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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닌가..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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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해도 너무 한거 아닌가...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떠나서 의견대립 과정에서의 문제를 경찰에 해결하겠다고... 아예 감사도 정부기관을 통해서 받지.. 좋겠네.. 노조 부정문제도 해결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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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린 우리들--김진숙

--2005-05-09 노동자의 힘 게시판에서 펌
 
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린 우리들  05.05.04 12:47  
 
 지난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규탄전국대회. 
엿새 전, 156일 동안 한진중공업의 크레인 위에서 외롭게 싸우다가 끝내 스스
로 목숨을 끊은 김주익 위원장에게 바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아니 한진중공업 해고자 동지의 추도사는 그날 대회장을 지켰던 3천명의 동지
들의 눈에서 기어이 부끄러운 눈물이 흐르게 했습니다. 
김진숙 동지가 4월 30일, 똑같은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집회에서 
조합원들에게 바친 연설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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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밤새워 쓰는 편지도 있고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
면서도 기다려지는 편지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
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
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밤은 자꾸 오고 술마저 취하지 않는 밤. 새벽이 얼마
나 더디 오는지 새벽을 견뎌 본 자는 압니다.

그런 밤, 신 내린 무당처럼 산에 올라 부를수록 상처가 되는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언제나 늦게 오던 사랑. 다시는 볼 수 없
을 때가 되어서야 그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일은 얼마나 쓸쓸합니까?

내가 스물 하나 일 때 박창수도 스물 하나였고 내가 스물 셋일 때 스물 하나였
던 김주익을 만났던 언제나 거기서부터 떠오르는 이 형벌 같은 기억들은 얼마
나 잔인한 일입니까? 

참 잘 자란 용찬이가 지 에미가 가슴속에 눈물의 저수지를 파놓고 그 물 떠 먹
여가며 그 물로 씻겨서 키웠을 용찬이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한 살. 소나
무처럼 푸르르 던 그 때 그 애비의 나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죄스럽기만 한 우
리는 준엽이 그 아이가 그 애비만한 나이가 될 때 그 때 우린 그 아이 앞에 무
엇이 되어 서 있을까요?

내게 남은 시간들을 다 내주고 그들이 단 하루를 더 살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
고 싶었습니다. 그 하루 동안 아이들만이라도 볼 수 있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들을 비벼보고 만져보고 빨아도 보고 부서지도록 안아
도 보고 그랬어야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그 말이라도 했
어야 했습니다. 

감빵 안에서 징벌방에서 그리고 대공분실에서 혼자 당하는 일의 처절함, 혼자 
견뎌내야 하는 그 참혹함을 알면서도 하나는 감방 안에서 하나는 크레인 위에
서 하나는 도크바닥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박위원장이 주익씨를 만나지 않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저승에도 북극이
란 게 있고 남극이란 것도 있어서 그들의 거리는 천리나 만리나 되게 멀어서 
그들이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예수님께 빌고 부처님께도 빌었습니
다. 

박위원장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보냈냐고 주익이를 어떻
게 이렇게 보냈냐고 얼마나 원망을 하겠습니까? 그 착해빠진 사람이 혼자서 목
에 밧줄을 걸 때까지 니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했던 거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겠
습니까? 

산 자는 누구나 죄인이었던 그 날 이후. 우리는 각자의 양심에 검은 리본을 달
았었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이란 것도 했습니다. 129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
매달아 죽은 시신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을까? 함께 하지 못했던 자책감에 몸부
림을 했었고 우리 모두의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속죄한 재규형 때문에 한 동
안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두려워했습니다. 누구나 복수를 다짐했었고 반
드시 이겨야 한다는 맹세도 했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새끼들 또래의 아이들
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살가죽이 불에 닿는 느낌이었고 키가 큰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했었습니다. 

연대해야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 수천번도 더 외쳤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
달은 노동자는 하나란 사실을 다시는 잊지 말자 했습니다. 우리 그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 그 때 다들 그러지 않았습니까? 부산 노동자도 그랬고 울산 
노동자도 그랬고 여성노동자도 그랬고 남성 노동자도 그랬고 늙은 노동자도 그
랬고 젊은 노동자도 그랬습니다. 정규직도 그랬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그랬고 
금속노동자도 그랬고 병원노동자도 그랬고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그랬고 안
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그랬습니다.

그 일로부터 2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그토록 철폐를 외쳤던 
신자유주의는 우리들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먹고 살기 위해 잔업철야를 해야 하고 정규직은 짤리기 전에 한 대
가리라도 더 하려고 잔업특근에 목숨을 겁니다. 연대투쟁 열심히 하는 집행부
는 재선에 실패하고 임금 많이 올리고 성과급 많이 따내는 집행부는 인정받습
니다. 

성과급 받아서 차 바꾸고 그 차 값 할부금 때문에 잔업을 또 하고 뼈골 빠지
게 잔업한 돈 모아서 큰 집으로 이사했으니 융자 갚고 관리비 감당하려면 특근
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큰 아이 학원비는 점점 늘어나는데 작은 아이마저 학
원을 시작해야 하고 그렇게 키운 새끼들을 죄다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과 
실업자는 각자 알아서 알맞은 방법으로 자살하고 정규직은 과로사와 산재로 죽
습니다. 

열사람 하던 일을 다섯 사람이 해도 충분하다는 걸 우린 점점 늘어나는 과로사
와 근골격계를 감수하면서 입증해줬고 그렇게 우리는 저들의 구조조정을 합리
화 시켜줬습니다. 결국 다섯 사람이 하던 일을 세사람이 해도 된다는 또 다른 
구조조정의 무덤을 우린 우리 손으로 열심히 파고 있습니다. 

이제 자본가들은 더 이상 그들의 손으로 덫을 놓지 않습니다. 노동자들 스스
로 덫을 만들고 그 덫에 걸릴 순서를 알아서 정하고 1번 비정규직, 2번 여자, 
3번 늙은이 순으로 차례대로 그 덫에 밀어 넣습니다. 

공장 한쪽에서 비정규직은 투쟁하고 그 코앞에서 정규직들이 탁구를 치고 족구
를 하는 것도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정규직을 넘어선 공장에서 노조간부들이 사무실에 앉아 각
자 등 돌리고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도 이제 자연스런 일상이 돼버렸고 에어컨 
빵빵한 노조 사무실 소파에서 노조간부들이 연예인 X파일을 논할 때 엉덩이 붙
이고 앉을 데라곤 화장실 바닥 밖에 없는 청소용역 아지매들에겐 회사의 냉대
보다는 노조의 무관심이 더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이은주의 자살에 대한 관심만큼 이용석의 죽음에 우리들이 관심을 쏟았더라면 
박일수는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도 저는 합니다. 최희섭이나 박
주영에 대한 관심의 반만이라도 우리가 과거사법, 사립학교법에 대해서 가진다
면 자식을 먼저 보낸 늙은 부모님들이, 줄줄이 돌아가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
니들이, 전교조 동지들이 그들끼리만 거리를 헤매는 수치스런 일만큼은 막아
낼 수 있다고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농민들이 제 손으로 키운 과일을 불태우며 울면서 싸우는데 수입과일을 사먹
는 노동자가 어찌 세상의 주인일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쏟은 오물을 청소용역 
아지매를 전화로 불러 치우게 하는 노조간부가 누구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
니까?

규정이라는 이유로 역 구내에서 노점상 할머니와 노숙자를 눈물 한 방울도 없
이 쫓아내는 노조간부가 집회에 나와서 외치는 평등과 해방은 얼만 큼이나 진
실입니까?

배차 시간 때문이란 걸 알지만 장애인이 온 힘을 다해 손을 드는데 그냥 지나
치는 버스 노동자가 자신들이 투쟁할 때 누구에게 당당히 연대를 요구할 수 있
겠습니까?

지율스님의 그 일관된 진정성이 김주익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그 생각
을 왜 우리는 안합니까?

이주노동자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칠 건 빨리빨리와 "씨"발"놈"이 아니라 연대
와 인간의 가치입니다. 

1300만 중에 840만이 비정규직이 되는데 10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비정규직
과 정규직은 무궁화와 고속철이 아니라 같은 열차의 앞 칸과 뒤 칸일 뿐입니
다. 1호차부터 10호차까지 비정규직을 인질로 태우고 지옥으로 돌진하는 이 죽
음의 고속철을 11호차부터는 정규직이 실려 있고 자유석엔 우리 아이들이 실
려 달려가고 있는 겁니다.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에서 혼자 뛰어내릴 수 없습
니다. 다 죽지 않으려면 멈춰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게 콩 한쪽뿐이라 하더라도 그걸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
정한 연대입니다. 대우자동차 창원 공장처럼 부산은행처럼 정규직이 나서서 비
정규직을 조직하는 일부터 합시다. 비정규직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다 죽지 않
으려면 그래야만 합니다. 

스물한 살 용접공 제게 그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아침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
다. 매일 그런 아침을 맞을 비정규직들에 실업자들에게 우리가 희망이 돼야 하
지 않겠습니까? 

14년째 되풀이하는 다짐이지만 내년에 좀더 달라져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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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짓을 하다.

웬일인지 서버가 무지하게 응답이 느려져서 이것 저것 점검하다가.. 무의식중에(항상 사고는 무의식중에 일어난다.) ssh 데몬을 죽여버렸다.. 으.. 뭔가 문제가 있는지 IDC에 리부팅 부탁해서 리부팅했는데도 접속이 안되고 결국 IDC까지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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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p를 쉘스크립트로 이용할 때 인자 처리

#!/usr/local/bin/php
$argc    //인자의 갯수

$argv    //인자 배열 0:파일 이름

 

?>

 

예:   shell>./test.php aaa bbbb

$argv[0]   test.php

$argv[1]   aaa

$argv[2]   bbb

 

php.ini에서 register_argc_argv = On로 설정되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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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집안에만 있어 갑갑해 하길래 멀리는 못나가고 교보문고를 들러 인사동에 갔습니다.
버스에서 잠이 들어서는 밥먹으러 들어간 돈까스 집에서도 잠이 깰 생각을 안하네요..
점심을 안먹여서 뭐라도 먹일려고 깨웠더니 짜증도 안부리고 일어나요.. 우리 이쁜이..
사모님께서는 사진찍을때마다 항상 같은 옷이라고 은근히 압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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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것..

처음 막 낳았을 때는 손바닥만한 것이 정말 쥐면 깨질거 같아서 밤에 잠들면 몇번이고 돌아보고 숨은 제대로 쉬는지 코앞에 귀를 가져다 대고 숨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되곤 했는데 이제는 안아주면 걸어가겠다고 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네요.

그동안 신발이 작아서 신발을 신길때마다 집사람이 잔소리를 해대더니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신발사러가서 하나 사줬더니 새신인줄 아는 것처럼 자기 신발을 쓰다듬더라는 말을 듣고는 아이를 키운다는게 내맘대로 되는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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