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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 개악 저지전선에 대한 단상

      지난 9월 10일에 정부의 파견법, 기간제 노동법 개악안이 발표된 후 노동운동진영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매일노동뉴스에 의하면 발표전날인 9월 9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과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열린우리당 이부영 당의장과 10일로 예정되었던 당정협의를 연기하고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된 개악안이라는 점에서 노동운동진영을 더욱 경악케 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까지 노동부의 노동법 개악안에 대해 비판을 목소리를 더함으로써 향후에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은 노동계 뿐만 아니라 전사회적 영역으로 확대 발전될 여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10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양대노총 비정규직 대회 등 기존에 하반기 투쟁계획으로 상정했던 투쟁 일정등을 압당겨 진행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파견법 개악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진영의 노동법 개악저지전선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하반기 정세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현 상황은 정부의 파견법 개악에 맞선 노동운동의 저지투쟁으로 급격하게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저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고민의 단상이나마 한번 정리볼까 합니다.


정부의 노동법 개악의 방향성


  개악된 노동법의 해악성은 이미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각의 운동진영에서 발빠르게 분석,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식 네거티브 방식의 파견법 도입을 통한 파견업종의 전 업종으로의 확대, 기간제 노동의 사용기한 3년 연장등등...

  그런데 이번 파견법 개악안에서 핵심적인 것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법 적용이 제외되었다는 점입니다.(사실 이것도 예상되었던 지점이었지요) 이번 파견법 개악안의 방향은 지난 근기법 개악때와 같이 조직력과 투쟁력이 살아있는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와 조직적으로 아직 투쟁력이 취약한 비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갈라치기 한다는 정부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런 개악 방향에 대해서는 최근 일본 파견노동연구회 오사카 대표 와키다 시게루씨가 한 운동단체와의 인터뷰에서 제시한 일본의 예를 참고하면 좋을 듯 합니다. 한국정부의 파견법 입법 방향은 일본의 파견법 적용 예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의 예봉을 피하고 단계적으로 각계격파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정부에서 노동법을 개악할 때마다 정형적으로 사용하는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현대자동차에 대한 불법파견진정에서 8개업체에 대해 불법파견확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 놈들이 거져 줄리가 없는데 순순히 불법 파견을 인정할 걸 보면 이도 역시 파견법 저지 전선에서 제조업 대공장 투쟁을 사전에 정지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한 듯 합니다.

  법안에서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3권 보장이 제외된 것도 특징적입니다.(이 내용은 이미 향후 설치될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루기로 넘긴 사안이었죠) 지난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드러났듯이 특수고용노동자의 투쟁도 정부로서는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죠.


...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 특히 강화도니 전략인데,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항상 가장 약한 곳의 노동자를 먼저 공격한다.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중소영세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등...

  그들이 그러한 전략을 취하는 중요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추고 있는 조직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서이다. 즉, 미조직 노동자들을 먼저 공격하여 무너뜨린 후에 조직 노동자들을 공격함으로써 전체 노동운동의 단결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사이드(피플타임즈), "하반기 핵심이슈는 비정규개악안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격돌!"에서)


  타당한 지적입니다. 사이드 동지가 양동전략이라고 표현한 정부의 노동정책은 산업 영역별로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갈라치고 분리타격한다는 방식입니다. 현재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개악입법은 작년부터 화두가 되어온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전체 노동법 개악의 방향성 속에서 한 부분을 점하고 있습니다. 결코 전체 개악안을 한큐에 통과시키겠다는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지난 97년 노동법 날치기 개악 때도 드러났듯이 자칫 노동법 개악이 전체 노동자의 연대투쟁으로 들끓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심산인 것이죠. 산업별, 업종별, 정규직 비정규직등으로 분리, 구분하여 단계적으로 깨고 관철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에서 최초 공격의 시발점으로 잡고 있는 것은 투쟁력이 취약한 비정규직, 그것도 비제조업입니다. 일본의 예에서도 드러나듯이 일본에서 파견법을 제조업을 포함한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데 10여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10년동안 전체 노동조합의 연대와 투쟁력을 서서히 약화시키면서 결국 투쟁력이 강한 노조를 최종적으로 고립무력화시키는 방식입니다. 남한에서도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광폭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정규직 운동의 발목을 묶어놓고(상반기 임금때와 같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행동을 수동화시키고) 약한 부위부터 현장 통제를 기반으로한 법제도개악의 목줄을 죄어오고 있습니다.

  파견법이 전산업으로확산된 일본의 예를 보면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합니다. 99년이후 4년만에 파견노동자 수가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2배로늘어났으며 93년부터 2002년까지 쟁의행위건수는 657건에서 304건으로, 노동손실일수는 11만 6,003일에서 1만 2,262건으로 노동운동의 투쟁력이 현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일본노동운동이 정부의 법개악을 제도로 저지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일상적인 과로사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정부의 개악입법안을 둘러싼 파견법 저지 전선은 단순히 비정규직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전체 노동계급운동의 사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전체 노동운동이 개악된 파견법을 저지하지 못하고 자기 사업장지키기라는 조합주의에 빠져들면 일본 노동운동처럼 정권에 의해 노동운동 자체가 무력화 당하는 수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차별철폐의 관점으로 노동법 개악을 막아낼 수 있을까


  지난 7월 12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공동으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발의했습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원내입성이후 변화된 투쟁양태를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정부의 노동법 개악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노동운동 진영이 법개정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선제출함으로써 법개악 전선을 우선적으로 선점한 점, 법개정 투쟁의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선전하는 효과를 가져온 점은 온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정부가 개악안을 발표하면 부랴부랴 노동운동의 입장을 마련하고 국회 외각에서 청원하는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래서 인지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이 발표되자, 비정규직 연대회의는 즉각 환영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8월 26일 대표자 회의에서는 하반기 투쟁의 중심적인 목표로 파견법 개악저지투쟁과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입법안은 파견법 저지전선의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한계 또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면한 투쟁의 방향이 정부의 파견법 저지 전선임을 분명히 하고 이것에 노동운동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은 분명히 옳지만 이 투쟁이 어떠한 방향성과 내용을 담아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순간인 것 또한 분명합니다.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투사들은 당장의 전선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파견법 저지 투쟁의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라 현재 제출되어 있는 민주노동당의 입법안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법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라 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나마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98년 민주노총 국민파 지도부인 배석범이 정리해고, 파견법을 직권조인한 이래 노동운동진영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성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졌습니다. 하나는 기왕 합의해준 정리해고, 파견법의 틀거리 하에서 점진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차별을 해소하자는 개량주의 주류 노동운동의 입장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투적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비정규직 철폐의 관점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바라보는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민주노동당이 제출하고 있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의 중심기조는 주류 개량주의 진영의 차별철폐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차별철폐라는 관점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관점이 근본적으로 대정부 또는 대자본과의 상층협상과 노사정 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의 필요성을 필연적으로 불러 온다는 점입니다. 이는 국민파를 비롯한 노동운동내 개량주의 진영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계급협조주의적 노선과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법 개악 저지를 얘기하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노동법 개악저지란 자본의 저지 음모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고 정말 노동계급적인 입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법 개악저지의 상이란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원내외 압박시위, 대국민 여론전을 통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적당한 지점에서 정부와 합의를 보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법 개악저지가 아니라 


철폐한다는 관점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권리가 개선되는 시점에서 항상 협상과 타협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두개의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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