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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증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면 김봉두의 어린 시절 그가 다니던 학교의 '소사'였던 아버지를 가리키며 "공부 안하면 저 소사처럼 된다!"는 선생의 대사가 나옵니다.

김봉두는 곁눈질로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분노합니다.
그 분노를 곱씹으며 노력한 결과일까? 결국 그는 선생님이 됩니다.

유난히 촌지를 밝히며 아이들을 재테크수단으로 삼는 질나쁜 선생이 되지만...,
(그가 개과천선하는 내용은 사실 무척이나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막노동' 일명 '노가다'로 불리는 늙은 건설노동자들이 포스코본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조건은 지난 울산플랜트노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레디앙이나 몇몇 진보인터넷언론매체 등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해야 할것은 이들이 이토록 극한적인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이 사회의 근본적인 부조리와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권세력이 아주 손 쉽게 경기부양책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른바 '건설경기회복'입니다.

부동산과 건설분야가 활발해지면 수면 아래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현금이 시장에 돌고 투기와 수익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집니다.

대형건설사들은 막강한 로비력과 정보력을 동원하여 건설경기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개별공사를 비롯 BTL수주까지 독점하다시피하게 됩니다.

문제는 일단 공사에 들어가면 하청,재하청 등 중소건설업체를 통해 실질적인 공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여러 단계의 유통관계를 통해 원산지재배농민은 제 값을 못받고 소비자는 비싼 값을 치루어야 하는 문제와 동일한 과정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먹을거리야 비싸다한들 정직하기라도 하지 건설분야의 경우 값싼 자재와 날림공사로 인한 부실피해는 엄청난 후유증을 내포하기 마련입니다.

건설현장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삶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젊은 시절 방학을 이용하여 등록금마련이나 용돈을 벌기 위해 공사판에서 일해본 경험이 대부분 한번 정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한계에 부딪혔을 때 "노가다라도 하지 뭐!"라고 한숨섞인 푸념을 내뱉은 기억이 본인의 경험이 아니어도 한번쯤은 다들 있을 겁니다.

독일에는 벽돌을 비롯한 건축자재를 연구하고 제품생산과 판매를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확충되어 있습니다.
그 핵심에 이른바 '미장이'라고 불리는 건설노동자들이 고교시절부터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을 체화하여 '마이스터'로 존경받는 노동가치에 대한 사회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의견과 전문연구인력이 함께 기술개발과 건축분야 발전에 동참하는 과정이 선진화된 사회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포항의 건설노동자들이 원청인 포스코에게 협상을 수차례 요구했고 이를 포스코가 거부하여 파업에 돌입하자 포스코는 기다렸다는 듯 대체인력을 투입하였습니다.

단병호의원과 심상정의원이 이상수노동부장관과의 면담과정에서도 드러나듯 노동부는 불법대체인력투입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자 연합뉴스는 '포항건설노동자들의 농성과 연대투쟁으로 인해 포항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의 사보인 중앙이나 문화일보도 아니고 조선이나 동아일보도 아닌 통신사가 전하는 기사의 제목과 내용조차 철저하게 자본과 기득권의 관점에 충실합니다.

그들에게 하찮은 노가다들의 생떼투정은 무식한 사회불만세력의 공공질서 파괴일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여론 대부분의 시각이 그들 언론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도 않습니다.

광주시는 기아차파업을 두고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면서 "우리가 기아차주식사주기 운동까지 펼치고 있는 마당에 노조가 파업을 벌여 지역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분노했습니다.
이미 재선에 성공한 박광태시장은 지난 3월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용서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라고 말한 전력이 있습니다.

정부와 자본, 보수정치권과 지자체, 언론이 똘똘 뭉쳐 '못 배우고 단순무식한' 노동자들의 권리찾기에 대해 침을 뱉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노가다'는 아닐지언정 이 사회에서 온갖 모순의 구조에 의해 제 권리를 침해받고 박탈당하며 살고 있는 존재들이 함께 침을 뱉는 것도 모자라 돌을 던져대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넘어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전에 공희준씨에게 진보정치의 지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사회 약자들의 권리찾기에
나서야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면서 공희준의 관점대로라면 '전혀 표될리 없는' 그들의 권리마저도 챙겨야하는 실천들은 하찮아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회라면 각각의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가치와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는 사회를 위한 노력은 모두가 힘들고 외면하려는 곳에서 더 큰 고민과 대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참 무기력해짐을 반복적으로 느낍니다.


이런 무기력증이 여름한철 지나는 열병처럼 후유증을 남기지 않기를 바라고는 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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