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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에겐 도넛이 먹는 게 아니다 [제 775 호/2008-06-23]

1차원은 선이므로 앞과 뒤만 존재하고, 2차원은 면이므로 앞뒤, 좌우가 있다. 3차원은 공간이므로 앞뒤, 좌우, 상하가 존재하며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 자체를 말한다. 그리고 4차원은 3차원의 공간에 1차원인 시간의 축이 추가된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1, 2, 3, 4차원이다. 그러면 수학자들에게 있어서 4차원은 무엇일까? 수학에서 공간의 차원이라 함은 추상적이면서도 포괄적인 개념으로 서로 수직인 좌표축을 몇 개 그릴 수 있는가로 정의된다. 4차원 공간은 3차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이다.

예를 들면 직선은 x축 하나만 그릴 수 있으므로 1차원이고 종이와 같은 평면은 x, y축 두 개를 그릴 수 있어 2차원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공간에는 3개의 수직인 x, y, z 좌표축을 그릴 수 있어 3차원이라고 한다. 계속하여 이 개념을 일반화하여 나가면 4차원뿐만 아니라 임의의 n차원을 정의할 수 있다. 이 임의의 차원은 평면일 수도 있고 곡면일 수도 있다. 수학적으로 n차원 공간을 다루는 것은 3차원 공간을 다루는 것에 비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차원 외에도 기하학적 대상인 다양체라는 것을 정의한다. 여기서 다양체란 선·면·원·구와 같은 기하학적 도형의 집합을 1개의 공간으로 보았을 때의 공간을 말한다. 예를 들면 구 모양을 하고 있는 축구공을 생각하면 축구공은 여러 개의 가죽 헝겊을 붙여서 만든 것인데 하나의 가죽 헝겊을 펴서 보면 평면의 일부가 된다. 이런 관점으로 구는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공간인 3차원이 아니라 종이와 같은 차원인 2차원이 되며 2차원 다양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예로 종이의 세로축의 좌우 모서리를 붙이면 원기둥이 되고 다시 가로축 상하의 모서리를 붙이면 속이 비어 있는 도넛 모양의 기하학적인 모델이 만들어진다. 이를 토러스라고 하는데 이 역시 2차원 다양체이다.

다양체란 중세 이전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원이나 구, 토러스는 가까이에서 보면 평면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양체이다. 점은 0차원 다양체이고, 선과 원주는 1차원 다양체이다. 면의 도형의 각 점에서 그 근방이 원판과 같은 위상으로 되는 것을 2차원 다양체라 한다. 각 점의 근방이 n차원 구체와 같은 n차원적 도형이거나, n차원 공간이나 n차원 구체 자신인 경우 각각의 것들은 n차원 다양체이다.

2차원 다양체들을 구, 토러스, 토러스를 붙인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는 가운데 구멍이 없지만 다른 것들은 구멍이 있다. 이중에서 구만 임의의 폐곡선을 그린 후에 이를 폐곡선 내의 한 점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적도 원의 반경을 천천히 줄이면서 북극점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이를 수학적으로 정의하여 구는 기하학적 종수가 없고 단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4차원 다양체가 구와 같이 기하학적 종수가 없고 단순 연결되어 있다면 복소수 사영평면과 비슷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가 있다. 이를 세베리의 추측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기하학적 종수란 토러스 등,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원통 같은 것에 붙이는 위상학적 ‘번호’라고 할 수 있다. 구형의 경우 종수는 0이 되고, 도넛의 경우 종수는 1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복소수 사영평면이란 4차원 구와 비슷한 4차원 다양체로, 복소수 성질을 가진다. 반면 4차원 구는 4차원 다양체 중 하나이면서 복소수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

지난 1949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수학자인 프란체스코 세베리가 ‘기하학적 종수가 0이고 단순연결된 곡면은 평면과 거의 같다’는 4차원 다양체에 관한 추측을 내놓은 이후, 수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60년 가까이 증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서울대 수리과학부 박종일 교수와 서강대 수학과 이용남 교수가 수학계의 난제 중 하나였던 세베리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양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기하학적 종수가 0이고 단순연결됐지만 평면과 근본적으로 다른 다양체를 구성해낸 것이다. 기하학적 종수가 0이고 단순연결된 평면은 곡률이 양(+)이라는 게 지금까지 연구결과였지만 이번에 발견한 4차원 구조물은 같은 조건에서 곡률이 음(-)인 곡면이 존재한다.

이러한 증명은 새로운 발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차원 다양체와 마찬가지로 4차원 다양체라 함은 기하학적인 대상으로 각 점에서 잘게 잘라보면 4차원 공간과 유사한 것이다. 종이 위에 공을 올려놓고 북극점에서 공의 각 점으로 직선을 그리면 평면 위의 한 점과 만난다. 그런 관점으로 2차원 구는 평면에 북극점을 붙인 복소수 사영직선으로 볼 수 있다. 이를 4차원으로 일반화 한 것이 복소수 사영평면이다. 그러면 4차원 다양체에서도 2차원 다양체인 구와 같이 기하학적 종수가 없고 단순 연결되어 있는 특징을 갖고 기하학적인 대상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도 전혀 유사하지 않는 4차원 다양체가 존재할까?

이와 같이 수학자들은 기하학적인 문제를 무한한 상상력과 사고방식을 적절히 조화시켜 연구하고 해결한다. 많은 수학자들은 여전히 수학적인 대상이 아름답고 조화로워서 또는 미지에 대한 탐험의 정신으로 공부하기를 원하고 연구하지만 이에 대한 응용은 미래의 몫이다. 백 년 전에 발전한 수학이론이 현대 이론물리학, 통신 이론, 암호론 등에 사용될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글 : 이용남 교수(서강대학교 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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