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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번역 2-3 (1)

이 번역은 1942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L'étranger를 원본으로 삼으며, 때로 이휘영, 김화영, 이기언, 김예령, 이정서 번역을 참고한다.

 

한국에서 L'étranger 원본의 저작권은 소멸했다. 이 번역본은 무료로 배포 가능하다. 단, 영리 목적 사용은 불가능하며, 일부나 전부를 어떠한 형태로도 가공 내지 수정할 수 없다. 어차피 카뮈의 간결함을 한국어로 살려본답시고 내 멋대로 의역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신뢰할 만하진 않다.

 

 

제2부

 

III

 

이듬해 여름이 어느새 지난여름을 대신한 셈이었다. 더위가 서서히 찾아오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이 급작스럽게 벌어지리란 걸 알았다. 내 사건은 중죄법원 마지막 개정기 때 다뤄질 예정이었다. 마지막 개정기는 6월 안에 끝난다. 심리가 시작되던 날, 바깥은 햇살로 가득했다. 변호인은 이삼일이면 심리가 끝날 거라 장담했다. 그는 덧붙였다. “게다가 이번 개정기에 뫼르소 씨 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잡혀서 법원이 바쁠 거예요. 뫼르소 씨 바로 다음이 어떤 존속살해범 차례거든요.”

 

 

아침 일곱 시 반이 되자 나를 데리러 왔다. 호송차를 타고 법원으로 갔다. 경관 두 명이 나를 어둠 냄새가 나는 작은 방에 들어가게 했다. 우리는 문 근처에서 기다렸다. 문 너머로 목소리, 호명, 의자 소리, 마을 축제에서 공연이 끝난 뒤 춤을 추려고 자리를 정리할 때와 같은 소란스러움이 들려 왔다. 경관들은 판사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둘 중 한 명이 나한테 담배를 권했으나 거절했다. 잠시 후 그는 “떨리는지”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더구나 재판을 구경하는 게 나름 기대되기도 했다. 여태 그럴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경관이 말했다. “그렇긴 한데, 결국 지치고 말아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방에서 작은 벨이 울렸다. 경관들이 수갑을 풀어줬다. 문을 열더니 나를 피고인석으로 데려갔다. 법정은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는데도 햇살이 군데군데 스며들었고, 공기는 벌써 숨 막혔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경관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때야 열 지어 나를 마주 보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나를 바라봤다. 배심원들이구나. 그런데 서로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트램 좌석 앞에 선 느낌이었다. 이 이름 모를 승객들은 새로 올라탄 사람한테 놀림거리가 없을까 훑어보는 중이었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배심원들은 놀림거리가 아니라 범죄를 찾는 사람들이니까. 하여간 별 차이는 없었고, 어쨌든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닫힌 방 안에 사람이 이토록 많아 조금 어리둥절했다. 법정을 다시 둘러봤지만 얼굴을 분간할 수 없었다. 처음엔 다들 나를 보려고 앞다투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관심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 때문에 다들 이 소란을 피운다는 걸 노력 끝에 이해했다. 경관한테 말했다. “사람이 정말 많네요!” 기자들 때문이라며 배심원석 아래 책상 근처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켰다. 경관이 말했다. “다들 왔군요.” “누가요?” 그는 재차 말했다. “기자들이요.” 경관과 아는 사이였던 기자 한 명이 경관을 보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꽤 든 사람으로, 친절했고, 약간 찡그리는 인상이었다. 기자는 경관과 뜨거운 악수를 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부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부류끼리 모여 즐거워하는 사교 모임 같았다. 그리고 내가 괜히 낀 사람, 잉여물 같다는, 마치 불청객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마음을 맴돌았다. 그래도 기자는 나한테 미소 지으며 말을 걸었다.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기자는 덧붙였다. “그게요, 뫼르소 씨 사건을 좀 크게 실었답니다. 여름엔 워낙 기삿거리가 부족해요. 뫼르소 씨 사건과 그 존속살해범 이야기 말곤 딱히 실을 만한 게 없었죠.” 그러고는 기자들 사이로 살찐 족제비를 닮은 키 작은 남성을 가리켰다. 엄청나게 큰 검은 테 안경을 낀 사람이었다. 파리에서 파견된 특파원이란다. “저 사람이 뫼르소 씨 때문에 여길 온 건 아니에요. 존속살해범 재판을 취재하러 온 김에 뫼르소 씨 사건까지 다루게 된 거죠.” 나는 또 하마터면 고맙다는 말을 할 뻔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우스울지 생각했다. 기자는 나한테 손을 정중하게 흔들곤 떠났다. 몇 분 정도 더 기다렸다.

 

 

법복 차림의 변호인이 동료들한테 둘러싸여 도착했다. 기자들 쪽으로 가더니 악수를 했다. 농담을 주고받고 웃었다. 화기애애해 보였다. 벨이 법정에 울려 퍼지자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변호인이 내 쪽으로 오더니 악수를 한 후,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하고, 괜히 나서서 말하지 말고, 나머지는 자기한테 맡기라고 조언했다.

 

 

내 왼편에서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고 키가 큰 사람이 보였다. 붉은 옷을 입고 코안경을 쓴 채, 법복을 조심스럽게 접으며 앉았다. 검사였다. 법원 경위가 판사들의 도착을 알렸다. 동시에 두 개의 큰 선풍기가 소리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판사 셋이 관련 서류를 들고 법정을 굽어보는 법대로 재빨리 걸어갔다. 두 명은 검은 옷, 한 명은 붉은 옷차림이었다. 붉은 법복을 입은 사람이 가운데에 앉더니 법모를 자기 앞에 놓고, 손수건으로 작은 대머리를 닦으며 공판의 개정을 알렸다.

 

 

기자들이 벌써부터 손에 펜을 들었다. 다들 무심해 보였고, 조금 빈정거린단 느낌을 줬다. 그래도 그중 회색 플란넬 옷과 파란 넥타이 차림의 유독 젊어 보이는 기자 한 명이 펜을 내려놓은 채 나를 바라봤다. 약간 비대칭인 그 얼굴에선 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무척 맑은 두 눈밖에 안 보였다. 어떤 뚜렷한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눈길이었다. 마치 내가 나를 바라보는 묘한 기분이었다. 아마 그 묘한 기분 탓에, 그리고 소송절차가 생소한 탓에,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배심원 선정, 재판장이 변호인, 검사, 배심원단에게 하던 질문(그럴 때마다 배심원들은 전부 법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소장의 빠른 낭독. 내가 아는 장소와 사람 이름도 들려왔다. 그리고 변호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재판장이 증인 호명부터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경위가 내 주의를 끄는 이름들을 읊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막연했던 방청객 사이에서 양로원 원장과 수위, 다 늙은 토마 페레스, 레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가 일어났다가 옆쪽 문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리는 걱정스러운 손짓을 했다. 그들을 더 일찍 알아보지 못해 놀라던 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셀레스트가 호명을 받고 일어났다. 셀레스트 옆에 식당에서 봤던 키 작은 여성이 보였다. 여성은 지난번처럼 재킷을 입었고, 여전히 또렷하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재판장이 말하기 시작해 따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재판장은 본격적으로 심리에 들어가겠다며, 굳이 방청객들에게 정숙하라고 할 필요가 없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자기는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건에 대한 소송을 공정하게 지휘할 임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배심원단의 평결은 정의에 입각해 받아들여질 것이며,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퇴정을 명령하겠단다.

 

 

갈수록 더웠고, 몇몇 방청객은 신문으로 부채질했다. 그래서 종이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계속됐다. 재판장이 신호를 보내자 경위가 짚으로 엮은 부채 세 개를 가져왔다. 판사들은 얼른 부채를 집어 들었다.

 

 

나에 대한 신문이 곧 시작됐다. 재판장은 차분하게 질문했다.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선 인정신문부터 했다. 짜증이 나긴 했지만, 자칫 엉뚱한 사람을 재판하면 큰일이니 인정신문을 할 만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이 내가 한 행위를 읊기 시작했다. 세 문장에 한 번꼴로 나한테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변호인의 지시대로 “네, 재판장님.”이라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사건을 면밀하게 따졌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자들은 내내 필기했다. 아까의 젊은 기자와 작은 자동인형의 시선이 느껴졌다. 트램에 나란히 앉은 승객들은 죄다 재판장을 향했다. 재판장은 기침하더니 서류를 들춰보고, 부채질하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재판장은 이제부터 사건과 다소 상관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질문들을 하겠다고 말했다. 엄마 이야기를 하려나 보구나 싶었다. 얼마나 귀찮던지. 왜 엄마를 양로원에 모셨는지 물었다. 간병하고 치료할 돈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는지 물었다. 엄마나 나나 서로 기대하는 게 없었다고, 다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서로 새로운 삶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이 점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며 검사더러 질문이 더 있는지 물었다.

 

 

검사는 반쯤 등을 돌린 채 나를 바라보지 않으며, 재판장이 허락한다면 내가 아랍인을 살해할 의도를 갖고 혼자 샘으로 돌아간 건지 알고 싶다고 밝혔다. “아닙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피고인은 무장한 상태였으며, 어째서 그 특정한 장소로 돌아간 건가요?” 나는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검사가 불쾌한 말투로 “일단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부턴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적어도 나한텐 그랬다. 하지만 몇 차례 이야기가 오고 간 후 재판장은 일단 심리를 중단한 뒤 증인신문을 위해 오후에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를 데리고 갔다. 호송차에 태운 뒤 교도소로 향했다. 교도소에서 식사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피곤이 올라오려는 순간 나를 도로 데리러 왔다. 모든 게 다시 시작됐다. 나는 아까와 같은 법정에서, 아까와 같은 얼굴들과 마주했다. 다만 훨씬 더웠고, 배심원들, 검사, 변호인, 몇몇 기자들은 기적처럼 어디서 짚으로 된 부채를 구해왔다. 젊은 기자와 작은 여성도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둘은 부채질하지 않았고, 아직도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내 얼굴을 뒤덮은 땀을 조금 닦아냈다. 양로원 원장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조금 정신 차릴 수 있었다. 원장한테 엄마가 내 불평을 했는지 물었다. 원장은 그렇긴 한데 재원자가 피붙이 불평을 하는 건 워낙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재판장은 내가 자기를 양로원에 보내서 엄마가 불평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물었고, 원장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원장은 내가 장례식 날 보인 침착함 때문에 놀랐다고 대답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는 요구가 이었다. 원장은 자기 구두 끄트머리를 보더니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장례가 끝나자 엄마 묘지에 가서 묵상하지도 않고 바로 떠났다고 말했다. 장의사 직원 한 명이 내가 엄마 나이를 모른다고 해서 또 놀랐다고 덧붙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재판장은 나에 관한 증언이 맞는지 물었다. 원장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자 재판장은 “절차상 하는 질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은 차장 검사한테 증인에게 할 질문이 더 있는지 물었다. 검사는 “없습니다! 이걸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어찌나 큰 목소리로, 어찌나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 말을 했던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다는 바보 같은 심정이 들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껴졌으니까.

 

 

재판장은 배심원단과 변호인에게 질문이 더 있는지 물은 뒤 수위로 넘어갔다. 예의 의전이 반복됐다. 다른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지만. 수위는 증인석으로 가던 중 나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질문에 대답했다.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으며, 담배를 피웠으며, 잠을 잤으며, 카페오레를 마셨다고 말했다. 법정 전체가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내가 죄를 지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위더러 카페오레와 담배 이야기를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차장 검사가 빈정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변호인이 수위에게 나와 같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검사가 일어서며 격하게 항의했다. “도대체 지금 누가 범죄자입니까? 증언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로 검찰 측 증인을 욕보이는 질문을 하는 게 온당하긴 합니까? 그래 봤자 명명백백한 증언입니다!” 재판장은 어쨌든 질문에 답하라고 했다. 노인네는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선 안 됐는데… 뫼르소 씨께서 권하시는 담배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한테 덧붙일 말이 없는지 물었다. “없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다만 제가 증인에게 담배를 권한 건 맞습니다.” 그러자 수위가 약간 놀라며 고맙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수위는 잠시 망설이더니 자기가 나한테 카페오레를 권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상당히 득의양양해하며 배심원들이 잘 참작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검사가 우리 머리 위로 고함치듯 말했다. “네, 배심원 여러분께서 잘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이야 커피를 권할 수도 있지만, 자기를 낳아준 분의 시신을 앞에 둔 아들은 마땅히 커피를 거절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시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수위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Deuxième partie

 

III

 

Je peux dire qu'au fond l'été a très vite remplacé l'été. Je savais qu'avec la montée des premières chaleurs surviendrait quelque chose de nouveau pour moi. Mon affaire était inscrite à la dernière session de la cour d'assises et cette session se terminerait avec le mois de juin. Les débats se sont ouverts avec, au-dehors, tout le plein du soleil. Mon avocat m'avait assuré qu'ils ne dureraient pas plus de deux ou trois jours. « D'ailleurs, avait-il ajoute, la cour sera pressée parce que votre affaire n'est pas la plus importante de la session. Il y a un parricide qui passera tout de suite après. »

 

 

À sept heures et demie du matin, on est venu me chercher et la voiture cellulaire m'a conduit au Palais de justice. Les deux gendarmes m'ont fait entrer dans une petite pièce qui sentait l'ombre. Nous avons attendu, assis près d'une porte derrière laquelle on entendait des voix, des appels, des bruits de chaises et tout un remue-ménage qui m'a fait penser à ces fêtes de quartier où, après le concert, on range la salle pour pouvoir danser. Les gendarmes m'ont dit qu'il fallait attendre la cour et l'un d'eux m'a offert une cigarette que j'ai refusée. Il m'a demandé peu après « si j'avais le trac ». J'ai répondu que non. Et même, dans un sens, cela m'intéressait de voir un procès. Je n'en avais jamais eu l'occasion dans ma vie : « Oui, a dit le second gendarme, mais cela finit par fatiguer. »

 

 

Après un peu de temps, une petite sonnerie a résonné dans la pièce. Ils m'ont alors ôté les menottes. Ils ont ouvert la porte et m'ont fait entrer dans le box des accusés. La salle était pleine à craquer. Malgré les stores, le soleil s'infiltrait par endroits et l'air était déjà étouffant. On avait laissé les vitres closes. Je me suis assis et les gendarmes m'ont encadré. C'est à ce moment que j'ai aperçu une rangée de visages devant moi. Tous me regardaient : j'ai compris que c'étaient les jurés. Mais je ne peux pas dire ce qui les distinguait les uns des autres. Je n'ai eu qu'une impression : j'étais devant une banquette de tramway et tous ces voyageurs anonymes épiaient le nouvel arrivant pour en apercevoir les ridicules. Je sais bien que c'était une idée niaise puisque ici ce n'était pas le ridicule qu'ils cherchaient, mais le crime. Cependant la différence n'est pas grande et c'est en tout cas l'idée qui m'est venue.

 

 

J'étais un peu étourdi aussi par tout ce monde dans cette salle close. J'ai regardé encore le prétoire et je n'ai distingué aucun visage. Je crois bien que d'abord je ne m'étais pas rendu compte que tout ce monde se pressait pour me voir. D'habitude, les gens ne s'occupaient pas de ma personne. Il m'a fallu un effort pour comprendre que j'étais la cause de toute cette agitation. J'ai dit au gendarme : « Que de monde ! » Il m'a répondu que c'était à cause des journaux et il m'a montré un groupe qui se tenait près d'une table sous le banc des jurés. Il m'a dit : « Les voilà. » J'ai demandé : « Qui ? » et il a répété : « Les journaux. » Il connaissait l'un des journalistes qui l'a vu a ce moment et qui s'est dirigé vers nous. C'était un homme déjà âgé, sympathique, avec un visage un peu grimaçant. Il a serré la main du gendarme avec beaucoup de chaleur. J'ai remarqué à ce moment que tout le monde se rencontrait, s'interpellait et conversait, comme dans un club où l'on est heureux de se retrouver entre gens du même monde. Je me suis expliqué aussi la bizarre impression que j'avais d'être de trop, un peu comme un intrus. Pourtant, le journaliste s'est adressé à moi en souriant. Il m'a dit qu'il espérait que tout irait bien pour moi. Je l'ai remercié et il a ajouté : « Vous savez, nous avons monté un peu votre affaire. L'été, c'est la saison creuse pour les journaux. Et il n'y avait que votre histoire et celle du parricide qui vaillent quelque chose. » Il m'a montré ensuite, dans le groupe qu'il venait de quitter, un petit bonhomme qui ressemblait à une belette engraissée, avec d'énormes lunettes cerclées de noir. Il m'a dit que c'était l'envoyé spécial d'un journal de Paris : « Il n'est pas venu pour vous, d'ailleurs. Mais comme il est chargé de rendre compte du procès du parricide, on lui a demandé de câbler votre affaire en même temps. » Là encore, j'ai failli le remercier. Mais j'ai pensé que ce serait ridicule. Il m'a fait un petit signe cordial de la main et nous a quittés. Nous avons encore attendu quelques minutes.

 

 

Mon avocat est arrivé, en robe, entouré de beaucoup d'autres confrères. Il est allé vers les journalistes, a serré des mains. Ils ont plaisanté, ri et avaient l'air tout à fait à leur aise, jusqu'au moment où la sonnerie a retenti dans le prétoire. Tout le monde a regagné sa place. Mon avocat est venu vers moi, m'a serré la main et m'a conseillé de répondre brièvement aux questions qu'on me poserait, de ne pas prendre d'initiatives et de me reposer sur lui pour le reste.

 

 

À ma gauche, j'ai entendu le bruit d'une chaise qu'on reculait et j'ai vu un grand homme mince, vêtu de rouge, portant lorgnon, qui s'asseyait en pliant sa robe avec soin. C'était le procureur. Un huissier a annoncé la cour. Au même moment, deux gros ventilateurs ont commencé de vrombir. Trois juges, deux en noir, le troisième en rouge, sont entrés avec des dossiers et ont marché très vite vers la tribune qui dominait la salle. L'homme en robe rouge s'est assis sur le fauteuil du milieu, a posé sa toque devant lui, essuyé son petit crâne chauve avec un mouchoir et déclaré que l'audience était ouverte.

 

 

Les journalistes tenaient déjà leur stylo en main. Ils avaient tous le même air indiffèrent et un peu narquois. Pourtant, l'un d'entre eux, beaucoup plus jeune, habillé en flanelle grise avec une cravate bleue, avait laissée son stylo devant lui et me regardait. Dans son visage un peu asymétrique, je ne voyais que ses deux yeux, très clairs, qui m'examinaient attentivement, sans rien exprimer qui fût définissable. Et j'ai eu l'impression bizarre d'être regardé par moi-même. C'est peut-être pour cela, et aussi parce que je ne connaissais pas les usages du lieu, que je n'ai pas très bien compris tout ce qui s'est passé ensuite, le tirage au sort des jurés, les questions posées par le président à l'avocat, au procureur et au jury (à chaque fois, toutes les têtes des jurés se retournaient en même temps vers la cour), une lecture rapide de l'acte d'accusation, où je reconnaissais des noms de lieux et de personnes, et de nouvelles questions à mon avocat.

 

 

Mais le président a dit qu'il allait faire procéder à l'appel des témoins. L'huissier a lu des noms qui ont attiré mon attention. Du sein de ce public tout à l'heure informe, j'ai vu se lever un à un, pour disparaître ensuite par une porte latérale, le directeur et le concierge de l'asile, le vieux Thomas Pérez, Raymond, Masson, Salamano, Marie. Celle-ci m'a fait un petit signe anxieux. Je m'étonnais encore de ne pas les avoir aperçus plus tôt, lorsque à l'appel de son nom, le dernier, Céleste s'est levé. J'ai reconnu à côté de lui la petite bonne femme du restaurant, avec sa jaquette et son air précis et décidé. Elle me regardait avec intensité. Mais je n'ai pas eu le temps de réfléchir parce que le président a pris la parole. Il a dit que les véritables débats allaient commencer et qu'il croyait inutile de recommander au public d'être calme. Selon lui, il était là pour diriger avec impartialité les débats d'une affaire qu'il voulait considérer avec objectivité. La sentence rendue par le jury serait prise dans un esprit de justice et, dans tous les cas, il ferait évacuer la salle au moindre incident.

 

 

La chaleur montait et je voyais dans la salle les assistants s'éventer avec des journaux. Cela faisait un petit bruit continu de papier froissé. Le président a fait un signe et l'huissier a apporte trois éventails de paille tressée que les trois juges ont utilisés immédiatement.

 

 

Mon interrogatoire a commencé aussitôt. Le président m'a questionné avec calme et même, m'a-t-il semblé, avec une nuance de cordialité. On m'a encore fait décliner mon identité et malgré mon agacement, j'ai pensé qu'au fond c'était assez naturel, parce qu'il serait trop grave de juger un homme pour un autre. Puis le président a recommencé le récit de ce que j'avais fait, en s'adressant à moi toutes les trois phrases pour me demander : « Est-ce bien cela ? » À chaque fois, j'ai répondu : « Oui, monsieur le Président », selon les instructions de mon avocat. Cela a été long parce que le président apportait beaucoup de minutie dans son récit. Pendant tout ce temps, les journalistes écrivaient. Je sentais les regards du plus jeune d'entre eux et de la petite automate. La banquette de tramway était tout entière tournée vers le président. Celui-ci a toussé, feuilleté son dossier et il s'est tourné vers moi en s'éventant.

 

 

Il m'a dit qu'il devait aborder maintenant des questions apparemment étrangères à mon affaire, mais qui peut-être la touchaient de fort près. J'ai compris qu'il allait encore parler de maman et j'ai senti en même temps combien cela m'ennuyait. Il m'a demandé pourquoi j'avais mis maman à l'asile. J'ai répondu que c'était parce que je manquais d'argent pour la faire garder et soigner. Il m'a demandé si cela m'avait coûté personnellement et j'ai répondu que ni maman ni moi n'attendions plus rien l'un de l'autre, ni d'ailleurs de personne, et que nous nous étions habitués tous les deux à nos vies nouvelles. Le président a dit alors qu'il ne voulait pas insister sur ce point et il a demandé au procureur s'il ne voyait pas d'autre question à me poser.

 

 

Celui-ci me tournait à demi le dos et, sans me regarder, il a déclaré qu'avec l'autorisation du président, il aimerait savoir si j'étais retourné vers la source tout seul avec l'intention de tuer l'Arabe. « Non », ai-je dit. « Alors, pourquoi était-il armé et pourquoi revenir vers cet endroit précisément ? » J'ai dit que c'était le hasard. Et le procureur a noté avec un accent mauvais : « Ce sera tout pour le moment. » Tout ensuite a été un peu confus, du moins pour moi. Mais après quelques conciliabules, le président a déclaré que l'audience était levée et renvoyée à l'après-midi pour l'audition des témoins.

 

 

Je n'ai pas eu le temps de réfléchir. On m'a emmené, fait monter dans la voiture cellulaire et conduit à la prison où j'ai mangé. Au bout de très peu de temps, juste assez pour me rendre compte que j'étais fatigué, on est revenu me chercher ; tout a recommencé et je me suis trouvé dans la même salle, devant les mêmes visages. Seulement la chaleur était beaucoup plus forte et comme par un miracle chacun des jurés, le procureur, mon avocat et quelques journalistes étaient munis aussi d'éventails de paille. Le jeune journaliste et la petite femme étaient toujours là. Mais ils ne s'éventaient pas et me regardaient encore sans rien dire.

 

 

J'ai essuyé la sueur qui couvrait mon visage et je n'ai repris un peu conscience, du lieu et de moi-même que lorsque j'ai entendu appeler le directeur de l'asile. On lui a demandé si maman se plaignait de moi et il a dit que oui mais que c'était un peu la manie de ses pensionnaires de se plaindre de leurs proches. Le président lui a fait préciser si elle me reprochait de l'avoir mise à l'asile et le directeur a dit encore oui. Mais cette fois, il n'a rien ajouté. À une autre question, il a répondu qu'il avait été surpris de mon calme le jour de l'enterrement. On lui a demandé ce qu'il entendait par calme. Le directeur a regardé alors le bout de ses souliers et il a dit que je n'avais pas voulu voir maman, je n'avais pas pleuré une seule fois et j'étais parti aussitôt après l'enterrement sans me recueillir sur sa tombe. Une chose encore l'avait surpris : un employé des pompes funèbres lui avait dit que je ne savais pas l'âge de maman. Il y a eu un moment de silence et le président lui a demandé si c'était bien de moi qu'il avait parlé. Comme le directeur ne comprenait pas la question, il lui a dit : « C'est la loi. » Puis le président a demandé à l'avocat général s'il n'avait pas de question à poser au témoin et le procureur s'est écrié : « Oh ! non, cela suffit », avec un tel éclat et un tel regard triomphant dans ma direction que,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des années, j'ai eu une envie stupide de pleurer parce que j'ai senti combien j'étais détesté par tous ces gens-là.

 

 

Après avoir demandé au jury et à mon avocat s'ils avaient des questions à poser, le président a entendu le concierge. Pour lui comme pour tous les autres, le même cérémonial s'est répété. En arrivant, le concierge m'a regardé et il a détourné les yeux. Il a répondu aux questions qu'on lui posait. Il a dit que je n'avais pas voulu voir maman, que j'avais fumé, que j'avais dormi et que j'avais pris du café au lait. J'ai senti alors quelque chose qui soulevait toute la salle et, pour la première fois, j'ai compris que j'étais coupable. On a fait répéter au concierge l'histoire du café au lait et celle de la cigarette. L'avocat général m'a regardé avec une lueur ironique dans les yeux. À ce moment, mon avocat a demandé au concierge s'il n'avait pas fumé avec moi. Mais le procureur s'est élevé avec violence contre cette question : « Quel est le criminel ici et quelles sont ces méthodes qui consistent à salir les témoins de l'accusation pour minimiser des témoignages qui n'en demeurent pas moins écrasants ! » Malgré tout, le président a demandé au concierge de répondre à la question. Le vieux a dit d'un air embarrassé : « Je sais bien que j'ai eu tort. Mais je n'ai pas osé refuser la cigarette que Monsieur m'a offerte. » En dernier lieu, on m'a demandé si je n'avais rien à ajouter. « Rien, ai-je répondu, seulement que le témoin a raison. Il est vrai que je lui ai offert une cigarette. » Le concierge m'a regardé alors avec un peu d'étonnement et une sorte de gratitude. Il a hésité, puis il a dit que c'était lui qui m'avait offert le café au lait. Mon avocat a triomphé bruyamment et a déclaré que les jurés apprécieraient. Mais le procureur a tonné au-dessus de nos têtes et il a dit : « Oui, MM. les jurés apprécieront. Et ils concluront qu'un étranger pouvait proposer du café, mais qu'un fils devait le refuser devant le corps de celle qui lui avait donné le jour. » Le concierge a regagné son b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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