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인터넷 행정심의는 폐지되어야 한다

<성 명>

 

인터넷 행정심의는 폐지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십년도 더 전으로 후퇴했다. 2002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선언했던 그 헌재가, 2012년 오늘 질서 위주의 사고로 화려하게 전향했다. 10년 전에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 불명확하고 애매하여 위헌이라고 보았던 그 헌재가 오늘은 ‘건전한 통신윤리’ 규정이 불명확하지도 과잉하지도 않다고 했다.

 

2008년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 게시물에 대하여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 또는 방조하는 내용의 정보’라며 삭제하였다. 또 2009년에는 국내산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한 게시물이 한국양회공업협회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삭제하였다. 헌재의 답은 이들 처분이 위헌이라는 소송에 대한 대답이었다. 2MB18nomA라는 트위터 계정이 대통령을 모독하였다며 통째로 차단되는 형국이니 예상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헌재의 판단은 허탈함을 넘어 부끄러울 지경이다.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나, 전기통신회선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서 또는 도덕률을 의미"한다더니, 심지어 이런 “함축적”인 표현이 불가피하다고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불분명한 개념이 헌재의 눈에는 ‘다소’ 추상적일 뿐인 함축적 표현 정도로 비치는 걸 보면 헌재는 이제 명확성의 원칙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게시자를 멈칫하게만 해도 위축효과가 있다고 보아야 할 헌재가 정보가 삭제되더라도 다시 올릴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교사 또는 방조’라는 개념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모든 범죄로 해석하면 되고, 인터넷이 범죄를 조장하거나 범행을 실행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서는 어느 정도 유연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선언하는 데에 이르면, 이제 죄형법정주의마저 실종된다. 그리고 그로써 헌재 스스로에 대해서는 실종이 아닌 파산선고를 내린 셈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소수의견이다. ‘건전한 통신윤리’란 개념은 행정권의 자의적 행사를 가능하게 하고, 그 개념이 지나치게 불명확하고 애매하여 규제대상을 설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판단되었던 ‘불온통신’이 ‘불건전정보’라는 모습으로 되살아 난 것이라 했다. 다양한 사회세력에 대한 비판적 표현이 배제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의 본질적 기능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무엇보다 소수 의견은 행정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는 방통심의위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의 내용을 선별하여 일정한 정보의 시정요구나 취급거부 등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전검열제와 유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행정기관에게, 광범위한 규제대상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권한을 부여한다면, 표현의 자유 제한에 있어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차별적・편향적인 법집행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민주주의적 기능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법적 보장의 원칙을 충분히 배려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나마 다수의견에서 위안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방통심의위는 행정기관이고 그 조치는 행정처분’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자신들의 시정요구가 ‘권고’일뿐이라는 방통심의위의 해괴한 주장은 근거를 잃어 버렸다. 방통심의위의 조치가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인 이상 마땅히 엄격한 적법절차의 준수가 요구될 것이고, 적어도 과거와 같은 ‘묻지마’식 처분들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인터넷 행정심의를 폐지하고 민간자율심의에 이양할 것을 정부에 권고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이번 결정은 엄청난 퇴행이다. 이런 방대한, 그리고 무소불위의 인터넷 행정심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헌재는 무엇을 우려했던 것일까. 헌재는 지난 2010년 ‘허위의 통신’ 위헌 결정과 2011년 12월의 ‘인터넷 사전선거운동 금지’(공직선거법 제93조)에 대한 한정위헌결정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에 대하여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특히 인터넷이 “매체 자체에서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과 토론, 교정이 이루어질 수 있고, 국가의 개입이 없이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국가가 나서서 인터넷 매체의 건전성을 심의하겠다는 행정심의 제도에 강력한 일격을 가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만에 인터넷은 “신속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개인적 피해와 사회적 혼란이 사후적으로 회복하기에 불가능”한 철부지 매체가 되어 버린 반면, 시민의 표현물에 대하여 ‘신속한 조치’를 하는 행정기관은 당당히 면죄부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건전한 통신윤리” 규정이 “불온통신”과 달리 합헌이라는 판단을 어떤 이유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 범죄 목적, 범죄 교사, 범죄 방조 등의 규정으로 인터넷을 규율하기 시작하면 경찰이 불법이라고 보거나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모든 정보는 삭제 대상이 될 것이다. 실제로 방통심의위는 지난 2009년 통신심의규정 개정을 통해 집시법 위반 정보를 삭제하려는 시도까지 하지 않았던가!

 

돈없고 힘없는 일반시민에게 어쩌면 유일한 표현매체인 인터넷의 운명이 바야흐로 경각에 달려 있다. 헌재까지 나서서 인터넷을 질식시키고 있다. 하지만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하여 방통심의위의 자의적인 인터넷 심의와 표현의 자유 침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인터넷 행정심의는 폐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깊은 가슴 속에 인권의 칼을 벼리며 4월 총선을 기다릴 것이다.

 

2012. 3. 14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다함께, 문화연대, 미디어기독연대, 민주노동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인권영화제,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인권영화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작가회의, 한국진보연대, 강명득(변호사), 박기호(인권활동가), 전진한, 홍성수(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인권단체연석회(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노동자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HIV/AIDS인권연대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인권연대,인권교육센터‘들’,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청주노동인권센터,한국교회인권센터,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DPI,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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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00:14 2012/03/16 00:14
Posted by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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