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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사드는 괜찮다고? 제정신인가?
[정욱식 칼럼] 변화하는 동북아, 외면하는 박근혜 정부
'이렇게 쉽게 예스(yes)해줄 줄이야...'
청와대 안보실장과 국방장관을 겸하고 있는 김관진의 말을 듣고 나온 탄식이다. 김 장관은 1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문제와 관련해 "주한미군이 전력화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이 이 무기를 구매할 계획은 아직 없지만,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는 것은 괜찮다는 의미이다.
그는 또한 미국으로부터 사드 배치를 요청받은 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이 아직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이 먼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또한 중국의 반발 우려에 대해서도 "중국에 위협이 될 만한 유효 거리도 아니고 고도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방부도 측면 지원에 나섰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3월 하순 북한의 노동미사일 시험발사는 "사거리를 단축해서 쏜 것으로 볼 수 있고 북한에서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노동미사일의 고도가 160㎞ 이상 올라갔고 최고속도가 마하 7 이상이었다"며 "(낙하 속도가) 마하 7쯤이면 PAC-3로는 요격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노동미사일은 패트리엇으로 요격할 수 없으니, 사드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김 대변인이 "주한미군이 자체적으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은 우리 안보에 도움은 된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강력히 뒷받침해준다.
중국의 입장을 제대로 보기는 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방부는 사드 배치에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 국방부가 3개월 가까이 지나서 북한의 노동미사일 시험 발사가 패트리엇 회피용이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일종의 여론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방부가 중국의 입장을 오독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의 입장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욕구를 더욱 자극해서 한반도 핵문제 해결과 평화구축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군이 운용하는 사드는 동북아 분쟁 발생 시 중국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드와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X-밴드 레이더는 유효 탐지 반경이 1000km에 달해 오산공군기지에 배치되면 중국 동부의 군사 활동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한미 전략동맹을 공식 선언하고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까지 추진한 바 있고, 박근혜 정부 들어 그 추세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전략 동맹 및 한미일 삼각 동맹의 숨겨진 의도가 중국 봉쇄에 있고 MD는 그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의구심을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고도 MD 참여 아니다?
국방부는 한사코 미국 주도의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 가지만 묻자. 한국 영토에 미국 MD 시스템이 배치되는 것은 참여인가, 아닌가? 한국이 누군가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 추적해 그 정보를 미군과 일본 자위대에 전달하는 것은 참여인가, 아닌가?
한국에는 이미 패트리엇 최신형인 PAC-3가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사드까지 배치되면 한국은 미국 MD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간주될 것이다. 사드가 미국 이외에 배치되는 지역은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군사 정보 공유를 통해 3자 MD의 문을 열어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민감성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와 3자 정보공유 협정에 쉽게 '예스'를 해주면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한국이 MD에 발을 담그면 북핵과 MD는 동반성장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안보를 비롯한 국익은 총체적으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갖고 있다면, 박근혜 정부가 이렇듯 '국익 실종'의 행보를 보일 수는 없다. 왜 MD 배치를 사실상 금지한 ABM 조약이 30년 동안 '전략적 안정과 국제 평화의 초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일까?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를 틈타 ABM 조약에서 탈퇴하자, 왜 '신냉전'의 우려가 제기되었던 것일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면에는 MD를 앞세워 동진(東進)을 시도한 미국과 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은 어떤가? 왜 냉전 시대 적대 관계였던 중국과 러시아가 21세기 들어 손을 잡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라고 갖기를 바라는 것은 정녕 연목구어와 같은 일에 불과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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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김기춘 교체 없는 인적 쇄신 무의미"
[남재희 인터뷰] "국가개조, 독재적 발상"
'안전한 대한민국'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대형 참사 앞에서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오히려 참사 발생 이후 정부의 대응에 숱한 허점들이 드러났다. 희생자 가족 사찰부터 추모 집회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응, 대국민 사과를 한 당일 곧바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원전 행사에 참석한 '둔감함'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여섯 번의 사과 끝에 눈물까지 보였지만, 그 눈물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통치 방식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정권의 졸렬함이 그대로 드러났고, 정부 출범 1년3개월 만에 정권 심판론이 제기되는 촉매제로 작동했다"면서 "박 대통령 스스로가 통치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으로 진행된 정부의 인사 개편에 대해서도 "총리 교체가 핵심이 아니다"라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없는 인적 쇄신은 무의미하다"고 못 박았다. 인터뷰는 27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남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대국민 사과한 날 원자로 수출 행사 참석…정권, 이렇게 둔감한가"
프레시안 :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각 영역에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표출되고 있다.
남재희 : 세월호 사건이 하나의 촉매로 작용해 정권 심판론을 앞당겼다. 세월호 사건이 없었다면 정권 심판론까지는 안 나왔을 텐데, 이 사건이 터지니까 정부의 허점이 드러났다. 무수한 구조적 허점이 노출됐고, 그걸 '핸들링'하는 데 있어서도 정권의 졸렬함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안전'을 강조하며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 약속이 허물어졌다. 또 박 대통령이 '암 덩어리', '원수'로 부르며 규제를 완화한 점, 희생자 가족을 사찰하고 대통령의 조문까지 연출했다는 의혹 등 세월호 사건 이후 정권의 인식 수준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정상적이라면 정권 심판론은 집권 1년 3~4개월 만에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데, 분위기가 앞당겨진 것이다.
프레시안 : 안보나 안전 문제는 보수가 더 강조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특히 박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이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는데 세월호 사건으로 한꺼번에 깨져버렸다.
남재희 : 안전 문제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나. 그런데 의외로 정권이 둔감한 것은 사실이다. 세월호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도 너무도 둔감하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태를 겪었다. 노후 원전에서 비롯된 원전 사고였는데, 우리 역시 설계수명이 이미 지난 월성·고리 원전을 가동 중이다. 사실 원전 문제야말로 엄청난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시한폭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의 생각이 참 안일하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원전 대책은 안 나오고, 하필 세월호 대국민 사과를 한 날 아랍에미리트에 가서 원자로 수출을 축하했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서도 그렇게 둔감할 수 있나.
"국가 개조는 독재적 발상…朴, 통치 방식 잘못 전혀 못 깨달아"
프레시안 : 세월호 후속 대책으로 정부 조직 개편안도 일부 발표됐다.
남재희 : 해경 해체 등의 방안이 오랜 숙의 기간없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이뤄졌다. 너무 무책임하다. 내각하고도 상의하고 광범위하게 여론도 수집해야 하는데, 그야말로 밀실에서 일부 참모진과 뚝딱뚝딱 급조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온 결론이 엉성한 것이다. 말이 해경 해체지, 사실 소속만 달라지는 것이다. 국가안전처를 만든다고 했는데, 국가안전처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인가?
대개의 경우 9.11 테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큰 사건이 터지면, 철저한 조사 기관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철저히 연구한 뒤 그 결과를 내놓는다. 그런데 세월호 같은 그 큰 참사를 겪고서도 심사숙고 없이 보여주기 식 처방 요법만 내놨다. 그게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통치 방식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여섯 번에 걸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비롯해 그 이후 발언을 꼼꼼히 따져보면, 대통령이 스스로를 정부를 총괄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정부 위의 초월적인 존재처럼 인식하는 듯하다. '국가 개조론' 역시 그런 맥락에서 튀어나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희 : 독재적 발상이다. 정권이 어떻게 국가를 개조하나? 정권은 국가 밑의 존재다. 정책의 방향과 노선은 정권이 바꿀 수 있지만, 국가를 어떻게 정권이 개조할 수 있나? 국민을 오도하는 과대망상이다. 춘원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이 그런 이유로 욕을 먹는 것 아닌가. 레토릭으로 하는 얘기겠지만, 진실한 통치자가 내세울 얘기는 아니다.
"김기춘 경질없는 인적 쇄신은 무의미"
프레시안 : 일부 인사 개편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사실상 경질됐다. 쇄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나?
남재희 : 국무총리 한 명 교체한다고 인적 쇄신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권의 핵심도 아니고, 어차피 '대독 총리' 아니었나.
문제의 핵심은 남재준과 김기춘이다. 개편의 서막일지 마지막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남재준 국정원장은 경질됐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해 한국 정치를 1년 내내 주물렀다. 새누리당 윤상현도 잘못했다고 시인했는데, 그걸로 1~2년을 난리를 쳐놓고 이제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끝인가? 국정원장이 해서는 안 될 엄청난 정치 행위를 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심각하게 책임을 물었어야 할 일이다.
이후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다. 만약 국정원의 증거 조작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엄청난 간첩 공세에 시달렸을 것이다. 누가 봐도 박원순을 노린 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남재준 원장은 '아웃'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김기춘 경질없는 인적 쇄신은 무의미하다. 채동욱 '찍어내기'부터 시작해 최근 드러난 KBS에 대한 언론 통제까지, 궁극적인 책임은 이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져야 한다. KBS 사태는 명확하지 않나. 말이 '보도 협조 요청'이지 사실상 언론 통제를 한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김 실장의 전력이 다 말해주고 있지 않나.
프레시안 : 남재준 국정원장 경질을 제외하고는 이번 인사 개편의 의미가 없다고 보나?
남재희 : 그렇다. 안대희 후보자는 사실 괜찮은 이미지였는데 까놓고 보니 '하루 1000만 원'이었다. 서민 입장에서 보면 눈이 뒤집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얘기다. 물론 법률적으로 문제는 안 되지만, 정치적으로는 엄청난 부정이다. 여권에 그만큼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끝까지 안대희를 총리로 밀고가긴 어려울 것이다. (인터뷰 다음날인 28일 안대희 후보자는 전관예우 논란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했다.-편집자)
"野, 정권 심판 반사이익 기대선 안 돼"
프레시안 : 이런 흐름이 이번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나?
남재희 : 지방선거는 엄밀히 말하면 '지역 선거'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지방'은 보통 대도시의 대응 개념이고, '지역'이 이른바 '중앙'의 대응 개념 아닌가.
일단 세월호 전보다 선거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여당 일각에서도 이제 김기춘 실장 교체 목소리가 나오지 않나. 서울, 인천, 충남은 이미 야권 승리를 예상했던 지역이고, 부산에서 야권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광주는 전략 공천이 되어버려서 후유증이 상당할 것 같다.
얼마 전 문재인 의원이 중앙당 차원에선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하지 않아도, 지역적 차원에선 연대가 가능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었는데, 그 얘기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김두관도 무소속으로 그렇게 당선되지 않았나. 또 진보정당 안에도 여러 계통이 있고, 경남의 경우 소위 말하는 이른바 "종북세력"보다는 노조, 농민운동 세력이 있는 곳이다. 과거 권영길이나 강기갑은 단독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경남의 경우 진보정당과 손을 잡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프레시안 : 현재까지의 여론조사만 종합해 보면 막판 여권 지지층의 결집이 예상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야당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남재희 : 야당이 이 국면에서 반사이익을 봤고, 또 그것에만 기대고 있어서 문제다. 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크게 이긴다고 해도, 사실 자기 실력으로 선거 분위기를 바꾼 것이 아니니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이제까지 안철수의 희미한 철학에 대해서 여러 차례 비판했었는데, 안철수는 적당하게 보수층을 끌어안으면 본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당히 중도 노선으로 틀어서, 야당을 여당화시키는 것이다. 정치 철학의 부재며, 그게 지금 야당의 비극이다. 그럼 억눌린 국민은 누가 대변해주나? 야당이 야당 역할을 못하면, 국민만 불쌍해진다.
프레시안 : 이번 선거에서 여권이 패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좀 변화할 수 있다고 보나?
남재희 : 지금은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박 대통령이 통치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부에 대한 지금의 이런 불신과 분노는 쉽게 완화될 것 같지 않다. KBS 사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보통 KBS는 후행적인 저항을 하는 곳이지, 선행적 반항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만큼 잠복된 불만이 크다는 얘기 아니겠나. 심지어 <조선일보>에선 최근 새누리당 비박계가 점차 목소리를 내고 친박계를 누르고 있다는 사설도 나왔다. 집권 1년 반도 안 됐는데, 이상 현상이다.
프레시안 : 최근 남북관계에서도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북측에서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이 좀 과격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이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남재희 : 남북 문제는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관계다. 군사적 긴장이 가장 큰 문제인데, 미국과 한국은 합동 군사 훈련 등 북한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갈수록 증폭시키면서도 북이 핵을 포기하길 바란다. 이건 모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얘기했지만, 남북이 통일된다면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한반도에서 막강한 미군이 철수해야 하고, 주변국에 군사적 위협도 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건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최근 영국의 보수적인 저널인 <이코노미스트>도 그런 결론을 내렸다. '백일몽 신자들'이라는 칼럼이 실렸는데, 그 결론이 이렇다. "한반도에서 미국 군대가 없어지고, 미국 및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면, 통일 한반도를 내다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한 상태로 가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 대박론'은 얼마나 허구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인가. 북한 핵무기는 제거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북한만을 몰아붙일 수도 없다. 미국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친선도 더욱 도모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위치가 어느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우리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조치를 먼저 취할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남재희 : 북핵 문제는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향후 10년 안에도 해결이 어렵다. 가진 게 권총 밖에 없는 사람한테 "권총 버리면 돈 줄게"라고 한 마디 얘기한다고 전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디서 그런 얘기가 통하겠나? 그런 식으로 한반도의 군사 긴장을 높이기보다는, 남북 차원에서 민간 교류나 경제 교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프레시안 : 남재준-김장수 등 군 출신 인사들이 경질됐으니,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 노선에도 수정이 있을 것이라고 보나?
남재희 : 우리 정부의 입장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건 사실 부차적이다. 문제는 미국이 계속 강성이란 점이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대북정책도 연성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봤는데, 부시의 강성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군사적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혔다. 지금 상황에선 일본과 중국의 대결을 오바마가 '푸시(push)'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선 군사적 긴장 해소의 길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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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에 손 놓은 정부, '안보'는 어디로 갔나
[한반도 브리핑] 국가안보도, 인간안보도 아슬아슬한 대한민국
국가가 아무리 국경선과 영토를 잘 지켜도 국민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전통적인 '국가안보'라는 개념이 '인간안보'로 발전한 이유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국민에 대한 위협이 외부의 적에 국한되어 있다면 '국가안보'만으로도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국군이 휴전선을 아무리 잘 지키고 있어도, 북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유로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제는 한국도 안보의 패러다임을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안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현 정부는 국가안보는 잘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에 가장 큰 안보위협은 북이고, 특히 북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서 해결책을 마련하느냐는 한국 정부에게는 가장 중요한 국가안보 의제인 것이다. 이 의제에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을 내걸고 북이 2차례 실시한 핵실험을 인내한 것이 전 정부였다. 현 정부는 '신뢰프로세스'라는 명분을 내걸고 북이 핵능력을 증강시키는 프로세스를 마냥 신뢰하고 있다. '북핵 불용'이라는 주문만을 되뇌며.
그 결과 이제는 미국마저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방정보국 국장은 지난 1월 청문회에서 북이 영변 핵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 규모를 확충하고 있고 플루토늄 원자로도 재가동에 들어갔다고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제프리 루이스 비확산센터 소장도 최근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을 계속 외면한다는 것은 북한이 앞으로 핵무기 보유 숫자를 계속 늘리고 중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이어가며 궁극적으로 높은 폭발력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핵탄두를 개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작년 미국 국방정보국은 <역동적 위협 분석 8099> 보고서에서 북이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 가능성을 두고도 한국정부는 '원칙'만을 되풀이하며 앉아 있는 반면 북은 부지런히 핵능력을 확대 개발하고 있다.
미국은 북의 핵무장 능력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면서 우선적으로 군사적 방어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에 '동맹의 연루' 위험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한미일 정보공유 및 미사일 방어 (MD) 협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미 의회까지 나서서 추진하고 있는 정보공유 및 미사일 방어 협력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한국을 북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하는 데는 거의 실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반발을 초래할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
▲ 지난 4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청와대
이미 중국은 "이곳(한반도)에 MD를 배치하는 것은 지역의 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이롭지 않다"는 경고를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한미일 삼각협력체제로 이 지역에 MD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략군사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국 입장에서는 심각한 국가안보 문제이다. 중국이 한반도 일대에 유지하고 있는 3대전략목표의 하나인 '지역 평화와 안정'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려 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안보를 근원적으로 흔들 수 있는 행보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도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서 6개 참가국이 모두 동의한 목적은 '한반도 비핵화'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최근 방한과 관련, 중국 외교부는 중국이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반면, 한국 외교부는 "북핵 불용의 확고한 원칙 아래에 북한 비핵화"가 목적이라며 이견을 노출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도 문제이지만 북을 겨누는 미국 핵무기도 구조적 문제의 한 부분이라는 현실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반면 '북한 비핵화'는 미국 핵무기는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북의 핵무기는 평화와 안보를 저해한다는 이중잣대를 근거로 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안보라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자가 후자보다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한국 정부는 중국의 3대전략목표의 하나인 '한반도비핵화'와 차이를 공개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방법론에 있어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고 보는 반면 한국은 "의미 있는 대화 재개가 긴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6자회담'을 전제조건 없이 조속히 재개하여 의견차이가 있는 부분은 회담에서 해소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정부는 '6자회담'은 언급하지 않고 '대화' 만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의미 있는' 대화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또 조속히 그런 대화라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적 수사로 원만히 표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국정부는 조속한 '6자회담' 재개에 회의를 표명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지역 평화·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력이라는 중국의 3대전략목표 모두를 두고 한국과 중국의 의견차이가 보다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현재는 '역사상 최상의 시기'라는 수사로 포장하고 있다. 아름다운 말로 거친 국제정치 현실을 덮는 것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한국의 레이더로 탐지한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의 정보를 3국이 즉시 공유하는 체제를 제안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MD 협조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중국도 실력행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북이 핵능력을 끊임없이 확대 발전시킨 후 실력행사를 하고, 중국이 실력행사를 한다면 한국의 국가안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현재 대한민국, 인간안보뿐만 아니라 국가안보도 아슬아슬하다. 이러한 "불안을 조장하는 악의 무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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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7523
동북아서 으르렁대는 미·중, 물밑에서는···
[이수훈의 동북아시대] 적대적이면서 협력적인 미·중 관계
동아시아가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이후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은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도 나름의 대응을 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와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세를 과시하면서 미·일 동맹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중국과 일본의 전투기가 충돌할 뻔 했던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미·중 갈등에 대해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는 "순수 양자 관계로서의 미·중 관계와 동북아 구도 속에서의 미·중 관계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북아에서는 미·중이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미·중 관계는 여전히 상호 협력적이고 호혜적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동북아에서의 미·중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판단 착오가 나올 수 있다"면서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중 간 협력과 갈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분석 틀에서 우리의 입장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이후 한국은 이전보다 미·일 동맹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은 셈이 됐다. 균형적이거나 유연한 외교가 아니라 한쪽에 편중된 외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상당히 머쓱한 처지가 됐다"며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구상도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향후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배치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물로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6일 경남대학교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필리핀 군사기지를 10년 동안 조차한다고 밝힌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오바마가 순방을 끝내고 돌아가자마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석유 시추에 돌입했다. 이후 중국은 상하이에서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를 통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관계를 과시했다. 여기에 지난 24일에는 중국의 공군 전투기와 일본의 자위대기가 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곳에서 30m까지 접근하는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데 어떻게 평가하나?
이수훈 : 순수 양자 관계로서의 미·중 관계와 동북아 구도 속에서의 미·중 관계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영토, 동맹, 북핵, 군사훈련 등 긴장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미·중 관계가 하나 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경제 전략대화를 한다든가 중국과 미국의 전직 고위 인사들이 물밑에서 접촉하는 등 다양한 대화 채널이 돌아가고 있는 미·중 관계가 있다. 이 둘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
순수한 양자 관계로서의 미·중 관계는 큰 변함이 없다고 본다. 미·중 간 접촉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제도적으로 구축돼있는 대화를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양국 관계는 상호 협력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로 계속 진전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동북아 구도 속의 미·중 관계인데, 이것은 꽤 나빠졌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내에서의 미·중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에 동북아 정세 전체가 악화됐고 불안정해졌다. 마치 냉전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정세를 맞이하고 있다. 상호 쏟아내는 말도 그렇고 실제 군사 훈련도 이러한 대결과 대립을 반영하는 듯한 형태로 진전되고 있다.
실제 현재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너무 높다. 역내 군사 훈련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훈련 내용도 몇만 명이 동원되는 대규모훈련이다. 이런 훈련을 연중행사처럼 1년 내내 하고 있다. 한쪽의 군사 훈련이 다른 쪽의 방어 및 대응훈련을 불러오고, 이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또 훈련을 하게끔 만드는 악순환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는 동북아에서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동중국해가 이제는 화약고의 전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중국 공군기와 일본 정찰기가 충돌할 지경으로까지 갔던 일이 있었으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 측면의 미·중 관계가 상황이 매우 다르다보니 동북아에서의 미·중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판단 착오가 나올 수 있다.
프레시안 : 미·중 관계 자체와 동북아 구도 속의 미·중 관계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의 주요 행위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중 관계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반드시 미·중 양국이 군사적, 대결적으로만 가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이수훈 : 그렇다. 실제로 미·중 양국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협력과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스탠포트 대학교에 도날드 에머슨이라는 동아시아 전문가가 있는데, 이 분이 오바마 대통령 아시아 순방 전에 인터뷰를 통해 "미·중 관계를 너무 대결과 경쟁 쪽으로만 보지 마라. 미·중 간에는 어마어마한 교류 채널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중 양자 간 소통이 아주 긴밀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전직 정권에서 근무했던 미국 내 원로들인 키신저, 페리와 더불어 중국의 외교 안보 쪽 임무를 맡았던 분들이 워싱턴과 베이징을 상호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있다. 양국이 두터운 대화 접촉 채널을 갖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그래서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일각에서는 미국이 꼭 일본 편만 드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오바마가 "모든 무력 충돌마다 미군이 개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 같은데?
이수훈 : 그렇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오바마가 일본에서 한 발언은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일본 편을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가 스스로 동북아 분쟁, 동북아 이슈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체적으로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중·일 양자 간 문제니까 대화로, 외교로 해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번에는 센카쿠 열도가 미일 방위조약 대상이라면서 노골적으로 일본 영유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끝난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가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이 상당한 탄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군이 필리핀에 다시 군사기지를 들여 놓고 남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이 있는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동아시아에서의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셈인데, 결국 오바마 1기 때 구상했던 '아시아로의 귀환', '재균형' 정책에 부합하는 행보였다고 볼 수 있다.
▲ 지난 4월 24일 미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다만 오바마에게는 2가지 생각이 혼재돼있는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이슈들, 예를 들면 이란 핵 문제나 시리아 문제 등에 대해 중국과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이 하나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은 인권도 탄압하고 신장 위구르 사태도 있고 언론 자유도 없어서 견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점이다. 그래서 국면·상황과 어떤 사람들한테 호소해야 하는지에 따라 다소 온도 차가 있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 동맹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오바마 방한 이후 북핵문제에 대한 실마리는 나오지 않았고 한미 양국은 오히려 북한에 선(先)행동만 요구했다. 여기에 한미 간 미사일 방어체제(MD) 상호 운용성 증대를 골자로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나간 것 같다. 이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미·중 간 군비 경쟁에 끌려들어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수훈 : 처음에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계기가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다. 양국 정상회담 전에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워싱턴에서 만났고 중국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또 북한의 선행동에 대해 이전보다 조금 완화된 듯한 메시지가 한미 양국 6자회담 수석대표로부터 나오기도 했고. 그래서 기대가 있었는데 북핵 문제보다는 군사적 대응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북한이 여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매우 거친 반응이 나오면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지 못했다.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핵문제가 진전이 안 되면 가동되기 어렵다.
내용적인 측면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합의가 있었다. 우선 이미 연기한 전시작전통제권의 재연기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 등의 동향을 보면 이미 연기를 결정한 것 같다. 아마도 올가을 연례 SCM(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건이 되면'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조건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지금은 북핵, 미사일 등 안보 환경이 좋지 않아 전작권을 환수할 수 없다는 것인데 앞으로 이 조건을 충족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충족됐다는 평가도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하기도 하고.
사실 지금 전작권을 환수해도 우리 안보나 대북 억지력 측면에서 봤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한 미군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도하는 곳이 한국군이냐 미국군이냐 하는, 이른바 '역할'만 바뀌는 것인데 또다시 연기 결정을 한 것은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두 번째가 미사일 방어체제(MD) 문제인데, 이번에 진도가 꽤 나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KAMD)와 미국 MD와의 상호 운용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서로가 거의 단일한 체계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MD 편입에 직전 단계까지 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형식은 아니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편입된 것과 다름없는 셈인데, 형식적인 측면에서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이유는 중국을 비롯해 이를 우려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한미일 군사협력 문제다. 지난 4월 26일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함께 연합사를 방문했을 때 국방부는 한미일 3국 정보 교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상회담 이후에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MOU) 체결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언급을 한 배경에는 오바마나 아베 총리가 구상하고 있는 한미일 3각 안보동맹에도 상당히 깊숙이 들어간다는 합의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동북아 역내에서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번 CICA 때도 확인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 협력을 비롯해 밀월 관계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의 안보 동맹을 강화하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동북아에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프레시안 : 오바마가 원래 한국에 오지 않으려다가 마지막에 순방 스케줄에 한국을 넣었다. 우리가 무리해서 오바마 방문을 유치하다보니 많이 양보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기보다는 우리가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 것 같다는 평가가 있다.
이수훈 : 오바마는 미·일 동맹이 아시아 안보의 토대라고 했다. 우리가 여기에 발을 담근 셈이다. 그래서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상당히 머쓱한 처지가 됐다. 한러 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대륙에 진출하겠다는 구상도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정부의 대외전략이 수미일관하게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을 추진하다고 해서 따라가 보면 그다음에 나오는 조치는 이와 상충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앞으로 러시아와 프로젝트가 가능할지 의문이고,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도 곧 방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한중 양국이 '공동 미래선언'과 같은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CICA 회의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대표로 나섰다는 것이 현 정부 대외전략의 한계를 보여준다. CICA는 우리가 정식 멤버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안보 신뢰 구축과 통합 등을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에 갈 것이 아니라 이 회의에 참석했어야 했다. 본인이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인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가시화된 회의가 CICA인데 여기에 총리도, 외교부 장관도 아닌 통일부 장관을 대리로 보냈다는 것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한 실천적 의지가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CICA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천연가스 계약을 타결하면서 양국 협력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했다. 러시아는 이번 계약으로 매년 380억 제곱미터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한다. 이 계약을 실행하기 위해 양국 간 많은 실무적 접촉과 기능적 협력이 진행될 것이다. 이러다보면 양국 간 안보 동맹에도 상당한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에 목을 매달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엑스포센터에서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 마지막날 행사가 시작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처럼 대륙 국가들은 여러 기제를 통해 상호 협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대륙국가들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구상이다. 이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놓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할 생각 없는 미국, 부담스러워하는 중국 사이에서
프레시안 : 북핵 문제에 관해 미국은 여전히 중국이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수훈 : 현 상황에서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올해 시종일관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도 북핵 용납하지 않겠다,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한 다음에 중국의 역할이 더 발휘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중국 역할론으로 방향을 가지고 간 것이다.
북핵 문제가 초기에 불거졌을 때 북핵은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었다. 즉 북핵 문제는 북미 간 이슈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북핵 문제가 초기에 제기됐을 때와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이제는 북핵 문제가 중국 문제인 것처럼 돼버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꾸 도발적 행위를 하면 중국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그렇다고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의장국으로서 자리를 마련했고, 대화가 잘 안 풀릴 때 북한에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기도 했다. 중재안을 들고 나온 적도 있다. 물론 중국의 중재안에 대해 MB 정부 5년, 또 현 정부에서 계속 거부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북핵 해결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6자회담을 통해 대화해보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또 미국 내 북한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은 측면도 있다. 협상 분위기 자체가 거의 없다.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에서 북핵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나올 동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 역할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과 입장이 다르다. 당사국이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새로 임명될 국가안보실장을 축으로 외교안보 진용이 다시 짜여질 것으로 보이는데, 새로 구성되는 외교안보팀에서 동북아 외교를 너무 한 쪽에 편중되게 해서는 곤란하다.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여러 상황들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외교 행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가 중국 문제처럼 돼버렸고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동력도 없다면, 당분간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남북 교류든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현 정부는 선(先)비핵화, 후(後)남북교류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수훈 :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연설에서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같이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의지가 없고 북핵 해결은 더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의 역할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움직일 공간이 훨씬 넓어진 측면이 있는데 북한과 미국, 일본을 잘 끌어들여야 한다. 외교를 이런 방향에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우리가 6자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손을 잡고 창의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또 미국이 아예 6자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의 이러한 적극적 역할을 내심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대통령과 참모가 손발이 맞지 않으면 곤란하다. 우리가 역할을 발휘해서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돌리고, 이것이 선순환이 돼야 비핵화 진전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내치에서 어려움에 직면해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그것으로도 평가받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사실 남북관계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인적 배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할 수 있는 인물들로 채워야 한다. 평생 군에 있던 분들을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할 위치에 포진시키면 오히려 대통령이 신뢰 프로세스 및 평화협력구상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시키겠다는 강한 동기를 갖는 것과 동시에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임무에 맞게 배치해 외교안보진용을 짜야 한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아닌 민간 교류는 정부 간 관계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장려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한일, 한중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남북 간 민간교류는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우리가 한미일 편에 서길 강요받았는데, 이를 극복하고 균형외교를 할 수 있는 돌파구는 안정적인 남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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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둘러싼 미중 갈등 본격화···한국의 선택은?
[한반도 브리핑]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 걸치기? 현명한 선택 아냐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간의 대립구도가 현실에서 가시화되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중간에 위치한 한국은 국가와 동북아시아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미국은 '아시아 중시' 또는 '아시아로의 재균형' 정책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견제 전략은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 보다는 일본을 통한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일본과 더불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나날이 커지는 중국 경제 확장력에 제동을 걸고, 또 한편으로는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일본 스스로 무장하는 것을 허용하여)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영향력이 확장되지 않도록 봉쇄 (contain)하겠다는 것이다.
미·일간의 경제적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는 TPP의 부진으로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지만 군사적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는 실질적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월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 후 개최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센카쿠열도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 범위에 들어간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미·일 동맹과 지역 안보 방위협력 등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일 양국 정상들간에는 센카쿠열도 문제 이외에 미·일 군사동맹에 관하여 보다 근본적이며 중요한 문제가 협의되고 합의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그로부터 약 3주 후 있었던 아베 일본 총리의 헌법 수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 그리고 미국 국무성의 지지 성명을 통해 뒷받침된다.
5월 15일 아베 총리는 총리 자문기구로부터 집단 자위권에 관한 헌법 해석의 변경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정식으로 제출받은 뒤 자위대가 자국 방위와 국제 평화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찾을 것임을 약속하였다. 즉 일본의 대외 무력행사를 금지해온 헌법 제9조를 수정함으로써 국제분쟁에서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오후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금의 일본 헌법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헌법 (제9조)에 명시하였기 때문에 '맥아더 헌법' 또는 '평화 헌법'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미국의 동의 또는 승낙 없이 일본 스스로 헌법 제9조를 수정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헌법수정을 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결코 일본의 단독 결정이 아님은 마리 하프 미 국무성 부대변인을 통해 확인된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나온 직후 하프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집단자위권을 둘러싼 일본 내부 논의를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와 국민 몫이라면서 "일본은 60년 넘게 평화와 민주주의, 국제안보에 기여했으며 앞으로도 평화를 존중하는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프가 국무성의 부대변인임을 감안할 때 그의 브리핑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미국 외교를 총괄하는 국무성의 입장이며, 미국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베 총리의 도발적인 발언이 나오고 곧이어 미국 국무성 부대변인의 지지 성명이 나온 것은 우연히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미 4월 25일 미·일 정상 간에 합의를 보고 조율이 되어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미국의 일본을 통한 중국견제정책이 구체화 그리고 현실화된 것이다.
한편 중국도 여기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중국은 러시아와 지난 5월 20일 상하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러 정상회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11개국 국가원수와 1명의 정부 수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한 10명의 국제조직 고위 인사 등 모두 46개 국가와 국제조직 지도자들이 참석한 제4차 아시아신뢰회의 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장국인 중국과 참여국 중의 하나인 러시아 간 의례적 만남(courtesy meeting)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중·러 정상회담에서 협의된 내용들 그리고 그것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것이 단지 주최국과 참여국 간의 의례적 만남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중·러 관계 및 북핵 문제를 포함한 국제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전면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시 주석의 취임 이후 15개월 만에 벌써 7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화 통화, 서신 교환으로 신뢰를 쌓고 소통을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양국 관계의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우호적인 이웃이자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역량"이라고 하면서 "양국관계의 격상은 국제적 공평·정의 촉진, 세계의 평화·발전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세계 다극화를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외교상 수사적 차원을 넘어서 현실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중국은 현재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는 일극 질서를 불공평하고 정의를 촉진시키지 못하며 세계 평화와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질서를 이루는 또 다른 축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집권 초 중국 외교가 세계 규칙의 추종자(追從子)에서 제정자(制定子)로 변하고 있다며 국제 지위에 걸맞고 국가 안보와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며 과거의 저자세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정책이 끝났음을 선언하였지만 도광양회의 틀에서 벗어난 중국의 외교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었다.
항간에서는 미국에 비해 아직 경제적·군사적으로 현저히 열등한 위치에 있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기 때문에 수사적으로는 중국의 외교가 추종자에서 제정자로 변하고 있다고 선언하였지만 현실적으로 도광양회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였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러시아와의 동반자적 관계를 통해 미국 일극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엑스포센터에서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 마지막날 행사가 시작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각론으로 들어가서 양국은 경제적으로 에너지, 첨단기술, 우주항공, 기초시설건설 등에 대한 투자, 개발 그리고 협력을 추진하며 중국의 실크로드 경제지대 건설과 러시아의 유라시아 철도 건설을 통해 경제 교류를 늘리고 유라시아 시장을 함께 건설하여 2015년 이전까지 양국 간의 무역액이 1000억 달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미·일이 주도하고 있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군사·외교적으로 시진핑은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양국이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마련한 틀 내에서 안전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안정을 지켜야 한다며 연합훈련과 군사기술, 반(反)테러 등 분야에서의 협력을 심화시켜 반테러 훈련도 차질 없이 해 나가자고 제안하였다.
양국의 군사·외교적 협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우회적이긴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경계 경고성 발언을 했다는 것과 이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화답이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은 세계의 반파시스트전쟁 및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으로 양국이 경축 기념활동을 거행키로 합의했다"면서 "2차 대전 승리의 성과와 전후 국제질서를 수호함으로써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야만적' 침략이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푸틴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세계의 반파시스트 전쟁과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공동으로 경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중·러 양국정상이 일본의 군국주의적 부활에 (나아가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을 공식화 한 것인데 이것은 단지 외교 수사적 발언이 아니었다.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7일간 진행되는 중국과 러시아간의 '해상연합-2014' 훈련으로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원래 중·러 간 군사합동 훈련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훈련 기간에 맞춰 푸틴 대통령이 방중을 한 것은 이번 일정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미·일 군사동맹에 맞서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을 한 축으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대립구도가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미·일 동맹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강하게 받고 있다.
한·미·일 삼국은 이미 2008년부터 매년 한미일 안보토의(DTT: Defense Tri-lateral Talks)를 갖고 있다. DTT가 세 나라 간 정보공유와 정책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회의라고 하지만 이것만을 위한 회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DTT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게 비밀스럽게 진행되었으며, 3국 국방 실무의 최윗선이라 할 수 있는 한·미·일 국방부의 차관보급 인사가 수석대표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DTT는 애초부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가기 위한 사전 준비 성격을 띤 회의이라 할 수 있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의 후임으로 국방장관 비서실장과 한·미·일 3자 국방회담(DTT) 수석대표를 지낸 마크 리퍼트가 내정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이 한국에 어떤 강도(degree)로 미·일 군사동맹에 참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게 미국이 요청한다고 한국이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을 수 있을까? 또 만약 그렇게 한다면 경제적 생존기반을 무역으로 하는 한국이 자신의 제1통상국인 중국 (한-중간 무역 총액은 한-미, 한-일 무역 총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그리고 한국경제 미래성장의 발판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 경협 그리고 러시아와의 자원 개발 및 협력의 주로(走路)로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하였다)이 된다고 하는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국익을 생각한다면 결코 취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또한 그 역(逆)도 마찬가지이다. 대립구도가 구체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쪽에도 한발 또 저쪽에도 한발 걸치는 양다리 전략은 국익에 부합하지도, 실현 가능한 대안도 아니다.
한국이 국익을 위에 놓고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중립 노선이다. 나아가 북한과 협력하여 어느 진영에도 치우치지 않는 한반도 중립화를 도모하여 한반도 전체를 완충지대로 만든다면, 현재 가시화 되고 있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대립과 갈등을 중화(中和)시켜 화해와 협력으로 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중심에 그리고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한반도에 평화 없이는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중립화의 첫 번째 단추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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