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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 평가_매경1.29일자

다보스포럼, 무엇이 논의되고 무엇이 남았나

 

2008년도 다보스 포럼이 닷새 동안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27일 폐막됐다.

제네바 소재 세계경제포럼(WEF)이 주최한 이번 다보스 포럼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 위기, 그에 따른 세계 경제의 침체에 대한 우려가 급증한 가운데 열려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포럼은 인류가 당면한 현재와 미래의 핵심주제를 놓고 세계 각계 지도급 인사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장으로 나름대로 자리 매김을 했으나, 이번 역시 '부자들만의 모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 글로벌 금융 위기 = 무엇보다 포럼 개막 전야인 22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일반의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연방기금금리와 재할인율을 각각 0.75% 포인트나 대폭 인하하자, 그 원인 분석 및 평가를 놓고 내로라 하는 포럼 참석자들이 치열한 논란을 벌였다. 미 FRB가 그 같은 규모의 금리 인하를 한 것은 20여년만의 일일 정도로 그야말로 '긴급 조치'였다.

인플레를 억제해 물가를 안정시킬 것인지, 아니면 미국 경제에 이어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에 진입하기 전에 대폭적인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에 무게를 실을 것인지 하는 것이 이번 포럼의 다양한 세션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자연스럽게 미 FRB의 긴급 금리인하 조치 뿐만 아니라 미 FRB의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시의적절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의 차이를 낳았고, 구체적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의 동조 금리인하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하지만 다보스 포럼에서 드러나 전반적인 기류는 미 FRB의 조치는 일종의 '극약 처방'으로, 달러화 약세를 가속화해 가뜩이나 높은 유가 및 원자재의 가격을 더욱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플레를 초래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우세했다.

미 FRB의 긴급 금리인하 조치에 대해 세계 증권가의 거물인 조지 소로스와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은 미 FRB를 비롯한 세계의 중앙은행들의 통제력 상실을 드러낸 사건일 뿐만아니라, 또 다른 버블을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 반면, 존 스노 전 미 재무장관은 "FRB가 중심을 잡고 있으며 경제의 부정적 추세를 인식하고 과감한 조치들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 ECB의 금리인하 거부 논란 = ECB가 미 FRB의 긴급 금리인하에 동조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미 FRB-ECB 간, 궁극적으로 달러화-유로화 간의 팽팽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이번 다보스 포럼 기간 내내 세계의 이목은 장-클로드 트르셰 ECB총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모아졌다.

다보스 포럼 참석에 앞서 유럽의 금리인하는 없다고 했던 트리셰 총재는 포럼의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금리인하 수용 여부에 관해서는 답변하지 않은 채 "우리의 나침반에는 하나의 바늘만 있다. 물가 안정성과 금융 안정성 간의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경기 부양 보다는 인플레 억제에 역점을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 같은 판단의 저변에는 미국 경제는 본격적인 침체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유로존의 경제는 다소 성장이 둔화되기는 하겠지만 미국과는 달리 여전히 '건강'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 소로스는 현 글로벌 위기의 본질은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은 브레튼우즈 체제 60년의 '종식'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관련, 빈프리트 비쇼프 씨티그룹 회장은 25일 대통령 당선인 특사인 사공일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은 경기를 물가안정보다 우선하고 있고 유럽은 물가안정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면서 "그래서 미국의 경제가 유럽에 비해서 더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 미국 경제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 가능한가 = 이 문제는 또한 미국의 경제침체를 '브릭스'(BRICs)로 일컬어지는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비(非) 서구의 신흥 경제권이 세계의 성장엔진을 교체해 담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 경제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가능한지 여부와 관련이 있다.

스티븐 로우치 모건 스탠리 아시아 담당 회장과 길레르모 오리티즈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 등은 기본적으로 미국경제와의 디커플링이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적 시각을 보인 반면, 중국과 인도측 참석자들은 미국의 경제침체가 본격화될 경우 자신들도 일정한 영향을 받겠지만, 양국의 급성장 및 미국 이외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량 규모 등을 들어 대응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관련, 사공일 위원장도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실물 측면에서의 연관을 본다면 우리의 대미 의존도는 15%선이고, 대EU 의존도는 13∼14%이며, 대중 의존도는 18∼20%에 이르고 인도와 중동과 같은 신흥시장들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며 "간접적으로 중국을 통한 타격은 있을 수 있지만, 직접적인 연관을 통해 받는 타격은 예전에 비해 적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흥경제권의 부상은 이번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중국.인도를 비롯한 신흥경제권 인사들의 인사들이 지난 해에 비해 더욱 늘어난 데서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 국부펀드 투명성 논란 = 아시아.중동 지역 등의 국부펀드의 긴급 수혈에 힘입어 미국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충격을 극복한 것을 계기로 국부펀드의 투명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한국투자공사 등 국부펀드 대표들을 포함한 100여명의 전 세계 관련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24일 진행된 비공개 회동에서 최근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의 모기지 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것"일 뿐 아니라 "투명성에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과 국부펀드는 '민족주의적 성격'이 있는 만큼 투명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섰다.

이날 비공개 회동에는 월가에서 JP 모건 체이스,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 및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했다.

현재 2조5천억달러 규모인 국부펀드는 2015년까지 12조달러 가량으로 성장할 것으로 WEF는 전망했으며, 모건 스탠리는 국부펀드가 2022년까지 28조달러 규모로 성장해 미국 경제의 두 배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국부펀드만 투명성의 타깃으로 삼지 말고 모든 자본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포괄적 투자윤리 규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들도 나왔다.

◇ '결여된' 글로벌 리더십의 공동 구축 = '협력적 혁신의 힘'이라는 주제에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는 당면한 경제위기 외에도 기후변화.에너지.물부족, 테러 등을 비롯해 각종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지도력의 공동구축 필요성 논의됐다.

작년에 기후변화를 글로벌 톱어젠더로 삼아 전 세계인에게서 경각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던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은 '물 부족'을 올해의 글로벌 톱어젠더로 정한 뒤 포럼에 참석한 세계 각분야 지도급 인사들의 적극적 동참을 호소했다.

특히 반 총장은 수단의 다르푸르를 비롯한 아프리카.아시아 등지의 각종 유혈분쟁들이 가뭄 등 물 부족 사태와 상당한 연관이 있다고 지적하고 아프리카 등 안전한 식수를 얻지 못하는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포함한 유엔의 개발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춘 '주요 고위급 회담'을 주최할 계획을 밝히고 세계 지도자들을 초청해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세계화와 금융위기, 기후변화, 유혈분쟁, 테러, 글로벌 전염병을 비롯한 오늘날의 각종 심각한 글로벌 도전들을 맞아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정치권-기업-시민단체 등의 글로벌 공동 파트너십의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으며, 특히 유엔과 IMF, 세계은행 등과 같은 대표적인 국제기구들의 즉각적 개혁을 주창하고 나섰다.

브라운 총리는 25일 다보스 포럼에서 이들 국제기구 및 기관들은 1950년대의 문제점들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것인 만큼, 오늘날의 글로벌 도전들에 대처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이들 기구의 주요 임무와 역할을 조정하고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유엔의 평화유지와 안정화, 재건, 개발 기능을 서로 통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IMF는 "글로벌 경제의 조기 경보시스템"으로, 그동안 개발에 중점을 둬왔던 세계은행은 "개발 및 환경 세계은행"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lye@yna.co.kr

(다보스=연합뉴스) 이 유 특파원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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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민영화 인수위 방안(1.8)

산업은행 민영화 인수위 방안(2008.1.8)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한 중소기업 지원 및

토종 투자은행 육성 방안

 

□  ‘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인수위 방안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자 함.


□ 인수위 안은 산업은행을 장기적으로 투자은행기능과 정책금융 기능으로 분리해 투자은행기능은 민영화된 형태로, 정책금융기능은 정책은행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산업은행과 자회사(대우증권 등)를 우선 지주회사체제(홀딩컴퍼니)로 전환한 후 이를 단계적으로 민영화하여 토종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고, 그 과정에서 조성된 매각대금 중 20조원을 순수 정책금융기관(Korea Investment Fund, 가칭)으로 운용하자는 방안임.

 


    동 방안은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1) 중소기업 지원 자금 조성 (2) 토종 투자은행 육성 (3) WTO 체제에 맞는 정책금융지원제도 선진화 등 3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음.


    민영화 정책은 담당 부처 및 산업은행과의 논의를 통해 시장충격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를 마련 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임.


      - 특히 외화조달 창구로서 산업은행의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국제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한 후 진행되어야 함.



[참고자료]


I. 산업은행 민영화의 목표


 

1. 공적 금융기능의 강화

    - 중소기업지원 등

 2. WTO 체제에 적합한 정책금융 제도 확립

    - 무역마찰 해소, 정책금융의 효율성 제고 등

 3. 토종 투자은행육성

    - 민간 시장과의 마찰 해소 및 금융 산업 선진화

 


1. 공적 금융기능의 강화


○ 중소기업은 한국 경제의 총부가가치 중 52%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체 고용의 89%를 책임지고 있음.

 

   - 따라서 중소기업 활성화는 중요한 정책 과제이며 최근 들어 신성장 동력산업 육성 차원에서 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지원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


○ 그러나 중소기업 지원에 필요한 재정자금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임.

  

  -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었으며 향후 고령화 추세로 인해 복지지출 규모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기에 재정투융자 지출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추세임.


 ○ 이에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약 20조원 규모의 재정자금을 중소기업 지원 등을 위한 재원으로 조성하고자 함.


2. WTO 체제에 적합한 정책금융제도의 확립

중소기업 지원정책도 경제발전 단계에 맞게 진화할 필요가 있음.


   -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효율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나, 경제발전과 함께 산업구조가 선진화되고 기업 간 경쟁도 격화됨에 따라 정부주도 직접적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효율성 및 형평성에 대해 의문이 커지고 있음.


    - 지금까지 중소기업 신용보증정책은 주로 지원 대상 기업을 정부기관이 직접 선정하는 방식이었음. 그러나 경제구조가 선진화된 상황에서 과연 정부가 홀로 지원 대상 기업을 효율적으로 선정할 전문성이 있는가가 의문시되고 있으며 지원 기업을 선정한 후에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유인을 갖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


  -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정책금융 방식은 WTO 체제에서 무역마찰을 일으켜 더 이상 지속가능한 방안이 되지 못함.


자본시장이 어느 정도 발전한 현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 방식에서 시장을 이용한 간접적 지원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


전대(on-lending) 방식 - 정책금융의 간접적 방식

▶ 정부가 정책 금융의 목표를 세우고 정책금융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의 자격을 설정하지만 기업 선정 등 구체적인 사업집행만큼은 민간 금융기관에 위탁하는 방식

▶ 민간 금융기관에게 정책 목표에 적합한 기업을 선별해오라고 주문하고 정책금융기관은 민간 금융기관에 정책금융자금을 전대(on-lending)해주는 역할을 담당

▶ 정부는 대출자금을 지원해 주지만 대출위험은 공적금융기관과 민간 금융기관이 나누어 부담하는 원칙을 견지 (risk sharing을 통해 민간에게 지원 대상 기업의 선정 책임을 부과함.)

▶ 지원 방식은 보증, 대출, equity 투자 모두 가능

▶ 과거 정부가 자금 배분만 회계적으로 처리하고 100% 투자 위험을 부담한 전대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원 방식 (다단계 risk sharing 방식임)

▶ risk sharing 과정에서 정부의 부담 정도를 차별화함으로써 정책 우선순위 및 공적 금융지원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음.


전대(on-lending) 방식의 장점

▶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로 정부 재원이 절약되어 작은 정부로도 많은 일을 수행 가능하므로 효율적 정부의 좋은 예

▶ 대상기업의 선정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 금융기관이 함께 기업평가를 하기 때문에 기업선정의 효율성이 제고됨.

▶ 또한 간접적 정책금융 지원 방식으로 기업 투자를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민간금융기관 육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일석이조의 효과.

▶ WTO 체제하에서 무역 마찰을 피할 수 있는 정책금융 방식


산업은행 민영화는 정책금융 지원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


   - 산업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전담 은행을 신설한 뒤 정책금융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우해 정책 금융 집행방식을 간접적, 다단계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음.


3. 토종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의 육성


○ 산업은행의 기능을 순수정책금융 기능과 상업적 업무(투자은행)기능으로 구분하고 상업적 업무 부분을 민영화를 통해 토종 투자은행으로 육성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음.


     - 개발도상국과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면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함.


     -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은 대부분 상업은행으로 투자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투자은행으로의 전환이 논의되어 왔지만 자본과 경험부족으로 괄목할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음.

 

    -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경제개발 과정에서 축적해온 산업은행의 국제업무, 기업금융에 대한 지식과 네트워크를 대우증권의 투자사업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음. 즉, 산은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토종 투자은행을 출범시키자는 뜻임.


II. 산은의 단계별 민영화 방안


■ 1단계 : 민영화 준비기간


○ 민영화 준비단계로서 산업은행의 상업적 업무와 순수공적기능을 분리하기 위한 법률 정비 기간


 ○ 민영화에 따른 산은법 개정, 공적금융기능을 담당할 (가칭) Korea Investment Fund (KIF) 관련법 제정 등 법 정비


  기존 산업은행을 투자은행에 적합한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 개정

 

 ○ 민영화 과정에서 기 발행된 산금채에 대해 상환요청이 오지 않고 민영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해외자금 조달 창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신뢰 구축 기간


■ 2단계 :  일부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한 KIF 조성 및 금융지주회사로 체제 전환


 ○ 일정 기간에 걸쳐 정부 보유 지분 중 최대 49%까지 매각


 ○ 매각 재원으로 Korea Investment Fund (가칭) 조성


   - KIF는 EC의 EIF와 같이 전대(On-lending) 방식으로 공적기능 수행.


 ○ 이행 과정에서 기존 산업은행은 현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투자은행으로의 발전을 위해 경쟁력 제고에 노력


■ 3단계 : KIF의 공적기능 전담은행 전환 및 토종 투자은행의 출범


 ○ 전반적인 경제상황 등을 고려하여 적정시점에 잔여 지분 (51%)을 매각

  

 - 산은 금융지주회사는 민영화된 투자은행으로 발전


 ○ KIF는 독일의 KfW와 같은 공적기능 전담은행으로 발전



                             기획조정분과 위원 곽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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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통계- 통계청

 

대한민국 총재산 6035조 … 작년 토지ㆍ고정자산이 90%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개인이 보유한 총 재산 규모가 작년 말 기준으로 6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1997년 말 이후 1.9배로 늘어난 것으로 공시지가가 현실화되면서 토지와 건물 자산이 크게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1997~2006년 국부통계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부의 총 규모는 작년 말 6035조원으로 최근 9년간 연평균 7.6% 증가했다.

토지 자산과 건물 기계장치 등 유형고정자산이 전체의 90% 정도를 차지했다.

◆국부,9년간 배 가까이 늘어

우리나라 국부는 작년 말 기준으로 6035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말에 비해 477조원(8.6%),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말에 비해선 2912조원(93.2%) 늘었다.

1998년에는 2.2% 감소했으나 2001년까지 4~5%대 증가율을 보이다가 2002년부터는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토지자산 급증에 힘입어 성장률이 매년 10%를 웃돌았다.

자산형태별로 보면 토지 자산이 3053조원으로 전체의 절반이었고 유형고정자산이 2439조원으로 전체의 40.4%였다.

유ㆍ무형고정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9배 수준이다.

재고자산은 306조원으로 5.1%,가계에서 보유하고 있는 내구소비재는 140조원으로 2.3%의 비중을 차지했다.

주체별로는 토지자산 소유 비중이 높은 개인이 전체 자산 중 46%를 보유하고 있었고 법인이 34.9%,정부가 19%의 비중을 차지했다.

주체별 자산 구성비는 9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유ㆍ무형 고정자산,재고자산 등 생산자산 부문에서는 서비스업 비중이 크게 늘었다.

서비스업 자산은 1997년 말 59.4%에서 작년 말 65.2%로 5.8%포인트 증가했다.

전기가스ㆍ수도업도 3.9%로 0.3%포인트 늘었다.

반면 광업ㆍ제조업은 25.5%에서 23.2%로 줄었고 건설업도 6.7%에서 3.9%로 감소했다.

◆토지자산 9년 새 2.1배로

 
 

작년 말 기준으로 토지자산은 3053조원으로 1997년 말에 비해 2.1배로 증가했다.

토지자산은 1998년 8.5% 감소에서 1999년 3.7% 증가로 반전해 2001년까지 소폭 늘어나다가 2002년 13.6%,2003년 18.8% 등 매년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토지자산을 시도별로 살펴보면 면적으로는 전체의 0.6%인 서울이 975조원으로 전체의 31.9%를 차지했다.

경기 842조원(27.6%),인천 157조원(5.1%) 등 전체 토지자산의 64.6%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이 전체 토지자산 보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말 54.9%에 비해 9.7%포인트 증가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

입력: 2007-12-26 17:49 / 수정: 2007-12-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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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유스호스텔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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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切]이라 하고 싶다

부모가 없는 외로움을 고[孤]라고 한다고 한다.
자식이 없는 외로움을 독[獨]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외로움은 뭘까... 애[哀]일까?
한[恨]이라는 것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는구나.
풀지못한 숙제로 인한 고통 슬픔, 외로움이, 그것이 한 이구나.

 

너무 외롭다. 독특하게도 정치적으로.
정치적으로 혼자라는 느낌. 경험해 보지 못한 외로운 슬픔.
게다가 홀로이지만 버텨야 하는 상황.
연인과 이별하고 외롭게 삶을 살아야 했던 지독히도 힘들었던 것보다,
목구멍에서 위장으로 떨어지던 독주의 쓰렸던 한방울보다
그 것과는 또 차원이 다르네.

 

정치적 외로움
정고, 정독, 애정...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절 [切]이라 하고 싶다.
칼로 베는 듯이 아프고 그렇게 베이어 또 혼자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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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진보전략회의 준비모임 세움(발족) 행사

가칭)진보전략회의 준비모임 세움(발족) 행사


- 시간 : 11월 7일(화),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 장소 : 손기정 문화체육센터

버    스 : 261, 263, 604 (손기정공원 또는 (구)양정고등학교)하차

마을버스 : 16번 (손기정공원 또는 (구)양정고등학교)하차

지 하 철 : 1호선 서울역 하차 2번출구 (서부역쪽에서 만리동고개방향 도보 10분)

              2호선 충정로역 하차 5번 출구 (도보 10분)

 

 

<진행>

준비모임 세움행사 (30분)

* 사회

- 경과보고

- 포럼 창립준비사업계획 검토

- 준비팀/집행팀 구성 : 전략기획팀 / 정세분석팀 / 조직선전팀


집담회 (2시간)

- 제목 : “집담회 - 우리 앞에 놓인 길”

- 취지 : 진보전략회의의 취지문 작성을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 점검

             전보전략회의의 운영 및 활동방향 마련을 위한 문제의식 확인

- 발제

: 사회운동의 과제와 방향 (10분)

: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본 사회운동 (10분)

- 토론주제 

: 각 운동 영역의 현황과 문제점
: 포럼 활동의 의의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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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특별했던 시월의 마지막 밤

오늘,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글쎄... 오늘 같은 날은 누구든 뭔가 낭만적인 기억 한 두가지 정도는 가슴에 담고 있을 법한 그런 날이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서른 몇 번이나 넘게 경험했던 시월의 마지막 날 중에서 가장 특별한 기억은 안개낀 분위기에 로맨틱한 대화를 나누던 그런 것은 아니다.


2001년 10월 31일.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진균 선생님께서 선생님이 계시는 과천으로 오라고 부르셨다. 그 때 나는 사회진보연대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그 단체 대표를 맡고 계셨다. 나와, 함께 상근을 하고 있었던 다른 활동가와 빨리 과천으로 오라 하셨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대낮부터 활동가들을 오라가라 하실 분이 아니라서 어떤 일 때문인지 무척 궁금했다. 정확이 말하면 불안했다. 당시 편안하게 선생님을 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 불안했다. 선생님께서 대장암 판정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모두가 그 소식에 슬퍼하고 안타까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뵌다는 건 반갑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좋지 않은 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성폭력으로 제소된 동국대 교수가 교육당국으로부터 해임을 당했는데, 그 사람의 복직서명에 선생님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과천에 도착해서 선생님을 뵙자 다짜고짜 뭐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시며 우리를 끌고 고기집부터 들리셨다. 선생님은 매번 그러셨다. 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삼겹살에 소주한잔 씩은 꼭 사주셨다. 돈이 없고 바쁘기도 해서 이래저래 잘 먹지도 못했던 활동가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지 정말로 볼 때마다 고기를 사주셨다. 또 그 맛에 우리들은 선생님 오실 때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으니...


그런데, 그 대장암이란 것이 십년이상 삼겹살에 소주를 먹으면 대장암 걸릴 확률이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한다. 결국 선생님 대장암 걸리게 한 공범이 되었으니, 그 고기가 잘 넘어 갈 리가 있는가. 하지만 선생님은 별로 게의치 않으셨고 잘 먹고 많이 먹으라고만 하셨다. 


고기집을 나오니 어스름히 저녁이 되었다. 동네를 잠시 걷고서는 이 번에는 술을 한잔 사겠다하여(선생님은 병 중이라 술을 안하셨지만) 우리는 술집으로 갔다. 그런데 왜 우리를 부르신 건지 계속 궁금할 따름이었다.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여러 가지 일상 잡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선생님께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 꺼내 놓듯이 옛날 사건들과 관련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공부하시던 이야기 등등... 좋은 이야기, 즐거운 대화였지만 대체 왜 부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만히 의중을 헤아려보려고 해도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분위기를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몇몇을 더 불렀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뭔가 하시려던 말씀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솔직히 듣고 싶은 말이 하나 있었다. 동국대 성폭력 교수의 복직서명을 철회하겠다는 그 말씀을 너무 듣고 싶었다. 혹시 그 이야기 하시려고 부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김진균 선생이 복직서명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많은 활동가들이 반발하였고 내부에서도 그 문제를 논의하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같이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활동가 몇몇이 선생님과 논의하기로 하였고 그 책임을 맡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모두 네차례 토론에 임해 주셨다. 생각해보라, 대장암 판정을 받고 요양 중인 사람이 몇 시간씩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사람으로서 못할 일이다. 한 두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 얼굴은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활동가들의 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논의를 그만두어도 된다고 하셨는데도 선생님께서는 다음에 다시 만나자며 몇 번을 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우리가 더 보지 못해서 나머지 이야기는 필담으로 나누기로 하고 만나서 논의하는 것은 그만 두었다.


하지만 선생님도 당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과 교육당국의 교수직 해임건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우려도 많았고 누구누구가 가서 설득해 보자는 이야기, 어느 분이 가서 만나셨다는 이야기... 빨리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여러분들이 애쓰시고 계셨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복직서명을 철회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런 일들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시월에, 그것도 마지막 날에 갑자기 보자하셨으니...


저녁 때 몇 분이 더 오셨고 마침 서울대 민교협 선생님들이 관악산 등산을 갔다가 뒤풀이 하는 중에 만나게 되어 판이 무척 커졌다. 아예 바깥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노래도 부르며 시월이 가는 소리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그렇게들 털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보냈다. 처음에 보자했던 둘에게는 차나 한잔 더 하자시며 사모님도 오시라고 하여 찻집에서 넷이 도란도란 차를 마시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두 분이 만나게 된 이야기, 살아오셨던 이야기를 조금 들었다. 그러나 이 시간도 잠시. 막차가 끊기기 전에는 가야하고 그 날 선생님이 너무 무리를 한 듯해서 들어가봐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도대체 우리를 왜 부른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궁금한나머지 결국 우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오늘 왜 보자하신 거예요?”

“글쎄, 시월의 마지막 밤을 너희들과 보내고 싶어서...”


그리고 이틀후 선생님께서는 복직서명을 철회하셨다...

 

그 얼굴 다시 뵈니, 오늘 밤 또 이상하게 눈물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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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의 <마흔아홉 통의 편지>를 읽고

당신, 혁명을 꿈꾸시오? 요즘 부쩍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며칠 전에도 어떤 활동가가 진지하게 물어왔다. 그럴 때면 그냥 웃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질문을 피해 나갔다.
꿈을 꾼다는 점에서는 맞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어떤 혁명인지 나는 잘 모른다. 총파업과 봉기, 정치권력의 접수, 자본주의 질서의 전복... 수학 공식처럼 잘 짜여진 혁명론을 '학습'하면서 꿈을 키워 가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수많은 문명의 가치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짧은 경험이지만,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혁명을 위해 더 복잡한 공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혁명을 이제는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속시원하게 답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과연 무엇이 혁명인지 알 수도 없게 된다.

 

세상이 복잡해지다보니 여러 가지 웃지 못할 일들이 많다.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해 손 발 다 걷어 부치면서도 시민혁명이라고 외치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렇게 개혁이 혁명으로 둔갑한 세상을 살면서도 가슴이 먹먹한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소수다.



그리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소설이다. 작가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손석춘의 독자는 소수지만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조세희 선생의 평가가 딱이다. 그런데 바벨탑이 무너진 자리에서 손석춘은 도대체 어떻게 혁명을 하자고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는가?

 

이 소설은 <아름다운 집>, <유령의 사랑>에 이은 손석춘 연작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손석춘은 3부작을 통해 분단공간에서 고뇌하는 사회주의자, 유령이 된 맑스 그리고 빨치산과 그 후예들을 차례로 불러낸다. 혁명이란 무엇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진지한 고민을 던진 작가는 죽은 맑스를 부활시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냥 거기까지였으면 혁명을 꿈꿨던 이들의 후일담 소설이라 했겠지.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물어왔다. 그것도 아주 격정적인 방식으로.

 

<마흔아홉 통의 편지>는 주인공 홍련화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소설의 대강은 이렇다. 스웨덴으로 입양된 주인공이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던 중 어머니가 빨치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홍련화의 뿌리 찾기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호랑이었던 이현상과 주변 인물들에게로까지 가게 된다.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를 이루려 했던 투사들의 열정과 불굴의 의지. 그러나 패전의 책임, 숙청과 배신 그리고 죽음. 살아 남은 투사들의 고뇌와 방황, 사랑 속에서 남한의 현대사의 희비극이 사회주의자의 눈으로 조망된다.

 

눈치챘겠지만 49통의 편지는 49재와 같은 의미로 빨치산 투사들의 복락을 비는 글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문이 아니라 질문이다. 련화가 편지를 보내는 '당신'은 이 소설의 독자들이고, '세상을 바꾸려는 깨끗한 열정이 당신 안에 타오르고 있지요'라며 다시 물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손석춘은 3부작을 통해 왜 혁명을 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구성해 내고 있다. 해방과 분단의 모순을 넘어서, 맑스의 사랑과 꿈을 통해 해방의 미래를 살려내고, 빨치산 투사들이 역경을 헤치고 투쟁하며 산화해 간 바로 그 자리 그 길에서 혁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상의 심장이 멎은 이 지점에서 여러분이 다시 길을 찾기 바랍니다. 월북했던 이현상이 왜 다시 남쪽으로 왔는지, 그가 남쪽에서 정녕 걷고자 한 길은 무엇이었는지,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이현상의 심장이 멎은 여기 이곳에서 말입니다."

 

......

 

9월 18일은 이현상 동지의 기일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추석 연휴하고 겹쳐 버렸는데...아무래도 매년 이날에 지리산에 가는 모임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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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포일러 없습니당~)

 

봤다.
batblue님이 오래전부터 추천하였고
주말이나 일요일이면 저녁을 같이하거나 영화를 봤던 애인같은 친구, 황군
주말 저녁, 황군이 문득 영화나 보러가자고 해서 둘이 같이 보게 되었는데..

 

우선 영화 <<은하수..안내서>>는 책 제목이다. 그런데 책의 영문 제목이 걸작이다.
dont't panic
한글로 '쫄지 마세요' 란다.
한마디로 어떤 일을 당해도, 무슨 일이 생겨도 혹은, 종말이 오더라도 '쫄지 마세요'라는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란 말인데, 그 자신감 엄청 지나쳐서 맨인블랙 류의 행성 공기놀이 정도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초우주적이며 초역사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사전정보가 별로 없었던 영화라서 이 영화가 어떤 배경으로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인 캐릭터는 로봇 마빈이다.

 

'우울증에 걸린 로봇'
그것이 마빈의 주요 특징인데,

생각해 보라, 로봇이란 항상 인간의 말을 잘 듣거나 아니면 최근엔

인간의 의지에 거슬러서 행동하거나 하는 조금 극단적인캐릭터인데,  

우울증에 걸려 있는 로봇이라는 캐릭터

생각만해도 독특하지 않은가?^^

 

영화를 보고난 후 황군 왈,
마빈은 꼭 자기 스스로를 보는 것 같았다고...^^
아닌게 아니라 요즘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 치고 마빈 같지 않은 사람이 드물긴 하다. 우울증에 걸린 로봇...생각만해도 좌파! 같더라~

 

이 영화가 씨네21이나 필름2.0 등에서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허리우드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지 못해서 예술영화라는 두껍을 쓰고 1개의 개봉관(필림포럼, 구허리우드극장)에서만 개봉하게 되었다고 국내 영화문화의 쾌거로 이야기되는가 보던데,

글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평가를 받기에는 조금 억울할 것도 같다. 여러 효과나 비주얼도 그렇고 구성이나 대본도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보기에는 무리없이 좋더라고...창의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좀 도움이 된 영화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역시 허리우드식 영화였다.

오스틴파워와 같은 알 수 없는 개그들로 가득 찬 대사와 분위기들(아마 오스틴파워의 경험이 상영관들이 저어하게 된 원인이 된 것도 같다)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빈의 목소리 배우가 오스틴파워의 박사와 똑 같은 사람 같더라니...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인지는 이 정도면 충분히 공감이 가질 않을까?^^

 

하지만 오스틴파워와는 달리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었는데,
그것은 진보블로거이신 batblue님 스러운 개그(=batlish gag)와 농담으로 가득 찬 영화라는 점,
마빈이라는 캐릭터의 독창성 때문에 숨넘어갈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
유치한 웃음도 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엄청난 구성 때문이다.

 

영화에도 좋은 영화 나쁜 영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올바른 영화와 행복한 영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야 항상 행복한 영화보다는 올바른 영화를 (의식적으로)선호했지만 이 영화...
올바른 영화는 아니겠지만 그럭저럭 행복한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서 한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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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흘렀더구나

이 글은 '도키님의 2005년 8월 24일'과

              '버섯돌이님의 '1995년 8월 24일을 생각해 보면'에 엮인 글입니다.  

 

 

애 둘이나 있는 부모가 되었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중요한 직책들을 맡고 있었고
민주노동당의 고위간부가 된 사람도, 많이 배워서 더 배울게 없는 사람들도 생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눈가에 주름 하나, 허리에 군살 한점, 귀밑머리에 잔설이 조금씩 더 잡히어 가도
하지만 언제 봐도 즐겁고 반가운 내 친구들, 동지들...

 

그게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생각하고 반갑고 그리운 동지들과 가슴에 서리서리 맺은 회포는 풀었지만, 오늘이 별로 달갑지 만은 않더이다.

 

그 때처럼 그렇게 어리석게 당하지 말자는 반성을 하면서도 혹시 오늘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둔감해 하지는 않는지,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10년 전에 비해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것 같은 현실이 자꾸만 뒤통수를 잡아끌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잠깐 시간이 나서 집안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집과 목욕탕 공사를 하신다고 하여 시간을 내서 오전 내내 도배하고 집안 청소하고 점심 먹고 잠깐 쉬고 있었는데...
웬 아저씨들 몇 명이 집안으로 몰려 왔다.

'오늘 공사 거 하게 하시나 봐. 인부들까지 다 부르시고..'
이렇게 생각하곤 웃옷을 벗고 있어서 옷을 입으러 내방에 들어 왔는데,
그 중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러면서 짧게 외쳤다.

"너희는 모두 잡혔다. 너도 따라와!"

 

순간 고개를 훽 돌리면서 쳐다봤는데, 뭔가 수첩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수첩은 2단으로 접힌 수첩이었는데 손바닥 윗 부분에 받쳐든 면만 보였는데, 그것은 운전면허증!
아마 손바닥에 아랫부분의 든 다른 면에 경찰증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면허증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상황이 좀 코믹했다. 속으로 이 놈들 사기꾼들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마음으로 내 방 유리창과 방충망 구조를 다시 살펴보고 이대로 달아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면서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형사 두 명에 둘러싸여 아버지께서 뭔가를 심각하게 읽고 계셨는데,
옆에 가서 보니까 긴급구속영장이었다.

 

'이거 정말이군'. 이미 형사들이 출구는 가로막고 있었고 저항해 봤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보위수칙들이 어지럽게 머리 속에 떠돌면서, 빨리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 가방 안에 수첩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

 

"수색영장을 안 갖고 왔는데, 어차피 니방 수색할텐데 너만 동의해 주면 지금 할 수 있다."

 

"안됩니다. 영장 갖고 와서 다시 하시죠...그리고 어머니께 죄송한데 인사만 여쭙고 가게 해 주세요..."

 

"그래"

 

엄마...를 부여잡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황망한 엄마의 모습. 이미 핏기마저 가신 엄마의 어깨를 부여잡고 조용하게 죄송하다고 몇 마디 나누면서 곁눈질과 들리지 않는 소리로 '친구들한테 빨리 연락하고 내 가방 치워 주세요'

 

그리곤 곧장 수갑차고 얼굴에 검은 붕대 메고 그렇게 어딘지도 모른 데로 끌려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곳은 홍제동 대공분실.

 

.........

 

그렇게 그 일이 있은 지 꼬박 10년이 흘렀다.

2015년에는 세상은 또 어떻게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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