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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칩,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제 905 호/2009-04-22]

강원도 오색에서 출발하여 설악산에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지만 단시간에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코스이다. 4-5시간 정도 등반하여 중청봉(1,676m) 정상에 올라서면 설악산이 발아래 내려다보이고, 저만치 자신보다 유일하게 높은 대청봉(1,708m)이 보인다. 대청봉 방향으로 보이는 산의 곡면은 넓게 펼쳐진 말 잔등과 같은 형상으로 눈에 들어온다.

중청봉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길은 능선을 따라서 약간 내려가다가 다시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게 된다. 중간에 가장 낮은 점에 도달하면 등산로 진행방향으로는 최저점이지만 옆 방향으로는 여전히 능선상의 제일 높은 최고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쪽으로는 최소값, 다른 방향으로는 최대값을 갖는 지점을 말안장 점 또는 새들 포인트(saddle point)라고 한다. 말의 안장과 같이 머리부터 엉덩이 방향으로는 위로 오목하지만 말의 등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는 위로 불룩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형세를 f(x,y)라는 곡면함수로 표시할 수 있다. 수학에서 미분값이 영이면 기울기가 영이므로 최대 또는 최소가 된다. 이때, 2차 미분값이 양쪽으로 모두 양의 값을 가지면 최소, 즉 움푹 파인 분지 형상이 되고, 모두 음의 값을 가지면 최대, 즉 위로 불룩한 산봉우리 형상이 된다. 그런데 특이하게 한쪽으로는 양, 다른 방향으로는 음이 될 때에는 봉우리(최대)도 분지(최소)도 아닌 최대최소(min-max)의 말안장 점이 된다. 말안장 점에서 바라본 말안장 곡면은 양쪽이 서로 다른 쪽으로 휘어진 형상 때문에 다소 기이한 느낌이 들게 한다.



말안장 곡면은 복잡한 형상을 연결하는 기계부품이나 표면 디자인에 응용되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3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는 감자칩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정한 크기로 잘라낸 원형 칩을 양쪽으로 다른 곡률을 갖는 쌍곡선-포물곡면(hyperbolic-paraboloid)이라는 독특한 형상으로 만들어 원통형 용기 내에 매우 효율적으로 차곡차곡 담을 수 있도록 하였다. 평면 형태로 만들거나 한쪽으로만 곡률을 준 것보다 손으로 잡기도 편리하고 무엇보다도 얇은 칩의 부피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감자칩은 맛도 맛이려니와 테니스공을 넣는 통과 같은 독특한 원통형 포장 용기와 수학적인 말안장 곡면형상의 설계로 유명해졌다.



스키나 보드를 잘 타는 사람들은 밋밋한 경사보다는 범프가 많은 슬로프에서 새들 포인트를 즐긴다. 이들은 스키가 지나가면서 만들어 놓은 눈더미(mogul)와 골(trough)을 통과할 때 모글과 모글 사이로 말안장 점을 곧바로 통과하는 기술을 구사한다. 맨 처음 범프에서는 6-8부 능선으로 진입하고 첫째와 둘째 범프 사이 위아래에 있는 말안장 점을 비스듬히 지나서 다시 세 번째 범프의 6-8부 능선으로 진입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골을 따라서 좌우로 움직이며 진행하는 것보다 짧은 최단의 직선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말안장 곡면이나 구 표면에서 최단 경로는 평면상에서의 직선과 다르다. 한 예로 평면상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지만, 구 표면상에 그려진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보다 크다. 반대로 말안장 곡면상에 그려진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작다.



설원의 고수가 되려면 눈 표면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기하학적인 곡면을 따라가면서 최단 경로를 감각적으로 포착해야 한다. 새들 포인트와 최대 최소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이들로 이루어진 입체형상을 머릿속의 3D 프로그램으로 분주하게 애니메이션 해야 할 것 같다.

과학이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사소한 것도 과학의 이치를 거스르는 게 없다. 어디에나 과학은 숨어 있다.

글 : 한화택 교수(국민대학교 기계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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