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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학, 「제5장 안보대안으로서 ‘동맹’의 부당성」(강정구·박기학, 『G2 시대 한반도 평화의 길』, 한울, 2012)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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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학, 「제5장 안보대안으로서 ‘동맹’의 부당성」(강정구·박기학, 『G2 시대 한반도 평화의 길』, 한울, 2012)을 읽고
dolmin98@hanmail.net 돌민

1.

 “미국이 냉전 시기에 대소 및 대중 봉쇄를 위해 맺은 동맹들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미 종속동맹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한미동맹처럼 작전통제권까지 빼앗기면서 철저히 종속을 강제 당한 동맹이 있는가 하면 미영동맹처럼 미국의 세계패권전략 실현에 적극 앞장서면서 이익을 분배받는 동맹 유형도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은 그 정치적·군사적·경제적 독립성에 차이가 있는데도 미국의 세계적인 군사지배체제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리고 종속현상은 오늘날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동맹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이나 독일, 일본 등은 약소국이 아니라 경제 및 군사 강국이지만 미국의 패권적이고 위계적인 동맹질서에 편입되어 있다. 오늘날의 동맹의 종속현상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세계패권주의 수단으로서 동맹이 이용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 점에서 동맹의 종속성을 일반적 현상이 아닌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동맹에 국한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미국의 세계패권주의로부터 발생한 동맹의 종속문제를 은폐하는 주장이다.”(박기학, 「제5장 안보대안으로서 ‘동맹’의 부당성」(강정구·박기학, 『G2 시대 한반도 평화의 길』, 한울, 2012, 351쪽)

 이 논문에서 첫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위에 옮겨 놓았다. 오늘날 동맹의 종속성은 일반적 현상인데 그것의 원인은 미국의 세계패권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섯째, 국방은 공공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사적재의 성격을 아울러, 아니 더욱 크게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방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공급되고 똑같은 이익을 주는가? 국방은 일부에게 치부 및 권력사유화의 수단이 되고 미국의 군수자본과 국내 방위기업에 경제적 이익을 주고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얻기 위해 기여했다. 반면 국방은 자위를 넘어서는, 공격을 위한 군사력의 증강 또는 도를 넘어서는 군사훈련은 국민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정적 부담을 안기고 안보불안을 야기한다. 이라크전 등 참전의무가 없는 전쟁에, 미국의 강요에 의해 파병한 것은 미국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위의 글, 372쪽)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내용이다. 첫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내용과 합쳐 보면 국방이 미국의 세계패권주의, 군수자본, 그리고 국내의 방위기업에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2.

 “미국체제 아래서 보호비용은 재생산비용의 주요 구성요소였다. 여기에 동아시아체제의 또 다른 힘이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 경제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부가가치 계서제에서 상승이동한 것은, 일본 자본가들이 보호비용을 외부화하고 미국 전쟁-복지 국가에 값싼 제조업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이윤추구에 특화할 수 있도록 해준, 정치적 교환 관계에 기반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부여한 우호적 조건들 덕에 일본은 국내에서 보호비용을 외부화할 수 있었고 미국 구매력에 대한 특권적 접근이 가능했는데, 이 우호적 조건들은 미국와 아시아의 전쟁이 지속되는 한에서만 ‘관대하게’ 유지되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중국과의 해빙에 노력하기로 결정하자마자, 일본에 대한 미국의 보호공급 ‘가격’은 오르고 그 다음에는 폭증하기 시작했다.”(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길, 2008, 583쪽)

 조반니 아리기는 미일동맹을 포함한 미일관계를 정치적 교환 관계로 보는데, 이 관계가 70년대 전후에 일본 국민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일미관계가 미국의 세계패권주의, 군수자본, 그리고 일본의 방위기업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첫 번째 문장부터 두 번째 문장까지, 재생산비용의 주요 구성요소였던 보호비용의 외부화가 동아시아 체제의 또 다른 힘이었다는 주장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같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면서도, 자국이 분단되었던 독일과는 달리 조선이 분단되었던 일본은 “보호비용을 외부화”했기 때문에 여기에 또 다른 힘이 있었다고 물론 생각한다. 아리기가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의 전쟁이 지속되는 한에서”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70년대 이전 동아시아체제의 나머지 국가들도 보호비용을 외부화했는지는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남조선은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호비용의 어디까지가 내부이고 외부인지, 남한의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에게 보호비용을 외부화한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필자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또는 대분단질서라고 한 것은 개념적으로 그 대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과 전쟁이 수반한 반인류적 범죄들이 일본과 아시아대륙 사이에 심대한 역사심리적 분단의 기초를 마련했다. 2) 전후 공산화된 중국과 미국이 대결을 선택함으로써 한국전쟁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냉전질서를 고착시켰으며, 동아시아의 냉전체제는 곧 동아시아의 분단체제였다. 이 분단체제는 단순히 일본과 중국, 일본과 아시아의 분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분단은 미소 간의 냉전체제가 고착시키고 강화한 것이기 때문에 미일동맹체제와 아시아대륙 사이의 분단이었다. 3)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냉전구조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두개의 ‘소분단체제’들을 거느렸다. 한반도의 분단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분단이다. 이들 소분단체제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라시아대륙과 동아태 해양세력사이의 냉전구조와 결부되어 있으며, 미일동맹체제와 중국대륙 사이의 대분단체제와 상승적인 상호작용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4) 이로써 중국대륙의 동해안선을 따라 한반도의 휴전선을 가로지르기에 이르는 거대한 ‘동아시아 분단선’이 성립하였다. 5) 탈냉전으로 유럽의 분단질서는 극복되었으나 동아시아 분단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그 이유로 필자는 동아시아지역질서의 독립성, 대분단체제와 소분단체제의 상호작용, 중국의 초강국 잠재력에 대한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인식, 대륙과 동아태국가들 사이의 정치질서의 이질성, 탈냉전후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그리고 냉전해체과정의 이중적 비대칭성이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질서에 미친 영향이 구조적 차이를 보인 점 등을 지적했었다(이삼성 2004).” (이삼성,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공동체 사이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제6권 제2호, 2006, 7쪽)

 그래서 동아시아 질서에 관해서 이삼성의 견해가 좀 더 나아보인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질서가 유럽과는 다른 “동아시아 분단선”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리기도 언급하고 있는 “아시아 전쟁”들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정합적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다시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과 전쟁”이 원인이 되어 “동아시아 분단선”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정합적 설명이 말이다. 이렇게 동아시아 분단체제, 대분단·소분단체제를 인식해야 보호비용의 외부화를 둘러싸고 일본의 경우와 동아시아체제 나머지 국가들의 경우를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의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의문을 품자! 부디 생산적인 질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내세우는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2010~11년 아랍 혁명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이후인 2014년 오늘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선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또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첫째 G2의 한 축인 중국으로 상징되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전략이고 둘째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로 상징되는 대중국(對中國) 봉쇄 전략인 셈인데, 이 역시 미국의 세계패권주의에만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닐까? 아랍 혁명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이어, 아시아에서부터 세계패권주의에 대항하는 행동으로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끝장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레닌의 주장처럼 주체적으로 말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진정으로 끝내는 것은 자본가 계급에 대한 내전이라고 말이다. 2014년 오늘 한반도 평화협정, 동북아 공동안보평화체제, 그리고 전 지구적 동맹체에 단호히 맞서는 대안 세계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4.

 “내가,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평화주의자들이 (코소보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소수의 운동이었네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자네에게 말했을 때, 내 사랑하는 친구, 자네는 미소로 – 내가 자네 앞에서 웃었다고는 말하지 말게 – 답했었지. 도덕적 증언으로는 사태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평화주의자들이 실제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네. 그 대신에 필요한 것은 노동시장을 확대하고 노동력 재생산의 새롭고 공평한 규칙을 고안하는 것이며, 이제 석유 대신에 일자리를 지불해야 한다고도 자네는 말했지. 따라서 평화주의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랍 혁명의 정치적 지원자로서, 아랍사회 혁명에 물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네.”(안또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선언, 갈무리, 2012, 193~194쪽)

 오늘날 한미동맹이 미국의 세계패권주의, 군수자본, 그리고 국내의 방위기업에만 이익이 된다면 “도덕적 증언으로는 사태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평화주의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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