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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 될 수 있는 '종교'

30여년 전에 60여세로 보이는 장인 어른의 친지는 뉴욕에서 없어 로스앤젤스로 이사하면서 시카고를 들렸었다.  정말 그는 미국에 살기가 어려워 보였다. 손등도 부어 있었고 아픈 기색이었다. 그는 얼마 후에 목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먹고 살기 위한 방법으로 제일 쉬운 것이 기독교 목사였다. 성경 외우고 담배 끊고 이성과의 잡음을 피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70년대 초에 남한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하여 시카고에서 신학교에 들어 적이 있다. 그당시 이미 수십개의  교회가 있었기에  이곳 저곳 방문하여 목사들과 대화를 시작하였다. ‘나는 기도로만 하겠읍니다.’ 그들의 답변이었다. 감리교 목사 서너명이 다행이 인권운동에 동참하였었다. 그러나 통일 운동에는 거의 모두 발을 뺐다.

90년대 후반에 와서야 새로운 감리교 목사 둘과  하나의 복음주의자 목사가 함께하여 기독교가 참여한  통일운동이 구체화 되어갔다.  

나는 인권(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통하여 나의 종교를 기독교나  다른 어떤 종교로 부터 자유로운 일반적 종교 스스로 만들어 있었다. 내가 무엇이고 하늘은 무엇이고 목적지는 어디에 두는 하는 것들을 정할 있었다. 생각들은 모두 나의 최종 결정에 의하여 이루어 짐을 알아냈다.  남이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은 게으른 게임이다. 나는 교회를 억지로 피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얼굴의 광채인지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목사님이시죠!’하고   건네 오는 것을 듣고 싶지 아니 뿐이다. 나의 하늘은 내가 자신을 이웃과 나눌 있는 범위이다. 나는 범위나 나눌 내용이나 분위기에 님자를 부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믿고 창조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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