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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제1권 하 제26장 시초축적의 비밀 중에서~2

페르마님의 [자본론 제1권 하 제26장 시초축적의 비밀 중에서] 에 관련된 글.

 이 시초축적이 정치경제학에서 하는 역할은 원죄가 신학에서 하는 역할과 거의 동일하다. 아담이 사과를 따먹자 그와 동시에 죄가 인류에게 떨어졌다. 시초축적의 기원도 그것을 옛날의 비사로 이야기함으로써 설명되고 있다. 아득한 옛날에 한편에는 근면하고 영리하며 특히 절약하는 특출한 사람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게으르고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리는 불량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학상의 원죄에 관한 전설은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밥을 얻어먹지 않으면 안될 운명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만, 경제학상의 원죄의 역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인간들[ [예: 자본가계급] ]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우리에게 밝혀준다.] 그것은 어찌 되었든, 전자는 부를 축적했으며 후자는 결국 자기 자신의 가죽 이외에는 아무것도 팔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죄로부터 대다수의 빈곤[계속 노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팔 것이 없다]과 소수의 부[훨씬 오래 전에 노동을 그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다]가 유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낡아빠진 어린애같은 이야기가 소유 또는 재산을 옹호하기 위해 매일 우리들에게 설교되고 있다. 예컨대 티에르는 아직도 정치가다운 엄숙성을 가지고 [한때는 그렇게도 재치있던] 프랑스인들에게 그와 같은 유치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재산에 관한 문제가 무대에 등장하면, 그 유치원 이야기의 관점이 모든 연령층과 모든 발육단계의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관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로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실의 역사에서는 정복이라든가, 노예화라든가, 강탈이라든가, 살인이라든가, 한 마디로 말해 폭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의 부드러운 역사에서는 옛날부터 목가조가 지배했다. 정의와 '노동'은 옛날부터 유일한 치부수단이었다. 물론 '금년'은 항상 예외있지만. 그런데 시초축적의 방법들은 사실상 전혀 목가적인 것이 아니다.

- 자본론 제1권 하 제26장 시초축적의 비밀 p979~983


  화폐와 상품은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그러하듯이 결코 처음부터 자본은 아니다. 그것들은 자본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전환 자체는 일정한 사정 아래에서만 가능한데, 그 사정은 요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아주 다른 두 종류의 상품소유자들이 서로 대면하고 접촉해야 한다. 한편은 화폐·생산수단·생활수단의 소유자들인데, 그들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가치액을 타인의 노동력의 매입에 의해 증식시키기를 갈망한다. 다른 한편은 자유로운 노동자, 자기 자신의 노동력의 판매자, 따라서 노동의 판매자들이다. 자유로운 노동자(free workers)라 함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들 자신은 노예·농노 등과는 달리 생산수단의 일부가 아니라는 의미와, 자영농민 등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지도 않으며 따라서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유리되어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품시장의 이와 같은 양극분화와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조건들이 주어진다.


  •  자본관계[[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의 관계]]는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의 소유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을 전제한다.
  •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단 자기 발로 서게 되면, 그것은 이 분리를 유지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확대되는 규모에서 재생산한다.
  • 그러므로 자본관계를 창조하는 과정은 노동자를 자기의 노동조건의 소유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즉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과정]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일 수가 없다.
  •  따라서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인 분리과정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시초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것이 자본의 전사, 그리고 자본에 대응하는 생산양식의 전사를 이루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구조는 봉건사회의 경제구조에서 성장해 나옸다. 후자의 해체는 전자의 요소들을 해방시켰다.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는, 그가 토지에 결박되지 않고 또 타인의 노예나 농노이기를 멈춘 뒤에야 비로소 자기의 몸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었다. 따한 그가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로 되어 자기의 상품[[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기 위해서는, 길드[[동업조합]]의 지배에서, 도제에 관한 길드의 규약에서, 그리고 또 길드의 구속적인 노동규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역사적 과정은 한편으로는 농노적 예속과 길드의 속박으로부터 그들이 해방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우리의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이 측면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새로 해방된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생산수단을 박탈당하고 또 종래의 봉건제도가 제공하던 일체의 생존보장을 박탈당한 뒤에야, 비로소 그들 자신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수탈의 역사는 피와 불의 문자로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산업자본자라는 이 새로운 패권자 측은 길드의 수공업적 장인[[마스터]]들뿐 아니라 [부의 원천을 장악하고 있는] 봉건영주들도 축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측면에서 보면 산업자본가의 등장은 봉건세력과 그들의 증오스러운 특권에 반대하는 투쟁, 그리고 또 길드와 [이 길드가 생산의 자유로운 발전 및 인간에 의한 자유로운 착취를 제한해온] 그 속박을 반대하는 투쟁의 승리의 성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산업의 기사들은 [그들 자신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사건들을 이용함으로써만 칼의 기사들을 축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옛날 로마의 해방민이 한때 자기의 보호자였던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한 것과 동일한] 비열한 방법으로 제패한 것이다.

 임금노동자와 함께 자본가를 탄생시킨 발전의 출발점은 노동자의 예속상태였다. 그 출발점으로부터의 전진은 그의 예속형태의 변화, 즉 봉건적 착취를 자본주의적 착취로 전환시키는 데 있었다. 이 전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그다지 멀리까지 소급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초의 단서는 이미 14세기나 15세기에 지중해 연안의 일부 도시들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는 16세기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자본주의 시대가 출현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이미 오래 전에 농노제가 철폐되어 있었고, 또 중세의 절정을 이루는 독집적인 자유도시도 이미 오래 전에 시들어 버렸다.

 시초축적의 역사에서는, 자본가계급의 헝성에 지렛대로 역할한 모든 변혁들은 획기적인 것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농업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하는 것은 전체 과정의 토대를 이룬다. 이 수탈의 역사는 나라가 다름에 따라 그 광경이 다르며, 그리고 이 역사가 통과하는 각종 국면들의 순서와 시대로 나라마다 다르다. 그것이 전형적인 형태를 취호 있는 것은 영국에서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를 예로 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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