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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리 없는 외침 - 뒤늦은 전자서신 개통과 외부에 기고하다.

2005년 9월 십여일.


그 날도 하루를 지나가기 위하여 방안을 버티고 있는데 사동 담당직원이 오더니 나에게 서류를 내밀면서 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내용을 보더니 '정보공개청구서'이란 서류인데 명칭으로는 무슨 대단한 걸 요구하는 듯 하지만, 외부의 사람이 재소자에게 이메일처럼 보내는 전자서신이나 영치금 금액확인, 면회(접견) 확인을 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앞선 서비스를 이용을 하려면 재소자 본인의 정보, 즉 이름과 수번을 공개하는 걸 동의하라고 이런 서류를 작성하는 것인데, 전 이미 이러한 걸 알았지만 본인확인을 오직 지문날인(무인)으로 처리한다는 서류 문구를 본 적이 있어서 주저하였지요.

 

그런데 밖에서 하도 뭐라고 해서 서명으로 하라고 해서 쓱싹 써서 적었고 이틀 후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낸 이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데 무단으로 올리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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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인 : 813(수번) ○승규
* 거실(작업장) : 가6동 01층 10호()
* 수신기관 : 수원구치소
* 발신인 : 안○○
* 서신내용 : 승규야 나다...

 

엊그제 면회 다녀오고 나서 사람들에게 면회나 편지좀 하라고 이야기 했는데 다녀갔는지 모르겠다.
그곳에 있으면 바깥소식이 많이 궁금하긴 할텐데 너무 조급해하진 말아라.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예상했겠지만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승규에게 관심을 가져줄 만큼 여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다산은 다산나름대로 당은 당대로... 나도 나대로..

면회 자주 못가더라도 이해주길 바랄뿐이다...^^;

 

항상 이야기하는 거지만 남들에게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마. 그렇다고 무시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항상 내가 뿌린 씨앗만큼 거두는 법이니까.
괜한 충고하는 것 같다.

 

전자서신 통해서 소식 종종 전해주마.
처음엔 이것도 니가 지문날인 안해서 안되더라..
그래서 내가 민원제기 했더니 서명으로 바꿔서 처리했다고 하더군... 쩝.

 

인권잡지(사람)은 아마 매달 넣을꺼구..
녹색평론도 정기구독 해서 넣을께..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이야기하고..

 

추석전에 얼굴 보려 가마..

 

사무실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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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을 보면서 처음엔 누군가에게라도 편지가 왔다는 사실에 기뻤지요.

 

그런데 내용을 보다 특히 '내가 뿌린 씨앗만큼 거두는 법이니까.'라는 문장을 보니까 2년여 동안 공들어 준비하며 인맥을 쌓더니 정작 수감하니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없다는 현실에 대한 냉소와 분노가 쌓여서 그 문구가 너무나도 동감하게 하더군요.

 

특히 수감 전 그나마 저에게 지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후 자기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려운 이에게 돌아보지 않은 것에 서운함이 들어서 '면회나 편지 숫자는 그 사람의 인간성에 비례한다'는 명제를 낳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면회 오는 이에게 불만을 담은 말을 하였지요.

 

그런데 같은 날에 낮선 이의 편지가 왔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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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인 : 813(수번) ○승규
* 거실(작업장) : 가6동 01층 10호()
* 수신기관 : 수원구치소
* 발신인 : ○○○
* 서신내용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승규씨
저는 민가협에서 일하는 ○○○입니다.
혹시 한 두 번 얼굴을 봤을 지도 모르겠네요.
생활하기에 어떠세요? 추석이 다가오는데 가족들이 많이 서운해 하시겠어요.

 

뜬금없이 연락을 하는 이유는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섭니다.
우리 소식지 '민주가족'받아보시죠?
그 소식지에 매달(8월호에는 못나갔지만) "나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꼭지가 있어요.
그 꼭지 원고를 청탁하려고요.

 

그동안은 소식지에 오태양을 비롯한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물론 여호와의 증인들 사례들도 여러차례 실었습니다. 민가협의 활동이 양심의 자유를 얘기하고는 있지만 아직 운동사회 내에서도 남성중심적 사고나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담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이들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소식지에 담으려고 합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쉬운 글로 원고를 써주시길 부탁드릴께요.

 

원고를 쓰신다는 전재로 설명하자면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중심이 되겠지만 감옥가기전에 활동한 내용과 영치금 관련 지문날인 등에 관한 의견도 함께 주시면 좋겠습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로 써주시면 됩니다. A4지로 치자면 두장정도 될 것입니다.

 

꼭 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원고는 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되고요.
마감이 넉넉하지는 않은데 다음주 목요일에 받을 수 있도록 되도록 빠른 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면서 갑작스럽게 연락하는게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그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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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뜬금없는' 편지이었지만 저로선 할말이 많았지요. 특히 인권위 진정을 하였음에도 지문날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저의 입장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검열을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역이용을 하는 의미로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방에서 샤프와 지우개를 빌리고 편지지와 봉투를 얻어 아주 발랄하게 원고를 작성하여 우편물로 받은 310원짜리 빠른우편용 우표를 붙여 보냈는데 좀 늦게 보냈는지 결국 이후에 실리게 되었다는 답장을 받았지요.

 

그 후 저는 본 단체에 대한 소외감과 다른 이러한 은혜(?)를 입었는지 이따금 민가협에 편지를 보냈고 그 분은 그 힘겨운 해독 끝에 답변을 해주었지요. 물론 출소 후 바로 목요집회에 참석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하였는데 없다고 하여서 이후 직접 사무실에 가서 인사를 나눴지요.

 

그런데 문제는 당연한 심리이지만 제가 쓴 글을 제 눈앞에 보지 못한다는 성격으로 그 자세한 내용은 밑의 링크로서 보시길 바랍니다.

 

"갇혀있어도 평화와 인권은 소중합니다"('민주가족' 2005년 10월호)
 
그 후 몇 일 후에 김칠준 변호사(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가 변호인접견으로 찾아 왔는데, 앞서 말한 인권잡지 '사람'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 어떻나고 물어 보더라고요. 특히 지문날인 문자와 심리공판 때 주민번호 육성발언 거부에 대하여 흥미롭게 보고 있다면서 그런 걸 중심으로 쓰리고 하더군요.

 

그런데 원고를 받는 방법을 우편이 아닌 변호사에게 직접 주도록 하라고 말하는데, 직원의 확인을 하면 공식적으로 줄 수 있지만 정 싫으면 원고를 숨겨서 몰래 주라고 유혹(?)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글을 이해관계가 있는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싫지만, 그러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싫어서 저는 A4용지에 비좁게 원고를 쓴 다음 편지인양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편지봉투에 원고를 넣고 공소장을 함께 넣어서 그 분이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리더니 변호인접견이 왔고 관복에 주머니가 상의 왼쪽에만 작게 있어 그 자리에 넣을 수가 없어서 저는 몰래 사타구니 반대쪽으로 바지와 팬티 사이에 봉투를 끼어 넣고 슬금슬금 걸어가 봉투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변호인접견실으로 갔습니다.

 

물론 양말을 신어 그 사리에 봉투를 넣는 것이 좋지만, 면회예약을 하지 않는 한 갑자기 연락이 오기에 그러한 준비를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저의 이러한 어수룩한 행동에 교도관의 시선이 보일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는데 무사히 피해갔고 김 변호사가 와서 자리를 잡자 바로 그 봉투를 바로 넘겨주었지요. 그 후 원래 10월호에 실리려고 하였는데 앞서 누군가 빨리 도착을 하게 되어서 11월호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 글은 밑의 링크에...

 

… 관행, 관행, 관행! ('사람' 2005년 11월호)

 

그 후 또 다른 직원이 만기일 통보를 하였고 그 날이 2007년 1월 24일이었는데 봉사원 말로는 많이 안 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말해 형량이 짧아진 것 같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번 내용과 다른 것이지만 예기를 더하자면, 불구속 원칙으로 구치소 내의 수용인원이 줄었고 싱크대 설치의 이유로 사동 전체를 비우게 되었어요.

 

그래서 직원이 재소자에게 빈 사동으로 데려가 이것저것 잔일을 시키려고 하는데, 물론 출력을 한 이들에게 시켜야 하지만 인원이 없는지 그 직원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환자가 아닌 방이 제가 있던 방이나 옆의 절도방에 있는 이들에게 일을 시키려고 하더라고요.

 

물론 미결수가 강제노역을 하는 건 안되지만 운동이나 면회가 아니면 움직일 일이 거의 없는 미결 생활이어서 그러한 잡일꺼리에 오히려 환영할 정도이지요.

그러다 옆의 절도방의 사람이 얼마 없어서 소측에서 다른 방으로 재배치를 한 후, 직원은 생생한 나이가 많은 기타방 사람들을 이용하게 되었고, 짙은 녹색 메트리스천 안쪽에 스폰지을 넣거나 방과 복도 사이의 창문을 제자리에 옳기는 일에 우리들은 동원을 받아서(?) 수행하였지요.

 

그리면서 빈 방 구경을 하면서 잠시 땀내며 노동의 기쁨을 느끼며 직원이 준비한 사이다를 마시며 일을 하였는데 누군가 무슨 대가가 있냐고 묻더니 사동담당 직원은 '(행형점수) 1점 더 줄께'라는 답이 나와 지금이라도 석방에 노심초사하는 재소자에게 염장(?)을 부렸다고 하나 뭐하나...

 

그래도 저의 이적행위로 그 직원에게 고생을 시켰는데, 이후 저의 행형점수표를 보았는데 그 직원이 일반적으로 2점을 주는 상황에서 3점을 주더라고요. 그 직원 나이도 많은데 근황이 궁금하네요.

 

그리면서 저와는 같은 선고일에 같은 형량을 받은 여호와의 증인은 구치소 안에 친형이 있다는 이유로 빨간 색 공범마크를 찍힌 채 이감을 할 우려를 안고서 기결수가 되어 전방갔고 저도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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