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자유와 공직

2012/05/23 11:49

직접 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100분 토론 중 진중권씨가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면 공직에 나와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말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말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즉, 우리 사회는 양심의 자유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고 이념/사상의 자유가 허락되고 있지 않는데 이런 상황에서 공직에 나왔으니 자신의 모든 사상을 까발려라? 그리고 뒤에 오는 모든 폭력과 탄압은 내 알바 아니다?

 

진중권씨는 우리 사회에서 허락하는 정도의 사상을 가지고 있느니 마음껏 발언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사회에서 허락되고 있지 않은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지? 만약 시민인 "당신은 동성애를 지지하는가?" "당신은 동성애자인가?" 류의 질문을 해도 답변을 해야하는가? 진중권씨의 논리대로라면 답변해야 할 것이다. 공직에 나온 동성애자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밝혀야 한다? 우습지않나?

 

북한인권/북핵/3대세습...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을 우리(남한)땅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세들어 혹은 강점하고 있는 집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다. 왜? 다른 나라일이니까. 북한을 다른 나라로 규정한다면? 역시 우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왕정을 하든, 세습을 하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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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밝히는 알마

2012/05/12 19:06

ㅠㅠ 청소년 성장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웃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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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세금!

2012/03/19 21:33

부자증세가 아닌 보편적 증세. 이것이 내 주장이다. 물론 현재의 세금 지출 조정으로도 괄목상대할 정도의 복지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들의 재정적자 공세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증세를 주장해야 한다. 어디서? 선거판에서. 그런데 누가? 이것이 문제다. 표를 고민하는 진영은 이말 하기 힘들다. 즉, 민주당이 이런 주장을 하기는 힘들다. 즉, 민주당에게 보편적 증세를 주장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단 뜻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민주당의 어떤 액션을 전제로 한 전략은 무의미하다. 바로 이점이 내가 노무현정부 때의 민노당/진보신당/진중권을 필두로한 떠벌이들이 아무런 전략도 없는 얼치기 집단이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그들의 모든 주장은 거의 언제나 노무현의 어떤 액션을 전제로 하였다. 심지어 전남대 교수 김상봉이란 자는 민주당/열린우리당이 부르조아민주주의 혁명을 해주지 않으니 우리가 사회주의 혁명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하였다. 어처구니 없는 소리다.

 

노무현정부때부터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일관되게 그들은 노무현의 실책과 실정을 비판하였지만, 자신들의 전략적, 전술적 실패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반성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시종일관 노무현 비판뿐이다. 자신들이 어떻게 포지셔닝을 해서 노무현정부를 자신들에게, 민중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들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노무현에게 요구만 할 뿐이었다. 이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노무현에게 사회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철딱서니 없는 짓이었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차가 나를 향해 돌진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는 반대쪽으로 틀어서 사고를 모면하면 좋겠는데 그 사람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지 왼쪽으로 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따라서 나는 왼쪽으로 틀고 그 사람이 반대로 틀어주길 바라는 것은 전술이 아니다. 그건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행동을 전제로 한 나의 행동지침은 그래서 무의미한 바보짓이다. 나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차를 순간적으로 180도 회전시켜서 충돌하더라도 충격을 줄인달지 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것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진보진영은 끊임없이 노무현에게 요구만 하였다. 그를 어떻게 이용해 먹을 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를 노무현이 들어주지 않으면 기고만장해서 대중들에게 선언한다. "자! 보십시오. 노무현의 반민중성이 들어났습니다. 따라서 권력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ㅋㅋㅋ 그냥 좃을 까라! 니 들은 그게 선전/선동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구걸이었다. 쉽게 말해 니들은 거지새끼였던 거야. 노무현처럼 모든걸 던져가면서 닥친 상황을 돌파할 용기도, 의지도 없는 거지새끼들. 이를 테면, 이정희. 이사람은 언론플레이는 참 잘한다. 그치만 실제 의정활동에서 보이는 지극히 정치공학적 모습들을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알리가 없다. 실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정희가 보여준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이정희는 소수정당이 뭘 할 수 있겠어요? 하면서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보편적 증세. 이 주장을 민주당이 하길 바라는 것은 바보짓이다. 그럼 누가?? 당연히 진보신당/통합진보당이 해야 한다. 효과는? 대중에 대한 학습. 그렇다. 선거는 대중을 학습시키고 우리의 이념을 선전하는 공간이다. 민주당은 표를 구걸하겠지만 진보진영은 그러면 안된다. 끊임없이 진보 의제를 제시하고 주장하면서 설득시켜야 한다. 더 많은 세금! 보편적 증세! 이 의제를 사람들에게 설득시키지 못하면 재정적자라는 역공을 우리는 막을 도리가 없다. 복지는 다시 물 건너 가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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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이 참 이상하다. 점심시간이 무슨 연유로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진보진영 그 어디에서도 이 주장을 듣기가 힘들다.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데 점심시간에 대한 논의는 들을 수가 없다. 돌리 패튼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도 있지 않는가?  9 to 5 (http://www.youtube.com/watch?v=mpKAA2VxWY8)  9 to 5가 8시간 노동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노동시간. 점심시간을 노동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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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드대학의 공부벌레들

2012/02/02 21:42

요즘 방송통신대학TV에서 '하바드...벌레들'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한다. 1978년 제작된 시즌1이다. 우리나라에 첫 방송된 적은 80년? 81년? 82년? 잘 모르겠다. 대략 그 언저리다.

 

어쨌든 요즘 다시보는데 30년 훨씬 넘은 시기에 만들어진 드라마치고는 볼만하다. 보면서 느끼는 것은 교수와 학생이 대화하는 모습이 참 부럽다는 것이다. 상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쓸데없는 존칭, 겸손, 딱딱한 자세..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냔 말이다.

 

눈의 띄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1978년 베키라는 여성과 관련된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법원판결에 관한 내용이었다. 즉, 당시 미국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주제를 당시의 드라마가 소재로 삼았고 그것도 진보적인 관점에서 다루었다. 우리로 치면 '부러진 화살'이 텔레비젼드라마를 통해, 그것도 몇년이 지나서가 아니고 당대에 전파를 타는 것이다. 무척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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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의 핵심

2012/01/29 14:13

영화 부러진 화살, 그리고 김명호씨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사법부에서 이를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엄중 대처를 결의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와 관련한 수많은 논쟁이 놓치고 있는 바다. 실체적 진실?? 엿같은 소리는 집어치우자. 실체적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을 대하는 저들, 사법부의 태도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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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성공회대 교수 이남주씨의 칼럼 중 아주 정확한 내용이 있어서 그대로 옮긴다.

 

"....한국의 진보는 현재 서구의 진보들이 수행했던 과제만이 아니라 보수 혹은 자유주의적 세력이 수행했던 과제도 같이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면서 드레퓌스 사건 때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의 행동을 예로 들었다.

 

진보에 대한 나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이다. 강고한 통일전선의 형성. 그를 방해하는 자는 적이다. 진보라고 생각하는 자는 단 한순간도 이 과제를 잊어서는 안된다. 강력한 통일전선. 힘있는 자는 힘으로, 돈있는 자는 돈으로, 지식있는 자는 지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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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화살 그리고 진중권의 닥질

2012/01/25 22:11

진중권의 목표는 우리 사회의 한걸음 진보가 아니다.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자신의 아이덴터티. 그것이 그의 목표다.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 사회가 진보하리라는 학비리의 모습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김명호씨 재판의 실재적 진실을 어찌 법원 판결문이나 속기록만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런 형식적이고 실증적인 태도는 내가 평소에 보았던 진중권의 모습은 아니라고 보는데?

 

김명호, 그리고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핵심은 이렇다.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김명호의 교수재임용탈락과정, 혈흔 감정 및 증인 채택 청구 기각, 사건의 실재적 진실을 파악하려고 하기 전에 미리 어떤 판단을 예단한 법관들의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을 하기도 전에 전국 법원장들이 모여서 이 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하고 엄중하게 다뤄야한다고 결의한 것이다. 몇년전 촛불 재판에서 담당 판사들에게 이메일로 이러저러한 지시를 한 신영철의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재판과정에서 김명호씨는 몇몇 장면에서 비이성적이고 매우 꼬장꼬장한 태도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 그런 태도를 앞뒤 정황과 무관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김명호씨는 매우 불공정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런 경우 진중권씨처럼 매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진중권씨에게는 교수라는게 그다지 의미가 없을 수 있겠지만 김명호씨는 아닐 수 있다. 개인적 성향의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진중권씨는 누가 봐도 정치적 탈락이었으니 나름대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명호씨의 경우는 사람들이 과연 진중권씨 경우처럼 일방적으로 김명호를 지지했을까? 김명호씨는 사람들이 반신반의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런 분위기라면, 그리고 그가 정말 부당하게 탈락했다면 얼마나 억울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즉, "재임용탈락 =>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분 => 심리적 안정"이라는 과정이 있을 수 있고, "재임용탈락 => 사람들이 긴가민가 => 심리적 억울함"이라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몇몇 돌출적인 행동을 가지고 전체를 싸잡아버리는 것. 이게 옳지 않다는 건 진중권 자신이 더 잘 알것이다. 난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아는 진중권은 또라이기는 하지만 꼴통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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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신문기사 : "...김대중대통령은 이명박전서울시장과 박근혜전한나라당대표를 만났고 이자리에에는 김영삼전대통령 시절 청와대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재동(가칭)전수석비서관이 있었는데.....이날 박전한나라당대표는 이전서울시장과...또한 이전수석비서관은 김전대통령의 뜻을...김대통령은..." 뭐 대충 이렇다. 기사 뒤에 가면 성에 직함만 붙어 나온다. 정말 헛갈려 돌아버리겠다.

 

그런데 일반인들에 대한 기사는 이렇다. "...홍길동씨는...고길동씨를....이에 고씨는 홍씨를...."

 

일단 첫째 : 일반인들은 그냥 씨라 부르고 윗넘들은 다들 직함을 붙인다. 씨바 이게 말이되냐? 일반 시민들은 하대해도되고 관료들은 깍듯이 직함을 붙인다? 좃도 이건 말이 안된다. 이런 구역질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

 

두번째 : 애시당초 윗대가리넘들을 무슨무슨 직함으로 부르는 것 자체를 바꿔야 한다. 뭐? 우리말의 특징이라고? 좃을 까라! 그따위 특징은 버려도되지 않을까? 직함으로 부르는 관습을 혁명적으로 때려부숴야 할 때이다.

 

이게 일반인들의 삶에서 실현되기는 매우 어렵다. 언론이 앞장서서 바꿔야한다. TV, 신문 등의 모든 공식 문서에서 관련된 사람을 씨로 불러야 한다. 직함이 필요한 경우는 이름 앞에 적으면 된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아니라 전대통령 김영삼씨로 불러야 한다. 이건 가능하다. 그리고 두번째부터서는 그냥 김영삼씨로 부르면 된다. TV토론등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차츰 일반인들의 삶으로 퍼질 수 있게 된다.

 

또하나,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드라마 등에서 이런 호칭을 쓰도록 권고하는 방법이 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나 쓸 수법이긴 하지만 드라마의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나는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사장을 홍사장님!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홍길동씨! 라고 부르는 장면. 물론 처음에는 매우 낯설것이다. 당연하다. 수백년을 지켜온 버릇인데. 하지만 이렇게라도 바꿔야 한다. 1945년 이후, 우리말에 대한 전략 부재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Better later than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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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자고 하는 의도든 걱정해서 하는 소리든 제발 개인적인 질문은 안할 수 없을까? 그 사람이 결혼을 안하든 못하든 저런 질문은 당사자가 직접 하면 모를까 다른 사람이 먼저 화제로 꺼낼 성질의 것은 아니다. 만약 그사람이 그런 류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만약 그사람이 독신주의라면, 그 사람이 동성애자라면, 그 사람이 이미 이혼을 하고나서 결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 그때마다 그사람은 뭐라 해명을 해야하나?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저런 질문은 "나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는데 너는 왜 안하느냐?" 정도의 패거리성 질문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왜 얘가 없느냐?

얼굴이 안좋아 보인다.

얼굴이 좋아보인다.

기타 등등...

 

한국 전쟁의 영향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것 말고도 우리 사회는 파시즘이 횡횡하기에 매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건 이념 이전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이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진보? 엿같은 진보는 그때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등이 집권했을 때, 어느날 갑자기 비밀경찰이 사람들을 잡아가는 세상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그건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다. 물론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 자체는 그런 방식을 좋아할 리는 없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세상은, 사람들은 이념의 원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기독교의 모습이 예수가 원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아는 유교의 모습이 공.맹이 원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선진 집단에서 제시한 이념이 당대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해석되는 모습은 그 이념을 제시한 집단의 원래 의도와 얼마든지 달리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정부 출범 때에도 나는 생각했다. 여전히 우리의 과제는 진보/보수가 아니다라고. 여전히 우리의 과제는 상식/몰상식, 합리/비합리의 갈등이라고. 진보? 보수?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지? 한나라당,좃선일보,검찰 등등이 보수라고? *지 껌씹는 소리 그만하자. 저놈들은 그냥 깡패일뿐이다. 그 깡패들이 우리 국가 권력의 대부분을 틀어쥐고 있다. 그리고 그 깡패들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38%이다. 나머지는 온전한가? 심지어 나마저도 나는 온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십년을 어처구니 없는 사회에서 살았는데 온전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정말 개같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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