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현재의 전쟁에서, 국제공산주의동맹은 혁명적 패배주의를 옹호하며 “두 개의 자본가계급들 사이의 이 전쟁을 노동자들이 양쪽 모두의 자본가계급들을 타도하는 내전으로 전화”할 것을 호소한다. 국제주의자그룹(IG)은 동일한 노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몇 개의 좌파조직들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2월 28일 성명은 자신들이 “이 반동적인 민족주의적 전쟁에서 양쪽 모두에서의 혁명적 패배주의를 요구”한다고 선포하고, 나중에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국제주의 노동자혁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 모두의 자본가 정권타도를 지지한다. 우리는 푸틴의 공공연한 대러시아 배외주의에 (이뿐만이 아니라 서구에서 ‘반-부패 행동가’로서 명사대접을 받는 러시아의 야당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그것에 대해서도) 맞서 싸우며, 우리는 나토와 유럽연합(EU)의 최전선이고자 하는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 계급의 반동적 민족주의에 맞서 싸운다.”

- “전쟁의 이면: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미국/나토의 전쟁몰이” (2022년 2월 28일)

대부분의 독자들은 ICL과 IG가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양자 모두가 혁명적 패배주의를 옹호함으로써 볼셰비즘의 전통을 견지한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IG는 자신들이 “혁명적 패배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하는지 몰라도, 그들은 레닌주의의 모든 혁명적 내용을 완전히 텅빈 것으로 만들며, 실천적으로 그들은 이 전쟁에 대한 혁명적 결과를 위한 투쟁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레닌주의 강령과 오늘날의 정세에서 진정으로 혁명적 패배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혁명적 패배주의는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배신하고 그들 “자신의” 부르주아지 계급들을 지지했던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에 반대하여 1차 세계대전 동안 레닌과 볼셰비키들이 지켜내기 위하여 투쟁했던 강령이었다. 볼셰비키들은 1) 진정한 혁명가들은 그 전쟁에서 그들 “자신의” 정부의 패배를 옹호하고 민족국가들 사이의 이 반동적 전쟁을 자본가들에 맞서는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기 위하여 활동해야만 하며, 2) 제2 인터내셔널은 배외주의에 의하여 죽어 파괴되었고, 혁명적 맑스주의의 기초위에서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이 건설되어야만 하고, 3) 이것을 위하여, 혁명가들은 노동자운동 내에 있는 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지지자들(사회적 배외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 배외주의자들과의 단결을 유지하고 개량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이며, 그리고 기타 비혁명적 해법들로 프롤레타리아트를 속이기 위하여 “맑스주의적” 문구들을 사용하는 기회주의자들과 중도주의자들로부터의 분리를 위하여 투쟁할 필요가 있다고 선포했다.

이 강령은 이러한 전망의 현실에서의 성취를 의미했던 10월혁명 때까지 레닌의 모든 활동들에 중심적으로 남아있었다. 전쟁의 시작되었을 때 그의 거의 바로 첫번째 글 중의 하나에서, 레닌은 볼셰비키의 전망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계급투쟁 선전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이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민족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은 모든 민족국가들의 부르주아지 계급의 제국주의적 무장충돌의 시대에 유일한 사회주의자의 활동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라는 구역질나는 신성하고도 얼빠진 호소들을 때려 부숴라! 내전의 깃발을 높이 들자! 제국주의는 유럽문명의 운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만약 일련의 성공적인 혁명들이 없다면, 다른 전쟁들이 곧 이 전쟁의 뒤를 이들 것이다....

“제2 인터내셔널은 죽었고, 기회주의에 의하여 압도당해 있다. 기회주의를 때려 부숴라, 그리고 ‘변절자들’ 뿐만 아니라 ... 기회주의도 또한 몰아낸 제3 인터내셔널 만세....

“자본가정부들에 대한 혁명적 맹공격을 위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모든 나라들의 부르주아지 계급에 맞서는 내전을 위하여,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세력들을 조직하는 임무가 제3 인터내셔널에게 주어져 있다!”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입장과 임무들” (1914년 11월)

현재의 전쟁에 대한 ICL의 강령은 이러한 전망으로부터 직접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어느 쪽의 깡패집단이 우크라이나를 약탈할 것인지를 결정하려는 두 개의 비제국주의 자본가 계급들 사이의 지역적 충돌이다. 한쪽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EU와 나토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노예화하려고 싸우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러시아 부르주아지 계급이 우크라이나를 다시 자신의 압제 아래에 두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그러한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느 한패의 깡패들에 대한 다른 한쪽 깡패 집단의 승리를 옹호하는 것은 범죄이고,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레닌이 했던 것처럼, 자본가들 사이의 이 전쟁을 모든 압제자들에 맞서는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이것이 ICL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노동자들과 병사들에게 친교와 그들의 총을 그들의 지배자들에게로 돌릴 것을 호소하는 이유이다.

나토와 EU - 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프랑스 - 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러시아와 전장에서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전쟁은 이들 강도들을 타도할 긴급한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그들의 동유럽에 대한 약탈과 러시아에 대한 전쟁몰이가 이번 충돌을 부추겼고 핵으로 인한 인류멸망으로 세계를 위협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중심부들에 있는 노동자운동의 지도부는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자적 야욕들을 완전히 지지해왔고, 노동계급을 나토와 EU의 뒤로 동원하면서 노동계급을 무장해제시키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와 자기 “자신들의” 제국주의 착취자들의 이해관계를 화해하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노동운동 세력들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없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1914년 레닌이 주창했던 것과 동일한 임무가 지금도 절박한 상태이다: 혁명가들은 혁명적 국제주의 정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그들의 배신적인 잘못된 지도자들로부터 분리하기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이것이 현재의 전쟁에서 혁명가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혁명가들을 맑스주의의 혁명적 내용과 방책들, 그리고 이 방향을 향한 노동계급에 대한 교육을 제외한 맑시즘 속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중도주의자들과 구별짓는 것이다.

자신들은 혁명적 패배주의를 찬성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의 모든 혁명적 의미들을 실천적으로는 거부하는 IG는 이러한 중도주의적 흐름 속에 있다. 레닌은 정치에서는 행동과 실천 대신 말과 의도를 믿는 자들은 가망없는 멍청이들이라고 종종 말했다. IG는 혁명을 위한 투쟁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강령의 비혁명적 성격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봐야만 한다.

급진자유주의 저널리즘 대 혁명적 맑스주의

전쟁에 대한 IG의 선전을 언뜻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개입의 모든 전망과 내용이 맑스주의를 닮은 자유주의 저널리즘의 부산물로 혁명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위에서 인용한 2월 28일 성명 이래로, IG는 우크라이나에 관한 몇 개의 기사를 실었다. 유색 인종 난민과 우크라이나 출신의 백인 난민에 대한 인종주의적이고 차별적인 처우를 다루는 “독일로부터의 보도” (“제국주의의 인종주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월 19일)과 우크라이나 군대와 정부에 파시스트들의 얼마만큼이나 득시글한지를 다루는 2개의 길고 따분한 기사들(“파시스트들이 창궐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진실”, 4월 4일, 그리고 “대답이 이루어진 질문: 2014년 메이단 학살 뒤에는 누가 있었는가?”, 4월 10일)이 그것들 중에 있다. 이것이 현재의 전쟁에서 자신들이 하는 “혁명적” 활동에 대하여 IG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신문의 지면에서 천배는 더 잘 다루어져 온 주제들에 대한 급진 자유주의적 탐사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것.

혁명가들의 임무는 개량주의적, 평화주의적, 그리고 친제국주의적 기만들을 폭로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을 더욱 전진시켜내기 위하여 이 전쟁의 진정한 성격을 노동자들과 청년들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서는 않되는데, 그것은 그들의 군대 안에 파시스트들이 있어서나 혹은 (충격! 충격!) 젤렌스키의 제국주의 동맹들이 유색인종 난민들에 대하여 인종주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제국주의자들에게 노예화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조프 연대, 파시즘, 그리고 인종주의적 이주정책들에 대한 심층기사들을 쓰는 것은 이 결정적으로 중심적 주제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인데, 그러한 주제를 마주한다면 IG가 영합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에 있는 소부르주아지 친 EU 자유주의자들을 필연적으로 밀어내게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좌익 자유주의자들은 난민들에 대한 차별이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파시즘에 관하여 길게 말하는 것에 대하여, 한편 동시에 그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전쟁목적들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들 주제들을 선동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민주주의적” 제국주의 강도들의 그렇지 않다면 “고귀한” 전쟁몰이에 찍혀 있는 더러운 자국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자유주의자들은 그들 “자신들의” 제국주의 도살자들에 대한 증오에 의하여가 아니라 그 도살자들의 전쟁에 대한 주장들을 더욱 설득력있고 덜 위선적으로 만들고자 함에 의하여 동기부여 된다. IG는 이 반동적 자유주의에 “맑스주의적” 덮개를 제공하는 것을 단순히 돕고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들의 모든 기사들에서 IG가 평화주의에 대한 단 한번의 논박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평화주의는 특별히 ICL과 IG 모두가 자신들의 조직원의 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있는 개량주의 좌익과 노동 지도자들이 현재 부추기고 있는 중심적인 착각이다. “평화”, “무장해제”, “외교적 해결”에 대한 요구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대한 평화적이고 정의로운 해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착각은 선진노동자들과 청년들을 지속적으로 무장해제하여 그들의 착취자들에게 사슬로 묶어 두려고 사용되는 중심적 도구이다. 이것에 반대하는 단어 하나라도 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 대한 ICL의 선전과 개입의 전체 내용은 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완전한 굴종을 가리기 위하여 평화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구호들을 사용하는 그런 “사회주의자들”을 폭로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것이 혁명적 활동의 수행이 구성하는 내용이고, IG가 거부하는 것이다.

IG는 혁명적 패배주의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는다

“혁명적 패배주의”에 대한 IG의 호소는 그들이 제기하는 다른 구호들에 모순된다. 예를 들면, IG는 “남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자치를 방어하라!”, 그리고 “파시스트들을 분쇄하라”고 요구한다. 현재의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들 요구들을 제기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중들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 없는 정의로운 해법의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단순히 부추기는 것이다.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자치에 대한 요구는 전쟁 전에는 옳았다. 그러나 전쟁 이래로, 이 투쟁은 러시아의 전쟁목적에 완전히 부차적인 것이 되어왔는데, 러시아의 전쟁목적은 우크라이나 많은 지역들을, 잠재적으로는 나라 전체를 합병하는 것이다. 이 순간 자치가 성취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승리를 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남동부에서의 자치를 방어”하라고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그러한 결과에 대한 암묵적 지지의 형태에 불과한데, 이것은 혁명적 패배주의의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러시아 군대의 승리는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인민들에 대한 민족적 억압을 의미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IG가 감추는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패배는 러시아 말을 하는 우크라이나 소수민족을 전례가 없는 민족적 억압에 처하게 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전쟁에서는 어떤 쪽도 정의로운 민족 해방투쟁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족문제의 진보적인 해결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자본가들을 타도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오로지 노동자권력만이 우크라이나 인민들과 러시아 말을 사용하는 대중들을 위한 진정으로 민주적 해결을 제공할 수 있다. “남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자치를 방어”함으로써, IG는 노동계급을 속이고 있다.

현재의 전쟁에서 IG의 중심적 슬로건들 중의 하나인 “파시스트들을 분쇄하라”는 IG의 요구는 비슷한 역할을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의 중심적 임무는 파시즘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 전쟁을 모든 착취자들에 대한 내전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혁명적 투쟁이 없다면,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한 어떠한 독립적 투쟁도 있을 수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첨예하고도 즉각적인 임무는 그들 “자신들의” 자본가 지배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여 병사들과 노동자들의 친교와 공동의 혁명적 투쟁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을 착취자들을 위한 대포밥으로 보내는, 그들의 배신적인 민족주의자 지도자들로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을 분리해내기 위하여 투쟁하기는커녕, IG는 그들의 중심적 임무가 젤렌스키 군대의 파시스트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노동자들을 속인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의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이 전쟁에서의 중심적 임무로 제기하는 것은 러시아의 “비나찌화”라는 전쟁 주장에 신뢰를 부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참으로, “파시스트들을 분쇄하라”가 이 전쟁에서 소위 의미하는 것이 러시아에 대한 암묵적 지지가 아니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IG의 기사들은 일관되게 이러한 친 러시아로의 경사를 반영한다. 예를 들면, “파시스트들이 창궐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진실”에서, IG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푸틴은 자신의 전쟁목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군사회와 비나치화‘를 위한 것임 천명했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것이 국제주의적 기초 위에서 노동인민 자신에 의하여 성취되어야만 한다“ [강조는 원문].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러시아의 소수 지배집단은 우크라이나에서 모종의 반파시스트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와는 반대인데, 그것은 러시아의 전쟁이 파시즘 근절의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서가 아니라 러시아의 전쟁의 목적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자본가계급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패배주의를 지지한다는 IG의 주장은 완전한 허위인데 그것은 그들이 러시아 자본가들의 전쟁이 부분적으로 진보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IG가 러시아 부르주아지 계급의 “탈나찌화” 주장들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거나, 푸틴의 러시아에 대한 모종의 열정으로부터 “남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자치”와 같은 요구들을 제기하도록 몰린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독립적인 혁명적 요소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의 논리적 귀결일 뿐인데, 그것은 이런 저런 부르주아지 세력에 대한 의존으로 귀결될 뿐이다.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 일부 인민들이, 그리고 신식민지 세계의 다수가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로부터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끌린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혁명적 결과를 바라볼 능력이 없는 것에 의한 그리고 자본주의 러시아가 제국주의들에 대한 모종의 대안이라는 환상에 의한 사기저하에 의하여 강요된 것이다. 이것이 IG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IG가 우리의 주장들을 논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다른 “혁명적” 구호들을 지적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위에서 인용했던 요구들과 함께, IG는 또한 “제국주의가 부추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와 “모스크바와 키이브에서 자본가 지배자들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을 위하여!”를 제기하며, 자주 제국주의자들에 맞서는 혁명적 계급투쟁을 요구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들인가! 그러나 우리의 구호 -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병사들과 노동자들에게 친교를 맺고 그들의 총을 되돌리라는 요구 - 와는 반대로, IG의 “혁명적” 호소는 완전히 추상적이며 개량주의와 사회적-평화주의와 화합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무수한 기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가 부추긴 전쟁을 반대”하고, 키이브, 모스크바, 그리고 다른 곳에서 “혁명적 계급투쟁”을 위한 필요성에 대한 무의미한 선포들을 하면서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러시아의 패배를 위해 싸우는 것에 아무런 어려움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이것이 그들을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똘마니도 만든다. 개량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라면 누구도 제기하지 않을 것 - 그리고 IG가 제기하기를 거부하는 것 - 이 볼셰비키주의의 역사적 구호, 즉 부르주아지 계급에 맞서는 내전이다. 이것이 혁명을 위한 분명한 길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친제국주의적인 민족적 단결에 맞서는 혁명적 입장을 정면으로 취하는 유일한 구호이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혁명적 투쟁”이라는 모호하고 공허한 요구들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투쟁을 위한 분명한 혁명적 강령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평직원 노동조합(USB, Unione Sindacale di Base)와 그리스 공산당과 연계되어 있는 PAME 노동조합이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무기선적과 나토와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는 실천들을 주도해왔다. 단언컨대, 혁명가들은 그러한 실천들을 지지하고 주창해야만 하며, 그러한 실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들 실천들이 사회적-평화주의적 구호 아래에서, 그리고 개량주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수행되었다는 것을 지적해두는 것 또한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이들 지도자들은 공공연한 친제국주의 아첨꾼들만큼이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적 투쟁으로의 조직화에 있어서 걸림돌이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에서 USB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반전 실천들을 카톨릭 교회와 “반전” 부르주아지 정치인들에게로 종속시키기 위하여 항상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IG로부터는 이것에 관한 단어 하나 없는데, 그들의 기사 “이탈리아의 나토 사회주의자들” (국제주의자, 2022년 4월)은 이들 실천들을 무비판적으로 환영한다. 이것이 IG의 “혁명적 투쟁”을 위한 요구의 진짜 내용을 보여준다. 그것은 혁명적 패배주의에 기초한 계급투쟁이 아니라 평화주의적 지도부 아래에서의 노동조합 실천을 의미한다. 다른 어떤 이유로 그들은 평화주의에 대한 하나의 논박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IG가 거부하는 것은 혁명적 지도부를 위한 투쟁인데, 이 투쟁은 반나토 평화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적-배외주의 지도자들로부터 노동계급을 분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중도주의는 사회적-배위주의로 귀결된다

우리가 제시했듯이,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은 노동운동에 있는 친제국주의 대리인들에 대한 투쟁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그 지배자들이 반동의 국제적 방어벽인 제국주의 중심부들에서 절대적으로 핵심적이다. 다시한번, 이러한 이해는 1차 세계대전 동안 레닌의 투쟁으로부터 직접 나온다. 레닌주의의 중심적 교훈은 노동자 혁명을 성위하기 위한 핵심적인 도구인 혁명적 정당 건설의 전제조건이 사회적-배외주의와 중도주의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분리하고 진정으로 혁명적인 기치아래 단결시키는 것이다. 볼셰비키의 핵심적인 강령적 문서들 가운데 하나인 사회주의와 전쟁(1915년)에서, 레닌과 그레고리 지노비에프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카우츠키주의와 전투를 벌이고, 그것의 지도자들의 기만적인 의도의 변화인 척하기 이후에 조차 모든 근본적인 주제들에 있어서 그 중심은 배외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의 동맹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자만이 진정한 국제주의자이다.”

그들은 나중에 계속해서:

“황색노동조합, 유대인에 적대하는 자들, 자유주의 노동조합 등과의 분리가 후진적 노동자들의 계몽의 속도를 올리고 그들을 사회민주당의 대오로 끌어들이는 것을 돕는 것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처럼, 현재의 국면에서, 기회주의자들과 배외주의자들로부터의 분리가 혁명가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것을 우리는 굳건히 확신한다. 우리 의견으로는, 제3 인터내셔널이 그러한 종류의 혁명적 기초위에서 건설되어야 한다.”

수십년동안 그리고 지금,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을 이끄는 노동조합들과 노동자 정당들에 있는 배신자들은 노동조합의 쇠퇴와 노동계급의 빈곤화를 유도하면서 노동운동에 패배에 뒤이은 패배만을 야기해왔다. 팬데믹 동안, 자본의 노동 부사관들은 부르주아지 계급과의 민족적 단결이라는 난잡한 잔치에 몸을 던졌고, 참담한 봉쇄조치들을 지지했으며, 더 가혹한 것들을 주창했으며, 이 자들은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 공세를 퍼붓는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에 있어서 열쇠였다. (IG는 이들 반동적인 방책들을 지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그리고 엄청난 물가인상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는 지금, 노동의 최고위층들은 이것에 대하여 손가락 하나 거의 까딱하지 않으며, 노동자운동 안에서 제국주의 도살자들이 러시아에 대한 자신들의 전쟁몰이에 대한 지지를 얻는 것을 돕는데 바쁘다. 이들 변절자들로부터 노동계급을 분리하고 제4 인터내셔널(즉, 국제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적 지도부)을 재건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첨예하고도 핵심적인 임무이며 ICL의 중심적 목적이다. 사실, 그러한 분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것은 현재 제국주의에 맞서 진정으로 투쟁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IG의 실천에서 레닌주의의 포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지도부를 위한 투쟁에 대한 그들의 거부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인다.

IG의 2월 28일 선언에서, 그들은 개량주의 좌익과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여러 개의 논박을 했다. 그들의 논박들의 내용은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서구 좌익의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을 일방적으로 규탄하는 것에 있어서 나토 제국주의자들과 같은 편에 있어왔다.” IG를 괴롭히는 것은 독일 Die Linke, 프랑스 공산당, 미국 사회주의 대안(SAlt) 등등이 너무나도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량주의자들의 핵심적인 배신을 묻어버린다: 혁명적 패배주의에 대한 그들의 반대와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들의 지지인데, 그것은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 주인들에 대한 지지를 구성한다! 혁명적 패배주의의 입장은 만약 그것이 개량주의자들을 비난 하는 것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러나 당신들이 실제로는 믿지도 않으면서 공공연하게 러시아의 편에 서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어떤 무의미한 종이쪼가리 성명과는 반대로, 그 입장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천으로 “혁명적 패배주의”를 위하여 투쟁할 것을 요구한다. 좌익들의 혁명적 패배주의에 대한 반대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하여 그들을 비판하면서, IG는 사회적-배외주의에 굴종한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그런 “논박”의 한 예를 들어 주겠다. IG는 SAlt가 “‘우크라이나 인민들과의 완전한 연대’를 요구했고 ‘러시아 군대는 즉각적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말함으로써 SAlt를 공격한다. IG는 “하지만, 키이브로 향하는 나토 무기들을 차단하라는 요구가 없다”고 응답한다. 사회적-배외주의에 대한 얼마나 기괴한 굴종인가! “러시아군대 철수”는 나토/유럽연합 제국주의자들과의 조화속에서 사회적-배외주의 좌익 전체가 제기한 구호이다. IG는 이 슬로건에 동의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것이 친제국주의 요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치”라는 IG의 요구에 반하기 때문, 즉 IG가 “러시아 군대의 주둔”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IG와는 반대로, 혁명가들은 “러시아군대 철수!”를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그것은 그것이 혁명적 패배주의의 입장과는 양립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주창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군대의 철수는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를 통해서만 오직 가능하다. 그러한 결과라면 우크라이나를 제국주의자들의 지배하에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 구호와 함께, SAlt는 우크라이나 대중들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러시아 자본가들에 의한 약탈에 비해 차악으로서 “그들의”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를 독점적으로 약탈할 “권리”를 방어하고 있다. 그래서 IG의 SAlt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배외주의에 대한 완전한 알리바이이면서 굴종이다. 심지어 만약 SAlt가 나토 무기들의 키이브 배송을 반대하는 요구 - 평화주의자들 가운데 싸구려 입장 - 를 추가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그들의 입장이 완전히 사회적-배외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볼셰비키들은 “독일군대의 러시아에서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짜르의 (그리고 이후 케렌스키 부르주아지 임시정부의) 구호였다. 그들은 독일병사들이 러시아와 독일의 자본가들 모두에 맞서 러시아 노동자들과 농민들과 혁명적 친교를 맺도록 투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투쟁했다. 그러나 핵심적으로, 볼셰비키들은 정확하게 이 혁명적 강령을 거부하기 때문에 사회민주당을 규탄했다. 이것이 IG가 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독일에서의 실천에서의 기회주의

IG의 중도주의가 어떻게 사회적-배외주의로 직진하는지는 독일에서 심지어 훨씬 더 명확하게 보인다. 전쟁 개시 이래로, 독일 좌익은 격화된 위기에 처해왔고, 이것에 대응하여 독일 스파르타시스트-노동자당(SpAD)의 우리 동지들은 우리의 구호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노동자들: 총구를 돌려라!”와 융합하여 “유럽연합/나토 지지자들을 좌익으로부터 내다 버려라”라는 슬로건 하에서 좌익들 사이에서 캠페인을 시작해왔다. 5월 12일 베를린에서의 SpAD의 공개포럼에서, IG는 이 관점이 “개혁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에 소위 연료를 제공할 것이라는 이유로 이 관점이 개량주의적이라고 규탄하기 위하여 토론에 개입했다. 우리의 독일 동지들의 구호들의 혁명적 성격과 어떻게 IG의 비판이 사회적-배외주의를 방어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독일에서의 현재 정세를 좀 자세히 우선 설명해야만 하겠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독일 제국주의로 하여금 자신의 전략적 방침에서의 날카롭고도 급격한 변화를 수행하도록 강제해왔다. USSR를 파괴했던 반혁명이래로, 독일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럽연합/나토 범대서양 동맹에 대한 자신의 책무와 러시아와의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연대들을 발전시키는 것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런 상황을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독일 부르주아지 계급은 이제 러시아와 결별하고 미국/나토의 전쟁몰이에 완전히 헌신하며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보낼 것을 강요받는다.

사회민주당(SPD) 수상 올라프 숄츠의 독일군 대규모 재무장에 관한 선언이 이 중대한 변화의 한 측면이다. 독일은 유럽연합과 유로를 이용하면서 동유럽과 남부 유럽에 대한 “평화적인” 약탈을 통해 유럽에 대한 자신의 경제적 지배를 대규모로 강화했다. 미국과 나토가 대륙에서의 안정을 보장해 주는 가운데, 독일은 대규모 군사적 지출의 필요성이 없었다. 수십년동안, 그들의 “무장해제”에 대한 전념과 독일 군대의 외국 개입들에 대한 반대와 함께, 독일 개량주의 좌익의 평화주의는 독일 제국주의의 정책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독일 제국주의를 재무장하고 노동자운동을 이것의 뒤로 조직화하면서, 이 변화를 수행하고 있는 SPD 변호사들을 통하여 부르주아지 계급이 이혼 청구를 하는 것과 함께 이 행복한 허니문은 이제 갑작스런 종말에 이르렀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독일좌익은 거의 모든 조직들이 내부 싸움으로 끓는 가운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기에 처해왔다. SPD의 하부에서는 불만이 많다. 숄츠는 뒤셸오르프에서 그의 노동절 연설을 듣기 위해 모였던 노동조합 군중으로부터 야유와 모욕을 당했다. 개량주의 Die Linke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지도부가 자신의 역사적으로 오래 지속된 “나토 해체” 주장을 폐기하고 제국주의 전쟁몰이를 완전히 지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의미있는 반대파가 이 방침에 저항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분열은 피하고자 하면서 과거 시기의 평화주의에 매달리고 싶어한다. 극좌조직들(독일공산당, 독일 맑스레닌주의당, 공산주의 반대파 등)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하여 아무 생각이 없으며, 친 나토/유럽연합/우크라이나 분파들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의 친러시아 분파들, 그리고 단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는 지도부로 깊이 분열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독일좌익의 위기는 독일 지배계급의 위기의 반영이다.

우리의 독일동지들은 독일 제국주의자들의 사회민주주의 맹종자 앞에서 모든 평화주의-개량주의 좌익이 굽실거리는 것에 반대해서 “유럽연합/나토 지지자들을 좌익으로부터 내다 버려라!”는 구호를 제기했다. 우리는 착취라는 제국주의 도구들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자들은 노동자운동으로부터 쫓겨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슬로건은 중심적으로 개량주의자들과 평화주의자들에 맞서는 것으로 향해 있는데, 이 자들은 필연적으로 배신할 것이며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를 공공연하게 옹호하는 자들에 굴종할 것인데, 이들의 평화주의 강령은 좌익에서의 위기의 근원임과 동시에 독일 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적 맑스주의 세력의 발전에 중심적인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IG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혁명정당을 건설하기는커녕 Die Linke를 “개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레닌이 가르치듯이, 혁명정당 건설의 유일한 길은 사회민주당의 노동계급 하부를 그것의 배신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지도부로부터 분리함으로써이다. 우리의 목적은 Die Linke -그리고 다른 모든 좌익조직들 - 내부에서의 양극화를 깊게 만들고, 양극화를 더욱 밀어붙이며, 제국주의에 대한 일관된 투쟁의 유일한 길이 이 노선으로 Die Linke를 분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적 강령의 기초위에 서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양극화에 명확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참으로 우리는 Die Linke의 좌익이 나토, 유럽연합, 그리고 독일제국주의를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자들을 쫓아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있을 법한 결과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고, 친제국주의 그레고르 기시 일당과의 단결을 고수하기 위하여 활동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제국주의의 대리인들로 폭로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우익을 쫓아낸다면, 이것 역시 좋은 일이다. 기시, 보도 라멜로브, 그리고 제국주의에 아첨하는 다른 모든 자들을 노동자 운동에서 쫓아내는 것은 줏대없는 기회주의자들만이 반대하는 기초적인 정치적 위생활동이다.

그런 분열이 Die Linke를 혁명정당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분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샤흐라 바켄크네흐트와 그녀의 평화주의 시종들을 당 지도부에 앉힐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반길 것이다. 더 이상 우익의 뒤에 숨을 수 없게 되면서, “무장해제”, “평화”, 그리고 “국제법”에 대한 방어라는 그들의 강령의 파산이 완전히 친제국주의적 막다른 길로서 훨씬 더 쉽게 폭로될 것이다. 우리 전술의 성공적인 적용은 Die Linke에서 개량 대 혁명의 노선을 따른 분리의 기회를 열게 될 것이고, 개량주의 장애물로서 Die Linke를 파괴하고, 독일에서 혁명적 노동자 정당 건설을 위한 기초를 놓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회민주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좌익소리 내는 비난이라는 덮게 아래에서 IG가 규탄하는 것은 단순히 살아있는 현실에 대한 레닌주의의 적용이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IG라면 해 왔을 “혁명적 계급투쟁”을 위하여 추상적으로 설교함으로써 길 옆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위한 투쟁을 객관적으로 전진시켜낼 방법으로 노동계급과 좌익을 뒤흔드는 균열들 속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베를린 포럼에서 사회민주주의 “개혁하기”에 관한 똑같은 잘못된 지점을 공격하면서 IG 지지자 한 명은 3차 세계대전이 목전에 있기 때문에 특히 이것은 범죄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IG가 규탄하고 있는 것은 친제국주의 추종자들 평화주의적 협조주의자들이라는 사회민주주의의 양쪽 모두의 세력들을 노동계급 앞에서 폭로하기 위한 투쟁이다. 친제국주의 추종자들을 내다 버리라는 우리의 호소를 규탄함으로써 IG는 평화주의적 협조주의자들을 돕고 있다. 그러한 종파주의적 “순혈”이라는 진정한 논리는 사회민주주의, 특히 그들의 좌익에 대한 투쟁을 멈추는 것이다. 3차 세계대전이 오건 오지 않건, 이것이 진짜 범죄이다.

세계대전이 임박해 있을 때, 레온 트로츠키는 그 시대의 주요한 속임수였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투쟁을 통하여 혁명적 인터내셔널을 응집시키려고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혁명적 조직 말고는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어떤 다른 방책들이나 지렛대들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다. 이 전위의 단결과 교육에 대한 주요한 방해가 현재 시점에서는 소위 코민테른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저항 할 수 있는 새로운 혁명적 조직을 위한 투쟁은 스탈린주의가 노동자들의 운동에 주입하고 있는 독약에 맞서는 투쟁 말고는 어떤 것도 아니다. 전쟁의 위험이라는 핑계 하에 스탈린주의에 대한 전쟁을 멈출 것을 추천하는 자는 누구라도 실제로는 혁명적 임무들을 이탈하고 있으며, 세계적 재앙에 대한 시끄러운 문구들로 스스로를 덮어가리고 있다. 우리는 이런 근본적으로 잘못된 관점과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 “잘못된 관점”, (1938년 10월)

현시점 독일에서 혁명적 전위의 단결에 대한 주요한 방해는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하여 노동자 운동에 소개된 자유주의적 개량주의와 평화주의라는 독약이다. 종이 위에서는 혁명적 지도부라고 주장하지만 노동자 운동의 제국주의 대리인들을 청소하기 위한 투쟁을 규탄하는 IG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노동계급을 지도하고 있는 친제국주의 배신자들과의 평화와 단결을 고수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돕고 있다. “계급투쟁”에 대한 시끄러운 문구들로 스스로를 덮어가리고 있지만, 노동자 운동에 있는 사회적-배외주의 지도자들의 장악력을 손상입지 않은 채 놓아둠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자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종속을 강화하고 있다.

종이 위에서는 “혁명적 패배주의”지만 실천에서는 사회적-배외주의 - 이것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 대한 IG의 입장을 성격규정하는 것이다.

노동자혁명을 위한 투쟁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ICL의 입장에 반대하여 많은 가짜 맑스주의자들이 해 온 중심적 주장은 바로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혁명적 정세가 없기 때문에 이 반동적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킬 것에 대한 우리의 호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자들은 이 구호를 불가능하고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규탄해왔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 똑같은 것을 말하는 보다 정직한 방법이다.

이런 관점이 유토피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수한 사기저하이며,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실들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은 전쟁에 기울이는 노력을 지속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지배자들에 의하여 매일 더 많은 공격을 당하고 쥐어짜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노동계급 엄마들의 아들들이 소수지배집단의 야욕들 때문에 시신 운반용 포대로 돌아온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젤렌스키와 그의 제국주의 주인들은 전쟁이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이 분쟁의 어떠한 종결도 원하지 않으며, 만약 우크라이나가 피의 강으로 인해 홍수가 나야만 한다면, 그렇게 되게 할 것이다 - 이 모든 것들이 유럽연합과 나토라는 탐욕스러운 클럽들에 가입하고, 독일, 미국, 그리고 영국 회사들을 위한 값싼 노동으로서 일하기 위해서다. 양쪽 모두에서, 그들이 소련 안에서의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종종 공통의 친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을 입은 노동자들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을 듣는다. 한편, 노동인민들은 군대로 징집이 되고 무기들을 다루는 것을 배우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는, 노동자들이 치솟는 물가와 에너지 청구서의 폭발로 인해 피를 흘리며, “권위주의”에 맞서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생활수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참으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으로부터 도출되는 혁명적 정세의 가능성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야만 한다.

전쟁 발발 시 잠시 동안 노동자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민족주의와 배외주의라는 반동세력들이 증가하는 압력 하에서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혁명이 이것으로부터 나올 것인지 여부를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피착취자들의 가공되지 않은 분노가 그들의 착취자들로 향하는 것을 막는 것이 노동계급을 속이고 있는 그들의 사회적-배외주의, 그리고 개량주의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혁명을 지도할 수 있는 혁명적 정당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으로 혁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혁명정당들이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혁명을 위해 싸우는 자들에 의하여 건설된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내내 끊임없이 레닌은 정확하게 똑같은 주장들로 사회적-배외주의자들에 의하여 공격을 당했다. 부르주아지 계급의 편으로 넘어간 것을 정당화할 뿐인 가짜 사회주의자는 “혁명을 위한 희망들은 환상임이 증명되었고 환상들을 위해 싸우는 것은 맑스주의자들의 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이 정세가 오래 지속될 것인가; 정세는 얼마 더 첨예하게 될 것인가? 그것이 혁명으로 귀결될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이며 아무도 알 수 없다. 대답은 혁명적 정서의 발전 동안 획득된 경험과 선진계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혁명적 실천으로의 이행에 의해서만 오로지 제공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의 것이 아니라) 이번 전쟁이, (내일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혁명적 정세가 혁명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을 어떠한 사회주의자도 결코 보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환상들’ 혹은 그것들에 대한 거부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논쟁의 여지가 없는 근본적인 의무이다 - 혁명적 정세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폭로하고, 그것의 범위와 깊이를 설명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의식과 혁명적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실천으로 넘어가는 것을 돕고,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혁명적 정세에 적합한 조직들을 조직하는 것....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서의 현재의 정당들의 실패는 그들의 배신, 정치적 사망, 그들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포기, 그리고 부르주아지 계급의 편으로의 탈영을 의미했다.”

- “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 (1915년)

IG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중도주의자들과 사회적-배외주의자들이 죄의 책임이 있는 것은 정확하게 바로 이 똑같은 의무의 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