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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일지8] 우리의 침묵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대장정 5월 18일 일지

오늘은 아주 많은 분들이 대장정에 참여했다. 총인원은 30명이 넘는다. 아침·점심·저녁 계속 새롭게 도착한 사람들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이다. 숙소였던 민노당 충남노동자 교육소에서 아침을 차려먹고는 집결 장소인 안산시청으로 향하였다. 낙오한 투쟁국장의 차를 기다리는 동안 - 곰숙왈 정정훈은 차를 타도 낙오를 하냐! ^^; 이은봉 훈장님과 너굴누나 곰숙님, 은봉형 형수님이 도착하였다.

잠시 후 현민의 구호와 함께 하루의 장정이 시작되었다. 오늘 걸을 구간은 27킬로미터로 비교적 짧은 구간. 발걸음도 가볍게 행진 누군 “이건 산보수준이라고 연발” 하기도 했다. 행진 도중 그린비 홍승호님이 중간에 합류하시고, 오전 휴식시간에는 엉샘의 차를 타고 정수형, 옥상, 명희, 이미경 선생님이 도착하였다.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은 오이다! 사람들은 특히 냉장 보관된 오이를 마구마구 사랑한다!! (홍승호님은 그린비 사장님에게 오늘 “출근”을 안산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셨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도 그린비는 훌륭한 출판사다.)

휴식시간 전후로 항상 간단 구호와 함께 대열을 정비하는데, 보통은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FTA에 반대한다, 투쟁”이다. 만약 누군가가 구호를 부탁하면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 할 구호가 없다고 빼다가, “마누라도 함께 한다“라고 구호를 외쳤던 이은봉은, 순간적으로 대규모 폭력사태에 직면하였는데 주의하시라. 이런 게 다 선례고 교훈이다.

어제까지 지나온 영화 섬에 나온듯한 저수지가 보이는 아름다운 시골국도는 지나가고 평택으로 향하는 길은 고속도로와 같은 도시국도였다. 행진하기엔 매우 위험한 길이어 선두와 후미에서 교통을 정리하던 여일과 성국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5시 경에 평택역에 도착해서. 시청에서 할 침묵시위를 준비하였다. 모두들 X표가 그려진 하얀마스크를 쓰고 도로를 행진하였다. 평택 시청앞에서 억압받는 대추리 시민들에 무관심한 시청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침묵시위·퍼포먼스를 하였다. 시위 혹은 데모에 부정적인 평택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한시간 반 정도 시내를 걸어다녔다. 시민들이 뿜어내는 어펙트/정동(?)는 우리가 시골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시골 농부들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시청시위 후. 대추리로 향하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침묵 속에서 강행군을 했기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일정을 시작할 땐 27키로 정도로 비교적 쉬운 하루가 될거라 예상했으나, 평택 도착 후, 시위 일정 때문에 다시 한 10키로 정도가 추가되었다. 우리는 이상하게 곰숙님이 오느 날마다 험난한 백리길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장정에 뒤늦게나마 참여하시는 분들은 주의하시라.

잠시 후 간식을 먹으면서 대추리로 향하였고 우리는 7시 30분 정도에 625번째 대추리 목요 촛불시위에 참석하였다. 마침 민노동 경기도지사 출마자인 김용한 후보의 선거 유세가 있었다.

선거 유세가 유세이기 때문에 다 그런진 모르겠으나. “저는 슬픕니다. 대추초등학교의 학살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한나라당 열우당 노무현 미군놈들 다 나쁜 개새끼 들입니다. 저만이. 우리 민노당만이 서민들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읽어버린 대추초등학교를, 과거의 대추리를 되돌려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집권해야 합니다.” 라는 식의 단순·과장 레토릭에는 개인적으로 동감하기 힘들다.

연설을 들으면서 우리의 시위는 누굴 위한 것인가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한진 모르겠지만, 난 무엇보다 날 위해서 시위를 하였다.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내가 옳은 일이라 생각하기에. 내 공부를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어떤 점에서 난 시청에서 모든 이들의 방조 혹은 무관심 속에서 시위를 하였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정치적 공수표가 아닌, 나의 윤리에 혹은 우리의 윤리에 충실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편으론 만족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집단행동, 우리의 결정과 실행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윤리적 공통감각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통감각을 길을 걸으면서 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롭게 다시 형성하고·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만남은 서로간의 투쟁의 진지한 의견 교환이기도 하지만, 아주 단순한 터치이기도 하다.

촛불 집회 중. 대장정 티셔츠만 입은 지영이의 등이 추워 보인다고 한 할머니가 쓰다듬어 주셨다. 카메라에 담아 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장면은 지난 삼일간의 행진 속에 스쳐간 무수히 많은 기억 중 가장 선명한 “만남”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촛불 집회 중간에 주민들 앞에서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고추장이 간략하게 우리 대장정의 취지에 대해서 알리고. 지금까지 장정에 대해 보고를 하였다. 바다가 돌아 온줄 알고 기어 나온 새만금의 백합조개가 빗물에 때죽음을 다했다는 얘기를 했을 땐 많은 할머니들이 혀를 차면 안타까워하셨다. 어떤 이들은 새만금의 백합조개와 생명에 대해 얘기할 때, 여기는 사람이 죽어간다.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며 충고를 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모든 결정의 긴급성 앞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무시되고 소외되며 죽어나간다. “삶의 기반·생명의 권리”를 마구대하는 정권 앞에서 그들의 결정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중단이라도 시켰으면 좋겠다. 제발 이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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