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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복싱의 진화 혹은 멸종

“링 위에 오르면 심장이 뛴다. 이 기분을 돈으로 따질 수 있을 것 같은가?”

 운동을 복싱처럼 할 수 있을까?

 

 

프로복싱의 진화 혹은 멸종

[스포츠2.0 2006-09-01 17:31]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김정범. 아직 세계챔피언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사진 한상무)

“세계챔피언이요.” 1986년 한국갤럽이 전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장래의 꿈을 조사했을 때 대부분의 사내아이들은 서슴지 않고 ‘세계챔피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보다 구체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을 물었을 때는 아이들의 입에서 ‘박종팔’ ‘유명우’ ‘장정구’ 등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사내아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뿌듯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아이들과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청소년들도 꽤 많았다. 그들 중에 김종성(38,회사원)씨도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가족의 미래에 관해서는 대학교 4학년생만큼이나 고민이 많았던 김씨는 세계챔피언이 돼 병석에 누운 아버지와 좌판에서 생선을 팔던 어머니께 큰 집을 선물하고 싶었다. “당시 프로복싱은 지금의 로또와 같았다. 한 방에 인생역전이 가능했으니까.” 김씨의 말대로 당시 프로복싱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부를 쌓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름길이었다. 이 지름길에 들어서고자 많은 청년들이 복싱에 입문했고 복싱체육관은 그들이 토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결과도 좋았다.

1966년 김기수가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15회 판정으로 이기며 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이후 한국은 유제두, 홍수환, 김태식, 박찬희 등 수많은 세계챔피언을 배출했다. 비단 세계챔피언만이 아니었다. 동양챔피언은 세계챔피언보다 훨씬 더 많았다.

1986년 세계복싱평의회(WBC)산하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챔피언은 모두 15명. 그 가운데 한국인챔피언이 무려 10명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태국, 필리핀에서는 웬만한 세계챔피언에 비해 더 후한 대접을 받곤 했다. 슈퍼웰터급 동양챔피언 백인철같은 선수는 WBA밴텀급 챔피언 박찬영 보다 더 많은 인기를 끌면서 상당한 액수의 파이트머니를 받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복싱의 맹주였으며 세계복싱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호였다. 다른 나라 복서들에게 존경을 요구하고 두려움을 주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6년.

 

복싱을 모르는 세대

“세계챔피언? 이탈리아요.” 김씨의 큰 아들 재연(11)은 세계챔피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탈리아’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현재 세계챔피언이 누군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이번 월드컵 우승국이 어딘지 아느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세계챔피언이라는 단어는 복싱이 아니라 축구에 쓰여야 제격이었다. 게다가 복싱이 어떤 스포츠인지 조차도 모르는 눈치였다.

“요즘 아이들은 복싱이 뭔지도 몰라요. 20년 전과는 천지차이죠.” 김씨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작 20년 전과 비교해 천지차이로 바뀐 건 복싱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아니다. 바로 복싱 자체가 천지차이로 변했다.

한때 세계챔피언을 동시에 5명까지 보유했던 한국프로복싱은 단 한명의 세계챔피언도 보유하지 못한 무관의 제왕이 된 지 오래다. 김씨가 가족들의 미래를 책임져 줄 유일한 희망으로 믿었던 복싱은 이제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의 지름길로 작용하지 않는다. 복싱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에서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챔피언 한명 없으니 당연한 일이죠.” 복싱마니아라고 자처하는 김씨가 아쉬운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김씨의 진단은 옳았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복싱에 챔피언 한명 없으니 그 인기가 회복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김씨가 모르는 게 있었다. 아직 한국에는 챔피언이 있다는 사실을. 비록 세계챔피언은 아니지만 벌써 3차 방어전까지 치른 동양챔피언이 있었던 것이다.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김정범(류명우 범진체육관)이 그 주인공이다.

 

유일한 동양챔피언, 김정범

8월 20일 김정범을 만나기 위해 서울 구로구에 있는 ‘류명우 범진체육관’을 찾았다. 그러나 체육관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양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는 체육관 정도라면, 게다가 22년째 같은 건물에 있다면 인근 주민들 사이에선 그 위치가 꽤 알려졌을 법도 한데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체육관으로 몇번이나 전화를 건 후에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체육관은 얼핏 보기에도 지은 지 30년은 더 돼 보이는 4층 건물의 3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에 설치된 전등은 숨이 끊길 듯 작은 빛만을 토해 내고 있어 조심스레 발을 내딛지 않으면 복도를 가득 적시고 있는 물 때문에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조심스럽게 4층까지 올라가 체육관 문을 열었지만 요란한 줄넘기 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예상했던 기대와 달리 안은 매우 조용했다. 게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청소기가 그 모든 소리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때 두 사내가 다가왔다. 한 사내는 40대 후반의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이었고 그 옆에 있는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사내는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김정범을 찾아온 사람들인가?”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의 사내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그가 류명우 범진체육관의 관장 김정표(48)씨였다. 김관장은 옆에 있는 청년의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선수가 김정범이다.” 김관장의 소개를 받은 청년이 예의를 갖추려는 듯 선글라스를 벗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 눈두덩이 상처에 꿰맨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경기 끝난 지 얼마 안돼서….” 김정범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김정범은 8월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동양타이틀 3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야마모토 다이고로(29)를 7회 1분49초에 TKO로 이겼다.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니 멍이 남아 있을 만도 했다.

“정범이는 일본킬러다.” 김관장이 전적표에 빨간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범이는 2004년에 당시 챔피언이었던 사다케 마사가즈(일본)를 오사카에서 2회 KO로 이기면서 동양챔피언이 됐다. 그 후로 일본 시즈오카에서 가시와기를 상대로 1차 방어에 성공했고 이번 3차 방어전에서 다시 일본에서 일본선수를 때려눕혔다. 역대 챔피언들을 봐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김관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복싱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홈어드벤티지가 승부를 크게 좌우하는 스포츠다. 복싱인들은 ‘안방에서 경기하면 잽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정경기는 그 반대다. 1975년 유제두와 와지마 고이치전 이후 일본 원정경기는 39전 13승1무25패를 기록하고 있다. 기록에서 보듯 완벽한 열세다. 하지만 김정범에게 이같은 기록은 낡은 표어와 같은 것일 뿐이었다.

“이걸 보라. 거기다 지금까지 모두 KO로 이겼다.” 김관장이 다시 한번 전적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김정범의 통산전적은 29전 25승 1무 3패. 25승 가운데 KO승이 21차례다. 사다케를 KO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따낸 뒤 3차 방어전까지 모두 KO승을 거뒀다. 역대 동양챔피언과 비교해 볼 때 최상의 기록이다. 이상호 MBC 복싱 해설가는 “김정범은 화려한 테크닉과 가공할 펀치력도 돋보이지만 프로복서로서 쇼맨십도 갖춘 선수다. 상품성이 충분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상품성이 좋은 동양챔피언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동양챔피언이라면 웬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던가. 어째서 복싱인들 조차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것일까?

“이유야 간단하다. TV에 나온 적이 거의 없으니까.” 김관장은 여기서부터 한국프로복싱의 암담한 현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명의 동양챔피언

과거 프로복싱 중계는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광고도 많이 붙었다. 세계타이틀전뿐만 아니라 동양타이틀전만 열려도 방송국들은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이곤 했다. “프로복싱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던 1970~80년대에도 타이틀전만으로 흥행에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다. 정작 수익을 안겨준 건 방송이었다. 당시 중계권료가 1억 원에 이를 정도였다.” 한보영 MBC-ESPN 해설위원의 회고다.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른바 ‘김현치 시절(트레이너였던 김현치가 프로모터로 나서 활동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방송사들도 타이틀전을 중계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지만 경기를 유치하려는 지방간 경쟁도 치열했다. 각 지방에서는 서로 타이틀전을 끌어오기 위해 로비를 벌였고 경기를 주관하는 프로모터들은 지역안배까지 고려해야 했다. 타이틀전만 열리면 스폰서는 쉽게 붙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방송국에 돈을 줘야 하는 시대다” 한위원의 설명이다. 방송국에 돈을 줘야 한다니?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복싱을 누가 방송해 주겠는가. 세상은 변했다. 세계챔피언이 많은 태국에서조차 방송국에 돈을 주고 방송을 부탁하는 실정이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복싱에서 공격하다 지치면 1분 안에 회복한다. 그러나 맞다 지치면 10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정범의 훈련은 실전보다 치열하다.(사진 한상무)

사실 지상파 방송사에서 프로복싱을 중계하지 않은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세계타이틀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프로복싱경기는 스포츠 케이블방송을 통해 중계되든지 아니면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세계타이틀전 역시 공중파 방송사로서는 달가운 프로그램이 아니다. “2000년 들어 세계타이틀전의 시청률은 거의 바닥이다. 이를 방송하느니 차라리 주말연속극을 재방송하는 게 시청률 면에서 낫다.” 한 지상파 방송편성자는 예전의 프로복싱 열기는 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실제로 세계타이틀 매치를 심야에 녹화방송 하려고 한 적이 있다. 열렬 복싱팬들의 항의가 빗발쳐 계획을 철회했지만 국내 유일의 세계 챔피언이었던 지인진(34,대원체육관)이 지난 1월 29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도전자 고시모토 다게시와(일본)에게 타이틀을 빼앗긴 이후 자연스럽게 프로복싱 중계를 하지 않게 됐다.

세계타이틀전도 중계를 마다하는 상황에 동양타이틀전을 중계하겠다는 방송사가 있을 리 없다. 따라서 한국 유일의 동양챔피언 김정범을 복싱팬들 조차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방송중계의 문제는 팬들이 김종범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 중계가 되지 않는 마당에 어느 지역에서 타이틀전을 유치하겠다고 나서고 누가 스폰서가 돼주겠다고 손을 들겠는가. 이런 상황에 어디서 대전료를 만들 수 있겠나. 그러니까 국내선수들이 질 각오를 하고 해외로 나가 타이틀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위원은 덧붙여 “지인진이 일본에서 경기에 이기고도 판정패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파링 파트너가 없다

김정범은 1979년생이다. 1996년에 프로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복싱경력 11년 째다. 과거의 잣대로 평가한다면 김정범은 백전노장이다. 대개의 선배 복서들은 15전 안에 동양챔피언에 오르고 20전 안에 세계챔피언이 됐다. 2004년 26전 만에 동양챔피언에 오른 김정범은 선배 챔피언들에 비해 늦어도 한참 늦은 경우다. 게다가 현재 WBC 세계랭킹 14위라 언제 세계타이틀전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가장 다급한 사람은 김관장이다. “나이도 있으니까 2년 안에 세계타이틀에 도전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시급한 문제는 세계타이틀전이 아니다.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려면 그 만큼 많은 스파링을 벌이며 훈련에 매진해야 하는데 그게 여의치 않다.

“선수가 없다. 정범이의 경우 스파링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국군체육부대에 들어가 번번이 신세를 지고 있다. 거기 가서도 2~3명씩 묶어서 스파링을 해야 한다. 4회전 이상 뛰어 본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3분 3회전씩 3명의 선수를 상대로 스파링을 하는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과거 같으면 체육관 안에서 스파링파트너 조달이 가능했고 다양한 선수들을 상대로 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군체육부대가 유일하다. 아마추어복서들이 있는 대학은 스파링파트너로 응해 주지 않는다. 그나마 국내 최고의 복싱체육관으로 불리는 ‘유명우 범진체육관’에서조차 실제 선수로 뛰는 복서는 5명에 불과하다.

이 중 복싱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을 제외하고 김관장의 말대로 4회전 이상을 뛴 선수를 꼽으라면 김정범을 제외하고 2명뿐이다. 하지만 이들도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 김정범이 유일한 프로복서다. 국군체육부대가 아니었으면 김정범의 유일한 스파링 파트너는 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 프로 복서가 있는 체육관은 전국에서 5개 가량이다. 그런데 그 체육관에서도 선수가 없다고 걱정이다.” 김관장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프로복싱은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개점휴업 중이다. 12회전 경기는 고사하고 4회전 경기도 전무한 실정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게 한국프로복싱의 현실이다. 초보선수들은 4회전부터 착실히 경험을 쌓고 올라와야 한다. 그러나 경기가 없으니 좋은 선수들이 나올 리 없다.”

그러나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취재 전 조사해 본 결과 김관장의 말과는 달리 현재 복싱계는 부흥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복싱체육관은 밀려드는 수강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실제 1986년 3,543명이던 아마추어 등록선수가 한때 1,824명으로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 2,500명대로 증가한 것을 봐도 복싱의 침체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한국권투위원회(KBC) 등록선수 가운데 10회 이상 경기를 할 수 있는 A급 선수가 2005년 26명으로 줄었다가 올해 다시 31명으로 증가한 것도 김관장의 말과는 다르다. 지나친 우려가 아닌가?

“현재 복싱은 헝그리스포츠에서 생활스포츠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김관장의 평가다.

 

생활스포츠로 변신중인 복싱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변정일 복싱클럽(관장 변정일)’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복싱체육관이다. 300평의 체육관 규모도 입이 벌어질 정도지만 회원수가 400명이 넘는다. 체계적인 훈련법과 세계챔피언 출신의 관장이 운영한다는 소문 때문에 요즘에도 신입회원이 끊이지 않는다.

‘변정일 복싱클럽’의 박진환 코치에 따르면 유사 체육관이 하루에도 두 세개씩 증가하고 있다고. 그러나 이 복싱클럽은 엄밀한 의미에서 과거의 복싱체육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피트니스클럽에 가깝다.

“회원수 400여명 가운데 여자회원이 40%에 이른다. 운동 목적도 다이어트와 건강 증진에 쏠려 있다. 남자회원들도 마찬가지다. 프로복서는 한 사람도 없다.”

출산 후 살을 빼기 위해 6개월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는 김관(26,주부)씨는 “8㎏정도 다이어트를 했다”며 “진짜 복서들처럼 원투스트레이트 뻗으면서 신나게 땀을 흘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는 ‘유명우 범진체육관’도 다르지 않다. 김관장은 하루에 30~40명 가량의 관원들이 나오지만 복싱을 단순 취미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라고 밝혔다.

박코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복싱다이어트 열풍은 앞으로도 지속 될 것으로 보인다”며 “대신 프로복싱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살아있는 스포츠 ‘복싱’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김정범은 자신이 처한 외부환경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희망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동양챔피언에 오르며 자비로 만든 50만 원짜리 챔피언벨트를 만지작거리며 세계챔피언의 꿈만을 이야기했다.

한국권투위원회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한위원은 “구태를 벗지 못하고 파벌 싸움으로 일관하던 한국권투위원회도 새로운 회장단이 구성되면서 점차 변해가고 있다. 한국프로복싱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확실하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한다면 예전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유일한 스포츠인 복싱의 명맥은 어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며 “장래성이 있는 선수들을 집중 육성하고 이들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야 한다. 김종범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종범에게 물었다. 일년에 한,두번 벌어지는 동양타이틀전으로 손에 쥐는 돈은 2천만 원에 불과한데 어째서 복싱을 고집하느냐고. 먹고 싶은 것 억누르고 가고 싶은 곳 참으면서 하루 종일 복싱에 전념해도 미래가 불투명한데 무엇 때문에 글러브를 손에서 놓지 않느냐고. 과거의 헝그리스포츠 복싱이 21세기에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남들처럼 차라리 인기도 좋고 대우도 좋은 ‘K-1’이나 ‘프라이드FC’와 같은 이종격투기로 진출하지 그러느냐고.

김정범은 링 위에 오르기 전 붕대로 손을 감으며 이렇게 말했다.

“일년에 한,두번 정도 하는 이종격투기 뛰어 봤자 얼마 벌지 못한다. 그러나 프로복싱은 아직 죽지 않았다. 세계챔피언만 돼도 몇 십억 원을 벌 수 있다.”

고작 그것 때문인가? 김정범은 잠시 침묵하다 링 위에 오르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링 위에 오르면 심장이 뛴다. 이 기분을 돈으로 따질 수 있을 것 같은가?” 아마도 김정범의 심장이 왼쪽에서 뛰는 한 그가 링 아래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처럼.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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