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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50호> 희망버스, 날라리 그리고 노동운동

 

 

희망버스, 날라리 그리고 노동운동

 

 

지난 6월 11일 밤, 부산 한진중공업 앞에 희망버스가 도착했다. 거기엔 85호 크레인에서 다섯 달 넘게 농성중인 김진숙 동지의 무사귀환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투쟁 승리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한진 자본은 희망버스를 막기 위해 하루 전날 용역깡패를 투입해 조합원들을 폭행했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쌓고 용접해 출입문을 봉쇄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정문 앞에 모여 희망버스를 기다린 사람들과 희망버스를 타고 스스로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은 거침없이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었다. 85호 크레인 앞을 가득 메운 채 김진숙 동지와, 한진 조합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감동의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희망버스의 감동과 노동운동의 무기력

 

언론은 희망버스를 이른바 ‘외부세력’으로 규정짓고 ‘폭력’으로 색칠하려고 했지만 거기엔 자발적으로 모여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금속노조 부양지부는 물론이고 쌍용차, 재능교육, 현대차 비정규직 등 전국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 역시 함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현재의 무기력한 모습을 또 한 번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루 전 날 용역깡패가 투입돼 조합원들을 폭행했지만, 금속노조는 아무런 조직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희망버스와 조직적으로 함께 하려는 움직임 또한 없었다. 부산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금속노조 경남지부 역시 어떠한 연대와 실천도 조직적으로 제안되거나 논의되지 않았다. 금속노조 차원의 지침이 없으니 경남지부에서 조직적 논의와 실천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금속노조와는 무관한 단체와 사람들이 결정하고 추진한 행사였기 때문이었을까, 희망버스는 분명 ‘한진중공업 투쟁’의 일부분이었지만 금속노조는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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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레디앙)

 

민주노총, 날라리가 되자?

 

희망버스가 보여준 모습은 노동운동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간절함과 자발적인 결심으로 모였고,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주체가 되어 한데 어우러졌다. “참가비도, 식사도, 심지어 술도 제공하지만, 열기도, 열정도, 분노도 없”는 노동조합의 관성화 된 집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한 인터넷 언론은 희망버스 참가 기사의 제목을 “민주노총, 날라리가 되자”고 뽑기도 했다.

 

그러나 ‘날라리 외부세력’의 모습에 환호하는 것에서 곧 관성화 된 노동운동의 대안이 마련되지는 않는다. “민주노총, 날라리가 되자”는 것은 그래서 조금 ‘오버’ 한 것이거나 초점이 어긋난 말일 수 있다.

 

‘날라리’는 그들의 존재조건에서 출발한 실천이다. 조직되지 않은 개인으로서 날라리는 생활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스스로 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조직된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운동의 실천은 그 존재기반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날라리에 환호하고 우리도 날라리가 되자고 할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현장에서 스스로 어떤 실천을 조직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노동을 넘어선 사회적 연대

 

희망버스에서 ‘날라리’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연대가 ‘노동’을 넘어서 사회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쌍용자동차 투쟁은 치열하고 전투적이었던 만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평택을 넘어 전국적으로, 노동을 넘어 사회적으로 연대가 확대되지는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활발한 사회적 연대였다.

 

물론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같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을 넘어선 사회적 연대의 확대는 한진중공업 투쟁 승리의 관건이 될 수 있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연대가 사회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 연대의 불씨를 더 확산시켜 나가려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확대되는 사회적 연대의 힘을 빌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내부의 연대를 조직하고 강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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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준 양말선물.

                                         아이들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직접 쓴 감사의 말이 눈물겹다.

 

희망버스에 놀란 한진 자본과 정부는 탄압의 고삐를 더욱 조여오고 있다. 참가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물론이고,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통해 출입을 봉쇄하여 연대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경찰특공대의 85호 크레인 강제진압설이 흘러나오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85호 크레인 강제진압은 ‘설’이 아니라 이미 모든 사전 점검을 끝내고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맞서 제2차 희망버스가 준비되고 있다. 오는 7월 9일, 85호 크레인 농성이 185일째 되는 날, 185대의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모이자는 제안이다. 제1차 희망버스가 17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희망버스를 타자

 

185대의 희망버스가 출발할 수 있기 위해서는 거기에 1차 때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전의 관성대로 금속노조에서 지침으로 결정하면 그에 맞춰 각 사업장별로 간부를 조직하거나 인원을 할당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말자. 금속노조의 지침이 없더라도 각 지부에서 각 사업장에서 스스로 제안하고 결정해서 희망버스를 조직하자. 조합원들의 진심과 자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담아낼 수 있는 방식으로 참가자들을 조직하자. 그래야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날라리들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강제진압설이 흘러나오던 지난 며칠 동안, 날라리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가족대책위에 투쟁기금을 보냈다. 경찰청 인터넷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고, 경찰투입 반대 서명을 조직했다. 한진중공업 투쟁 소식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그 결과 알자지라 방송과 CNN에 한진중공업 투쟁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며, 이 같은 실천에 동참에 인터넷 서명을 하고 항의글을 남기면서도 여전히 고민은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날라리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실천도 좋지만, 현장 조합원들 속에서 연대의 작은 실천을 만들어 내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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