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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치사상을 읽다가 메모.

밑에 모든 문장은 인용(** 은 제외)

-
(...) = 중략

- 생태주의와 환경주의 -

생태주의에 대해 우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이해되어야 할 점은 생태주의가 환경주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 생태주의에서의 환경 보호는 그것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 환경주의는 환경문제에 대해 관리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여 현재의 생산 및 소비의 가치 또는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도 환경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이런 맥락에서 고래를 구조하고 모피무역을 중지시키려는 운동은 엄밀한 의미에서 녹색론적이 아니며, (...) 양질에 삶에 대한 녹색운동의 이념은 공장굴뚝에 이산화탄소 세정기를 설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포함한다.


- 성장의 한계 -

생태주의는 무한한 인구증가와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사회 정치행태가 심대하게 변화할 필요가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지구의 유한성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 첫번째는 선진산업국가에서 개인들에 의한 물질적 재화의 소비는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오날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는 인간의 욕구가 극대로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기술에 대한 입장 -

기술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전략의 일부분일 수 있지만, 한정된 체계 내에서의 생산 및 소비에 대한 절대적인 한계에 물질적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현재의 소비수준을 무제한의 재순환과 연결하려는 공상은, 생태학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테크노크라트적 세계관의 특징이다. 재순환 그 자체도 자원을 사용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며, 열공해를 발생시킨다. (...) 쓰레기의 재순환은 녹색론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녹색론이 되는 것과 동일하지는 않은 것이다. (...) 녹색론자들은 일반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전적으로 기술적인 해결책을 의심하며 상대적으로 재순환을 조심스럽게 승인하는...


-  인구줄이기 -

소비를 감축시키자는 문제와 관련하여, 녹색정치학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인구수준을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녹색론자들은, 장기적인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일차적으로 더 적은 사람들이 더 적게 소비할 것이라는 이유로 인구감소를 내포한다고 믿어왔다. (** 음, 나는 이렇게 말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뎁.)


- 자연에서 얻는 교훈 -

자연세계가 인간세계를 위한 일종의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정치 사회제도에 대한 생태주의의 많은 처방들이 자연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상세한 관찰로부터 추론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정치생태주의자들이 수용해 온 자연에 대한 자연에 대한 다정한 느낌을 수반한다. 자연계 내에서는 상호의존이 경쟁보다 우위이며, 평등은 위게보다 우선한다.(** 고 정치생태주의자들은 믿는다고 말하는 부분) 자연계의 주요한 특질과 그 특질로부터 이글어 낼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결론 또는 처방은 다음과 같다 : 생물 종 다양성 - 관용, 안정 그리고 민주주의,    상호의존 - 평등,    유구함 - 전통      여성으로서의 자연 - 페미니즘에 대한 특별한 개념

첫째, 어떤 생태계 내의 안정성은 그 체계 내의 다양성이 갖는 한 기능이라는 생태적 원칙이다. (...) 더 다양할 수록 그 체계는 안정적이다. (...) 다양성은 또한 우리 자신들을 유지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완곡한 어구임에 틀림없다. 소수자의 선택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동질성, 과도한 집중, 권력 남용, 무관심한 사회로 흐르는 현재의 추세에 반대하고 (...) 녹색운동과 관련된 일종의 분권화된 정치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관계는 생태적 관점에서 보자면 공생관계이고 이러한 관계가 평등의식을 고양시킨다. (...) 더욱이 직접 관찰이 가능한 평등원칙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된다는 면에서 더 강한 의미를 갖는다. 평등의식을 유발하기 위하여 추상화에 호소할 필요는 없다. (...) 그렇지만 상호의존적 관계가 필연적으로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대할 수 있다.

생태주의자는 우리는 자연계를 거스르고 살기보다 공생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면 우리가 살게 되는 일종의 공동체의 맥락에서 중대한 반향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연계의 유구함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좌익과 우익

생태적인 비폭력적인 비착취적인 사회를 실현시키려는 데 있어 독일의 녹색주의자는 좌익에서 우익까지라는 단선적인 범위를 초월해야 한다. (...) 이런 주장의 근거는 녹색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유사점이 그 차이점보다 더 크다는 데 있다. : 양자는 산업성장에, 생산수단의 확장에, 인간의 필요에 부합하는 최고의 수단으로서 유물론적 윤리에, 그리고 방해받지 않는 기술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 양자는 점증하는 중앙집권화와 대규모의 대규모의 관료제적 통제 및 조정에 의존한다. (...) 이런 생활양식에 일반적으로 붙여진 명칭은 산업주의인데, (...) 생산과 소비과정의 영속적인 확대를 통해서만이 인간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한 집착이라고 묘사한다.

인간을 자연질서 속의 적당한 장소에 삽입하고 자연질서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녹색주의의 열망은 확실히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익이다. (...) 조 웨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분명히 관경, 사회문제들에 관한 녹색주의의 분석은 우익 이데올로기와 철학의 넓은 틀 안에 있다. 성취에 대한 자연적인 한계를 인간이 믿는다는 것, 계급론의 거부,  그리고 자연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점은 모두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 부문들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 자본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를 초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좌익의 신념은 반대편의 주장을 의심한다. 좌익이 도출한 대체적인 결론은 생태주의는 사회변화 -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 - 라는 실제 논점에서 관심을 벗어나게 해 자본주의 체제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태주의는 산업주의라는 초이데올로기를 잠식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명해왔다. 녹색주의자들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에는 선택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동유럽에서 저질러진 높은 수준의 환경악화를 지적하는 것은 용이한 것이었다. 만약 생산과정 그 자체가 성장의 한계라는 사상에 의해 그 발전이 방해 받을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면,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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