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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투쟁

3.21 서대문에 도착했을 때 지상에서는 소복입은 여성노동자들의 비명이 울리고 허공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플랑과 세명의 노동자가 매달려 있었다. 집회 중간중간 노동자들은 웅크려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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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악센트가 찍힌 여성노동자란 지칭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선 '연약한' 등의 불필요한 수사어를 동반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성노동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투쟁을 특수하게 인식하는 것이 과연 어떤 운동적 의미를 지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전에는 자본주의에서 여성노동의 성격과 성구별에 따른 노동착취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물음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노동운동에서 특정한 운동전략을 요구하는 것인가의 문제(노힘 기관지에 노동운동에서의 여성주의 전략이란 글이 실렸다)와 그렇다면 여성운동과의 관련성 경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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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투쟁조끼에 쓰여진 조직명칭이 길어서 한참을 보았다. 화장실 갔다 만난 조합원 두명과 얘기를 나눴다.

"노조는 설립된지 얼마안됬나 봐요."

-네 작년에 만들어졌어요

"동지들이 요구하는 특별기능직은 뭔가요, 정규직화인가요?"

-아뇨 지금도 정규직이에요, 사람들이 비정규직의로 오해를 많이해요.

"올라간 동지들은 간부들인가요"

-한명은 부위원장, 지부장들이에요.

"전국공무원노조랑은 별개의 조직인가봐요?"

-네 다른거에요. 경찰청에서 노조만든데는 우리가 첨이예요.

 

올라가는 내내 낙사할 것만 같은 공포를 감수하고 거기에 올라간 이유는?

'똑똑히 잘 보라고, 우리의 투쟁을'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기 때문에 오른다.

 

수많은 사회 이슈가 날마다 팡팡 터지는 속에서 작은 투쟁들은 대중들에게 쉽게 알려지지 않고 또 결과와 무관하게 잊혀지고 더러는 매장된다. 2,3년 전에 특히 비제조업 분야에서 봇물터지듯 크고 작은 비정규직의 노조결성과 투쟁의 물결이 일었다. 허약한 노조들은 거의 해체됐고 그나마 제대로 싸운 투쟁은 주체 몇명이 활동가로 남았다. 대부분이 계약해지와 부당한 재계약에 맞선 투쟁이었고 거의가 한번쯤은 고공농성같은 이슈투쟁을 전개했다. 싸우는 자본이 크던 취약하던 해결될 기미가 안보이면 이슈화와 사회쟁점화를 위한 전술을 고안하고 본사빌딩에 매달리고 단식을 하는 등  결사적 의지를 보여주는 투쟁으로 사측을 압박했다.  

 

세명의 노동자들은 11시간만에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옆에 있던 한 동지는 '노조관료들이 계급투쟁의 완충장치로 기능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 투쟁'이라며 분개했다. 나도 도착해서 투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내려올 시점과 명분을 저울질 하느라 연맹관료들이 벌인 브로커 짓을 같이 보았기에 맞는 말이라고 끄덕였는데 문득 우리에게는 관료들에 의해 접힌 투쟁이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막 투쟁하기 시작한 경찰청 고용직 동지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3명의 동지들이 내려왔을때 조합원들의 반응을 놓쳤지만 그리고 연맹관료들의 영향력이 물리적 의식적으로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그 동지들의 판단과 결정이 아예 배제된 투쟁이 아니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모든 투쟁의 경험이 노동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투쟁이라도 노동자들을 단련시킬수도 패배감에 찌들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끝까지 미는가 아닌가, 많이 따냈는가 아닌가라는 문제라기 보다 투쟁을 둘러싼 전반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실제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 목적성을 띤 투쟁임에도 결국은 주체들의 기억 속에 그 투쟁이 어떻게 남겨지냐가 더 큰 문제일 수있다. 그래서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평가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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