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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내가 홀로 할 일과 계획들을 '친구'때문에 못한다는 말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나는 시카고에서 인권운동을 효율적으로 하기위하여 시작했든 목사공부를 버리고 대신 자영업을 10여년간 하였다. 그런데 내가 똥이 빠지게 바쁠 때에는 영락없이 전화가 오곤 하였다. 자영업을 그만 둔 그 이후에도 이 사실은 하나의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답답한 '친구'들이 나에겐 수 없이 많았다. 이것들은 운동 차원에서 보면 적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또 답답한 내용들은 곧 공동 관심사이기에 나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하나의 결론을 얻는데 중요한 시간이 되곤 하였다. 나의 주변에는 물론 중정의 물을 먹거나 이들의 하수인이 통일운동에 관심이 있는 척 하며 수시로 만나자는 자들도 여럿 있었다. 이들은 전화로 오래 말하지 않는다. 즉 큰 일이 있는 것 처럼 자꾸 말씀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비밀적인 내용이 있고 바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른 아침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이들을 만나 주었다. 이들에게서도 답답함과 궁굼함은 매 마찬가지 였다. 내가 바뻤기에 접근 하는 시간 도둑들이었다. 아니면 나의 바쁨의 척도를 아는 귀신님들이었다. 하지만 인권과 통일운동 행사 때에는 내가 여러 부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내가 바쁘다는 사실을 숨기고 여유있게 대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일정상 정말로 피해야 할 때에는 전화기를 내려놓든가 휴대하지 않거나 걸려오는 이름을 보고도 답을 피하는 법을 배웠다. 계획서나 휴대물을 신발과 함께 놓거나 손전화기에 울림시각들을 입력한대로 나를 운영한다.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이 돼서야 내가 줄을 서야 했던 것으로 내가 지금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이 70이 된 지금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익숙하여 있다. 왜정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정치가가 누구든지 간에 줄을 서라면 곧 잘 스곤 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덕분에 미 군정하의 남한 꼭두각시 정치가 이승만은 누구든지 줄을 스면 쉽게 끌고가서 빨갱이라고 학살 하곤 하였다. 30년전 광주에서 군인들이 젊은이들을 포승으로 묶어서 한줄로 끌고갔고 종착역은 학살지였다. 지금까지 남한의 투표자의 대부분은 노인들이었고 이 노인들은 포승을 하지도 않아도 줄을 서서 투표를 하는 것을 하나의 자기 인식의 커다란 하나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아니면 줄을 서야 자기가 되는 군중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 대부분은 서로 물어보고 난후에 모르는 척하고 투표한다. 그저 투표를 위한 투표인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남한의 '민주주의' 였다. 이번 선거에 젊은 20대가 참여하면, 앞으로의 남한의 민주주의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광주사태와 같은 울분을 또 겪을 필요가 없어진다. 천안함사건이나 대한항공 격추물화 사건(이것은 미 CIA 작전으로 그들은 회의참여차 모르고 탔던 미 전 대통령 닉슨을 그 비행기로 부터 도중 하차 시킴) 같은 것으로 북풍 정치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요지음 미 민간단체들이 북을 인도적 차원에서 돕는 척하면서 6자회담마저 기피하는 미국의 늑대의 얼굴을 양의 얼굴로 둔갑해 보려고 하고 있다. 이들 중에 가장 순수해 보이는 척하는 이곳 쌘프란시스코의 결핵퇴치의료진 마저도 제국주의의 선교사 노릇하기에 바빠서 1919년 3월 1일에 최남선이 말한 '도덕은 버리고 오로지 새길을 모색하자'는 써먹든 슬로건을 우리 해외 한인들이 받어주었으면 하고 선전하고 다니고 있다. 나는 이제 혼자 스스로 서는 한국의 젊은 20대를 바라보고 있다. 줄을 스는 것과 혼자 서는 것이 병행하는 미래로.....
나는 20년 전 IBM286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여러 하드웨어와 많은 소프트 프로그램을 사용하였고 네트워크 엔지니어 및 수리공으로도 오랫동안 일하였다. 한말로 전문인이었다. 유색인이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남자일 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거의 모든 것을 나는 자습으로 스스로 배웠다. 다행이 내가 만나거나 소유하게 된 하드웨어나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좋은 것들을 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특히 요즘 내가 모니터로 사용하는 대형 46인치 삼성TV는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열어 놓고 작업하는데 편리하다.(사진참조) TV뒤 벽과 사이에 콤퓨터 두 대를 동시에 연결하여 vista와 xp를 각각 설치하여 여러 버전의 다른 종류의 프로그램을 올려 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앞으로 악보로 작곡을 하여 보려고 한다. 동영상도 제작하며 배우기 시작하였다. 첨부된 또 다른 사진 하나는 내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작곡한 것을 악보로 만든 것의 일부이다. 컨닝으로는 배우기 힘든 것이다. 요즘 미국놈의 자작극을 컨닝으로 배워 외우는 놈들이 꽤 많아지고 있다. 이길 수 없는 6월 선거를 북풍 (공안) 분위기에서 치루어 보겠다는 것일 것이다. 북침 훈련 도중 배의 이상을 미군에게 보고하지 않고 달려 도망 나오다 이것을 예상하지 않았던 미 잠수함이 부상하면서 갈라놓은 배를 북의 소행이라고 억지를 쓰는 꼴을 보니 참 애처로울 따름이다 . 자국 졸병들은 죽게하면서 미군을 구하려다 죽은 해군준위를 위해 국민과 대기업이 영웅화하도록 하는 꼴은 더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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