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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조합원은 85호 크레인을 선택했다
한진중공업지회 신임 차해도 지회장 인터뷰
지난 주 금요일 오후, 무척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7기 임원선거에서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정투위) 공동대표인 차해도 후보가 지회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기호2번으로 출마한 차해도-문영복-고지훈 후보조는 54.5%(428표)를 득표해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당선되었다. 반면 지난 6월 27일 일방적으로 파업철회를 선언하며 사장과 손잡고 만세를 부른 전임 지회장 채길용 후보조는 11.7%(92표) 득표를 얻어 최하위로 낙선했다.
이제까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 과정에서 지회 집행부가 보인 어용행위를 생각하면, 정투위 차해도 후보의 당선은 투쟁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회 선거를 이용해 국회 권고안에 따른 교섭에 어깃장을 놓으려던 한진 자본의 계획을 깨뜨리고 투쟁 승리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10월 16일 일요일 저녁,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85호 크레인 앞에서 차해도 신임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계파를 넘어 민주노조 사수 후보 선출
<호루라기> 선거가 조금 늦게 실시되었는데 그 이유는?
<차해도> 6기 집행부의 임기가 9월 말로 끝나기 때문에 원래는 그 전에 선거를 실시해야 하는데, 채길용 지회장의 독단으로 선거가 연기됐다. 아마도 국정감사와 관련해 회사와 일정 조율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 조남호 회장은 지회 선거 때문에 대화 상대가 없어 대화를 못하고 있다며 핑계를 댔다.
<호루라기> 선거는 어떻게 준비했나?
<차해도> 한진중공업에도 몇 개의 계파가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전임 위원장, 지회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고 그 결과 정투위를 중심으로 하나의 후보조를 구성했다.
정투위는 정리해고자 94명과, 해고되지 않았지만 파업에 끝까지 함께한 뒤 회사가 현장복귀를 시키지 않아 교육을 받고 있는 12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정투위 대표와 부대표도 해고자와 비해고자 교육생이 각각 공동으로 맡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는 현실 여건을 감안해 비해고자 교육생으로 후보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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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회사개입 극심해 보이콧도 고민
<호루라기> 선거 과정에서 회사의 개입이 심했을 텐데?
<차해도> 회사는 조합원 1인당 3만원씩 지원금을 책정해 부서별로 회식을 실시하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파트장이나 직장 등 현장 관리자가 참석해 노골적으로 회사가 지원하는 후보를 찍으라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장에서 많은 제보가 들어왔는데 어떤 조합원은 그 광경을 직접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어서 제보하기도 했다.
또한 조합원 개별 성향분석을 해서 중간층으로 분석된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관리자들이 업무시간에 1명씩 불러서 역시 회사가 지원하는 후보를 찍으라고 했다. 이 같은 선거개입이 워낙 심해 한때는 선거 보이콧을 고민할 정도였다. 이번 선거 투표율이 97.1%인데 사상 최고의 투표율이다. 설계부서 등 이전에는 투표율이 낮았던 곳도 회사가 총동원했기 때문이다.
<호루라기> 선거기간에 현장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었나?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차해도> 정리해고자들은 회사출입을 못했지만, 후보와 운동원들은 오전 8시~오후 5시 현장을 돌며 복귀한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에게서는 아직도 투쟁의 피로도가 느껴졌다. 회사는 기호2번이 되면 정리해고 투쟁이 장기화되고, 노동조합이 정치적 활동만 할 거라고 선전했다. 또한 상대편 후보는 이른바 ‘333 공약’으로 실리를 내세워 조합원 지지를 얻으려고 했다. ‘333 공약’이란 앞으로 정리해고를 할 경우 위로금 3억을 지급하고, 현재의 생계난 해결을 위해 생활자금 3천만원을 마련하며, 향후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도록 회사와 합의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조합원들이 실리를 선택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결국 조합원들의 선택은 ‘민주노조’이고 ‘85호 크레인’이었다.
조합원 갈등 치유의 계기
<호루라기>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당선될 것을 예상했나?
<차해도> 3개 팀 이상이 나와서 1차에 과반수 당선된 것 역시 한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차에 40%대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러면 결선투표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은 아직 살아있었고, 민주노주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었다. 이 역시 85호 크레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조합원 내부의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이 된 것도 선거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2003년 투쟁 때도 그랬지만 이번 투쟁에서도 작년 12월 14일 파업 돌입 이후 조기 이탈자, 중도 이탈자 등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과 끝까지 투쟁을 한 정투위 조합원들과 갈등이 매우 심했다. 하지만 선거를 준비하며 정리해고자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현장 조합원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조합원 사이의 갈등이 치유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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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으로 가로막힌 한진중공업 정문 밖에서 유세를 듣고 있는 정리해고자들.
이들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마련된 별도 투표소에서 투표했다.
<호루라기> 언론 보도를 보면, 정투위 후보 당선에 따라 노사교섭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앞으로 교섭에 대한 지회 입장은?
<차해도> 선거에서 회사가 지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 지회를 핑계로 금속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하려는 계획을 회사는 분명히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 그 계획은 실패했다. 앞으로의 조선소 운영이나 수주를 위해 회사 입장에서도 협상 타결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주 수요일이나 목요일부터 교섭이 열릴 것 같은데 회사가 처음부터 성실한 자세로 교섭에 임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지난번 실무교섭 때는 금속노조와 부양지부가 교섭에 참석했는데 앞으로는 지회도 함께 교섭에 참석하기로 했다. 가능하다면 10월 중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
노동조합의 역할 책임있게 하겠다
<호루라기> 지회장으로서 정리해고 투쟁뿐만 아니라 전체 조합원을 위한 사업들도 해야 하지 않나?
<차해도> 2009년 임단협을 아직 타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또 1일 9시간 근로를 하고 고정OT 40시간을 보장하기로 단체협약에 합의되어 있는데, 회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지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생활관 문제, 통근버스 문제, 일상적 현장통제 문제 등 전임집행부가 노동조합 역할을 제대로 안 해 풀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 이러한 조합 현안들도 책임 있게 하나씩 풀어 나갈 것이다.
<호루라기> 코리아타코마 출신으로 경남지역과 인연이 깊은데, 경남지역 동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차해도> 마창노련 시절부터 금속노조 건설과 배달호 열사 투쟁에 이르기까지 경남지역 동지들과의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산연 등 수출자유지역 동지들과 인연이 깊다. 노동운동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만큼 운동 내부의 정파 간 갈등을 극복하고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년 10월 18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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