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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8
    [미래에서온편지] 을지로 빅텐트를 찢기 위해 광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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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온편지] 을지로 빅텐트를 찢기 위해 광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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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진보재편 논의는, 긴박하고, 폭넓게 다뤄져야 하는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자존심 싸움 멈추고, 깔끔하게 토론하자

 

불행히도 우리 진보정당운동의 도전은 실패를 향해 노정하고 있다. 상황은 점점 음울해지고 있으며, 전면적인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운동진영 안팎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상황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나머지 활동가들은 하나둘 좌절에 빠지고 있다. 이럴 때 좌파의 조직적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역사 투쟁의 대의를 갖고 장렬히 전사(혹은 문호를 닫고 자기보호)하거나,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한치 앞도 계측하기 어려운 길로 나서거나.

좋든 싫든 오늘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실 이런 조건은 누구도 원한 것이 아니었고, 예고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억울하고 분통터진다 할 수 밖에. 게다가 몇 년 전 통진당으로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진통은 일부 당원들에겐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 이런 뒤틀림과 과오, 증폭된 아이러니에 의해 이지경까지 왔고, 십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신묘한 능력이 있지 않다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처지에 놓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수 있겠다.

 

분리될 수 없는 진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당(진보신당)이 지금껏 제대로 시도라도 해본 적이라도 있었느냐’, ‘우리 나름대로의 제대로 된 도전을 해보기라도 하고 접든 말든 해야할 것 아니냐’, ‘우리에겐 아직 재편 과정에 주체적으로 가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역시 이런 지적들에도 엄연한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재편 논의의 절차적인 과정에 대해 강조하고 ‘아직은 포기하지말고 제대로 해보자’는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조건 역시 우리가 똑바로 응시해야할 사실임은 분명하다. 노동자운동은 추락하고 있고, 좌파는 이제 어디가서도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흔히 미디어에서 말하는 ‘좌파’ 안에도 우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시민이나 주진우 같은 스타들이 보일 뿐이다.

더군다나 재편이 곧 ‘포기’인 것처럼 취급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좌파 정당은 대중조직이 아니지 않은가. 정세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옷을 바꾸고 폭을 넓히며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노동당이 존재해왔던 것이지 우리끼리 노동당을 잘 하기 위해 운동에 동참해온 것은 아니다. 특히나 노동조합운동에서 진보정당은 자기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우리 당원들이 보인 헌신적인 연대를 잘 알지만, 조합원들이 선거에서나 미디어에서 컨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을지로위원회 밖에 없다. 이런 뼈 아픈 기억은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현상이다.

2013년 가을 최종범 열사가 돌아가신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삼성전자서비스 천안두정센터 앞의 나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했다. 금속노조는 뼈 아프게 모든 것을 건 싸움을 다짐하고 있었지만 은수미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양산의 또 다른 주범인 새민련(열린우리당-민주당)의 의원들을 향해 박수쳤고, ‘은수미! 은수미!’를 연호했다. 그건 결코 조합원들이 개량이어서도, 파견법 개악의 주역이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니다.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랜 고공농성 투쟁을 마치고 내려올 때에도 두 노동자들의 ‘착륙’(?)을 마중할 수 있는 지분을 지닌 정치인은 오직 을지로위원회 뿐이었다. 지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헌신적으로 도왔다는 의미이기도 할 게다. 그 자리에 서너개로 분리된 진보정당들의 자리는 없었고, 뼈 아프지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건 누군가의 탄식처럼 당의 깃발이 데모 현장에 게으르게 보여서도 아니고, 덜 헌신적이어서도 아니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택지에도 보이지 않는 진보정당.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전략의 방황, 전술의 부재, 정념의 과잉

이따금 지인들로부터, ‘노동당은 내 생애 마지막 당’이라는 선언을 들을 때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그런 굳은 다짐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는 것은 가히 모범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로 정치적 입장을 세울 순 없는 노릇이다. 대중/운동이 있기에 (대중)정당도 존재하는 것이지, 당이 있어서 대중/운동이 있는 것은 아니며, 조직논리가 당위가 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속한 조직, 당이 얼마나 해당 정세에 걸맞는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얼마나 견고한 전략전술, 정치의 질서를 갖추고 활동하고 있는가이다. 

지금 당의 형질은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사회운동단체적 성격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져 있다. 전국적인 조직망은 와해되다시피 했고, 이를 하나하나 재건하는 일은 곳곳에서 다른 진보세력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해산 이후 전면적인 대중조직으로의 산개를 통해 무섭게 토대를 닦고 있는 구 통진당 활동가들이나 원내정당으로서의 장점을 십분 살리며 무섭게 파고를 올리고 있는 정의당,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며 전망을 확장하고 있는 녹색당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조직의 형태를 감정적으로 고수하는 태도는, 당의 진로에 대한 여러 견해차를 막론하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당면 문제, 즉 불가피한 조건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다루기를 방해하기 일쑤다.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정세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3항-되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요동치고 있다. 남유럽 국가들의 극심한 내핍 속에서 유로화폐동맹은 전무후무한 격변을 겪고 있고, 서유럽은 우경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경찰국가 미국은 금리인상 시기를 점치며 다른 국가들을 긴장케 하고 있고,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은 미국과의 군사동맹과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화의 길을 노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일본식 장기불황의 미래로 가는 듯하면서도 통화의 불안정성 문제까지 걱정할 처지다. 물론 이에 대해선 조금씩 다른 견해들이 있기에 잠시 차치해두기로 하자. 

중요한 건 정세의 긴박함에 비해 주체들의 조건이 한 없이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이데올로기의 끝없는 우경화에 좌파는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조직된 운동들(노조, 협동조합, 지역운동 등)의 정치적 응집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이런 운동들의 제2의 정치세력화를 꾀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권력과 운동들이 제대로 충돌할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절대 다수의 미조직 대중들을 만날 매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존립에 대해 시험 받을 수밖에 없으며, 노동운동은 양당제로 굳어지는 정치질서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중대한 과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제3의 대안’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영미권의 좌파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보라. 영원한 이항대립의 정치 질서에서 좌파가 설 자리는 없다. 문제는 ‘그 세 번째 항에 누가 설 것인가’이다. 지난 5년 사이 보수세력이 이 ‘3항’으로서의 민노당-통진당을 삭제하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는 ‘국민모임에게 정당을 건설할 실력 따위는 없다’는 견해에 대해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럴 수 있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인 활동이나 대중조직 운영의 경험이 일천했을 때 벌어지는 여러 과오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국민모임이 지지부진하게 3항의 자리를 선점한 상황에서의 재편 논의를 죄다 ‘국민모임스러운 것’으로 취급하고 재편의 전략적 가치까지 폄훼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실력을 갖고 보다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견해를 지닌 좌파들이 주도하자고 말하는 것 아닌가. 좋든 싫든 미디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3항’의 견적 따위가 있다면, 우리는 그 견적을 짜고 질서를 흔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를테면 일간신문 정치면에서 천정배가 아니라, 좌파가 ‘3항’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노동당은 악조건을 감수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향후 몇 년간 역변될 정세에 ‘3항’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라도, 대중정치의 토대를 ‘질서재편’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

 

심플하게 논쟁하자

지난 1월 당대표 선거를 통해 우리는 과거 겪은 여러 풍파 이후 남아있는 평당원의 과반 이상이 당 안팎 제 진보세력의 결집이라는 ‘프로젝트’에 동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그것은 각자의 지역에서 탁월한 활동을 펼쳐온 주요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도 밑바탕에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 지도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선 직후 열린 전국위원회 회의에 대한 소식들, 4.29 재보궐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잡음들, 그리고 최근 당게에서의 논란까지.

그러나 새 지도부에 브레이크를 거는 여러 공격들이 과연 얼마나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것이었는지, 정말 당내에서 미래 전략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촉진시키는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눈팅하는 당원들의 혐오를 키웠을 뿐이며, 당게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게 만들어왔을 뿐이다. 결집의 조건과 전술에 대한 토론은 미진하고, 절차에 대한 흠집내기, 정념적 대립만 가득했다.

나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논쟁은 아무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전략적 견해차에 대해 논쟁해야 하며, 그것에 대해 심도 깊고 폭 넓게 토론하고, 표결에 부치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한 정치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경제위기가 점쳐지는 불안정한 정세에서 좌파의 미래 전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전체 당원이 토론하고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너무 합당하다. 더군다나 ‘진보결집’과 ‘당원총투표’는 현 지도부가 당선의 과정 속에서 과반 당원에 의해, 대중적으로 승인 받은 것이지 않은가.

심플하게 논쟁하자. 제 진보세력이 결집해 광범위한 블록을 만드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깃발을 고수하는 게 맞는가. 나는 전자가 옳다고 확신하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다수 당원은 이 쟁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의 실내용에 대해 더 토론하고, 당원총투표를 통해 길을 정하면 된다. 상황을 자꾸 실제 쟁점이 아닌 곳으로 안내해선 안 된다. 

우리에게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군소하지만 ‘좌파적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대중적으로 의미있는 각인 속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줄다리기의 장으로 나설 것인가. 앞서 펼친 여러 근거들 때문에 나는, 몇 년 전 완고한 독자파에서 지금 ‘결집’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임박한 파국 앞에서 마이크 스피커를 최대한 높게 하고 넓게 외칠 수 있는 언덕 위에 올라서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이다. 그때 좌파는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얼마나 프로패셔널하게 대중들을 만날 것인가. 나는 여러 조직된 노동자들, 당 밖으로 흩어진 여러 좌파들을 결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우리 안의 지독한 냉소를 뚫고, 그 길에 더 많은 당원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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