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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유되기 쉬운 방법으로 그리고 감상적인 방식으로

일을 주중과 주말로 나누어 놓았는데, 이번 주 내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놀고있다.  일 년 열두 달 논문만 붙들고 있다가 몇 년 만에 다른 과목의 책을 읽고 노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고된 줄도 모르겠다.


저녁 먹으면서, 지금 쓰는 페이퍼에 들어갈 사례를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현실도피와 현실을 부정하려는 내 안의 꼼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하여튼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과 관련된 복고열풍에 대해 미디어 비평가들이나 문화비평가들이 '추억 팔이' 라고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과연 이 열풍이 추억 팔이,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일까.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일이 과연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나(들)' 과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같은 가장 공유되기 쉬운 방법으로 그리고 감상적인 방식으로 지금의 '나(들)'와 과거를 잇는 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이들이 재현하는 것은 과거일까. 내 가정은 이들이 재현하는 것은 과거로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지배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추억 팔이'는  소비하는 주체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와 엑스세대로 구분해 보았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표적으로 영화 '국제시장'이나 '쎄시봉' 을 소비하는 주체라면, 엑스세대는 대표적으로 '건축학 개론' 을 소비한 주체로 보았다. 이 두 세대는 뭉뚱그려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향수 컨탠츠를 소비하는 주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향수하는 바는  다르다. 엑스세대의 향수소비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추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엑스세대가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며 첫 해외 배낭여행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었던 수혜자였던 만큼 이들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을 것이라 여겼던) 미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현실이 된 미래는 가져 본 적도 없는 것을 이미잃게 하였다. 이들의 향수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상실감' 그 이상으로 재생산되지 못한다. 도리어 엑스세대의 향수소비는 정치의 부재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베이비붐 세대 세대의 향수소비는 그 자체로는 지양될 것이 없다. 그러나 베이비부머세대의 향수소비는 현재 지배이데올로기가 영화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통한 향수팔이는 같지만 다르다.  베이비붐 세대 세대의 재화축적의 방식은 대부분 노동력을 파는 것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가 일가를 이루게 되는 수단은 그의 노동력이다. 생산 수단이라고는 몸이 전부인 노동자에게 그 노동력을 팔 기회를 '허락'한 국가는절대 전능한 존재로 재현된다. 노동시장에선 무엇보다 튼튼한 '몸'이 필요로 한다.  '나'는 튼튼한 내 몸을 국가가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인증받을 수 있다면, 내'몸'을 밑천으로 전쟁이든 해외 이주 노동자든 돈을 벌고 '모을 수' 있었고, 가족과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이 시절의 체력이 국력이라는 구호가 학창시절 내내 뜬금없이 죽으라 달리고 던지고 매달려 '점수'를 받아야 했던 체력장으로 이어졌다면, 지금은 아파도 참으며 자기 계발에 힘쓰며 간절히 우주를 향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주술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는 사실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필요에 의해 불려 나와 수집되고 또는 잊힌다. 따라서 과거를 재현하는 미디어 컨탠츠들의 소비는 단순히 향수팔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치적 장치로 기능한다.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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