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알고 지내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니, 요즘은 블로그가 어째 노조 이야기밖에 없습니까?" 그러고 보니 한 동안 블로그를 선전선동의 무기로만 사용한 셈이다. 이 분 덧붙이길, "근데, 요즘은 새 글도 없더만...." "인터넷 선을 끊었습니다." "와요?" "예, 제가 좀 바쁜데, 중독이라서 당분간만 좀 끊었습니다." "와? 야동보요?" "...."
얼마 전에는 故 한경선 비정규교수의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이러저러하게 학교 학보사 학생기자와 간단하게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이 친구와 한 시간 가량 질문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실린 내용을 보니 거두절미하고 알맹이만 거칠게 실렸다.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니 내가 한 말은 맞는데, 주술관계에 비쳐보면 꼭 내 말을 그 대로 옮긴 것도 아니어서 거칠기 그지없었다.
학보사 기자는 나에게 현재 해결되어야 할 비정규교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연하게 전임교수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강의료다. 현재 수준으로 보면 노조가 없는 사립대와 국립대는 시간당 25,000원에서 45,000원 수준이다. 전임교수들에 비하면 작게는 다섯 배 정도 차이가 난다. 물론 사립대는 그 이상이다. 노조가 있는 전남대와 경북대, 영남대를 예로 들면 이들 대학은 평균 5만 원 이상이지만 6만 원 선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고용문제(교원지위 회복)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고 있는 전국의 7만여 비정규교수의 지위는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선생님들이 지난 해 9월부터 국회 교육위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일인시위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천막을 뜯기고 다시 설치하기를 수번 반복해오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회기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침 며칠 전 대학의 비정규교수의 문제를 적절하게 언급한 글이 있어 여기 옮긴다.
선생을 선생이라 부르기 위해 / 박구용(한겨레신문)
구별이 성장의 상징적 기호라면, 분리는 지배의 오래된 술책이다. 지배를 위한 분리는 두 단계를 거친다. 1단계가 지배자와 피지배 집단을 분할하는 것이라면, 2단계는 피지배 집단을 다시 여러 갈래로 쪼개는 것이다. 왕과 백성의 분리가 1단계라면, 양반과 평민, 그리고 천민의 분할은 2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분리의 기준은 알 수 없을 만큼 세분화되었다. 그렇다고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성·실용성·현실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거나 능력·노력·실력 차이로 치장되었을 뿐이다.
남북과 동서 분열, 성별과 학벌에 따른 계급분할이 특권층의 권력 독점을 은폐·확장하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 혹은 하청업체들의 등급화는 대기업 자본의 지배권을 은밀하게 강화한다. 특히 분리가 섬세해질수록 지배권력은 공고해진다. 그 때문에 지배자는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을 통해 피지배자들을 일렬로 줄세우려 한다. 피지배자들은 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승리는 언제나 지배자의 몫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에 의해 지배받지 않으려면 분할통치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한국의 대학은 가장 철저하게 분할통치가 관철되는 조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계급처럼 분리하고, 다시 비정규직을 계약교수·연구교수·기금교수·강의교수·전임연구원, 순수 시간강사 등으로 계층을 분류한다. 이들 모두 숙련된 지식 노동자로서 연구와 교육이라는 동일업무를 수행하지만, 이들 중 5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은 교육자, 곧 교원이 아니다. 교육을 하지만 교육자라 부를 수 없는, 그래서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 버린 이들은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다. 더구나 이들은 동일노동을 하는 정규직의 3분의 1 혹은 5분의 1의 임금만을 받는다.
이 나라가 호부호형을 금지하는 부도덕한 사회가 아니라면 무엇보다 먼저 모든 교육자를 교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는 핵심 당사자인 교육과학기술부, 대학, 그리고 비정규직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교육위에 상정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현재 정부와 대학은 예산문제를 근거로 모든 비전임에게 교원 자격을 부여하는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교원으로서 신분보장이 법제화되면 차후 학문 후속세대의 대학 진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런 현실적 이유를 근거로 ‘선별적 교원화’라는 절충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그 중에는 ‘우수 시간강사를 국가교수로 임명하자’(<한겨레> 3월20일치 33면)는 의견처럼 비전임 교수가 직접 제시한 안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선별적 교원화도 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이런 절충안은 그것이 제시하는 선별의 기준이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할지라도 시간강사 분할 지배를 위한 전략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비전임 강사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쉽다. 예를 들어 국립과 사립, 순수학문과 응용학문, 학벌과 나이, 혹은 연구능력에 따라 수없이 많은 갈래로 찢어놓을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결국 비도덕적 지배를 강화할 뿐이다.
최소한 법은 선생을 선생이라 부를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관련 당사자들이 낮은 단계의 교원 자격 부여에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낮은 단계란 모든 교육자를 교원으로 인정하되 고용의 안정성 정도는 대학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다. 대신 다른 분야의 비정규직처럼 비전임 교수도 전임 교수가 받는 임금의 50%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간당 강의료가 최소 8만원은 돼야 한다. 나무 심고 건물 짓는 것보다 교육 바로세우기가 대학과 정부의 의무라면 예산은 그들이 마련해야 한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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