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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헌기》로 보는 '사회적 슬픔'을 슬퍼할 수 있는 능력

  • 등록일
    2013/06/08 18:56
  • 수정일
    2013/06/0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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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카 허친이 집을 짓고서는 통곡헌(慟哭軒)이란 이름의 편액(偏額.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을 내다 걸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즐길 일들이 얼마나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을 건단 말인가? 곡이란 상(喪)을 당한 자식이나 버림받은 여인이 하는 행위가 아니던가. 세상 사람들은 그런 곡소리를 몹시 듣기 싫어한다네, 남들은 기필코 꺼리는 것을 일부러 가져다가 집에 걸어두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통곡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하였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과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오직 비천함과 가난, 곤궁과 궁핍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살고 싶고, 하는 일마다 반드시 이 세상과 배치되고자 합니다. 곡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능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 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나의 조카 허친이 집에 '통곡헌'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

 

그 사연을 듣고서 나는 조카를 비웃은 많은 사람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곡하는 것에도 도(道)가 있다. 인간의 일곱 가지 정[七情] 가운데 슬픔보다 감동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없다. 슬픔에 이르면 반드시 곡을 하기 마련인데, 그 슬픔을 자아내는 사연도 복잡다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時事,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진행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통곡한 가의(賈誼, 중국 문제 때의 학자 · 정치가로, 유학과 오행설에 기초를 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주장함)가 있었고, 하얀 비단실이 본바탕을 잃고 다른 색깔로 변하는 것을 슬퍼하여 통곡한 묵적(墨翟, 중국 춘추 전국시대 노나라의 사상가 · 철학자로, 유가에게 배웠으나 무차별적 박애의 겸애를 설파하고 평화론을 주장하여 유가와 견줄 만한 학파를 이룸)이 있었으며, 갈림길이 동쪽 · 서쪽으로 나 있는 것을 싫어하여 통곡한 양주(중국 전국 시대의 학자로, 노자사상의 일단을 이은 염세적 인생관으로 자기중심적인 쾌락주의를 주장함)가 있었다. 또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되어 통곡한 완적(중국 위나라의 사상가 · 문학자 · 시인으로 노장의 학문을 연구하였으나 정계에서 물러난 후, 술과 청담으로 세월을 보냄)이 있었으며, 좋은 시대와 좋은 운명을 만나지 못해 스스로 인간 세상 밖에 버려진 신세가 되어 통곡하는 행위로써 자신의 뜻을 드러내 보인 당구(唐衢)가 있었다.(시대의 아픔을 맞아 절실하게 통곡한 위대한 인물들)

그분들은 모두가 깊은 생각이 있어서 통곡했을 뿐, 이별로 마음이 상하거나 남에게 굴욕을 느껴 가슴을 부여안은 채 통곡하는 아녀자를 흉내내지 않았다.

그분들이 처한 시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은 훨씬 더 말세에 가깝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 들어가며, 친구끼리 반복하여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배신 행위는 길이 갈려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비들이 곤액(困厄)을 당하는 상황이 막다른 길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모두들 인간 세상 밖으로 숨어 버리려는 계획을 도모한다. 만약 저 여러 군자들이 이 시대를 직접 본다면 어떠한 생각을 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彭咸)이나 굴원(屈原)이 그랬듯 바위를 가슴에 안고 물에 몸을 던지려 하지나 않을까?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예전보다 더 불우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이러한 시절을 맞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서 '통곡헌'이라고 지었을 것임). 그러니 너희들은 통곡이란 편액을 비웃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비웃던 자들이 "잘 알았습니다."라며 물러났다. 오간 대화를 정리하여 글로 써서, 뭇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풀어주고자 한다(<통곡헌기>를 지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