아지 계급과 정부 앞에 엎드렸다. 영국의 모든 자칭 사회주의 그룹들이 노동자 배신자들과 똑같은 근본적인 정치들을 공유하며 노동계급을 계속해서 배신한다는 것을 대안을 추구하는 계급의식적 노동자들과 청년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혁명가들의 임무이다. 이것을 폭로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일부 중요한 문제들에 관하여 개량주의 좌익에 대한 조목조목의 강령적 반대입장을 제시한다:

  1. 의료서비스는 팬데믹 이전보다 지금이 심지어 더 비참하고, 주택위기는 언제나 처럼 나쁜 상태이며, 학교시스템은 폐허가 되었다. 새로운 학교들, 저비용과 양질의 주택과 의료서비스 기반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공공노동 프로그램을 위해 투쟁하기 위하여 노동자운동이 투쟁으로 조직되어야만 한다! 학교들, 의료서비스 시설들, 그리고 주택을 위한 즉각적인 자금과 토지, 그리고 건물들을 획득하기 위하여 왕조와 교회의 부동산을 몰수하라! NHS에 자금을 대기 위하여, 영국을 재산업화하기 위하여, 계획경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은행들과 생산기업의 사주들을 몰수하라! 이것들은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할 그리고 “경제의 핵심부분”을 국유화할 의회 속의 좌익 노동당정부를 선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개량주의 좌익의 환상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요구들이다.

    사업주들은 투표로 권력을 잃거나 점진적으로 소유권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며, 왕조는 여왕의 의회에서 법에 의해 폐지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노동당은 부르주아지 정부이다. 노동계급은 노동자정부, 즉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예를 따라서 부르주아지 계급을 몰수하고 착취자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필요하다.

  2. 부르주아지 계급은 노동조건들에 대한 엄청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NHS 노동자들은 보수당에 의하여 임금삭감을 당하고 있고, 물가인상이 만연하며, 임금은 비참한 상태이고, 수백만의 일자리가 시간제이거나 불안정 일자리들이다. 노동조합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며, 물가인상을 따라잡을 대규모의 그리고 부문을 초월하는 임금인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제로 노동시간이라는 계약들을 폐기하라! 과도한 노동과 실업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 일자리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노동조합은 40시간 임금을 받는 주 30시간 노동제를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노동조합의 취업통제를 위하여! 사업주들이 조장하는 인종분열에 맞서, 노동조합은 자본가계급 지배에 맞서는 투쟁에서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기 위하여 모든 이주자들에 대한 완전한 시민권을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가장 즉각적인 경제적 요구들을 노동자정부를 위한 필요성과 연결시키는 완전한 이행의 강령에 기초한 프랙션들을 노동조합에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이것은 영국의 가짜 사회주의자들과는 반대인데, 그들의 노동조합 강령은 우익관료세력들에 맞서 샤론 그람 [유나이트]과 같은 좌익언사를 내뱉는 관료들을 지지하고, 개혁들과 노동조합 전투성이라는 최소강령을 추진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노동조합 관료집단의 모든 세력들은 계급협조의 강령에 전념하는데 이 자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의 조건들에 대한 재협상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떠받친다. 현재의 친자본주의적 노동관료집단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망 전부인 개량주의자들에 맞서, 우리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적 지도부 건설의 필요성을 대치시킨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좌와 우의 모든 노동관료들을 축출하라! 계급투쟁적 노동조합 지도부를 위하여!

  3. 팬데믹 내내, 노동조합 최고위층들을 따라하는 모든 사이비 혁명가들은 자본가국가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거짓말을 설교해 왔다.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강령은 더 혹독하고 더 장기간의 봉쇄들, 더 많은 공장과 학교들의 폐쇄들, 그리고 사업주들의 보건 담당자들에 의하여 강요되는 더 엄격한 안전규칙들과 코비드 지침들을 주창해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살행위이고 사회주의적 원칙들에 대한 배신이다!

    노동조합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기초적인 방어기관들이다. 그것들의 목적은 노동자들을 집으로 보내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금 노동조합들은 보건과 안전에 대한 노동조합 통제를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자본가국가가 아니라 노동조합들이 어떤 조건들이 일하기 안전한가를 결정해야 한다. 가짜 사회주의자들은 항상 안전이나 생산에 대한 “노동자통제”에 관하여 말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독립성, 자본가국가에 대한 비타협적 반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을 위한 강령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노동자통제”는 자본가들과 그들의 국가와의 협력관계에 따른 노동자 경영에, 즉 기구화된 계급협조에 그칠 것이다.

    자본가국가는 사업주들의 무장한 주먹이다. 자본가국가는 안전한 노동조건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착취를 집행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혁명가들은 사업주들과 자본가국가로부터 노동조합의 완전한 독립을 위하여 투쟁한다! 경찰들, 경비들, 교도관들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나가라!

  4. 배신적인 지도부 덕분에 노동운동이 후퇴해 있는 가운데,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해외에서의 약탈을 늘려왔다.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하고 분노를 자신들로부터 비껴가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노동인민들을 중국에 맞서게 선동하고 있다. 영국 노동자들의 적은 영국 자본가들이다! 강화되고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반혁명 공세에 맞서 중국을 방어할 필요성에 입각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가 정면으로 제기된다. 중국은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이며,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949년 중국 사회혁명의 성취들을 방어해야만 한다! 이 성취들을 방어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기생적인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을 축출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을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영국의 모든 가짜 사회주의자들은 이 전망에 반대한다.

    일부 스탈린주의자들이 반동적인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을 지지하는 반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가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중국 제국주의”에 대하여 고함을 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운동을 벌임으로써 자본주의 반혁명이라는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강령을 되풀이한다. 소련을 파괴했고, 모든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환호를 보냈으며,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던 소련을 파괴했던 자본주의 반혁명을 제국주의자들이 밀어붙였는데, 같은 표어들 하에서 그랬다. 이제 그들은 중국, 북한, 그리고 모든 남아있는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에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영국 제국주의와 모든 군사협정들을 타도하라! 나토를 타도하라! AUKUS[미국, 영국, 호주의 외교안보협의체]를 타도하라! 북한에 삼지창[영국의 핵무기]를 무상지원하라!

  5. 노동당은 팬데믹 동안 자본가지배에 대한 완전한 굴종을 다시한번 보여왔다. 스타머의 우익으로부터 코빈파의 좌익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노동자들을 배신했고 존슨 보수당 정부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어왔다. 노동자들은 재건된 제4인터내셔널의 지부로서 노동자들의 지배를 위하여 투쟁하는 새로운 혁명정당을 필요로 한다. 영국의 가짜 맑스주의자들은 이것에 대한 정치적 장애물이다. 한 세기가 넘는 동안, 그들의 전략 전부가 사회주의적 강령을 수용하도록 노동당 좌익에 압력을 행사해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강제로 쫓겨나지 않았을 때의 사회주의 호소처럼) 노동당 내부나 혹은 (그 전략이 혁명에 대한 새로운 대중적 개량주의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인 사회당처럼) 당의 바깥에서 이 짓을 한다. 이것은 패배들과 배신들로 귀결되어 왔을 뿐이다.

베반으로부터, 벤과 코빈에 이르기까지, 노동당 좌익들의 영국 자본가국가의 운영이라는 부르주아지 강령은 불가피하게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대한 배신으로 귀결되는데, 이것이 코빈 지도부에 대한 중심적인 교훈이다. 노동당 좌익에 대한 환상에 연료를 제공하는 개량주의자들에 맞서, 혁명가들은 레닌주의 전위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혁명적 강령의 기초 위에서 노동당의 우익과 좌익으로부터 노동계급을 분리시켜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