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장정일지5] 생명이냐 자본이냐!

5월 15일의 일지

 

오늘은 보령 대천흥덕교회로부터 홍성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까지 36km 구간을 이동했습니다.
총 8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갔습니다. 오전 네 구간, 오후 네 구간. 도착은 5시 10분경.


날씨가 무척 맑고 공기도 다소 뜨거우며 바람이 별로 없어 지금껏의 날들 중에서는 기상조건이 가장 더운 편이었지만, 어제의 45km 이동에서 단련된 신체 덕분으로 별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답니다.

 

오늘의 가장 특이한 사항. 밭일/논일을 하시는 농민분들과 열댓번 이상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들 반겨 주시는 분위기였고, 많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fta라는 말만 들어도 응원해 주시는 분들, 또는 쌀수입 저지라는 말에 기뻐하시는 분들 등. 오후 2번째 휴식을 할 때에는 근처 가게에서 수고한다며 캔커피를 잔뜩 보내 주신 고마우신 분도 있었습니다. 오전 구간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께서 지팡이를 짚고 다가 와 무엇 하는 것이냐고 한참 묻다 가시기도 했지요.
많은 응원을 받았던 좋은 날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문당리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영실언니와 트래비스, 재연씨가 준비)를 하고 씻다가(6일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했어요. 감격.) 6시 40분에 모여 태환오빠의 글 발표를 듣고 지식인과 현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현장이 될 수 있지만, 대학이라는 곳은 현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학교의 행정적 업무 때문에 바빠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고는 하지만 80년대의 활동가들은 한가해서 현장성을 지닌 고민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내용, 현장성에 대한 고민 자체가 행정적 업무로 인한 바쁨이라는 '작은' 고민으로 축소되어 버렸다는 것, 그리고 대학이 3인칭의 시점에서(누가 --해야 한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실제 자신의 자리에서 싸우는 현장은 없는 것 같다는 요지로 추장님이 이야기를 하셨고, 지영언니는 나의 현장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강한 기운이 후에 또 퇴색되는 것은 아닌가 다소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끝나고 난 후에는 사무국장님께서 운전해 주시는 트럭 뒤에 실려서(?) 마을을 둘러 보았습니다. 풀무학교와 전문대 과정이 열려 있는 학교, 그리고 갓골 풀무생협과 느티나무 헌책방(그물코 사장님께서 기획중이고,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개관은 5월 중에 할 것이고, 책은 앞으로 구비해야 합니다. 지금 책장 만드시고 계세요. 책 기증 환영.) 등을 둘러 보았습니다. 바람 시원했고 트럭 뒤에 타고 가는 게 참 재미있었어요. (많이 추워 몇몇은 끌어 안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생협에서 굽는 빵에 대한 소개, 학교들에 대한 소개들을 들었습니다.

 

돌아와서 저녁 9시 무렵부터는 마을 분 여섯 분과 근처 다른 마을(광천)에서 오신 한 분, 유기농업 인증을 위해 꾸려진 비정부기관인 흙살림에서 나오신 한 분 포함, 총 여덟 분과 이야기를 11시 반까지 나누었습니다. 선물로 아기자 두 권과 뺏지 듬뿍, 티셔츠 여러 장을 드렸습니다.

 

유기농업을 하는 곳이라 유기데이(6월 2일)에 모내기를 한다고, 와서 농요를 부르며 공동체의 경험을 하는 것이 지식인들에게 필수적이라는 말과 함께 모내기에 초대를 해 주시기도 했어요. 농요는 풀무학교에서 정규 교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풀무학교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스승은 풀무질하고 제자는 타오르는 곳"입니다. 엘리트 양성을 하는 일반적인 특성화 학교와는 달리 "위대한 평민"을 키워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곳은 (최근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 내는 것이 모토라 합니다) 한 학년 27명 한 반, 총 3개 학년 80명 가량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들 기숙사 생활을 하구요, 끼가 있는 친구들도 많대요. 지역에서 15% 정도를 뽑기로 되어 있고, 최근에는 귀농에 관심을 가진 부모님을 둔 친구들이 타지역에서 배우러 오기도 한답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대요.

 

홍성군은 생태농업의 메카 지역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관 주도 또는 각종 신앙이 주도한 생태농업이 시도되고 있지만, 이곳은 70년대에 설립된 지역 자치적인 생태학교가 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생태농업을 일궈 온 것이라는 점이 가장 특이합니다. 마을은 세 가지를 모토로 합니다. 1) 넉넉한 마을. 넉넉함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2) 오손도손. 함께 음식도 하고 나누는 것. 3) 건강한 자연.

 

올 6월에는 아시아 오리농 대회가 열리는데 기술정보 교류하고 연대를 맺는 일을 주로 한답니다. 다음에 카페도 개설되어 있어요.

먹는 것이 자신인 만큼, 먹는 것을 보다 진지하게 알 필요가 있다고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직접 체험이 중요하지요.

 

지역 작물이 주민들에 의해 소비되지 않고 타지로만 가는 것도 문제라, 지역 내의 순환경제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고 하십니다. 우선은 학교 급식을 통해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몸이 민감한 청소년에게 바른 먹거리를 줘야 하는 것이지요. 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된 작물이 중요한지에 대한 지식도 더불어 선물해 줘야 하구요. "바치는 농업"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농업"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이 건강한 먹거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 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수입되는 쌀들은 온도 60도까지 올라가는 적도 지방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1.6% 가량을 농약으로 훈증해 범벅을 해야 합니다. 위험한 식사. 이런 급식 지원은 관행농에 의해 재배되는 쌀의 가격에 대한 차액분을 영농조합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와 환경에 투자를 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친환경 농업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은데, 일이 워낙 힘들기에 그만 두시는 분들도 있고 관행농법을 쓰는 옆 논과 적절한 간격을 두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도 간혹 있기 때문이지요(농약이나 벌레들이 들어온대요). 하지만 함께 가야 할 분들이고, 힘들여 지으신 농작물을 수매해야 하기 때문에 일도양단의 선택은 내리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 말로는 홍성에서는 그래도 그런 입장에 대개 수긍을 하시는 편이지만, 관행농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아 좀 힘드시다고 해요. 함께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함께 살며 바른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중이십니다. 홍성은 관 지원을 받지 않고 주민들의 자체 기금 적립으로 지금의 농업체계를 이루셨죠. 매출액도 생태농업 출하 조합 중 최고입니다(900가구에 총 60억). 여기서 추구하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지요. 우리가 송사리와 메뚜기를 버리면 그들도 우리를 버릴 것이다. 라는 말씀.

 

수입이 그닥 많지는 않고, 형편이 어렵습니다. 출하를 못 하는 경우도 있고, 노동집약적인 일이라 12마지기(2500평 정도)가 한 가구 평균인데, 여기서 출하되는 쌀이 500만원 가량 된다고.

 

좋은 분들이 많이 다녀 가신다고 합니다. 관의 지원을 일부 받고 자체 기금을 통해 건설되고 운영되는 교육관 등을 거쳐 한해 17000명 정도가 다녀 간다고 합니다. 저희가 머무는 숙소이기도 하지요.

 

또 하나. 농촌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많은 분들이 농약으로 목숨을 끊으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농약은 다른 의미에서도 위험한 것이지요. 2002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2000여 분이 음독자살을 하셨답니다. ㅜ.ㅠ  보통 많이 쓰시는 농약은 무척 몸을 고통스럽게 한대요. 아무리 뽑아 내려 해도 계속 몸 안에 돌면서 폐를 서서히 굳게 한대요. 의식이 멀쩡한 상황에서 그 고통을 계속 생생히 체험해야 합니다. 외국 일부에서는 생산, 유통, 판매가 모두 금지되어 있는 농약인데 한국에서는 심지어 학교 마당에 제초 용도로도 뿌려지고 있지요. (아이들이 많지 않아 운동장을 많이 밟지 않고, 그래서 풀이 무성해진대요.)

 

여튼 이런 취지에 공감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것이 FTA나 WTO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침이라고 말씀하시네요. 10년 후면 농사짓는 지방에 연고를 둔 사람들이 거의 없어집니다. 10년 전에는 가두시위를 했던 농민들이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욕설을 받을 위치에 있습니다. 나의 혈육, 나의 부모님이 아니니깐. 이전에는 부모님들과 친구들, 친척들을 생각해서라도 내 나라 농산물을 먹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지요. 기본적으로 농촌의 인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눈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대략 여기까지 정리해 봅니다.

 

오늘의 행진팀: 곰, 지영, 희선, 정훈, 성국, 태환, 영진, 현민, 병권, 만세, 트래비스, 재연, 현정, 전감, 영실, 세진, 수영, (지)은숙.

영실은 오후에 학교 수업 마치고 와서 합류.
세진언니는 점심때 수영오빠와 교대하고 학교 수업하러 서울로 잠시. 내일 온대요.
트래비스와 ?는 오늘은 차를 타고 행진팀에 합류했습니다.
사진은 현정씨가 찍어 주었고, 일지는 희선이 씁니다.
지은숙씨는 희선의 인류학과 동기인 언니입니다. 반창고를 선물로 가져다 주었어요. 행사에 참여하다가 밤에 서울로 내일 수업을 위해 돌아갔습니다.

 

7:50 출발. 아침에 안세환 목사님께서 나와서 배웅해 주셨습니다.

중간에 세 번 휴식. 일정보다 빨리 걸었어요. (우와~) 그리고 점심은 수영오빠 등 중간합류팀이 사온 김밥을, 그리고 아침에 세진언니가 준비해 준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지요.


간식으로는 황해숙 선생님께서 가져다 주신 주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 선물받은 캔커피, 수퍼에서 사온 아이스크림(참, 캔커피 답례로 저희 뺏지를 선물해 드렸어요) 등을 먹었습니다. 생맥산도 먹었구요.
5시 10분 도착했고, 이후 일정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