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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의 글에 대해

어제밤 돕헤드가 쓴 '성폭력 가해를 반성합니다'란 글을 보고 지금까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복잡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단순하지 않은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시원스럽게

말할 수 없는 일들은 대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

 

몇일 전 돕이 쓴 문제의 글을 읽었을 땐, 다소 '위험스럽다' 느꼈지만 별 생각없이 넘겼고

어젯밤 반성글문을 봤을 땐 '아, 이 사람이 오해받고 있구나' 란 마음에 안타까웠다.

 

그건 내가 억압적인 언사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민감하지 못한 사람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단 돕헤드를 아는 사람으로서(최근엔 얘기조차 나눠보지 못했지만), 돕헤드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젠더적으로는 거의 여성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 돕을 비판했던 사람들에게 돕을 아는 사람들이 달았던 '이해해 달라'류의 답글도 아마 나와

비슷한 맥락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돕의 글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제기한 다른 이들의 글 또한 보면서 돕의 글은 그가 어떤 사

람이건간에 많은 문제가 있었으며 더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한 행위'자체는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인식자(발화자)의 위치성에 관한 문제다.
 
얼마전 들었던 강좌 시간에 정희진이 들려준 자신의 남성 친구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한창 성매매가 성폭력이냐 성노동이냐에 관한 논쟁이 있었을 때 그 남성은 자신이 비록 그 두 가지 중

어떤 것에 무게 중심을 갖고 생각하던지 간에 자신이 남성인 이상 성매매는 '성폭력', 그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여성주의자인 내가 많은 남성들 앞에서 남녀의 성기를 자지와 보지라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과

그 반대의 경우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또, 여성주의로 뼛속까지 무장한 남성이 많은 여성들에게 여성주의를 가르치는 상황은?

...

 

결국 인식하는 자(말하는 자)가 그 자신이 어떤 위치와 맥락에 놓여 있는 지 분명히 자각할 때,

알고 있어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야 할 많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윤리다.

그렇기 때문에 돕의 '....평화기행'에 관한 글은 인식자(발화자) 자신의 위치성에 대한 생각없음에서

나온 몰지각한, 비윤리적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아, 이렇게 까지 써 놓아도 뭔가 후련하진 않다.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느끼는 건,
진보넷 블로그에서 일어난 지금과 같은 일이
결국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폭력적 언설을 뱉어버린 돕도,  정당한 문제를

용기있게 제기했지만 더 괴로움에 빠져버린 듯한 블로거들도, 돕을 이해했다가 자괴감에

괴로워하는 또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상처받으면서 더 민감해지고,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것이니까.

 

하여튼 괜찮다. 너무 괴로워하지 말기를.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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