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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개똥철학' (부제: 은혜로 충만한 삶)

  • 등록일
    2010/11/24 20:25
  • 수정일
    2015/06/11 13:31

일상에서 체험하는 믿음과 은혜에 관한 글모음입니다.

또한, 부족한 저에게 끊임없이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올리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최근 제 블로그에 어떤 분이 쓴 덧글에 댓글을 달면서 썼던 표현 '주파수 개똥철학'을 글 제목으로 삼았는데요, 그 댓글을 조금 손봐서 다시 올립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이상한 현상을 겪어 보신 적이 있나요?

분명 FM1 114.3Mhz에서 들었던 방송인데, FM2 77.7Mhz에서 똑같은 방송을 듣게 되는 것 말입니다. 심지어 동일한 방송을 AM 1004Khz에서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 주파수들은 제가 임의로 만든 것이지만,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렵지 않게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위에서 말한 FM1 114.3Mhz, FM2 77.7Mhz, AM 1004Khz 등을 성경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신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주파수는 다르지만 똑같은 방송(소리)이 나오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소임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다는 것이지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이 신앙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위에서 설명한 제 나름의 ‘주파수 개똥철학’은 쉽게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혹, 모르시겠거든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보시면 금방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주파수 개똥철학'은 꼭 신앙과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성부, 성자, 성신’ 대신에 ‘겸손, 나눔, 사랑’을 집어 넣어도 그 뜻이 훌륭하게 통 할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기까지 최소한 35년이 걸렸으며,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인터넷에서 ‘시간 때우는 짓’을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방탕한 삶을 살면서도, 저를 너무나 애타게 찾는 목자의 부름에 결국은 ‘뻔뻔스럽게도’ 그 분 앞에 나아갔고, 그 '믿음'과 '용기'를 보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지혜의 은총을 주신 결과라 생각하기에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파수 개똥철학'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지혜의 은총이 없이는 쉽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은혜을 계속해서 저에게 주시는 분은 하느님 아버지시며, 저는 그런 지혜의 은혜로 인해 깨달은 이야기들을 이 공간에 모아볼 생각입니다. 제 능력을 다하여 영어로도 번역을 할 텐데요, 아마도 원어민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라디오 주파수와는 조금 다른,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우선 '복음'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복음02(福音)
명사
「1」기쁜 소식.
「2」기독교예수의 가르침. 또는 예수에 의한 인간 구원의 길. ≒가스펠「1」.
「3」기독교=복음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가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세상 끝날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복음'은 마치 인터넷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이 존재했지만,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이 발효되면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활짝 열린 것처럼, 인터넷은 그 전에 불가능했던 실시간 정보 접근 및 쌍방향 의사소통의 기회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세상 곳곳의 사람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복음은 영혼의 인터넷'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빠'(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먼지 한 톨의 씨앗 만큼이라도 갖고 있는 한, 은혜로 충만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쏟아져 내리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싶으시다면, '하느님의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와 전용 안테나만 있으면 되는데요, Tivoli Audio처럼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라디오의 이름은 '나눔'인데요, 특이하게도 '겸손'이라는 전용 안테나가 없으면 라디오는 깡통에 불과하다는 점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나눔'이라는 라디오에 '겸손'이라는 전용 안테나를 달아야만 '사랑'이라는 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리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오후 1:01 2010-11-26

겸손함에 대하여,

제가 '주파수 개똥철학'과 같은 글들을 쓴다고 하여, 제가 늘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듯이, 은혜를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그 은혜를 주시는 분의 뜻을 따르는 종일 뿐입니다. '종'이라는 단어가 거슬리시나요? 당신은 그 무엇의 종, 아니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유인인가요?

돈의 노예, 욕정의 노예, 권세의 노예도 아닌 그 어떤 자유인이기를 꿈꾸시나요?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당신이 꿈꾸는 그 길에 나눔, 겸손, 그리고 사랑이 없다면, 감히 단언컨대, 그 길은 지옥으로 가는 순환도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며 살 수 있을까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겸손함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놓고 살 수 있을 때라야 겸손함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나눔'과 '사랑' 못지않게 겸손함에 대해서도 '타는 목마름'을 느낍니다.

주위에 겸손한 사람들이 많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겸손함은 은혜를 끌어모으는 자석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들의 겸손함이 끌어모으는 은혜 가운데서 아주 작은 부스러기라도 주워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겸손하다면, 당신이 미처 다 주워담지 못한 찌끄러기 은혜를 주워먹는 옆사람들을 보며 주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겸손함이 없는 삶은, 오뎅없는 오뎅국물, 순대 빠진 순대국......

순대국 먹고 싶네요, 날씨도 쌀쌀하고......

 

 

 

 

 

오전 8:59 2011-01-10

하느님은 '아빠'인데, 저는 왜 그 분을 '주님'이라 부르며 스스로 '종'이 되는가에 대한 답변은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 4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참조

http://bible.cbck.or.kr/bible_read.asp?p_code=&LGB1=A&GS=S&Bible=55&Jang=4&x=28&y=8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제 4장

 

종살이에서 자유로
1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상속자는 모든 것의 주인이면서도 어린아이일 때에는 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기한까지는 후견인과 관리인 아래 있습니다.
3 이처럼 우리도 어린아이였을 때에는 이 세상의 정령들 아래에서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4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7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종살이로 돌아가지 마라
8 전에 여러분이 하느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본디 신이 아닌 것들에게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9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게 그 약하고 초라한 정령들에게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들에게 다시 종살이를 하고 싶다는 말입니까?
10 여러분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잘도 지킵니다.
11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애쓴 것이 헛일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12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나에게 잘못한 적이 없습니다.
13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육신의 병이 계기가 되어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내 육신의 상태가 여러분에게는 하나의 시련이었지만, 여러분은 나를 업신여기지도 않았고 역겨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하느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받아들였습니다.
15 그런데 행복을 느끼던 여러분의 그 마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내가 장담하건대, 여러분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뽑아 나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16 그런데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17 그들은 여러분에게 열성을 기울이고 있지만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따로 떼어 놓아 여러분이 자기들에게만 열성을 기울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남들이 좋은 뜻으로 열성을 기울여 주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19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20 내가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어조로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각별하게 느껴지는 말씀들이 있는데요, 저에게 있어 위의 갈라디아서 말씀은 '주님'과 '종'이라는 관계가 어떻게 해서 '아빠'와 '자녀'가 되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준 설명임과 동시에 아직도 '종'과 다를 것 없이 어리기만한 저의 믿음을 키워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 곧 상속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아빠'의 엄중한 경고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후 2:35 2010-12-31

'하느님표 내비게이션'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삶'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쓴 글에서 '판단과 인식'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최근들어 품고있던 생각들이 마치 콜라에 멘토스를 넣은 것처럼 폭발하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트위터에 올렸던 글을 옮겨봅니다.

시작-

차를 탈 때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내비'를 봅니다. 목적지를 정해두면 차를 돌려 거꾸로 가더라도 그곳에 가는 새로운 경로를 보여주죠, 우리 삶의 목적지를 천국으로 정한 건 하느님, 자유의지로 오락가락해도 그분의 계획은 늘 우리와 함께~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인식과 판단 또한 영화 '라쇼몽'에서처럼 제각각이죠, 그런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라는 갈라티아서 5장16절의 말씀을 따르는 건데요, 저는 그것을 '하느님표 내비'로 비유한 겁니다.-끝

 

제 생각, 아니 제가 받은 지혜의 은혜를 통해 품게 된 생각들을 좀 더 풀어봅니다.

'하느님표 내비'를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들 각자를 위해 하느님께서 실시간으로 준비하고 계시는 '계획'입니다. 혹자는 '운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하느님표 내비'는 고정된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논술형' (주관식) 답안지에 따라 맞춤형으로 업데이트된다는 점에서 결코 운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표 내비'의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가 아닌 하느님이시며, 그 목적지는 다름아닌 '천국'이라는 점은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2,000년 전의 예수그리스도에게도, 공평한 조건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지만, 우리들 각자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하느님의 계획도 '내비'처럼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기 때문에 설사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계획이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총칼로 사람을 해하였다하여, 말과 글로 특정인 혹인 뭇사람들의 영혼을 짓밟았다하여, 또는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고 욕한다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는데 소홀하거나 늑장을 부리시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그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해도, 마치 내비에 나온 경로를 이탈해도 새로운 경로가 보여지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천국으로 가는 새로운 경로를 준비해두고 계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늦은 미사를 드리고 돌아가는데, 어떤 택시기사분이 그러시더군요, 성당에 안 나간지 1년쯤 된다고...... 조수석에 앉은 제가, '우리들' 바로 앞에서 열심히 '길'을 보여주고있는 '내비'를 가리키면서, '하느님표 내비'에 대해 말씀드리고나서, 내비를 볼 때마다 하느님의 계획이 늘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라는 염원을 담아서 제가 받은 은혜를 그 분과 나눴습니다.

 

'하느님표 내비'(성령의 인도)는 매 순간 영혼으로 느껴야하는 은혜입니다.

보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말하지 못해도 팔다리가 없어도 누구나 마음 깊은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은혜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3D 위성사진도 아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 안내도 없지만, 세상 그 어떤 내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슈퍼울트라 캡숑 짱 최첨단 전지전능 내비인  것입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 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르신들을 위한 주석

'슈퍼울트라 캡숑 짱'은 '최고'라는 뜻입니다.

 

 

 

 

 

 

 

 

오전 12:35 2011-05-25

어느 성경 한 구절을 콕 찝어서 '이것이다, 내가 체험한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 체험한 성령의 은총을 고백합니다.

 

제가 받은 성령의 은총은 아마도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트위터에서 한나라당 원내대변인 정옥임 의원과 주고 받은 글입니다. (2011.5.3)

아래 글에서 날짜 부분(3 May)을 클릭하면, 해당 글의 트위터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정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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