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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

<한미FTA반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위한 대장정>

 

: 생명의 권리를 묻기 위한 대장정 - 걸으면서 질문하기
- 위기에 빠진 생명, 그 권리를 묻는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추장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자들은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천리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특히 한미FTA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생명의 권리, 삶의 권리를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걸으면서 묻고, 물으면서 걸어가기. 거짓 비전과 약속으로 희생된 저 새만금의 갯벌,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기반을 내놓게 된 농민들, 비정규노동자들, 예술가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자신의 대지를 잃은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 그리고 단지 시민이 되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야 하는 장애인들, 노동만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 이 모든 대중들, 이 모든 소수자들이 싸우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배우고자 합니다. 배우기 위해 걷고, 싸우기 위해 걷겠습니다. 이 모든 소수자들, 이 모든 대중들의 형상이 바로 우리 자신의 형상임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또한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천리 길을 힘차게 걷겠습니다.

 

 

1. 우리는 한미FTA에 반대하기 위해 걷습니다
 
우리는 ‘한미FTA’에 반대합니다. ‘한미FTA’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두 나라 경제를 통합시키는 협정이며, 나아가 우리 삶의 미국적 재편을 요구하는 협정입니다. 우리는 ‘한미FTA’가 경제적 재앙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 전체에 재앙을 몰고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래할’ 한미FTA가 우리 안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오지 않은 FTA의 재앙을 이미 체험하고 있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바다로 통하는 새만금의 마지막 숨구멍에 콘크리트가 부어지던 날, 평택의 대추리 들판이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던 날, 생명을 건 농성에도 대꾸 없는 시청 앞에서 중증 장애인들이 삭발하던 날,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곁의 많은 이들이 쓰러져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정부가 말하는 ‘이익’이라는 것에 대해 이제 분명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지역개발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갯벌의 생명들을 죽였습니다. 자유무역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농민들에게 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기업경쟁력을 위해, 좋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노동을 유연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했습니다. 복지 예산이 없기에 불가피하다며 장애인을 짐짝처럼 시설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산업상의 필요 때문에 불가피하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험한 일을 맡기고도 그들의 법적·경제적 권리는 부인했습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정부에게 이제는 묻고자 합니다. 이미 주검이 된 갯벌의 생명들, 삶의 터전을 잃은 어부와 농부들, 전체 노동자의 반을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 단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싸워야만 하는 장애인들, 산업적 필요성만 인정받을 뿐 정치적 사회적 필요성은 거부당한 이주노동자들. ‘불가피하다’며  배제해버린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전체’는 누구이며, 그 이익은 누구의 ‘이익’인지 답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미’ FTA  상황 속에 존재하는 소수자들의 이름으로, 그리고 ‘도래할’ FTA 상황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자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노무현 정부에 따져 묻기 위해 걷습니다.


2. 우리 모두가 함께 싸우기 위해 걷습니다
 
처음에는 물과 흙과 바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의 조개와 천성산의 도롱뇽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늙은 농부와 어부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과 비정규직, 여성, 청년들만이 소수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만물이 소수자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투쟁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걷습니다. 각자 처해 있는 삶의 구체적 상황이 다르고, 각자 지키고 싶은 삶의 내용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 파괴된 이유를 다른 이의 삶이 파괴된 자리에서도 발견합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싸우지만, 내 친구가 싸우는 자리 또한 내 자리임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로 걸어갑니다.  홈 패인 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삶이 불안정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농민이며, 생명을 위협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이들과 만나기 위해,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걷겠습니다.


3. 지식인들이 대중적 신체성을 갖도록 촉구하기 위해 걷습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지표와 통계 수치들로 대중의 구체적 삶을 표현하는 지식에 반대합니다. 새만금 갯벌의 가치를 거기에 세워질 공장의 가치로 표현하고, 쌀시장 개방으로 유랑하게 될 농민들의 수를 도시에 새로 생길 서비스직의 수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GDP 몇 % 성장으로 대중들의 삶 전체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합니다.

우리는 대중을 훈계하는 지식인, 대중에 대해 연민을 갖는 지식인 모두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지식인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식인 스스로가 대중일 때뿐임을 압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대중이며 소수자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또 우리 스스로 대중이자 소수자가 되기 위해 걷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우리 스스로가 함께 먹을 밥을 짓듯이, 우리 정신의 대중적 신체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이 무기가 될 수 있도록, 그만큼 단단해지기 위해 길을 걷겠습니다. 


4. 우리는 생명의 권리, 삶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걷습니다
 
‘한미FTA’ 반대 투쟁을 전개하면서, 우리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 우리 자신의 삶, 대중의 삶, 나아가 생명 전체가 큰 문제에 직면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보건과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 농민층의 대대적 붕괴, 노동 조건의 불안정성, 문화적 자생력의 상실, 유전자조작식품이나 환경파괴로 인한 생명의 위협... 한미 FTA는 우리들의 삶 하나하나를 구체적인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생존과 생활, 생명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투쟁은 우리 자신의 생명력을 확보하고 수호하기 위한 것, ‘생명권’과 ‘삶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만금 갯벌의 생명체들과 함께 생존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고,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계속 살려는 평택 주민들과 함께 삶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삶의 기반을 위협받는 농민들, 예술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강제 추방의 공포 속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사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태적 다양성을 지키는 투쟁을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투쟁으로, 나아가 삶의 다양성을 지키는 투쟁으로 이해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생명에 웃음을, 우리 삶에 대안을 찾기 위해 걷겠습니다.


5. 늦지 않기 위해, 부끄럽지 않기 위해 걷습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금, 우리의 행진은 너무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대추리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군대의 투입이 자행된 지금, 우리의 행진은 한 발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한미FTA 협정문 초안이 이미 작성되었다고 하는 지금, 우리의 행진은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걷겠습니다.

새만금 1억2천 만평. 그것은 세계 간척사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 자신의 무지와 수치의 넓이입니다. 평택에 만들어질 미군기지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것은 우리 자부심이 아닌 부끄러움의 규모가 될 것입니다. 한미FTA의 유래 없는 전면성과 강도는 이후 미국의 모든 FTA 협상에 시금석이 될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전세계적 재난의 물꼬를 터준 우리가 두고두고 지고 가야할 바윗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부끄러움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바로 지금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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