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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착제의 무한변신, 그 중 최고는? [제 736 호/2008-03-24]

신발, 가방, 책, 가구 그리고 휴대폰의 터치스크린의 공통점은 뭘까?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것들은 모두 접착제를 써서 만든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요즘은 자동차나 비행기를 만들 때 강판끼리 붙이거나, 강판과 플라스틱을 붙이는 데도 어김없이 접착제의 도움을 받는다.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의 3만2천개의 방열타일 역시, 접착제로 붙여서 고정했다. 접착제 없는 현대 문명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접착제 역사는 3300년 전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물체 사이에 송진이나 식물의 액체 성분을 넣어두면 재료가 붙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시초다. 이후 개발된 접착제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발전해 왔다. 먼저 녹말풀 등과 같이 고분자를 용액으로 사용하는 것, 두 번째는 시아노아크릴레이트, 비스아크릴레이트 등과 같이 처음에는 저분자의 액상이던 것이 붙은 다음 중합반응으로 고분자가 되는 것, 마지막으로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나 폴리아미드와 같이 고분자의 고체를 가열해 용융시켜 붙이는 것이다.

종류는 다르지만 이들 접착제의 원리는 거의 동일하다. 아무리 표면이 매끄러운 물체라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표면은 매우 울퉁불퉁하다. 접착제는 이 틈 사이로 스며들어가 굳어 서로를 붙게 만드는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액상 접착제는 보관 용기 안에 있을 때에는 별다른 접착력을 보이지는 않다가 밖으로 나오면 착 달라붙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접착제에 안정제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안정제가 접착제를 낱개 분자형태로 존재하게 만들어 접착을 막는다. 하지만 접착물질이 공기나 물속에 노출되면 안정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낱개 분자들이 수백~수천 개로 결합하는 중합반응을 일으키면서 결합한다. 이 결합이 강할수록 접착력이 강해진다.

이와는 다른 형태의 접착제도 있다. 바이오칩이나 바이오센서를 제작하려면 DNA 같은 생분자를 표면에 고정시켜야 한다. 따라서 바이오칩이나 바이오센서를 만들 때 쓰는 접착제는 일반 접착제와 달리 ‘포스트잇’처럼 붙였다 떼었다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기능을 가진 접착제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는 ‘아비딘-비오틴 접착제’다. 아비딘은 단백질로 계란 흰자에 함유돼 있는 성분이며, 비오틴은 비타민H 또는 B7이다.

이 두 분자의 복합체는 자연물질의 복합체 중 가장 결합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접착제의 강도를 말할 때 ‘결합상수’로 비교하는데 아비딘-비오틴 접착제의 결합상수는 1013~1015나 된다. 이 의미는 분자수가 결합상수에 해당하는 1013~1015개 만큼을 넘어서야 비로소 결합하지 않는 분자가 1-2개 생긴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결합상수가 106이면 대단히 강력한 접착제로 분류하니 얼마나 강력한 결합력을 갖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물질은 단백질 같은 생분자에서 추출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또 아비딘은 높은 온도에서 실험하기 어려워 다양한 유기화학반응에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그동안 새로운 접착 물질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 왔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바이오칩, 바이오센서에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인공분자 접착제를 개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포스텍 화학과 김기문 교수와 고영호 조교수팀은 미국·일본과 공동연구로 인공 수용체인 쿠커비투릴과 페로센 유도체를 결합시킨 새로운 접착제를 개발했다. 페로센 유도체는 길다란 페로센 분자의 옆에 암모늄 그룹을 가지처럼 붙인 것이다.

연구팀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X선 결정 구조를 얻고 실험과 함께 이론적 연구를 통해 결합력이 높은 초분자 복합체의 조건을 찾아내 결합상수를 1015까지 끌어올렸다.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아비딘-비오틴 접착제보다 더 강한 접착제를 찾은 것이다. 쿠커비투릴-페로센 유도체에 높은 결합력이 나타나는 이유는 쿠커비투릴 분자에 뚫린 구멍에 페로센이 정확히 들어맞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단백질-리간드 복합체를 포함한 거의 모든 초분자 시스템에서 관찰되던 분자간 밀침 현상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덕분에 밀쳐내는 힘 없이 당기는 힘만 작용하게 돼 강력한 접착력을 갖게 됐다.

새 인공복합체는 결합력이 아비딘-비오틴 접착제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기존 접착제가 갖고 있는 여러 단점을 해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비딘-비오틴은 단백질등 생물질에서 추출해낸, 생분자 접착제인만큼 정제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또한 생분자인 아비딘은 높은 온도에서 다루기가 어려워 유기화학반응에 응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쿠커비투릴-페로센 유도체 접착제는 인공분자 접착제이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데다, 합성과 화학적 변형이 쉽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연구팀은 이 인공 접착제가 실용화되면 DNA칩을 제작할 때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이고 면역실험이나 항원 정제 같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특별한 접착제를 만들기 위해 종종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오기도 한다. 나노크기의 미세한 털을 이용해 미끄러운 창문이라도 거침없이 기어오르는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고분자 실리콘에 미세한 나노 공정을 가해 접착력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또 홍합에서 힌트를 얻어 고분자 물질과 아미노산 물질(DOPA)을 함께 쓰는 접착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들 접착제는 강한 접착력을 가지면서도 반복해서 사용하거나 물속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창문을 기어오르는 로봇이나 물속에서도 오래가는 밴드 같은 의료산업에 널리 응용될 전망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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