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번역가 지망생의 비망록(備忘錄)

  • 등록일
    2009/12/27 20:10
  • 수정일
    2010/09/13 21:19

제목이 너무 거창한가^^; ? 최근에 재미삼아 해 본 적성테스트에서는, 나한테 맞는 직업 중에 '작가'가 첫째였다. 뭐라더라?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독립적/창조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맞다나......꼬부랑 글씨여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몇달 전에 산 '번역은 글쓰기다'(이종인 지음)라는 책을 가끔 꺼내어 읽곤 하는데, '번역은 글쓰기'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번역가도 엄연한 작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번역가가 되고 싶은 나는 일단 적성 검사는 통과했다고 생각하련다. 

 

어쨌거나, 아래의 두 번역물은, 번역이 결코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내가 번역을 했더라도 두 번째 번역자만큼 잘 했을 거라는 장담은 못하겠다고 고백하면서 시작하련다. 아마 내가 번역했다면, 꼬박 하루는 걸렸을 것이고, 적절한 한국말을 찾으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어렵다'는 한탄을 계속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첫 번째 번역자의 것보다도 못한 누더기같은 번역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겸손도 자기 비하도 아닌 냉정한 분석이며, 번역, 특히 의역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나 자신의 번역 실력 향상을 꾀한다는 목표아래, 지금부터 건방진 비판을 시작하겠다. 아래의 문장들은 Roberta Flack이 부른 노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에 대한 두 번역자의 땀방울들이다.(글을 가져와 비판까지 하면서 해당 글의 작성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이, 윤리적,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으므로, 글에 대한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내 할 도리는 한 것 같다. 내 생각이 영 마뜩치 않다면, 주저 없이 공격해 주시길 바란다. 열심히 생각하고, 관련 규정을 찾아보고, 그리고 내 정신적인 멘토이신 그 분(?)께 상담까지 한  다음에, 답글을 올리겠다.)

 

1.  첫 번째 번역자는 주어를 뭉개버렸지만, 두 번째 번역자는 주어를 분명하게 살리고 있다. 아래의 문장을 살펴보자. 첫 번째 번역물의 주어가 뭔지 볼수록 궁금해진다.

 

(a)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내 고통을 그의 손끝으로 가볍게 연주하고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인생을 그의 가사로 노래하며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고 황홀케 하네요

 

얼핏 보면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차릴 수 없다. 그저, 흐느적거리는 리듬에 몸을 맞긴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부드럽게 넘길 수도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두 번째 번역물을 보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b)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삶을 이야기하듯이 노래하고 있었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두 번째 번역물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속으로 '바로 이거야'를 외치며 뭔지 모를 꿈틀거림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다가 정신적인 쾌감으로 이어지는 걸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 '떨림'을 느꼈다.

적절한 한국말의 사용과 자연스러운 문장 구조의 채택이 독자에게 원곡의 느낌을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말이다.

저 두 번째 번역물을 통해서 작사/작곡가가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전율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나는 그 느낌이 너무나 좋다. 내 번역물이 누군가에게 그런 떨림을 전해줄 수 있다면, 번역자로서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  다른 번역자의 글에 대한 평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계속해보자.

 

2. 생뚱맞은 직역이 번역물의 질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음도 지적해야겠다.

번역 후 그 결과물을 읽고 또 읽었다면, 'Young boy'는 '어린 소년'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고 해야 문맥상 더 적절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번역물을 보지 않았다면, 나 또한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을 짚어내지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3. 적절한 단어의 선택과 보다 더 자연스러운 문장구조의 채택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살펴볼 수 있다. 정답이 없기에 더 어려운 듯 하다.

(a) He sang as if he knew me in all my dark despair
그는 내가 몰래 안 된다고 하는 걸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죠
And then he looked right through me as if I wasn't there
그리고선 내가 그 곳에 없는 것처럼 내가 있는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어요
And he just kept on singing Singing clear and strong 
그리고 그는 맑고 힘있게 계속 노래를 불렀어요

 

(b) He sang as if he knew me
그는 마치 내 어둔 아픔을
In all my dark despair
다 알고있는 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And then he looked right through me
그리곤 내가 그곳에 없다는 듯이
As if I wasn`t there
나를 뚫어지도록 바라보았어요
And he just kept on singing
그리곤 노래를 불렀어요
Singing clear and strong
청아하면서도 웅장한 노래를...
 

 

번역자가 원저자의 느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옮겨놓은 글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일수는 있지만 결코 감동까지 주지는 못한다. 아래의 두 번역물은, 초보 번역가가 넘어야 할 산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종인 님의 책 '번역은 글쓰기다'에 보면, 번역 연습문제가 몇 개 나오는데, 앞으로는 내가 그 연습문제를 직접 번역해보고, 이 종인 님의 번역과 비교해가며 건방진 평가를 계속해 보겠다. 총 8개의 연습문제를 한달에 2개씩 번역/자체평가 할 계획인데, 분량을 보니 결코 많은 건 아니다. 시간 없다는 뻔한 타령은 그만두고, 부딪혀보자. 말하기 처음 배울때 그랬던 것처럼, 수준을 높이려면, 계속 부딪혀야만한다. 1주일에 하나씩 할까??? 음......

 

 

 

 

 Roberta Flack -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YouTube에서 보기)

 

 
2009/10/24 22:22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내 고통을 그의 손끝으로 가볍게 연주하고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인생을 그의 가사로 노래하며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고 황홀케 하네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게 사로잡네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인생을 그의 노래로 말해주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살며시 날 황홀하게 만드네요

I heard he sang a good song
난 그가 근사하게 노래를 부르고
I heard he had a style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And so I came to see him
to listen for a while
그래서 난 잠시만이라도 노래를 들으며
그를 보려고 왔지요
And there he was this young boy 
a stranger to my eyes
거기엔 낯이 익지 않은 어린 소년이 있었어요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내 고통을 그의 손끝으로 가볍게 연주하고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인생을 그의 가사로 노래하며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고 황홀케 하네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게 사로잡네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인생을 그의 노래로 말해주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살며시 날 황홀하게 만드네요

I felt all flushed with fever
Embarrassed by the crowd
난 많은 군중들에게 당황하여
열기로 얼굴이 확 달아오는걸 느꼈어요
I felt he found my letters
그가 내 편지를 발견한것 같았어요
and read each one out loud
그리고는 한 줄 한 줄 큰소리로 읽어내려 갔죠
I prayed that he would finish
난 그가 그만해 주기를 바랬지만
but he just kept right on
그는 계속 읽어 내려갔지요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내 고통을 그의 손끝으로 가볍게 연주하고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인생을 그의 가사로 노래하며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고 황홀케 하네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게 사로잡네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인생을 그의 노래로 말해주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살며시 날 황홀하게 만드네요

He sang as if he knew me in all my dark despair
그는 내가 몰래 안 된다고 하는 걸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죠
And then he looked right through me
as if I wasn't there
그리고선 내가 그 곳에 없는 것처럼
내가 있는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어요
And he just kept on singing
Singing clear and strong 
그리고 그는 맑고 힘있게 계속 노래를 불렀어요

Strumming my pain, singing my life, and killing me,
내 고통을 연주하며, 내 삶을 노래하며, 날 사로잡고,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고 황홀케 하네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인생을 그의 노래로 말해주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살며시 날 황홀하게 만드네요

He was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손끝으로 가볍게 연주하고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인생을 그의 가사로 노래하며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고 황홀케 하네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날 부드럽게 사로잡네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인생을 그의 노래로 말해주면서
Killing me softly, softly, softly with his song
살며시, 부드럽게, 그렇게, 날 황홀하게 만드네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Roberta flack)의 팝송 해석 알려주세요
hsmmansion | 08.07.14 11:29
 
 
비공개 님의 답변
08.07.14 11:32
 
출처 :블로거 rup_325570님의 글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정말 유명한 곡이죠..
가사 읽어보세요~.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삶을 이야기하듯이 노래하고 있었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삶을 이야기하는 듯한
Killing me softly wkth his song
노래로 나를 매혹시켰지요

I heard he had a good song
그가 노래를 잘 부르며
I heard he had a style
멋쟁이 라는 소문을 들었어요
And so I came to see him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To listen for a while
그곳에 들렀었어요
And there he was, this young boy
그런데 그곳에 그사람이 있었어요
A stranger to my eyes
내 눈에는 낯설게만 느껴졌죠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삶을 이야기 하듯이 노래하고 있었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 시켰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삶을 이야기 하는 듯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노래로 나를 매혹시켰지요

I felt all flushed with fever
청중들의 열기에 휩싸여
Embarassed by the crowd
모든 것이 씻겨져가는 것만 같앴어요
I felt he found my letters
그는 마치 내가 쓴 편지를 받아보고는
And read each on-e out loud
큰소리로 읽어나가는 것만 같았어요
I prayed that he would finish
그가멈추어주기를 기도했지만
But he just kept right on
그는 계속해서 읽어나갔어요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삶을 이야기 하듯이 노래하고 있었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 시켰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 시켰어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삶을 이야기 하는 듯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노래로 나를 매혹시켰지요

He sang as if he knew me
그는 마치 내 어둔 아픔을
In all my dark despair
다 알고있는 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And then he looked right through me
그리곤 내가 그곳에 없다는 듯이
As if I wasn`t there
나를 뚫어지도록 바라보았어요
And he just kept on singing
그리곤 노래를 불렀어요
Singing clear and strong
청아하면서도 웅장한 노래를...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삶을 이야기하듯이 노래하고 있었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삶을 이야기하는 듯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노래로 나를 매혹시켰지요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그는 내 고통을 어루만지면서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내 삶을 이야기 하듯이 노래하고 있었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삶을 이야기 하는 듯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노래로 나를 매혹시켰지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 시켰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는 나를 매료시켰어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내 모든 삶을 이야기 하는 듯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노래로 나를 매혹 시켰지요
 

 

 

 

 

 

 

 

 

 

 

 

 

 

 

 

 

 

 

 

출판사 편집부의 의도적(?)인 오역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번역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 편의 에피소드일 뿐.

 

"영어를 가장 잘 쓰는 미국 작가" l 로쟈의 낚시
 

그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2010.06.11 제814호]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 - 뫼비우스

 

 

 

다양한 서평들

http://theasylum.wordpress.com/2007/04/01/james-salter-last-night/

 

http://www.nytimes.com/2005/06/12/books/review/12ZEID.html

 

http://www.enotes.com/last-night-salter

 

http://books.google.co.kr/books?id=vRFB97tis5MC&dq=James+Salter+last+night&source=bl&ots=MIufKMYj3W&sig=QU_Gmio_NSfGfbY5N-xrHuy6GwY&hl=ko&ei=nDEWTNi7BI7Jcb3XjaAM&sa=X&oi=book_result&ct=result&resnum=9&ved=0CF4Q6AEwCA

 

 

 

 

 

James Salter라는 소설가와 그가 지은 'Last Night'이라는 소설의 한국어 번역본 '소개글'에 들어있는 번역에 대해, 로쟈 님의 서재(http://blog.aladdin.co.kr/mramor/3818074)에 달린 댓글을 로쟈 님과 뫼비우스 님의 허락을 얻어 이 곳에 올린다.

 

 

뫼비우스 2010-06-14 16:33  
- 미국에서는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들에게 제임스 설터가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사실은 일종의 신념과도 같다”(리처드 포드)는 평을 받는 대가라고 하니, 이제야 읽게 된 게 좀 억울할 지경이다. -

솔터의 소설이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소개가 되었나보네요. 위의 기사를 보고 의아한 부분이 있어 몇 자 남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평론가 신형철 씨는 억울해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리처드 포드의 평이 잘못 번역되었기 때문이에요. 영미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번역가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오류랍니다.

제가 이 기사를 보고 가장 의아했던건“솔터가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부분인데요. 오잉? 솔터가??“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 리처드 포드가 풀리처 상을 탄 작가이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포드의 스타일, 즉 최근 미국에서 대량 생산되는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이 반복하는 빤한 플롯과 진부한 스타일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그가 그런 이상한 평을 했을까 싶어서 그의 서평을 찾아 봤습니다.

<가디언>지에 짧게 기고한 서평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 It is an article of faith among readers of fiction that James Salter writes American sentences better than anybody writing today. -

여기 서“article of faith”는 마치 신앙처럼 ‘강한 믿음의 대상’을, “readers of fiction”은 ‘소설 독자’, 그리고 “American sentences”는 하이쿠를 본뜬 Allen Ginsberg의 “American Sentences”를 가리킵니다. 이는 함의(implicature)가 있는 표현인데요, 다시 말해 ‘미국 문장’이라는 표현의 함의는 마치 일본의 하이쿠처럼 ‘짧고 정제된 문장’을 말합니다. “생존한”미국 작가라는 말도 문제가 있지요. ‘생존하는’이라면 모를까.

따라서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들에게 제임스 설터가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사실은 일종의 신념과도 같다”는 틀린 번역이 되겠죠.

오역을 바로 잡으면,

“소설 독자들이 신앙처럼 믿는 게 있는데, 그것은 제임스 솔터가 다른 어떤 현존 작가보다 미국 문장(즉 헤밍웨이처럼 짧고 정제된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이다.”

라는 정도가 될 거에요. 물론 이 말은 리차드 포드의 의견이 아니라, 소설 독자들 간에 그런 믿음이 통용되고 있다는 그 나름의 관찰을 피력한 것이구요.

포드가 하고 싶은 말은, 솔터가 헤밍웨이나 포크너 같은 작가들처럼 “gritty”(불쾌한 것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함을 표현하는 단어)한 요소가 없는, 절제되고 정제된 스타일을 구사하는 문장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 소설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gritty”한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흔히 독자들이 “미국 문장”에 대해 생각하는 “article of faith”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죠. 그리고 솔터 자신이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이 단편집에 “gritty subtance”는 없지만, 이것을 제외한 여러 “미국 문장”의 요소들은 그가 아주 잘, 그 누구보다 더욱 훌륭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극구 칭찬하는 평도 아니고 깎아내리는 평도 아닌, 서평하는 사람이 일단 유사시 자신이 도망칠 구멍을 마련해놓는-obscurantism이 스며 있는-영미의 전형적인 짧은 서평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튼,“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뇨. 이 부분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이 책의 번역자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해 역량이 많이 부족해보입니다.(그런데 알라딘 서재 메인 페이지 '알라디너의 선택'에 이 포스트가 실렸네요. 어찌 이런 일이..ㅠㅠ "영어를 가장 잘 쓰는 미국작가"로요. 이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어떻게 솔터가 갑자기 한국에 건너와서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둔갑할 수 있으며, 게다가 이것이 사실로 굳어져 한국에서 유통되면 심각한 일이 아닐까요?) 나아가 솔터의 이번 단편집이 훌륭하게 번역되었으라고 기대하기가 쉽지 않네요.(물론 제 속단이기를 바랍니다.)


로쟈 2010-06-14 19:39 
'미국식 문장'을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보면 되나요? 사실 '영어를 가장 잘 쓴다'는 최상급 표현은 그 자체로 모호하고 주관적입니다. 어느 작가에 갖다 붙이더라도...


뫼비우스 2010-06-14 21:26 
아, 제 글이 포인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모양이네요. (근무 중 짬을 내어 간단히 써보겠습니다--;)

최상급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지금 영어라는 언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앨런 긴즈버그 스타일의 하이쿠식 17음절 산문 문장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식 영어"라고 하면 안 되는거구요.

미국식 영어라고 하면 American English를 가리키고, 이것은 Americanism 을 가리키지요. 어휘, 발음과 억양, 문법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미국식과 영국식의 차이는 대부분 어휘와 억양입니다. 문법적인 차이는 거의 없어요. 이런 건 차치하고라도, 미국 문단의 중견 작가의 작품을 평하며 그 작가가 영어를 잘 쓴다 못 쓴다고 평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죠. 더욱이 역대 작가들 중 가장 영어라는 언어를 잘 쓴다? 라는 의미의 번역이 저로서는 이상해서 찾아보게 된거랍니다.

리 처드 포드는 앨런 긴즈버그의 영어 하이쿠식 문장(잔잔하고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글을 쓰는 미국의 다른 "현존" 작가들 중 솔터만큼 그 스타일로 잘 쓰는 작가는 없다고 믿는 독자들의 어떤 [막연한] 믿음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식 문장'이라고 하면 안되는거죠. 미국식 문장이란 것은 사실 없거든요. 미국식 "영어" 미국에 고유한 어휘나 표현을 제외하고는요. 미국 작가가 미국식 영어를 쓰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그래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쓴다"라고 하면 오역인데, 이 오역의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사소한 오역이야 비일비재하고, 이것이 전체의 내용을 오도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간판으로 내세우게 되면 그릇된 사실이 유통되기 때문이죠.


로쟈 2010-06-14 22:14  
원래는 퓅귄판 <가벼운 나날들>의 해설에 나오는 것 같네요. 인용하신 가디언지의 촌평 요약이 "With his lavish sentences, keen eye for human frailty and occasional heartlessness, James Salter is one of the finest stylists writing today, argues Richard Ford"입니다. 타이틀은 "An American master'이고요. "James Salter is one of the finest stylists writing today"를 직역하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 되겠지만 "가장 잘 쓰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고 이해해도 억지는 아닐 듯한데요...


뫼비우스 2010-06-14 22:45  
지금 일부러 논지를 흐리게 하시려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계속 제 요점을 잘못 전하고 있나요? "생존한 미국 작가 중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번역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제가 솔터가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스타일리스에 속한다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언급하신 그 부분은 저도 익히 아는 바입니다.

그 리고 James Salter is one of the finest stylists writing today.를 번역한다고 해도 그건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 독특한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현재 활동하는(writing today), 혹은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훌륭한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이다."라는 것,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영어라는 언어의 구사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stylist는 단순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문장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며 독특한 영역을 견지해나가는 작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용하여 언급하신 스타일은 솔터의 경우에 바로 American sentences 라는 독특한 스타일이라는 거고요. 이에 해당하는 기사를 위에 인용하지 않았습니까. 이 인용 문장에는 "스타일"이라는 말이 없고 "American sentences"라는 말이 있으며, 저는 이 표현이 오역되었으며, 이 오역의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입니다.


로쟈 2010-06-14 22:49 
역자의 번역이 부정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은 잘해주셨습니다. 한데, 'An American master'라는 게 작가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라면 '가장 잘 쓰는 작가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이해하는 게 억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작가'라는 것과 '잘 쓰는 작가'라는 걸 구별하시는 듯한데, 영어로는 구별해서 쓰는지 모르지만 한국어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오히려 '잘 쓰는 작가'는 테크니션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 도덕적 의미도 함축하는 '훌륭한 작가'보다는 '스타일리스트'에 더 부합하구요. '설터는 훌륭한 작가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설터는 잘 쓰는 작가'라고 말하면 그릇된 사실을 유포하는 게 되나요? 설사 그렇더라도한 한 문장의 번역을 놓고 번역자의 역량을 운운하는 '속단'보다는 '가벼운' 문제 같은데요... 그리고 포더의 서평은 펭귄 모던클래식판의 '해설'을 읽어보고 판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원래는 설터에 대한 '짧지 않은' 서평이네요.


뫼비우스 2010-06-14 23:24  
"부정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히 틀린(!) 번역이지요. 작가의 소개 중에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내세우면서, 그 간단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 오역하면, 그것을 아는 사람이 본문을 읽고 싶은 마음이 과연 얼마나 들까요. 본문을 원본과 대조해서 오역한 것을 파내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책의 첫 페이지부터 이상한 번역본은 계속 읽고 싶어지지 않거든요. 하물며 더욱 공들였을 간판 광고 내용이 그렇다면!

그리고 the finest stylist 라는 말이 단순히 "잘 쓰는 작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스타일 - 여러 스타일이 많이 있을 수 있는데 - 어떤 특정 스타일에 관해서 아주 잘 쓰는 작가라는 것과 단순히 그냥 뭉떵그려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한국의 작가를 평하며 "한국말을 잘 쓰는 작가"라고 하면 어떨까요?

로쟈님, 오역 결과에 대한 경중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포드의 서평이 장편이든 아니든 그걸 따지자는 게 아니라, 문제의 그 문장, 바로 그 한 문장의 번역을 지적한 것이고요. 자꾸 꼬랑지를 물게 되면 논지가 흐려지고 서로 소모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의도치 않게 이렇게까지 쓰게 되네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로쟈 2010-06-14 23:14 
번역본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완벽한 스타일리스트'라는 것이고(뒷표지에 그렇게 박혀 있습니다), 리처드 포드의 문장은 신형철씨의 서평에서 인용된 걸 제가 재인용하는 바람에 불거진 것이지 '두드러지는' 건 아닙니다. 즉 역자나 출판사의 '장삿속'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는 표현은 저도 인용부호를 붙였는데, 보통은 '잘 구사하는'이라고 쓰지요.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건 한국 작가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모든 작가가 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