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철학 비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레닌의 <철학노트>는 1908~1915년 사이에 레닌이 헤겔 철학과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읽으면서 남긴 노트와 메모들을 모은 책이다. 아마도 레닌은 헤겔의 철학을 엥겔스를 통해 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엥겔스는 헤겔의 철학을,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을 아주 간명하게 요약과 자기화를 통해 <자연변증법>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 <자연변증법>이 헤겔 철학 입문으로도 아주 유용한 걸 보면 새삼 엥겔스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 생각하게 한다.

 

걸출한 인물에게 망명은 사람을 사색에 빠져들게 만드는 게 분명하다. 레닌은 유럽을 떠돌아다니면서(이 표현은 좀 적절하지 않다) 독서와 사색에 빠졌다.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도 이 때 집필했다. 아마 나는 레닌이 언제 맑스의 <자본>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레닌이 맑스의 저작들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당연하게 <경제학, 찰학 수고>나 <독일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없었다. 레닌이 엥겔스의 저작을 읽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엥겔스에 의해 잘 정리된 헤겔 철학에 유물론의 껍질을 씌운 것에 불과하다.

맑스는 <자본>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근본적으로 헤겔의 방법과 다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헤겔은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자립적 주체로까지 전화시킨 사유과정이 현실적인 것의 창조자이고, 현실적인 것은 다만 그 외적 현상을 이룰 뿐이다. 나에게는 그와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인간의 머리 속에서 전화되고 번역된 물질적인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헤겔에게) 변증법은 거꾸로 서 있다. 우리가 신비적 외피 안에 있는 합리적 핵심을 발견하려면, 이것을 뒤집어야 한다."

레닌이 인용하고 있는 헤겔의 글을 보면 이런 식이다.

"... 이념은 진리이다. 왜냐하면 진리란 객관성이 개념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또한 모든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참된 것인 한, 이념이다. ... 개별적인 존재는 이념의 그 어떤 한 측면이므로, 따라서 이 이념에게는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대자적으로 존립하는 듯이 보이는 다른 제 현실성을 또 필요로 한다. 이들 현실성 속에 총괄되어 있을 때에만, 그리고 이 현실성의 관계 속에서만 개념은 실현되는 것이다."(홍영두 번역, 150쪽)

레닌은 헤겔의 이런 글들을 인용한 후 단순명료하게 이렇게 적었다.

"헤겔은 사물(여러 현상, 세계 자연)의 변증법을 개념의 변증법에서 천재적으로 추측하였다."(강조 레닌, 홍영두 번역, 150쪽)

레닌에게 망명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리고 독서와 사색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색과 독서가 때론 현실을 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걸 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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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5 18:40 2015/02/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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