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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민주주의의 위기와 가능성

 

한미 FTA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전쟁과 이승만 반공독재로 인해 남한에서 좌파의 맥이 끊기게 된 후 지금까지 민중의 투쟁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되었다.
 
4.19, 한일회담 반대투쟁, 전태일, 노동자 대투쟁, 5.18민중항쟁, YH사건, 구로동맹파업등의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또 기억되었고, 남한 사회 민중의 투쟁은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세우는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우리의 요구는 훨씬 더 다양하고, 우리가 만들려 했던 세상은 훨씬 더 넓은 세상이었지만, 김영삼 정부 이후 들어선 '민주정부'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역사에 대한 기억은 오직 '민주화 운동'뿐이었다.
 

그리고 이 민주화 운동의 정점에 오늘의 노무현 정부가 서 있다. 노무현 정부는 최초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세력만으로 순수하게 구성된 집단이었으며, 87년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정치개혁'의 완성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의 완성판이며 정점인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공명선거운동, 낙선운동, 당선운동, 정당개혁 등의 정치개혁운동이 완성되자 민중은 투표기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제 독재시절과는 달리 우리의 '대표'들을 '공정하게' 뽑는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끙끙 앓을 필요도 없어졌고, 식사 한 끼 대접받고서 미안해서라도 찍어줘야 할 일도 없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을 공정하게 선출한다. 그러나 그렇게[ 선출된 우리의 대표자들은 우리를 전혀 대의해주지 않는다. 정치개혁을 통해 높은 수준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순간, 권력이 우리의 대표들이 아니라 관료들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란 정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들을 읽고 감탄하고, 찬성표 던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똑똑하고 전문적인 관료들이 어련히 알아서 일을 잘 처리하겠지... 하며 행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의 역할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아예 국회를 통하지도 않고 우리의 삶에 대한 중요한 일이 결정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측 대표가 워싱턴에 가서 "미국과 우리는 FTA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해버린다.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발 소식으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재배치에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도대체 국회는 언제 이러한 중요한 일을 결정했을까? 결정한 일이 없다. 그들은 관료들의 사후보고를 받고 제대로 묻지도 않은채 찬성표를 던질 뿐이다. 왜? 성공적으로 협상을 이끌기 위해서는 일일이 국민들의 동의(심지어 국회의 동의!)를 받아가며 일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토록 열심히 우리가 5.18을, 87년 6월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기념하고 기억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만들어 낸 이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을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줄 능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새만금방조제, 부안핵폐기장,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한미 FTA 등등... 나는 이 여러 문제에 있어서 내 의견을 투표든지 뭐든지 간에 제시한 일이 없다. 자기들끼리만 의논해서, 대충 국회 동의 받아서(혹은 그런 것도 없이) 우리들의 삶을 그냥 뚝딱 결정해 버린다. 군사독재보다 더 무서운 '민주독재'가 우리가 민주화운동의 완성이라고 믿었던 노무현 정부의 근본 성격인 것이다. 민주독재에서는 독재자가 한 명이 아니다. 관료집단, 자본가, 국회의원 등 권력과 자본을 가진 모든 이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내고 있는 저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독재자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내야 한다. 또한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되고 있는 우리의 저항의 역사를 다르게 기억해야 한다. 전태일이, 구로동맹파업이, 5.18 민중항쟁이 그저 독재정권 몰아내고 민주'정부'를 세우자는 운동이었던가? 아니다. 우리의 저항은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할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민주주의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확장되어 나가는 것. 그리고 그런 권리를 가진 이들이 네트워킹되어 하나의 공통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그러므로 '민주화운동가'로 기억되는 수많은 사람들은 사실 민주화운동의 범위를 훨씬 넘어가는 '혁명가'들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완성된 민주주의'의 시대는 우리에게 다시금 '혁명가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우리의 삶을 결정해버리는 민주독재에 맞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적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FTA 협상은 그 어떤 것보다도 '민주독재'의 실상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이 사유화되고, 투기적 금융자본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그로 인해 노동 시장이 유연화되고, 의료비, 교육비가 치솟고, 대다수 국민의 삶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 협상에 우리는 단 한치도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국면이야 말로 화석화되어버린 민주화운동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닐까. 그야말로 '절대적인' 민주주의를 향한 혁명적 투쟁!

 

그러므로 이 국면에서 우리의 투쟁은 민주화운동과는 다른 질을 가져야 한다. '좋은 민주정부' 혹은 복지국가를 세워서 사유화된 것들을 국유화하고, 국민국가의 주권을 강화하는 '경제의 민주화' 방향이 우리의 방향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국가의 주권과 사회공공성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 그것이 혹 작금의 신자유주의보다 우리의 삶을 덜 피폐하게 한다 할지라도 - 그것은 위에서 정의한 것과 같은 민주주의를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없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의 민주화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권리와 능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서 양극화를 해소하여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어 가도록 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삶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갈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약값도, 교육비도, 우리의 임금도, 복지비용도,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땅의 위치도,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의 성별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또한 지구의 모든 종들이 벌이는 투쟁들과 우리의 투쟁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대항지구화의 길이다.
 

한미 FTA 협상은 우리에게 기회이다. '민주정부'의 실상이,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또 만들어 온 '민주화운동'의 반동적 성격이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절대적 민주주의를 향해 혁명의 길로 나서야 한다. 모든 권리를 모두에게!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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