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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다 이사오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특집 3 | 다카하다 이사오의 애니리얼리즘

제목: 무엇을 상상하든 현실을 그린다

전문: 미야자키 하야오와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큰어른으로 존경받는 다카하다 이사오는 애니메이션계의 전무후무한 다큐멘터리스트다. 국내 개봉하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통해 그의 작품들이 추구해온 극사실주의를 만날 수 있다.

1989년. 스튜디오 지브리가 한창 <마녀 배달부 키키>를 만드느라 분주하던 시기였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은 문득 '왜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간 지브리 작품 대다수의 프로듀서로 일해온 스즈키 도시오는 다카하다의 생각을 듣고는 영 감이 오질 않아 대답을 꾸물댔다. "좋기는 한데..." 며칠 뒤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소 만화가 스기야마 시게루의 작품 <팔백팔 너구리>를 좋아했던 터라 '토토로와 팔백팔 너구리'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1992년 너구리 얘기가 다시 불거졌지만 미야자키는 한창 <붉은 돼지>를 진행하고 있었고 누군가 대신 할 사람이 필요했다. 생각난 사람은 뻔했다. "너구리에게 경의를 표하고, 관객을 박장대소하게 해줄 것"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미야자키가 프로젝트를 넘긴 석 달 후 다카하다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시나리오를 써왔다. '너구리'라는 한마디에 자극받고 일로매진, 2년 후인 1994년엔 제작까지 마쳤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카하다는 "왜 하필 이 시대에 너구리인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고 매번 이렇게 대답해 왔다. "너구리도 지금 이 땅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중제: 가장 일본적인 애니메이터

1935년 생인 다카하다 이사오는 특이하게도 도쿄대 불문학과를 나왔다. 중학생 시절 폴 그리모의 애니메이션 <왕과 새>를 보고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에 매료됐던 이 전후 세대의 모범생은 대학 졸업 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였던 도에이동화에 입사했다. 5년간의 조수 생활을 거친 후 맡은 첫 연출작은 <늑대 소년 켄>이라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후 다카하다는 야심 차게 준비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태양의 검을 지닌 소년 호루스가 아버지 유언에 따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악마의 재앙을 물리친다는 내용은 그때까지 유아적 성향의 애니메이션이 지배적이었던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열악한 제작 과정을 극복하고 3년 만에 완성한 이 작품은 아쉽게도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다루는 다소 무거운 줄거리 때문인지 무참하게 흥행 실패했다. 다행히 이 작품을 통해 평생 친구이자 동료가 된 후배 애니메이터를 건졌으니 그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 후 도에이에서 퇴사해 A 프로덕션, 즈이요 영상, 니폰 애니메이션사를 돌아다닌 9년간 다카하다는 지금까지 감동의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다수 연출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 지금껏 한국의 중년들에게 유년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된 작품들이 바로 다카하다의 대표적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다카하다는 수더분한 외모에서 연상하기 어렵게 꽤 현실 참여적이고 정치적인 면이 있다. 미야자키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 당시 프로듀서로 참여한 다카하다는 이런 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미야자키와 함께 제작사인 도쿠마 서점 측에 "애니메이터를 일회용 취급하지 않는 책임 있는 제작 시스템"을 제안했고 그로 인해 스튜디오 지브리가 탄생됐다. 다카하다는 미야자키와 지브리를 꾸려가는 한편, 80년대에 본격적으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키 에츠미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자린코 치에>(1981)는 오사카가 배경으로, 순정파 야쿠자인 아버지와 그의 불행한 어린 딸 치에의 이야기다. 일본의 국민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유명한 동화가 원작인 <첼리스트 고슈>(1982)는 지방 교향악단에 소속된 어느 첼리스트의 음악 세계를 다룬다. 클래식광이기도 한 다카하다의 취향이 물씬 묻어나는 이 작품과 전작 <자린코 치에> 모두 결국은 일본과 일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이후에 만들어진 <반딧불의 묘>(1988), <추억은 방울방울>(1991),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이웃의 야마다군>(1999)에 이르기까지 다카하다 리얼리즘이 보여 준 격조는 상당했다. 일본의 현재와 과거를 다루면서도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팬들에게 신뢰와 감동을 안겨줬다. 서양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던 여타의 일본 애니메이션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다카하다의 작품 속엔 탁월한 현실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카하다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국내 정식 개봉하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이런 다카하다 애니메이션의 요소들과 다양한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 종합판이다.

중제: 변신 너구리가 대변하는 인간사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1994년 일본 개봉 당시 디즈니 <라이온 킹> 흥행을 누르고 그해 일본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다카하다 이사오 최고의 흥행작이다. 제작 당시 일본 곳곳에서 너구리들의 시체가 증가하고 그 가운데 80%가 먹이를 찾으러 도로변에 나왔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갔던 실제 상황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도쿄 근교의 타마 구릉 지대. 인간들이 인구 분산을 위해 주택을 늘리려고 '뉴타운 프로젝트'를 추진하자 이 지역 너구리들은 생존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살아야겠기에 너구리들이 일어선다. 그간 인간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금지돼 왔던 변신술을 부활시키고 '인간 연구 5개년 계획'을 추진해 인간이라는 위험한 동물을 제대로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너구리 원로들은 우선 외부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전설의 세 장로를 찾는 사자를 급파하고 나머지 너구리들은 변신술을 익힌 후 나름의 게릴라 작전으로 인간들의 공사장을 급습한다. 하지만 투쟁은 그리 쉽게 먹혀들지 않고 공사는 중지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멀리 시코쿠 지방에서 전철을 타고 도착한 전설의 너구리 장로 세 명이 나타나 변신술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요괴 대작전'을 주도한다. 변신 너구리들이 갖은 기를 모아모아 도심 주택가에서 벌이는 '요괴 대작전'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백미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 담긴 기발함의 원천은 결국 너구리 사회에 대한 세밀한 설정과 묘사에서 비롯된다. 너구리 공동체는 사실 인간 사회와 매우 유사하다. 위기 시에 원로 너구리들이 무리의 미래를 위해 회의를 거듭한다. 인간과의 투쟁을 외치는 강경파와 인간들에 대한 자세한 공부가 선결 조건이라는 온건파도 존재한다. 그런데 인간들의 동정을 살핀다는 취지로 숲 속 산사에 TV를 구해놓곤 하루종일 TV를 보며 놀기 바쁜 낙천적인 성격의 너구리들이 변신술을 감행한다니 어딘가 아슬아슬하다. 과연, 그들의 변신은 거의 장난 수준이다. 변신하는 대상이 어처구니없게도 고양이나 여우, 돌부처상 아니면 밥솥, 냄비 같은 단순한 것들이고 어쩌다 인간으로 변신해 도시 적응 훈련을 나가면 금세 기운이 딸려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생길 지경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변신술 유지를 위한 건강 드링크제를 마시는 너구리들을 보고 있으면 귀엽다 못해 안쓰럽다. "인간들을 전부 다 쫓아버려야 해요? 그럼 튀김은 누가 줘요? 꽁치 조림은?"이라며 반문하는 천진난만한 너구리들을 보고 있으면 이래서야 어찌 험난한 세상을 버텨내겠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이런 요절복통 너구리들의 일상 속에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메시지를 슬쩍 끼워 넣는다. 지나치게 강압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게 교묘한 선을 유지하는 다카하다의 연출은 대가다운 공력이 느껴진다. 다카하다는 위기에 몰린 너구리들이야말로 사실상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 일본인들임을 어렵지 않게 은유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제: 날카롭고 풍성한 현실 감각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보여지듯 "무엇을 하든 현실을 반영한다"는 다카하다의 강한 신념은 물론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TV 시리즈를 만들던 시절부터 내면 깊숙이 자리한 현실 감각이 날카로우면서도 풍성하게 커나가도록 스스로 애써온 것이다. 그 때문에 다카하다 이사오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판타지에 집중해온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표현하는 이미지와 내용은 모두 현실을 아우르는 리얼리즘에 기반한다. 공상과학, 미소년과 미소녀 이야기, 로봇, 마법의 세계 등 수많은 일본 상업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지향하는 길에서 벗어나 그가 걷는 외길은 특별하다. '일본' 그 자체를 애니메이션의 중심에 두는 방법을 취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문화와 사회를 애니메이션 속에 반영하는 세밀한 현실 감각 때문에 다카하다는 세계 애니메이션계에서 일가를 이룬 리얼리스트로 통한다. 1985년 연출한 그의 실사 다큐멘터리 <야나가와의 운하 이야기>에도 다카하다 세계의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미야자키와 함께 현장 취재에 나선 이 다큐멘터리는 한 사람의 행정 직원이 오염된 야나가와 강을 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그 지역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킨다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은 실제 환경 오염이 극심하던 당시 일본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카하다 애니메이션 세계와 일맥상통한다. 애니메이션으로선 보기 드물게 태평양 전쟁을 다룬 <반딧불의 묘> 또한 다카하다가 노사카 아키유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현한 작품이다. 전쟁 고아가 된 어린 남매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다카하다의 시선이 드러난다. 1985년 일본 개봉 당시 평단에선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전후의 이미지를 봐야 하느냐"는 혹평과 "가슴 아프게 리얼한 반전 영화"라는 평가가 오갔다. 하지만 다카하다의 연출 속엔 단순히 참혹함이 불러온 슬픔에 대한 묘사뿐 아니라 참혹함에 묻혀버린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스며 있다. <반딧불의 묘>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의 토토로>와 동시에 개봉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두 감독이 자신들이 속한 세계를 다루는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결국 일본의 과거를 돌아보며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려는 의도는 같은 것이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다에코가 자아를 찾아 시골로 떠나는 여행을 다룬 <추억은 방울방울>도 다카하다의 비상한 현실 감각이 녹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과거를 떠올리며 미래를 고민하는 20대 여성의 진심을 끌어내는 드라마인 동시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격려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다에코가 찾아간 시골 풍경 속엔 사실상 80년대 초기 방황하는 일본 젊은 세대들의 모습, 당시 농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붐이 일었던 유기 농업에 대한 이야기 등 현대 일본의 여러 단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중제: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냉정한 리얼리스트

다카하다 애니메이션이 지닌 독보적인 일상성의 바탕은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현지 취재를 반영하는 부지런함과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TV 시리즈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제작할 땐 알프스의 풍경을 그려내기 위해 스위스 현지 로케이션 헌팅을 감행했을 정도다. 이뿐 아니라 <엄마 찾아 삼만리>의 아르헨티나, <빨강머리 앤>의 무대가 되는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 <자린코 치에>의 오사카 등 자기 작품의 무대로 삼을 지역에 무조건 사전 로케이션을 강행해 치밀한 취재를 하는 다카하다의 작업 방식은 대단히 도전적인 것이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도 이런 작업 방식은 지속됐다. <추억은 방울방울>은 실제 존재하는 야마가타 현의 잇꽃 재배 농가가 배경이다. 다카하다는 그곳에 사는 가정을 직접 방문해 비디오 촬영하고 그림으로 재현한 덕에 <추억은 방울방울>에 등장하는 농촌의 싱그러운 햇살과 푸근한 정취, 산등성이의 붉은 노을 빛은 예사롭지 않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만이 아니라 생활감 넘치는 풍경"을 원했던 다카하다는 너구리가 출몰하고 있는 도쿄 근교의 타마 구릉지를 방문해 너구리 보호와 자연 환경 보전을 실천하는 단체를 취재했다. 미야자키의 작품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도 거대한 오무를 피하기 위한 탑 등 공동체 생활을 반영하는 여러 공간이 묘사돼 있다. 이것 역시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다카하다의 조언과 작업 방식의 영향이다.
현지 로케이션 취재를 통한 사실적인 배경과 철저한 일상 묘사에 관한 한 다카하다는 거의 타협을 모른다. 그로 인해 생겨난 다카하다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포토 리얼리즘에 가까운 화면이다. 다카하다는 "어떤 하나의 세계를 믿게 하려면 아무리 가상 세계라도 강한 현실감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람들은 그렇다면 실사 영화를 만들라고 했지만 나는 애니메이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딱 잘라 설명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무의식을 설명할 순 없을지라도 다카하다 이사오가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애니메이터로서의 자질과 덕목을 갖추고 꾸준히 작업해온 사실주의자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는 없을 듯하다.
다카하다의 최신작인 <이웃의 야마다군>(1999)은 제목이 말해주듯 이웃처럼 친근한 일본인 가족의 일상을 그린다.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이시이 히사이치의 동명 네 컷 만화가 원작이다. ""네 칸 만화는 갑자기 끝난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그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용도 그림도 단순함을 지향한다"고 말한 다카하다는 그동안 수작업을 해온 것과 달리 이 작품의 제작 과정 전 부문에 컴퓨터 작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카하다의 이전 작품이 그렇듯 <이웃의 야마다군>의 모든 것은 잔잔한 일상에서부터 출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의해 발견된다. 삶을 표현하는 방법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다져진 다카하다의 이상은 변하지 않는다. 막 결혼해 인생의 항해를 시작한 신혼부부가 봅슬레이를 타고 세상을 질주하고 그들이 질주하는 장소가 5단짜리 웨딩 케이크 위임을 발견하게 될 때 다카하다가 만든 소우주는 유쾌하고 현명한 일상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산이 뭉텅뭉텅 파이고 아름다운 위성 도시 '뉴타운'이 건설된다. 이 풍경을 보던 너구리가 한마디 한다. "야, 인간은 대단한 것이군요. 여태 우리 같은 동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인간과의 한판 승부에서 너구리들이 승리를 거뒀으면 좋으련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 그런 통쾌함은 없다. 모처럼 작정하고 벌인 요괴 대작전은 인간들에게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너구리들은 마지막 남은 기를 모아 환상적인 옛 도쿄의 풍경을 만들어내지만 그건 곧 아스라한 기운 속에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 너구리와 인간은 결국 대화할 수 없지만 두 존재 모두 어쩔 수 없이 골치 아픈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생물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등하게 묘사된다. 다카하다 이사오는 말한다. "나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적 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때때로 많다는 사실에 넌더리가 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술에 취하듯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안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뿐 아니라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통틀어 다카하다 이사오 같은 리얼리스트의 존재는 희귀하다. 진정 아낌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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