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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을 읽고 - 노정협

 부르주아가 강조하는 마지막 휴식공간으로서의 신뢰와 애정이 넘치는 가정은 종종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이나 결혼을 한 실업자들이 돌아갈 곳은 가족밖에 없다. 가족은 사회를 대신해서 실업자들을 부양한다. 이러한 가정의 역할은 실업에 대한 사회적 불만에 대한 완충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사회적 분노는 사회에서 도태된 실업자를 부양하는 가족 내부의 모순으로 전가된다. 가족들은 생계의 고통을 전담당하면서 서로 싸우고 내부적 갈등을 겪게 된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을 읽고

 -현장 활동가

 나는 운동을 하기 전에 ‘국가와 가족’! 이 두 가지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었다. 노동자투쟁에 대한 국가권력의 탄압을 보면서 공권력의 환상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는 복잡한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막는 조정자라는 믿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던 것이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읽고 나서 자본주의 국가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국가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품고 있었던 가족에 대한 환상은 국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기보다 정서적으로 더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 깊은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산상속을 둘러싼 갈등이나 돈 문제를 둘러싼 형제자매간의 갈등이 전혀 없었다. 문제는 돈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돈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겪는 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지는 반항심도 없었다.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거의 없었고 술은 거의 못 드셨으며, 내가 어려서부터 건강도 좋지 않으셨기 때문에 집안 위에 군림하지도 못했다. 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경제생활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어머니가 가족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거의 한 번도 큰 소리를 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좀더 생각이 깊었더라면 경제생활과 가족생활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이중의 굴레에 대해 분노를 느꼈을 텐데 이것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다른 어머니들의 삶도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단지 어머니가 남편 잘 못 만나서 복도 지지리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탁아소는 국가가 가족의 사랑을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런 반공교육이 당시 어린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을 강제로 빼앗아가는 공산주의에 대해서 막연한 적개심을 품기도 했다.
 
 운동에 막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어설픈 열정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당시 운동을 조금 배웠다는 주변의 선배들은 하나 같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에서는 가족제도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결혼제도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운동가들은 자본주의의 모든 찌꺼기들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결혼제도와도 싸워야 한다. 따라서 운동가들은 결혼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운동권은 아니지만 진보적 경향의 일반 여성의 경우에도 엥겔스의 책을 언급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에 직접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이해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직업적으로 운동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이것이 역으로 운동적 결의가 약해서 그렇구나 하는 어쩔 수 없는 체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엥겔스와 맑스는 같은 입장인데 맑스는 자신의 원칙과 다르게 왜 결혼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기도 했다.
 
 원전에 대한 어설픈 이해에서 출발한 결혼을 거부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결혼을 하지 않고 영원한 직업적 운동가로 살겠다는 묘한 운동적 결의로 연결되기도 했다. 그들은 운동가가 결혼을 하면 그것은 가족제도에 투항하는 것이고 결국 자식을 낳으면 프롤레타리아를 재생산하기 때문에 굳이 결혼할 필요도 없다고 조차 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대량생산(?)해서 노동자계급 대오를 굳건히 하겠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실제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오히려 현장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운동도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데 노동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활동가들을 생활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좀 더 들어서는 경제적 문제로 갈등을 겪거나 이혼을 하는 활동가들을 많이 접했다. 이들은 한결 같이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절대 결혼을 하지 말라는 선배로서의 충고를 했다. 
 
 가족제도, 결혼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고민과 다르게 실제로 엥겔스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엥겔스는 이 책에서 공산주의 사회가 와도 가족제도나 결혼제도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엥겔스는 단지 자본주의적 방식의 가족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적 가족제도는 일부일처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르주아적 위선이고 특히 부르주아 남성들은 성매매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람피우는 것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여러 명의 처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가정이 아니라 상품관계처럼 경제적 이해관계나 타산 등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공산주의에서의 가족과 결혼은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것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어려서 들었던 엥겔스의 책에 대한 오해와 다르게 엥겔스는 참으로 혁명적 현실주의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쓸 당시에 부르주아들은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유제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악선동을 퍼부었다. 우리는 엥겔스의 가족제도에 대한 입장을 부르주아의 방식대로 이해했던 것이다.   
 

 부르주아 가족제도의 위선
 
 부르주아는 현재의 가족제도를 가장 이상적인 가족제도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인류의 인간성에 가장 적합한 보편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부르주아 체제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가족이 사랑과 신뢰가 넘치는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부르주아는 가족을 지친 자들을 맞아주는 최후의 휴식처이자 사회 안전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주장과 다르게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가족형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지배계급 남성들이 누리던 처첩제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대가족 제도는 거의 허물어지고 핵가족으로 변모했다. 입양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가정 내에서 가사노동을 하던 성별분업도 많이 사라지면서 여성의 경제활동도 많이 늘어났다. 남성들도 맞벌이 부부는 능력 없는 남성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빠지기보다는 남성의 부족한 임금을 채우기 위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능력있는 여성들 중에는 일과 결혼 중에 일을 선택해서 평생을 화려한 싱글로 살아가겠다는 독신주의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평생을 남편의 학대와 폭력 속에 살아오던 할머니가 죽기 전에 소원인 이혼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많이 배우고 능력 있는 여성 중에는 결혼은 하지 않고 남성의 훌륭한 유전자를 받아서 애는 낳되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자본주의 내에서 가족제도의 모순이 강화되고 있고 가족제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저항은 개별적이고 고립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능력 있는 주류 여성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를 낳지 못하고 있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어느 한 쪽의 동의가 없으면 이혼하기 힘들지만 법적으로는 이혼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여성들은 남편의 폭력과 냉대, 애정 없는 결혼을 마지못해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노동계급의 여성들 중에는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서 결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여성과 남성에게 결혼은 애정이 아니라 경제적 능력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애정 없는 결혼이 판을 치고 있다. 부르주아 상층에서는 부르주아들 간의 결합을 강화하기 위한 정략결혼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형 결혼업체들은 학벌,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해서 여성과 남성들을 서로 맺어주고 있다. 능력 있는 남성과 능력 있는 집안 여성의 결합에서는 종종 지참금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설사 이러한 자본주의적 결혼풍토를 벗어나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결혼을 하더라도 자본주의에서 애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기는 어렵다. 특히 경제적 문제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이 이들의 애정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부르주아가 강조하는 마지막 휴식공간으로서의 신뢰와 애정이 넘치는 가정은 종종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이나 결혼을 한 실업자들이 돌아갈 곳은 가족밖에 없다. 가족은 사회를 대신해서 실업자들을 부양한다. 이러한 가정의 역할은 실업에 대한 사회적 불만에 대한 완충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사회적 분노는 사회에서 도태된 실업자를 부양하는 가족 내부의 모순으로 전가된다. 가족들은 생계의 고통을 전담당하면서 서로 싸우고 내부적 갈등을 겪게 된다.
 
 부르주아 사회 내부의 가족은 사실상 대부분 경제적 문제로 인해서 갈등이 생겨나고 갈등의 와중에 주로 남성에 의한 여성, 부모의 아이에 대한 폭력이 조장된다. 이러한 갈등은 종종 시부모와 며느리의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경제적 문제로부터 출발해서 다양하게 번지는 가족 내 갈등은 가족의 해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남편이자 아버지는 자본주의 가족 내에서 군림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다고 남성들이 무조건적으로 자본주의 가족제도의 시혜자로 군림하지는 않는다. 남성들은 가족 전체를 부양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직장 내에서는 이러한 책임감 때문에 항상 자본의 부당한 대우와 착취, 인격적 모독을 참고 견디게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실제 여성의 권리신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전히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대다수 여성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고용형태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의 저임금과 불완전 고용형태는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가족제도에 형식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저항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가족 제도를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지급하지 않고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의 조장을 통해 현실에서 여성의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여성을 저임금, 반실업 상태의 고용으로 초과착취를 하는 자본은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오면 여성들을 주부라는 이름으로 가정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주부 노동은 노동력을 재생산하지만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주부노동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시키지 않아 실업을 은폐하기도 한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육아와 교육이 모두 가족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동성가족에 대해서는 온갖 사회적 편견과 냉대를 가한다. 결국 현재의 가족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가족제도의 모순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와 가족’
 
 얼마전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가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 영화 속에서는 통상적으로 자본주의 가족 형태와는 다른 모습의 가족이 그려졌다. 이 영화는 나이 많은 남편과 그 보다 어린 여성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전형을 깼다.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소수적인 결혼과 동거라는 조건 속에서도 충분히 애정과 신뢰가 싹틀 수 있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에서의 가족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콜론타이는 ‘공산주의와 가족’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의 무지일 뿐이다. … 역사의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는 여러 번 변했다. 한 때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과 상당히 달랐다. … 새로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모든 것, 지배와 예속의 저주받은 시대, 지주와 자본가들의 시대로부터 유래한 모든 것들은 착취하는 계급 그 자체와 프롤레타리아와 빈민의 다른 적들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콜론타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우리의 보건복지부장관 격인 공공복지인민위원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곧바로 러시아에서는 이혼의 자유를 위한 법령을 제정했다. 남편의 폭력에 평생 시달리던 여성들은 이 이혼의 자유를 환영했지만 남편을 ‘생계수단’으로 여기는 여성들은 이러한 자유를 두려워했다. 결국 진정으로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여성들이 전담하는 가사노동이 사회화되는 것이다.
 
 1918년 혁명 이후의 내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콜론타이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노동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의 족쇄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이 사회화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고, 교육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에서는 너무나 당연히 여성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의 자의식 속에서 어머니는 희생과 헌신의 모습으로 형성됐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이런 가족의 모습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콜론타이는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자본주의의 지배와 예속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가족제도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더불어 저주받고 사라져야할 적으로 간주했다. 콜론타이는 자본주의적 가족제도가 사라진 자리에 공산주의적 가족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공산주의에서는 아이의 양육도 국가의 몫이다. 아이들을 위한 탁아소와 유치원,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요양원, 식당, 학교의 무료급식과 무료로 제공된 교과서,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옷과 신발의 지급 이런 모든 것들이 사회주의 국가의 의무가 된다.
 
 우리는 러시아 노동자들이 내전이라는 극단적 공포와 절망,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지지하고 혁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끔찍한 내전시기에도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혁명적 열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인민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서의 개혁은 자본의 탐욕에 의해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사회주의에서는 고통 받고, 억압받는 자들의 의지대로 사회 전체를 개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콜론타이는 이렇게 외친다.

 “남녀 사이의 예전 관계 대신에 새로운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 애정과 동지애의 결합. 더 이상 여성에게 가사의 굴레는 없다. 더 이상 가족 안에서의 불평등은 없다. 더 이상 여성이 아무런 지원 없이 남아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녀의 일에 의존한다. …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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