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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8/28
    봤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5)
    홍킹
  2. 2005/08/27
    10년이 흘렀더구나(4)
    홍킹
  3. 2005/08/23
    함께 가자...
    홍킹
  4. 2005/08/17
    정동진영화제 - 플레이 테니스(6)
    홍킹
  5. 2005/08/17
    블로그에 글 쓰기(6)
    홍킹
  6. 2005/08/16
    계급 유전(5)
    홍킹

봤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포일러 없습니당~)

 

봤다.
batblue님이 오래전부터 추천하였고
주말이나 일요일이면 저녁을 같이하거나 영화를 봤던 애인같은 친구, 황군
주말 저녁, 황군이 문득 영화나 보러가자고 해서 둘이 같이 보게 되었는데..

 

우선 영화 <<은하수..안내서>>는 책 제목이다. 그런데 책의 영문 제목이 걸작이다.
dont't panic
한글로 '쫄지 마세요' 란다.
한마디로 어떤 일을 당해도, 무슨 일이 생겨도 혹은, 종말이 오더라도 '쫄지 마세요'라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란 말인데, 그 자신감 엄청 지나쳐서 맨인블랙 류의 행성 공기놀이 정도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초우주적이며 초역사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사전정보가 별로 없었던 영화라서 이 영화가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인 캐릭터는 로봇 마빈이다.

 

'우울증에 걸린 로봇'
그것이 마빈의 주요 특징인데,

생각해 보라, 로봇이란 항상 인간의 말을 잘 듣거나 아니면 최근엔

인간의 의지에 거슬러서 행동하거나 하는 조금 극단적인캐릭터인데,  

우울증에 걸려 있는 로봇이라는 캐릭터

생각만해도 독특하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난 후 황군 왈,
마빈은 꼭 자기 스스로를 보는 것 같았다고...^^
아닌게 아니라 요즘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 치고 마빈 같지 않은 사람이 드물긴 하다. 우울증에 걸린 로봇...생각만해도 좌파! 같더라~

 

이 영화가 씨네21이나 필름2.0 등에서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허리우드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지 못해서 예술영화라는 두껍을 쓰고 1개의 개봉관(필림포럼, 구허리우드극장)에서만 개봉하게 되었다고 국내 영화문화의 쾌거로 이야기되는가 보던데,

글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평가를 받기에는 조금 억울할 것도 같다. 여러 효과나 비주얼도 그렇고 구성이나 대본도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보기에는 무리없이 좋더라고...창의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좀 도움이 된 영화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역시 허리우드식 영화였다.

오스틴파워와 같은 알 수 없는 개그들로 가득 찬 대사와 분위기들(아마 오스틴파워의 경험이 상영관들이 저어하게 된 원인이 된 것도 같다)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빈의 목소리 배우가 오스틴파워의 박사와 똑 같은 사람 같더라니...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인지는 이 정도면 충분히 공감이 가질 않을까?^^

 

하지만 오스틴파워와는 달리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었는데,
그것은 진보블로거이신 batblue님 스러운 개그(=batlish gag)와 농담으로 가득 찬 영화라는 점,
마빈이라는 캐릭터의 독창성 때문에 숨넘어갈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
유치한 웃음도 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엄청난 구성 때문이다.

 

영화에도 좋은 영화 나쁜 영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올바른 영화와 행복한 영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야 항상 행복한 영화보다는 올바른 영화를 (의식적으로)선호했지만 이 영화...
올바른 영화는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행복한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서 한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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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흘렀더구나

이 글은 '도키님의 2005년 8월 24일'과

              '버섯돌이님의 '1995년 8월 24일을 생각해 보면'에 엮인 글입니다.  

 

 

애 둘이나 있는 부모가 되었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중요한 직책들을 맡고 있었고
민주노동당의 고위간부가 된 사람도, 많이 배워서 더 배울게 없는 사람들도 생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눈가에 주름 하나, 허리에 군살 한점, 귀밑머리에 잔설이 조금씩 더 잡히어 가도
하지만 언제 봐도 즐겁고 반가운 내 친구들, 동지들...

 

그게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생각하고 반갑고 그리운 동지들과 가슴에 서리서리 맺은 회포는 풀었지만, 오늘이 별로 달갑지 만은 않더이다.

 

그 때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당하지 말자는 반성을 하면서도 혹시 오늘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둔감해 하지는 않는지,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10년 전에 비해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것 같은 현실이 자꾸만 뒤통수를 잡아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잠깐 시간이 나서 집안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집과 목욕탕 공사를 하신다고 하여 시간을 내서 오전 내내 도배하고 집안 청소하고 점심 먹고 잠깐 쉬고 있었는데...
웬 아저씨들 몇 명이 집안으로 몰려 왔다.

'오늘 공사 거 하게 하시나 봐. 인부들까지 다 부르시고..'
이렇게 생각하곤 웃옷을 벗고 있어서 옷을 입으러 내방에 들어 왔는데,
그 중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러면서 짧게 외쳤다.

"너희는 모두 잡혔다. 너도 따라와!"

 

순간 고개를 훽 돌리면서 쳐다봤는데, 뭔가 수첩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수첩은 2단으로 접힌 수첩이었는데 손바닥 윗 부분에 받쳐든 면만 보였는데, 그것은 운전면허증!
아마 손바닥에 아랫부분의 든 다른 면에 경찰증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면허증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상황이 좀 코믹했다. 속으로 이 놈들 사기꾼들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마음으로 내 방 유리창과 방충망 구조를 다시 살펴보고 이대로 달아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면서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형사 두 명에 둘러싸여 아버지께서 뭔가를 심각하게 읽고 계셨는데,
옆에 가서 보니까 긴급구속영장이었다.

 

'이거 정말이군'. 이미 형사들이 출구는 가로막고 있었고 저항해 봤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보위수칙들이 어지럽게 머리 속에 떠돌면서, 빨리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 가방 안에 수첩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

 

"수색영장을 안 갖고 왔는데, 어차피 니방 수색할텐데 너만 동의해 주면 지금 할 수 있다."

 

"안됩니다. 영장 갖고 와서 다시 하시죠...그리고 어머니께 죄송한데 인사만 여쭙고 가게 해 주세요..."

 

"그래"

 

엄마...를 부여잡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황망한 엄마의 모습. 이미 핏기마저 가신 엄마의 어깨를 부여잡고 조용하게 죄송하다고 몇 마디 나누면서 곁눈질과 들리지 않는 소리로 '친구들한테 빨리 연락하고 내 가방 치워 주세요'

 

그리곤 곧장 수갑차고 얼굴에 검은 붕대 메고 그렇게 어딘지도 모른 데로 끌려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홍제동 대공분실.

 

.........

 

그렇게 그 일이 있은 지 꼬박 10년이 흘렀다.

2015년에는 세상은 또 어떻게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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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

이 글은 탈주선님의 다시 제자리로

           지후님의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들에 트랙백을 건 글입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이정표도 길도 없는 황량한 황무지.
추운 밤공기의 외로움을 감쳐줄 집도 절도 없는 빈털털이
애써 뒤돌아 가려는 이들을 붙들지는 않아.
그래서는 안되는 거야..."

 

오랜만에 황군께서 시상을 발동해서 글을 남기긴 했지만...


그런데,
뭐가 안되는 걸까?
여기가 황량한 황무지라서?
아니면 죽도록 고생해 봐야 빈털털이 밖엔 안돼서?

 

사실 황군 생각만 하면 틀린 얘기가 아니라서 ^^;; 가슴이 더 찌릿찌릿 하지만...
이번엔 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해.

아직 할 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남아 있잖아?

 

그걸 블로그에 다 남길 순 없겠지.
대신 노래나 한 곡 띄워야 겠다...

 

 

 

   

♪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출처:피엘송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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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영화제 - 플레이 테니스

썩은 돼지님의 [늦었지만 정동진 영화제 넘 좋았다] 에 관련된 글.
* 나도 늦었지만 정동진 영화제 넘 좋아서...

 

영화제라는 데에 별로 가보진 않았지만 정동진영화제처럼 마음 편한 축제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마치 좋은 영화보고 서로 나누고 놀고 즐기는 독립영화인들의 잔치 같았다.

 

정동진 영화제 초청 작품들은 훌륭했다. 공무원노조 동해시 지부의 이야기를 다룬 최은정 감독의 다큐가 가장 좋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애니메이션들이었다. 강한 인상을 남긴 양성평등. 여성 픽토그램이 비상구, 엘리베이터, 신호등의 남자만 있는 픽토그램에 자신도 함께 들어간다는 2분짜리 영상이다. 짧은 상영시간에도 일상의 성차별 문제를 다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많았지만 가장 신선했던 것은 '플레이 테니스'라는 작품이었다.

 



 

 

"실사 사람이 그린 그림(2D 캐릭터)이 사람이 나간 틈을 타서 컴퓨터 안 3D 캐릭터와 테니스를 치기 위해 궁리를 하다가 결국 스캐너를 통해 컴퓨터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 서로 테니스를 치고 논다. 그러나 그들은 곧 판정시비로 서로 다투게 되는데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난감 경찰인형이 판정을 내려준다. 모니터 안의 둘은 테니스 심판으로 경찰인형을 불러들이려고 고민을 하다 캠코더로 경찰인형을 모니터 안으로 불러들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방을 비웠던 실사사람이 들어오면서 들킬 위험을 맞게 되는데 셋이서 힘을 합해서 슬기롭게 위기를 벗어난다."(작품 소개 중에서)

 

이 작품에는 사람(실사) 이외에 3개의 캐릭터들 즉, 종이그림, 컴퓨터안 캐릭터, 경찰인형이 등장한다. 이 애니메이션이 재미있었던 것은 이 캐릭터들이 각각 차원을 표현한다는 점 그것도 단순히 점, 선, 면, 부피의 차원만이 아니라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차이까지도 표현한다는데 있었다.

 

종이그림은 대표적으로 2차원의 공간을 나타내고 그 한계 또한 그대로 갖고 있다. 컴퓨터안의 캐릭터와 경찰인형은 3차원을 나타냈는데 이 둘은 결정적으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차이를 표현하였다.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한계를 극복하는 방식)도 각각 다른데 스캐너는 2차원을 가상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하고, 캠코더는 3차원의 사물을 컴퓨터 안으로 이동시킨다.

 

다른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현실과 가상공간의 긴장을 표현하고 있다. 모니터 안의 세상과 모니터 밖의 세상. 뭔가를 감시하는 실사 사람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된 3개의 캐릭터들이 갖는 긴장은 결국 현실과 디지털 공간의 긴장을 표현한다. 하지만 작가도 자평 했듯이 그런 긴장들이 '디지털의 흐름 속에 융화되어 가는 모습'으로 결론 짓고 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역시 영화란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보는 가에 따라서 그 느낌이 한층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영화 평도 제각각 이겠지만 한 여름밤 모깃불 날리는 별빛아래 종종 밤기차 지나가는 것을 배경으로 느끼면서 보는 영화란 더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정동진독립영화제, 매년한다고 하니 내년에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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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 쓰기

 

블로그... 만들라고 해서 1년도 더 전에 만들긴 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말이야... 자기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정말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블로그 같은 것을 잘 할 수 있을지, 마치 단체 기관지들처럼 정제되고 엄선된 글들만 점잖게 올려서 블로그 분위기 죽이는데 한 몫 하지나 않을지 적잖이 우려가 되어서 무려 1년 동안이나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다.

 

작년에 another0415를 열고 운영하면서 사실 반성 많이 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모든 사물과 사건들을 객관화시키면서 일반적인 글만 써 왔는지 뼈저리게 느꼈었다. 3인칭 시점에 그것도 전지적 작가 시점의 글쓰기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1인칭 시점의 글을 쓴다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게다가 설명문과 선언문에 익숙해 있던 사람으로서는 수필 형태의 글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땐 포기하고도 싶었다.

 

아무튼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고 글을 쓴다. 물론 모든 게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맘 편한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변해야 하고 혁신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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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유전

노동자의 자식들이 노동자가 되는 세상, 자본가의 자식들이 자본가가 되는 세상. 뭐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씁쓸한 느낌만 가득할까. 수능시험 격차가 강남-비강남권은 32점, 강남-지방은 43점이나 차이가 났다는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 또 호들갑이다. 가난이 교육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것인데... 대학입학시험 하나로 인생의 큰 줄기를 결정하게 되는 로또식 수능도 문제긴 하지만, 있는 자식들은 있는 곳으로, 없는 자식들은 없는 곳으로 가는 일이야 당연한 결론이 아닐까? 적어도 2005년의 한국사회에서는 그래 보인다.

 

대통령이라는 사람. 아픈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국민이 있는 나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며 입만 열면 빈곤해결, 양극화 해소를 떠들고 다니지만 결국 해 놓는 일이라고는 교육개방, 영리의료법인 허용이나 하고 있으니 어떤 기자 말대로 그 입을 어떻게 다물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가난이 차별하는 대물림은 교육만이 아니다. 한 달쯤 전에는 어느 중학생이 촛불을 켜 놓고 자다가 화재로 참변을 당했다. 작년 겨울에 난방비가 없어서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야 했는데 이것 때문에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전기가 끊겼다더군. 겨울철 난방비 때문에 여름에 죽어야 하다니...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대물림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계급이다. 오늘 발표된 교육격차가 지역간 격차나 소득격차로 문제를 축소해서 보고 있지만, 결국 결정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그 인생은 부모의 능력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노동자 농민의 자식은 노동자나 농민이 된다. 특출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도 결국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심어놓은 유산은 여기에 더한 차별을 가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자식들은 다시 그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뽑아 가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식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이주노동자의 자식들은 이주노동자로 살아가야 한다.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했던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현실을 보면서 뭐라고 할 것인가?

 

 



<성명서> 정부는 교육격차 해소와 교육복지 실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 

광복 60년을 맞이하여 한국 사회는 분단 극복과 함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부여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의 문제는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그늘 밑에 극빈층이 5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일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미 중산층의 존재는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교육, 의료, 주택, 결혼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이제 10: 90의 구획으로 나누어지는 사회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더 이상 사회적 이동을 위한 통로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최근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연구 결과는 오히려 교육은 계층재생산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김경근 교수가 전국 교육연구소 네트워크에서 발표한 "한국사회의 교육격차" 에서는 수학능력고사의 평균이 강남-지방 읍면학생 사이에 43점차가 나타나는 것을 밝히고 있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장 결정력이 높은 수학능력고사에서 지역과 계층 간의 교육격차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역 내에서도 강남과 비강남 지역의 점수 격차가 32점에 이르는 것은 국가가 주관하고 있는 수학능력고사가 사교육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현진 중앙고용연구원 선임연구원이 2003년 중 고생과 대학(원)생 등 1198명을 대상으로 가구 소득별과 부모의 학력별, 거주 지역별로 월평균 사교육 지출을 조사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강남·송파·서초구)의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0만원 이상이 거의 절반이나 됐다. 반면 서울지역 비강남권은 50만원 미만이 84.5%로 대조를 보였다.

 

교육이 계층 재생산의 통로가 되고, 교육의 결과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는 봉건 세습 사회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이러한 결과는 유아 단계에서부터 구조화되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 적어도 "출발점 평등" 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목고 진학을 위한 대비반이 일부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4-5학년부터 만들어지고, 강북 지역에 있는 특목고 학생의 대부분은 강남지역이 차지하고 있다.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던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 지방자치단체마다 특목고와 외국인학교,공립형 자율학교 등, 특수 계층을 위한 학교 증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이러한 교육 불평등을 구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기회가 결정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이 고착화될 경우에 우리 사회는 남북 분단과 함께 또 하나의 분단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광복 60주년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침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극화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모든 이들에게 질 높은 양질의 교육을 정부와 사회에 의해 사회적 기본권으로 부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유아 교육단계부터 진정한 공교육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적어도 고등학교 교육을 의무교육 단계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둘째 계층 간 지역 간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가칭 교육격차 해소와 교육복지 실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시 군 구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경비 보조금의 격차가 서울의 경우에도 강남과 강북지역의 차이가 매년 수십억 원에 이르고 있는 모순된 상황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셋째, 이를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교육재정 6% 확보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작년도에 1조억원이 넘는 세수 결함으로 오히려 교육재정은 악화되고, 시 도 교육청은 빛을 얻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노무현 정부는 계층간 지역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킨 정부로 평가될 것이다.

 

2005년 8월 1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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