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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생각해보니 지지리도 책을 안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 놈은 그 반성입니다.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0/23
    [서평] 벙어리새
  2. 2005/06/06
    [서평]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1)

[서평] 벙어리새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고 있지만 가끔은 생각이 난다.

 

피흘리며 대열의 뒤로 빠지는 나를 보며 깜짝 놀라던 여학생의 표정도, 처음보는 남자애를 몇일씩 재워주었던 어느 노동조합에서 일한다던 누님도, 시멘트 바닥에서 신문지 한장 덮고 자던 날 더럽게도 추웠던 기억도, 흩어지기전 마지막으로 모인 강의실에서 불렀던 투쟁가 가락도.

 

언덕에서 미끄러져 생긴 흉터는 이제 찾아볼수도 없지만, 머릿속의 기억은 지워지지가 않고 가끔씩 생각난다.

 

현대사의 거친 물살의 가장자리에 잠깐 발을 담궜던 나도 이런데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온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오일팔 민주화운동이, 사삼항쟁이, 여순이 그리고 일제가 엊그제처럼 생생하다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지은이인 류춘도님에게 한국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고문끝에 폐인이된 친구의 얼굴을, 죽기 직전의 자신을 구해준 미군 상사의 얼굴을 그리고 수많은 다른 얼굴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은 당사국 민중들에게는 너무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민중들의 삶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우리뿐 아니라 미군이나 인민해방군의 고통과 희생도 말로 다 할 수 없다. 내가 있는 이 땅 아래엔 너무도 큰 한이 묻혀있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 같은 굶주림과 가난 극단적인 야만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그 때의 그 한이 아직도, 혹은 새로운 한이 커나가는 것 같다. 자살공격을 하는 이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통이, 휴전선의 존재가, 구조조정과 실업이 다음세대에서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가 되었으면 한다.

 

만천원/류춘도/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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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인류 역사 최대의 실험

 

 과거에는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계화, 화학화, 대형화가 필수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쿠바는 소규모 가족농 중심의 유기농업이 생산성도 더 높고 당연하지만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지도 않으며 건강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과거 쿠바는 소위 근대화된 방식 (즉 대규모 농장에서 기계와 화학비료, 농약을 사용하는)으로 재배한 사탕수수와 감귤류를 수출하고 식량, 석유, 농기계, 화학비료를 수입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등 동구권의 몰락과 더욱 강화된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수입원과 수출선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농산물의 생산과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생산한 농산물을 (인구의 80%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로 운반할 수도 없었다. 상점의 선반은 텅 비어버렸다. 암시장에서 팔리는 달걀 30개의 가격이 한달치 월급과 맞먹었다. 많은 국민들이 굶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해외로 도망치기도 했다.

 

 경제위기를 맞은 쿠바의 선택은 미국이 기대하던 '피델과의 이별'이 아니었다. 가족농 중심의 토지개혁, 흙을 살리는 유기농법, 직거래 중심의 유통개혁, 육식에서 채식으로의 전환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과 달리 굶어 죽은 사람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식량자급률은 95퍼센트(2002년)를 달성했다.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던 빵과 고기 중심의 식생활은 감자, 고구마와 채소 중심으로 바뀌었다. 농산물은 먼저 가정과 커뮤니티 내에서 소비된다. 수입할 수 없는 의약품을 대신해 허브가 재배되고 있다. 의사들은 근대의학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요법과 대안의료를 재평가해 받아들이고 있다. 아바나에서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거리를 누비고, 바이오매스와 태양전지같은 자연친화적에너지가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아바나시는 도시 중심부에 7백 헥타르에 이르는 거대한 녹지 구역을 만들고 있다. 쿠바를 위해 시작됐던 실험은 세계를 위한 실험이 되고 있다.

 

 책을 덮고 드는 생각은 과연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200만의 아바나도 거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인구 1000만이 넘는 초거대 도시 서울에서 도시농업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전환은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하게 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무궤짝을 놓고 야채를 재배할 수는 없을까? 빌라 옥상에 폐타이어를 놓고 흙을 담은 뒤에 자식놈과 함께 콩을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상상력의 봉쇄를 풀고 보면 의외로 답은 가까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만원/요시다 타로/들녘/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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