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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발견 분쟁, 교통 정리되다 [제 844 호/2008-12-01]

에이즈(AIDS), 자궁경부암. 모두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바이러스는 해마다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가는 원흉이자 라틴어로 독(virus)을 뜻하는 미생물이다. 그러나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고, 바이러스도 잘만 이용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달갑잖은 불청객인 바이러스의 실체를 밝히고 또 그것을 이용해 암 백신까지 개발한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한 명인 독일 암 연구소의 하랄트 추어하우젠 박사다.

유전자와 단백질 껍질뿐인 바이러스엔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효소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람 같은 숙주 세포 안으로 뚫고 들어가 증식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 때문에 바이러스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키며 성공적으로 살아남는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런 바이러스를 연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상선정위원회는 2008년 10월 6일, 추어하우젠 박사 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발견한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박사와 뤼크 몽타니에 박사를 공동으로 선정했다. 이들은 암과 에이즈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균을 발견함으로써 예방과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흔히 에이즈라고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리면 인체의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에이즈 환자는 사소한 질병에 걸려도 목숨을 잃기 쉽다. 현재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4000만 명이 넘으며, 작년 한 해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21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어린이도 33만 명이나 된다. 에이즈 환자는 매년 250만 명씩 늘어난다.

에이즈 첫 환자는 1981년 미국 의학계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었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혈우병 환자와 동성연애자 사이에서 발견됐다. 괴질로 알려진 이 질병으로 폐렴증상이 발생했고, 면역결핍으로 인해 사망까지 이르게 됐다. 순식간에 전 세계는 알 수 없는 이 질병으로 공포에 빠졌다. 과학자들은 에이즈바이러스의 규명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1983년, 프랑스의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가 에이즈바이러스인 HIV를 세계 처음으로 혈액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성매매와 수혈 등이 에이즈의 발병 원인임을 규명해냈다. 에이즈 극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순간이었다. 정체불명의 존재였던 에이즈의 실체가 두 사람에 의해 베일을 벗게 됐을 뿐 아니라, 이것은 에이즈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에이즈바이러스는 8~12시간마다 복제를 하고 그때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바레시누시와 몽타니에 박사는 HIV가 일반 유전정보 전달 방식과 정반대인 역전사(retro-transcription) 방식을 통해 번식한다는 점과, 대량 바이러스 복제를 통해 임파구 세포를 손상시켜 면역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특성을 찾아냈다. 역전사는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 자신의 유전암호를 숙주의 DNA에다 복사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다. 역전사 바이러스들은 다양한 병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 결과는 면역결핍 환자의 림프구 세포가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바레시누시-몽타니에 박사팀이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들이 처음 발견한 HIV 바이러스를 놓고 당시 미국국립보건원(NIH)의 로버트 갤로 박사와 최초 발견에 대한 논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HIV를 처음 발견한 바레시누시-몽타니에 박사는 당시 세계 최고의 미생물 석학이었던 갤로 박사에게 논문과 사진을 보내 확인을 부탁했다. 갤로 박사는 1979년 레트로바이러스를 발견했는데, 이는 암과 관련해 발견된 최초의 바이러스여서 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구를 미국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하기 위해 갤로 박사의 추천을 받고자 한 것이다. 바이러스 이름도 HIV가 아닌 LAV(Lymphadenopathy Associated Virus, 임파종 결합 바이러스)였다.

그런데 얼마 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레시누시 박사와 몽타니에 박사의 연구결과가 나온 1년 뒤인 1984년 5월, 갤로 박사가 사이언스지에 자신이 에이즈 환자의 림프구에서 HIV를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갤로 박사가 발견했다는 에이즈바이러스는 HTLV라고 불렸다.

이때부터 에이즈 바이러스를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를 두고 프랑스와 미국 간에 소송까지 걸며 대논쟁이 시작되었다. 국가간 분쟁은 양국 정상간 다툼이 되기도 했다. 이들 간의 싸움은 1987년 3월 정치적으로 끝이 났다. 프랑스와 미국은 바레시누시-몽타니에와 갤로를 에이즈 바이러스의 동시 발견자로 인정하고 바이러스 발견에 대한 권리를 양쪽에 똑같이 나누도록 약속했다. 발견자들도 1990년 이 문제를 두고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때 에이즈바이러스는 LAV도 HTLV도 아닌 HIV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레시누시-몽타니에 박사가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두 사람은 최초 발견자로 ‘승인’을 받은 셈이다. 또한 이로써 HIV 발견자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1981년 첫 환자가 발생하여 2년 후인 1983년에 그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찾아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과학사상 이처럼 단기간에 특정 질환의 원인을 규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이즈바이러스는 아직까지 100%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 에이즈에 감염되더라도 10년 이상 조절하면서 생명에 큰 지장 없이 살 수 있다. 요즘은 마치 성인병과 같이 에이즈의 관리와 조절이 가능하다. HIV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가 어느 바이러스보다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에이즈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할 일만 남았다. 백신은 바이러스 치료의 원조다. 몽타니에 박사는 4년 안에 에이즈를 치료하면서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까지 에이즈 치료제가 없는 만큼, 에이즈 백신 개발 또한 훗날 노벨 생리학상감이 아닐까.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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