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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일지10]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매향리에서 안산까지.

 

 

갈 길이 복잡했다. 70킬로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걷고, 다시 차를 한시간 가량 탄 이후, 방조제를 한참을 걸었다.
방조제의 길이는 11.5킬로 정도?

옆에선 길을 닦느라 흙에 물을 뿌리고, 다듬고, 콘크리트를 붇고 야단이었다.
온 국토가 그렇게 개발의 논리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늘은 곰샘, 전미경샘과 딸 지형이가 참여해 주었다!!!
곰샘은 "내가 올 때마다 힘들어"라고 하셨다. 
분명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그렇게 안산으로 오니,
온통 공장으로 가득했다.

시골길에선 축지법을 구사한다느니 등등 신화의 주인공으로 회자되던 영진상,
공장으로 가득찬 서울 도심에서 조금 힘겨운 듯도 보였다.
우리도 힘들었다.

사각형으로 구획된 도로에 번호로 구별된 공장들.
한참을 가도 그 흔한 슈퍼도 없고, 사람도 거의 구경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온갖 공장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들...

한참을 가다 보니, 나뭇잎들이 모두 병들어 있었다.
벚꽃 나무였는데 마치 열매가 달린 것처럼 잎

한가운데가 불쑥 나와 늘어져 있다.

모든 잎들이 그러니 모든 잎들에 벌레가 앉은 것처럼 보였다.
암에 걸린 나뭇잎.

 

우리가 어떤 곳으로 가고 있고,

또 우리 나라가 어떤 곳에서 사람들을 노동시키고 있는가를 점차 알게 되었다.

안산역에 도착한 건 다섯시.

거기서 우린 또 다른 놀라운 풍경을 만난다.

온갖 나라의 언어로 쓰여있는 간판,

갖가지 표정과 피부색의 사람들,

가지각색의 옷차림.

90개국이 넘는 나라의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는 안산의 원곡동.

거긴 이미 국경없는 마을이었다.

 

이주노조 위원장 직무 대행 샤킬씨 등을 만난 우리는 함께

내일 3시 반 안산역에서 있을 이주노동자 집회 참여를 호소하는 선전전을 했다.

누르 푸아르 씨가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중국인이 살인적인 단속추방으로 추락. 의식불명 상태라 한다.

몇가지 언어로 쓰여진 선전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공기도, 냄새도 수런거리는, 그 이질적인 공간에서.


선전물을 주면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죽은 이주노동자를 위해 지지를 보여준다.

 

하루 종일 행진한 뒤 행하는 선전전은
7시 30분까지 이어져서, 무척 힘들긴 했지만,
남은 것들이 아쉬울 뿐이었다.

추장네 집에서 엄청  많은 음식이 당도했다.
불고기, 호박무침 두가지, 콩자반, 우거지국, 또 뭐더라...
간만에 보는 유나는 넘 이뻤다.
영주언니도 반가웠다.

그 뒤 이주노동자들과의 간담회.
샤킬씨가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이나 싸움의 역사를 들려 주셨고,
현재 그들의 요구와 어려운 상황을 말씀하셨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죽고 있고,
그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는 불법이란 말로, 불법적 폭력을 저지른다.


"노동허가제 쟁취"
"노동비자 쟁취"
"단속추방 반대"
이것이 그들의 요구다.

다 알고 있던 슬픔인데도, 바로 옆에서 힘주어 그러나 겸손하게 말하는 샤킬씨.
너무나 슬프고, 또 너무나 강하다.
이주노동자를 자신들과 구별시키는 한국인들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투쟁, 동성애 등 성적 소수자 문제에
까지 연대해서 투쟁 중이었다.
그들은 말한다. "노동자는 하나다"
어떤 말보다 강한 언어.

전에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투쟁"이란 말이 모든 말을 대신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강렬함이 너무 커서 였다.


투쟁~ 인간답게 살고 싶다!
투쟁~ 우리에게 노동비자를 달라!
투쟁~ 나는 슬프다.
투쟁~ 나는 강하다.


어제 들은 그들의 말이 그랬다.

마지막으로 샤킬씨는 정말 강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 모두 함께 할 일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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