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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으로 보는 조선의 사회계약론자 정약용

  • 등록일
    2013/06/08 18:41
  • 수정일
    2013/06/0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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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百姓)을 위해서 목(牧-통치자)이 존재(存在)하는가, 백성이 목(牧)을 위해서 태어났는가? 백성들은 곡식(穀食)과 피륙을 내어 목(牧)을 섬기고, 백성들은 수레와 말을 내어 추종(追從)하면서 목(牧)을 송영(送迎)하며, 백성들은 고혈(膏血)과 진수(津髓)를 모두 짜내어 목(牧)을 살찌게 하니, 백성들이 목(牧)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목(牧)이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태고시대(太古時代)에는 백성만이 있었을 뿐이니 어찌 목(牧)이 존재하였을 것인가. 백성들은 무지(無智)하여 집단적(集團的)으로 모여 살았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분쟁(紛爭)이 일어났을 때, 이를 결판(決判)지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노인(老人)이 있어서 공정(公正)한 말을 잘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노인에게 가서 판결(判決)을 받고, 또 모든 이웃사람들이 그에게 복종(服從)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인을 추대(推戴)하여 이정(里正-이장)이라고 불렀다. 또한 수개소(數個所)의 마을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의 노인이 현명(賢明)하고 지식(知識)이 많았기 때문에 수개소(數個所)의 마을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가서 판결을 받고 그에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를 추대하여 당정(黨正-면장)이라고 불렀다. 또한 몇 개 구역(區域)의 인민(人民)이 서로 분쟁을 일으켜 해결을 짓지 못하다가, 어느 한 사람의 노인이 현명하고 덕(德)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에게 가서 판결을 받고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추대하여 주장(州長)이라 불렀다. 이상과 같은 사정(事情)과 순서(順序)를 밟아서 몇 개 주(州)의 주장(州長)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장(長)으로 삼아 국군(國君)이라 칭하고, 또한 여러 지방(地方)의 국군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장으로 삼아 방백(方伯)이라 칭하고, 사방(四方)의 방백(方伯)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최고의 장으로 삼아 황왕(皇王-황제)이라 부르니 황왕의 근본은 이정(里正)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따라서 목(牧)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정(里正)은 백성들의 희망을 좇아서 법(法)을 제정하여 당정(黨正)에게 올리고, 당정은 백성들의 희망을 좇아 법을 제정하여 주장(州長)에게 올리고, 주장은 이를 국군(國君)에게 올리며, 국군은 다시 황왕(皇王)에게 올린다. 그러므로 그 법은 모두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後世)에는 어느 한 사람이 자립(自立)하여 황제(皇帝)가 되어 자기의 자제(子弟)와 종복(從僕)들을 제후(諸侯)로 삼고, 제후는 자기의 심복(心腹)을 천거하여 주장(州長)을 삼고, 주장(州長)은 자기의 심복을 간택하여 당정(黨正)․이정(里正)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황제는 자기의 욕망(慾望)을 좇아서 법을 제정하여 제후에게 내리고, 제후는 다시 자신의 욕망대로 법을 제정하여 주장에게 내린다. 이런 식으로 주장은 다시 당정에게, 당정은 이정에게 내리니, 그 법은 모두 통치자(統治者)의 지위(地位)를 높여주고 인민의 지위는 저하시키며, 아랫사람에게는 각박하게 대하고 윗사람에게는 아부(阿附)한다. 그리하여 인민은 마치 통치자를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되어버렸다.

 

오늘날의 수령(守令)들은 마치 옛날의 제후와 같이 권력화(權力化)하여 사는 궁실(宮室)이나 타고 다니는 여마(輿馬), 입는 의복(衣服)이나 먹는 음식(飮食), 좌우에서 시중드는 종들을 거느린 것 등이 마치 국군의 그것에 비길 만하고, 그들의 권능(權能)은 넉넉히 사람들을 경하(慶賀)할 만하고, 그들의 형위(刑威)는 넉넉히 사람들을 두렵게 할 만하다. 그리하여 수령(守令)들은 오만스럽게 자신을 뽐내고 태평스럽게 스스로 안일(安逸)에 빠져서 자기가 목자(牧者)라는 것을 망각한다. 사람들이 분쟁을 일으켜 찾아가 판결을 구하면, 귀찮아서 “왜 이렇게 시그러우냐?”고 말하고, 굶어죽는 사람이 있으면 “제 스스로 죽은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곡식과 피륙을 바쳐서 섬기지 않으면 곤장(棍杖)을 때리고 몽둥이질을 하여 피를 흘리게 한 뒤에야 그친다. 날마다 착취(搾取)하여 거둬들인 돈 꾸러미를 세고, 낱낱이 기록(記錄)하고, 주(注)를 달고, 착오(錯誤)와 탈락(脫落)을 수정 첨가하여 돈과 피륙을 징수하여 전지(田地)와 주택(住宅)을 장만하고, 권세(權勢)있고 귀(貴)한 집에 뇌물(賂物)을 보내어 뒷날의 이익을 기다린다. 이러고서야 백성이 목(牧)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니, 어찌 타당한 이치라 하겠는가? 목(牧)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한영우(韓永愚) 해설과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