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다."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에 등장하는 문장인데, 원래 문장은 이렇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 안에서 해소시킨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ensemble)이다." 포이에르바흐는 인간을 존재의 유한성과 종교를 연결시킨다. 종교가 인간 오성의 표현이라는 포이에르바흐의 주장은 유한한 존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무한성에 대한 갈망을 외적 대상으로 실현한 것이라는 말과 같다. 맑스는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인간의 유적 본질에 대해 주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에게 내재하는 고유한 본질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

현대 철학에서 관계는 변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개념이다. 관계에 대한 물음은 판단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데, 관계의 판단은 어떤 판단이나 어떤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관계는 단지 하나의 항을 다른 항과 관련시킴으로써 성립된다. <A는 B다>와 같은 명제의 경우 B는 A의 속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A를 C와, 또는 D와 연결시키면 판단은 달라진다. <A는 B보다 크지만 C보다 작다>. 예를 들어 <하늘은 푸르다>는 명제에서 <하늘>과 <푸름>의 관계는 정오와 해질녁에 따라 다르다. 관계들은 한 사물의 속성이나 특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영희는 철수보다 크지만 영희는 갑수보다 작을 수 있다. 그러므로 관계는 관계하는 항들에 외적이다. 관계하는 항들이 변하면 관계도 변한다.

들뢰즈는 관계는 항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고, 그래서 관계는 일시적이고 이행적, 또는 과도적이라고 말한다. 들뢰즈가 관계를 관계하는 항들에 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관계의 문제가 변화와 연결되고, 말하자면 끊임없는 생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라는 말은 인간은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그러한 변화가 전체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관계가 일시적이고 이행적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변화는 멈추지 않을 뿐더러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관계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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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9 21:54 2016/10/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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